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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0 16:58

제주목사 이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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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제주목사 이시방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은의도 저버리고 세상 만났다고 나불대는 얄팍한 세속인심은 예나 지금이나 가실 날이 없다. 더구나 저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해지면, “나는 그를 모르노라.” 너무한 얘기다. 조선 왕조에서 폐출되어 임금 자리를 쫓겨난 인물로 광해군이 있다. 그는 임진왜란 때 신세도 졌고, 또 역대로 평화롭게 사귀어 온 명나라의 세력이 날로 기울어가고, 만주족 청의 세력은 나날이 강성해지는 틈바구니에서, 등거리 양면외교로 고식적이나마 잘 버티어 온 왕조의 주인공이다. 그런 그가 사생활에는 엉망이어서 하필이면 선왕의 후궁인 개시를 사랑하여 수령방백이 그녀의 손에 좌우되고, 동기간인 임해군과 영창대군을 살해하고 심지어는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하여 아무리 계모라도 폐모하기에 이르자, 뜻있는 이들이 군사를 일으켜 능양군을 세우고 왕위에서 몰아내니 이른바 인조반정이다.

  이렇게 왕위에서 폐출되었어도 호칭에는 군을 붙였는데, 세조에게 밀려난 단종도 복위되기 전 노산군으로 불리었고, 연산군은 나면서부터 세자라 폐위와 함께 주어진 칭호이었으며 광해군은 본래의 군호가 그것이었다. 이렇게 군으로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아무리 실덕하여 왕노릇한 것도 없거나, 세자로 있던 것이 아니라 해도 선왕의 아들인 것만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인지라, 왕자로서의 예우만은 지키는 체통이었던 것이다. 그 분들의 최후도 노산군 단종은 목을 졸려 비명에 돌아간 분이니까 말할 것도 없고, 연산군은 폐위 강봉되어 강화 교동으로 귀양갔다가 오래지 않아 더위에 곽란으로 급서하였다 하는데, 향년이 33세이니 아무래도 타살의 혐의가 짙다. 아무튼 그의 묘는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 있는데 묘역을 꾸민 석물이랑 그래도 왕자의 예모를 갖추고 있다.

  광해군은 선조 8년(1575년)에 태어나 1608년부터 15년간 왕위에 있다가 밀려나 인조 19년(1641년)까지 생존했으니 그런대로 천수를 다한 것이라 하겠다. 그 사이에도 공신들 사이에서는 슬쩍 해치워버리자는 공론도 있었으나 모진 목숨을 부지하여 처음에는 강화도에서 귀양살이 하다가 다시 제주도로 유배되었는데, 그야말로 볼 일 다 본 터에 대접이 온전할 까닭이 없다. 겹겹이 막히어 외부세계와 완전히 차단된 공간에서 들여 보내주는 음식을 받아먹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에 없이 공궤가 깨끗하고 좋아져서 폐주는 이런 말을 하였다.

  “이렇게 처우가 달라졌을 제는, 아마도 전일 나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이 제주목사로 왔는가 보이.”

  그랬더니 따라와 모시고 지내는 늙은 궁녀가 그런다.

  “그렇진 않을 것이옵니다.”
  “그것을 그대가 어찌 아노?”
  “생각해 보십시오. 마마께서 재위하시는 동안 신하들 승진이나 보직을 모두 궁인들의 말이나 듣고 처리하셨사온대, 그렇게 뒷구멍으로 손을 써서 출세한 사람이라면, 제 밑이구려서라도 일부러 마마께 박하게 굴어, 전혀 그렇지 않았던 양으로 꾸밀 것이지, 그런 용렬한 인간들이 어떻게 감히 마마를 특별히 정성껏 받들어 모시겠습니까? 아마 옳은 가문에서 바로 배운 공자가 도임해 왔을 것이옵니다.”

  뒤에 차차 알아보니, 새로 취임한 목사는  이시방으로 반정공신 중에도 원훈인 이귀의 둘째 아들이요, 자신도 형 시백과 함께 정사 이등공신에 오른 사람이다. 말하자면 광해군을 내어 쫓은 가문이요, 장본인이다. 그가 제주목사로 와 보니 광해군이 거기 안치돼 있어 주방에다 단단히 이른 것이다.

  “비록 실수는 했어도 왕자요. 십여 년이나 임금으로 받들던 분이다. 추호라도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니라.”

  그러다가 인조 19년(1641년) 광해군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바닷길이 하도 멀어 일일이 중앙에 품해 지시를 기다릴 길이 없다. 곧장 섬 안의 관원들을 데리고 소복하고 들어가 친히 수시걷고 염습까지 말끔히 하여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다. 아마 망인도 영혼이 있었더면 그랬을 것이다.

  “나는 못된  놈의 꼬임에 빠져 어머니도 폐했는데, 이미 왕의 몸도 아닌 나를...”

  이 사실이 알려지자 대간은, 무슨 일이고 트집잡아 따지는 관원인지라, 멋대로 처사한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모두들 잘한 일이라고 공론이 돌아서 무사하였다. 그는 뒤에 벼슬이 호조판서에까지 올랐고 시호를 충정이라 하였으며 자손도 크게 번창하였다. 그가 수습한 광해군의 묘소는 현재 경기도 남양주군 진건면 송릉리에 부인과 함께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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