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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4. 믿음이 깊은 곳에

        도솔가의 뒤안

       오늘 여기에서 꽃이바지 노래 불러
       뿌린 꽃이여 너는
       곧은 마음의 명으로 받자오니
       미륵좌주(彌勒座主)를 모셔 맞으라
     ('삼국유사'에서)

  정성이 지극한 노래는 하늘과 땅의 귀신도 감동시킨다. 일연(一然)스님은 신라의 향가가 특히 그러하다고 했다. 누구를 위해 부르는 노래이며 무엇 때문에 그리도 간절하게 부르는가. 말이 노래이지 실은 부처님을 향한 기도요 염원이며 신통력(神通力)을 지닌 노래말이다. 때는 신라 35대 경덕왕 19년(760) 사월 초하루 한꺼번에 해 둘이 하늘에 떠서는 열흘 동안이나 없어지지 않는 해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二日竝現). 당황한 임금은 날씨를 보는 일관(日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원래의 모습대로 될 수 있는가를. 먼저 인연이 닿은 중으로 하여금 꽃을 뿌리며 하늘에 정성을 드리면 재앙이 물러 갈 거라고 일관이 일러 준다. 제사를 모시는 조원전 (朝元殿)에 깨끗하게 단을 차려 놓고 왕이 몸소 청양루(靑陽樓)란 곳에 나아가 인연이 먼저 닿는 중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월명(月明) 스님이 밭두둑 길을 걷고 있었으니 인연이 먼저 닿을 밖에. 스님을 모셔서 하늘의 재앙을 없애도록  기도글을  짓도록 하였으나 향가는 좀 알 뿐 다른 인도의 범패는 모른다고 사양하질  않는가. 임금은 좋다고 승락하니 월명이 노래를 지어 불렀는데  이 게 바로 도솔가.  일관의 말대로 하늘의 재앙이 없어지고 해는 다시 하나로 전과 같은 평온을 되찾는다. 임금은 고맙다는 정표로써 차 한 봉지와 수정으로 만든 염주 108개를 주었다. 이상한 일은 어린 아이가 갑자기 나타나  차와 수정염주를 챙겨 가지고는 이내 내원탑 안으로 숨어 버린다. 뒤에 보니 차와 수정염주는 내원탑 남쪽의 벽화에 그린 미륵상 앞에 놓여 있었으니 귀신이 곡할 일이로다. 월명 스님의 간절한 기도가  받아 들여져 미륵보살을 움직인 것이다. 소식은 퍼져 서라벌 장안의 사람들은 다 알게 되었고 민심은 다시 수습되고 오히려 임금의 덕화를 존경하게 되었으니 이야말로 전화위복(轉禍爲福).

        '도솔(兜率)'은 덮어줌이라

  도솔가의 '도솔'은 무엇을 이르는가. 불가에서는 욕계육천(慾界六天)의 넷째 하늘을 도솔천이라 하니 미륵부처가 사는 극락정토(極樂淨土)라 한다. 땅에서부터 33만 유순(由旬)의 거리에 있으며 어리석은 세상 사람 모두를 건져 주는 부처가 미륵불이라는 것. 두개의 해가 열흘 동안 떠서는 지지 않으니 이를 풀기 위한 임금과 사람들을 위하여 월명 스님이 대신 미륵부처님께 빌려고  부른 노래가 도솔가이다. 어떤 일을 이루려고 마음을 긴장되게 가지는걸 '도스르다'고 한다. 여기서 갈라져 나아가 어떤 물건이나 일을 추스를 양으로 감싸다. 혹은 덮다 정도의 뜻으로 쓰인다. 이르자면 도시락도 '도스르다'에서 갈라져나온 갈래말이다. 음식을 가지런하게 흐트러지지 않도록 보자기나 끈으로 만든 망태에 넣어 가지고 다닐 수도 있고 놓아 두는 게 도시락이 아닌가. 짐작하건대, 왜군이 쳐들어 와 세상은 어지럽고 백성들의 불안과 초조함이 온 나라에 가득한 때 흐트러진 민심을 모음은 왜군의 침략을 물리치는데 주요한 몫을 했을테니 이상향으로서 도솔천을 향한 그리움을 노래했을 법하다. 거기에는 빛과 평화가 영원히 있을테니까 말이다. 부스럭대고 좀 야단스러운 상태를 '두스럭 피운다'고 함도 같은 말에 뿌리를 둔다고 하겠다. 간추리면 우리말 '도스르다·두스럭 핀다'와 도솔가의 '도솔'은 같은 뜻을 드러내는 낱말겨레에 든다. 이같은 낱말겨레의 기본은 '돗'으로 '돗-돋-돌/둣-ㄷ-둘'의 자음교체와 모음이 바뀜으로써  더 많은 말의  겨레들을 거느린다. 지금도 '도르다·두르다'는 말이 어떠한 사물을 감싼다는 뜻으로 쓰임을 보면 도솔(두솔)의 '돗(둣)과 상당한 유연성이 있지 않나 한다.

  예부터 신라에서는 입추(立秋)가 지난 뒤 진일(辰日)에 별제사를 지낸다. 문열(文熱)이란 숲에서는 해와 달에 대한 제사를, 영묘사(靈妙寺) 남쪽에서는 동서남북과 중앙의 5방(方)에 별제사를 지냈으니 이는 사람의 일을 별과의 관계 속에서 풀어 보려던 믿음에 기초한 것이라고 하겠다. 별은 기원적으로 빛이며 불이라 할 수 있다. 그 낱말의 겨레를  보면'별-볕-볏/빌-빛-빗/불-붇-붙-붓'의 형태로 간추려 진다.  혜성가에서도 별이 문제가 된다. 갑자기 길쓸별이 나타나 참으로 위험한 나라의 정황을 드러낸다. 빛이 어둠을 밝히듯이 길쓸별이. 어두운 나라의 재난을 밝게 쓸어 주는 횃불이 될 수도 있는 것. 두 해에 대한 풀이는  여러가지이다. 해 하나는 개혁세력과의 싸움으로 보는 이(김승찬, 1986,  향가문학론), 하나의 해는 왕권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보는 이(최철, 1983, 향가의 본질과 시적 상상력), 풍년을 빌기 위하여  해에다가 활을 쏘는 사양제의(射陽祭儀)로  보는 이(현용준, 1977, 월명사 도솔가의 배경설화고) 등 실로  많은 논의들이 있어 왔다. 비유와 상징으로 보아 혜성가와 도솔가의 배경설화에 드러난 구조를 비교분석한 논의(장진호, 1989, 신라향가의 주원성  연구)는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고 하겠다.

  두 노래가 모두 하늘의 해와 별을 향해 비는  노래요, 지은이는 다 불교 승려이면서 나라의 번영을 걱정하는 화랑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지 않은가. 미륵좌주(彌勒座主)만 해도 그렇다.하늘의 저승에 있는 미래의 부처가 아니고 미륵선화(仙花) 곧 화랑으로 드러내 보인 현실의 부처인  것이다. 이일병현(二日竝現)에서 일본군의 일(日)과 하늘의 해를 가리키는 상징을 바탕으로 월명스님이 노래한 두 해는 사라지고 미륵좌주가 어린 아이의 몸을 입고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한편 융천스님이 지은 혜성가에서도 마찬가지다. 노래를 부르자 문제의 꼬리별-혜성이 없어지고 끝내는 일본군대가 물러나 되돌아 가는 두 일을 두 해로 나타낸 경우니 도솔가나 혜성가가 같은 맥락으로 풀 수 있다. 시련을 딛고 불국토(佛國土)에 대한 그리움을 펴 보자 하였으니 모두 다 거룩하고 영검있는 노래들이다. 땅에서 매인 매듭을 하늘에서 풀고 하늘에서의 문제를 땅의 노래로 한 셈이라고나 할까. 임금도 스님도 위대한 스승들의 대통을  이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스승이란 사이를 뜻하는 '슷(間<훈몽자회>)'에  접미사 '∼응'이 어우러져 된 말이다. 여기 사이라면 신과 인간, 하늘과  땅의 신이요, 인간과 인간의 사이가 된다. 기(氣)의 논리로 보면  스님의 염력(念力) 곧 생각의  기가 하늘의 기와 동기감응(同氣感應)을 일으킨 셈. 두 스님의 노래를 통한 사람의 기가 하늘의 그것에 미쳤다고나 할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해괴한 일을 풀어 낼 수가 있단 말인가. 거룩한 성자(聖者)들이 물위를 걷는 것이나 산에서  산으로 날아 다님은 모두 기(氣)의 말미암음으로 일어나는 열매들이다. 어느 날 누구인가 우리 겨레의 하나됨을 이룸에 있어 동기감응을 일으킬 수는 없는가. 아마도 이는 남과  북의 겨레들이 갖는, 하나됨을 향한 꿈으로부터 피어 나는 영혼의 기가 맞부딛침으로써 가능한 경지가 될 일. 공동체의 문제를 풀이하기 위한 우리들의 기가 약한 탓이다. 오늘날의 월명이나 융천스님이 따로 없다. 우리 모두가 거룩한 스승의 마음으로 돌아 갈 때 매듭이 하나 둘씩 풀릴 걸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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