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25 05:42
벌레 먹은 나뭇잎 - 도종환 (85)
조회 수 8163 추천 수 11 댓글 0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이 잘못인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 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이생진 시인의 「벌레 먹은 나뭇잎」이란 이 시를 저는 좋아합니다. 벌레 먹은 나뭇잎은 쓸모없게 된 나뭇잎입니다. 구멍이 뚫린 나뭇잎이므로 나무에게도 사람에게도 별로 도움 될 게 없는 나뭇잎입니다. 벌레가 먹고 남은 흔적이 흉하게 몸에 남아 있는 나뭇잎입니다. 그런 나뭇잎을 시인은 예쁘다고 말합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나뭇잎이 지닌 상처 때문에 예쁘다고 합니다.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고도 말합니다. 시인은 '벌레가 갉아 먹어서 나뭇잎이 못쓰게 되었다'는 눈으로 나뭇잎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나뭇잎이 제 몸에 상처가 생기는 걸 알면서 벌레를 먹여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진 것을 남에게 베풀고, 제 몸을 덜어 남을 먹여 살린 흔적이기 때문에 벌레 먹은 구멍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제가 가진 것 중에 몇 장은 벌레에게도 주고 짐승에게도 줄줄 아는 게 나무입니다. 제가 지닌 나뭇잎을 저를 위해서만 사용하는 나무는 없다고 합니다.
제 몸의 일부를 남을 먹여 살리는 데 쓰며 살아온 떡갈나무 잎, 그 떡갈나무 잎에 뚫린 구멍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가진 것 중에 무엇을 남에게 베풀며 살아왔는가 생각해 봅니다.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이 잘못인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 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이생진 시인의 「벌레 먹은 나뭇잎」이란 이 시를 저는 좋아합니다. 벌레 먹은 나뭇잎은 쓸모없게 된 나뭇잎입니다. 구멍이 뚫린 나뭇잎이므로 나무에게도 사람에게도 별로 도움 될 게 없는 나뭇잎입니다. 벌레가 먹고 남은 흔적이 흉하게 몸에 남아 있는 나뭇잎입니다. 그런 나뭇잎을 시인은 예쁘다고 말합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나뭇잎이 지닌 상처 때문에 예쁘다고 합니다.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고도 말합니다. 시인은 '벌레가 갉아 먹어서 나뭇잎이 못쓰게 되었다'는 눈으로 나뭇잎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나뭇잎이 제 몸에 상처가 생기는 걸 알면서 벌레를 먹여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진 것을 남에게 베풀고, 제 몸을 덜어 남을 먹여 살린 흔적이기 때문에 벌레 먹은 구멍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제가 가진 것 중에 몇 장은 벌레에게도 주고 짐승에게도 줄줄 아는 게 나무입니다. 제가 지닌 나뭇잎을 저를 위해서만 사용하는 나무는 없다고 합니다.
제 몸의 일부를 남을 먹여 살리는 데 쓰며 살아온 떡갈나무 잎, 그 떡갈나무 잎에 뚫린 구멍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가진 것 중에 무엇을 남에게 베풀며 살아왔는가 생각해 봅니다.
도종환/시인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공지 | 역대로 사람의 진정한 역사는 - 세종대왕 | 風文 | 2023.02.04 | 4061 |
공지 | 친구야 너는 아니 1 | 風文 | 2015.08.20 | 92967 |
277 | 놀이 | 바람의종 | 2008.11.11 | 4840 |
276 | 도롱뇽의 친구들께 | 바람의종 | 2008.11.11 | 4661 |
275 | 아주 낮은 곳에서 | 바람의종 | 2008.11.11 | 6903 |
274 | 세상은 아름다운 곳 - 도종환 (91) | 바람의종 | 2008.11.11 | 6406 |
273 | 떨어지는 법 - 도종환 (90) | 바람의종 | 2008.11.11 | 6742 |
272 | 안네 프랑크의 일기 - 도종환 (89) | 바람의종 | 2008.11.11 | 7058 |
271 | 그대의 삶은... | 바람의종 | 2008.11.11 | 6398 |
270 | "10미터를 더 뛰었다" | 바람의종 | 2008.11.11 | 7348 |
269 | 청소 | 바람의종 | 2008.11.03 | 7401 |
268 | 세상사 | 바람의종 | 2008.11.01 | 5882 |
267 | 아홉 가지 덕 - 도종환 (88) | 바람의종 | 2008.10.31 | 5841 |
266 | 백만장자로 태어나 거지로 죽다 | 바람의종 | 2008.10.31 | 7325 |
265 | 단풍 드는 날 - 도종환 (87) | 바람의종 | 2008.10.30 | 10160 |
264 | 사랑도 뻔한 게 좋다 | 바람의종 | 2008.10.30 | 5963 |
263 | 김성희의 페이지 - 가을가뭄 | 바람의종 | 2008.10.30 | 8331 |
262 | 은행나무 길 - 도종환 (86) | 바람의종 | 2008.10.29 | 6484 |
261 | 내 몸은 지금 문제가 좀 있다 | 바람의종 | 2008.10.29 | 5968 |
260 | 혼자라고 느낄 때 | 바람의종 | 2008.10.29 | 7635 |
259 | 헤어졌다 다시 만났을 때 | 바람의종 | 2008.10.27 | 8172 |
258 | 멈출 수 없는 이유 | 바람의종 | 2008.10.25 | 7568 |
» | 벌레 먹은 나뭇잎 - 도종환 (85) | 바람의종 | 2008.10.25 | 8163 |
256 | 깊이 바라보기 | 바람의종 | 2008.10.24 | 5817 |
255 |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 바람의종 | 2008.10.23 | 7833 |
254 | 눈물 속에 잠이 들고, 기쁜 마음으로 일어났다 | 바람의종 | 2008.10.23 | 7019 |
253 | 아무도 가지 않은 길 | 바람의종 | 2008.10.22 | 58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