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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모어에 대한 재인식 

   우리의 미의식 1 - 작은 것, 아름다운 것

  어떤 영화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모 여배우가 약간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참 아름다운 밤이어요!"라고 수상 소감을 밝혀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일견 멋진 소감처럼 보이나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우리말에서 "아름답다"는 "예쁘다", "귀엽다"와 함께 사람, 특히 여성의 용모를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사람이 아닌 사물이나 상황을 표현할 때는 대게 "곱다" 또는 "좋다" 는 말이 주로 쓰인다. 영어 인사말에도 "좋은 아침(굿모닝)"이나 "좋은 밤(굿나잇)"으로 표현되는 만큼 굳이 쓴다면 "참 멋진 밤이에요" 정도가 무난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본래 작고 연약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던 모양이다. 예로부터 미인은 키뿐만 아니라 몸집도 작아서 두 팔을 벌려 한아름(암음)에 꼬옥 껴안을수 있는 체구의 소유자였다. 저속한 표현이지만 옛말에 술은 차야 맛이고 여자는 품에 안겨야 맛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에 반해 중국인들은 대국답게 크고 웅장한 것을 좋아한다. 자금성이나 만리장성의 규모가 그러하고, 아름다움을 뜻하는 한자인 미 또한 크다는 뜻을 가졌다. 미는 양 자에 큰 대자가 합쳐진 글자로 "큰 양이 좋다" 또는 "양고기는 맛이 좋아 많이 먹는다"는 뜻을 나타낸다. 아름답다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아리땁다"의 "아리" 또는 "아지"도 병아리, 송아지의 예에서 보듯 어린 것, 작은 것을 나타내는 접미사다. 이처럼 본시 자그마한 체구 또한 어린 여자의 용모를 묘사하던 아름답다는 말이 언제부턴가 서구어의 영향으로 적용 범위를 넓히게 되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이라는 찬송가 가사에서, 또 헤르만 헤세의 명저 "아름다워라 청춘이여" 등에서 친숙해진 이 말이 급기야 "아름다운 밤"으로 옮아간 것이다. 예쁘다, 이쁘다는 형용사는 원래 딱하고 불쌍하다는 의미의 "어엿브다"에서 온 말이다. 세종 큰 임금께서 어리석은 백성을 "어엿비" 여기시어 새로 28자의 우리 글을 지으셨다지 않는가. "자"라는 한자를 "신증유합"에서는 "어엿비 여길 자"로 훈하고 있다. 따라서 "예쁘다"는 연민의 정을 느낄 만큼, 안쓰러울 정도로 애처롭고 가련한 형상, 거기다 품에 폭 안길 정도로 작고, 아담하고, 귀엽고, 참하고, 가냘프고,  조촐하고, 산뜻한, 그러면서 곱고도 아름답다는 의미를 두루 안고 있다.

  경상도 방언에 "새첩다(새칩다)"라는 말이 있다. 예쁘다는 말의 총체적 의미가 응집된 듯한 절묘한 어사이다. 찰찰 귀염성이 넘치는, 그래서 곧잘 응석깨나 부리는 세침데기, 그 앙증스러움이 꼭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의 예쁜이라고 할까. 이쁜이는 예쁜이보다 더 음상이 큰 말로써, 흔히 시집간 맏딸을 일러 "이쁜 도둑"이라 부르기도 한다. 친정빕 재물을 야금야금 집어가더라도 하는 짓이 밉지 않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게다가 출산후에 산모가 행하는, 그 말하기 거북한 수술을 일러 "이쁜이 수술"이라는 은어를 쓴다고 하니 그 기발한 조어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곱다"는 말은 "굽다(곡)"와 같은 말이다. 직선이 아닌 곡선이라는 이야긴데 대게 몸매가 곱다, 버선코가 곱다와 같이 유연한 선을 나타내는데 쓰인다. 쭉 뻗은 고속도로보다 꼬불꼬물 굽이진 오솔길이 더 아름답다고 여긴다. 그 가운데서도 잘록한 허리나 쭉 뻗은 각선미를 비롯하여 버선코나 옷고름 등 한복의 선은 모두 유연한 곡선미를 자랑하고 있다. 본래 국토가 작아서인지 우리는 작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작은 성취에  만족하면서 살아 왔다. 가난 속에서도 행복을 찾으며 이웃끼리 훈훈한 정을 나누며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짧은 기간에 갑자기 큰 부자가 된 탓인지 이런 취향이 돌변하고 있는 듯하다. 아담한 미인에서 엉뚱하게 슈퍼모델을 찾게 된 것인데, 가수도 대형 가수를 좋아하고 여배우도 큰 키에 풍만한 몸집을 가진 글래머 걸을 선호한다. 거품처럼 부풀어 오른 욕망만큼이나 우리의 언어도, 우리의 정서도 왜곡되었다고나 할까.

  돈을 벌어도 한목에 왕창 벌어야  하고 망해도 일시에 폭삭 망하려고  한다. 바겐 세일도 몽땅 세일이어야 하고, 물건을 살 때도 깡그리 싹쓸이해야 직성이 풀리며, 사람도 화끈하게 끝내 주는 해결사가 단연 인기가 있다. 어느 도시에 국일 이라는 양복점이 있었다고 한다. 나라에서 제일 좋은 가게란 뜻인데, 그 옆에 하나가 더 생겨서 세일이라고 했고, 또 하나가 더 생겨서 우일이라 했다. 이와 같은 상승작용에 대한  원조격인 국일은 시일로 바꾸었다고 하는데, 이들이 내세운 이유가 그럴싸하다. 그  이유는 이 도시에 우리나라 최고와 세계  최고, 나아가 우주 최고가 다 있으니 이 도시의 최고가 가장 좋은 양복점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역시 작은 것이 아름답다. 적은 수입으로 작은 집에서 살고 작은 차를 타더라도 마음은 오히려 평온하다. 최고지상주의, 한탕주의는 분명 일시적이구 과도기적인 현상일 것으로 언젠가 우리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참기름"이라는 이름만으로 충분히 고소한데, 그 앞에 "진짜 순 참기름"이라는 수식어가 왜 필요한가? 아름다움은 작은 것이고 소박한 것이며  순수한 것으로 그것이 바로 행복으로 연결된다. 키이츠도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이라 하지 않았던가. 작은 친절, 작은 성의, 작은 성취에 크게 만족하는 마음가짐에서 일상의 보람과 행복을 느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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