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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해남과 두륜산 - 종착지가 아닌 시발지


  한반도의 서남단, 백두대간의 지맥이 흐름을 멈추는 해남반도의 남단을 땅끝, 곧 토말이라 부른다. 땅끝이라는 말이 주는 이미지, 또는 김지하 시인의 "애린"탓만은 아니다. 땅끝이라면 곧잘 끝장이라는 의미를 떠올리게 된다. 더 이상 갈 수 없고 더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절대절명의 공간, 그래서 해남땅은 지금까지 체념과 무관심의 땅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끝은 달리 생각하면 시작이 되기 때문에 해남은 우리 문화의 시발지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옛날 이 반도는 제주도를 비롯한 중국과 인도로의 뱃길이 열려 있어 불교를 비롯한 남방문화의 유입로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땅끝이라 하여 지맥이 여기서 끝난 것도 아니다. 소백 산맥이 이곳 사자봉에서 호흡을 멈춘 듯하지만 기실 바다로 숨어들어 그 맥이 제주의 한라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지역 문화 유산에 대한 평가도 재고해 볼 여지가 있다. 흔히 해남을 중심으로 이웃한 강진, 완도, 진도 등을 뭉뚱그려 유배 문화권이라 한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꽃피운 시가문학, 민요, 판소리, 회화등의 예술을 두고 내몰린 자들의 절박한 심성에서 우러난 산물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다고 본다. 땅끝의 공식 지명은 갈두리다. 이곳에 칡이 많아서인지 사자봉 형세가 칡을 닮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떻든 칡꼬리가 아닌 칡머리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풍수설에 회룡고조라는 말이 있다. 천리 길을 달려온 산맥이 머리를 돌려 그 근본을 돌아본다는 뜻이다. 한반도에서 갈라져 나온 머리, 곧 갈두리 선착장 끝에 매달린 "맴섬"을 맴돌면서 이 말의 뜻을 음미해 본다. 과도에 씻긴 바위섬이 빙글빙글 맴도는 듯한 형상, 지구가 둥글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맥의 시원인 백두산을 되돌아보는 형상으로 새기고 싶다.

  멀리 신라 때의 일이다. 돌 배(석선) 한 척이 홀연히 달마산 아래 사자포에 닿는다. 이 돌배는 사람들이 다가서면 멀어지고 돌아서면 다시 다가오기를 수십 차례, 결국 의조를 비롯한 수도자들의 간절한 기원으로 포구에 닻을 내린다. 배에는 황금빛을 발하는 금인과 금합에 쌓인 불경, 나한, 탱화와 함께 소 한 마리가 타고 있었는데, 이 소가 스스로 머무는 곳에 절을 지으라는 부처님의 계시를 받는다. 경전과 불상을 등에 실은 소는 달마산 중턱에 이르러 한 번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걷다가 큰 울음과 함께 두 번째 넘어진 곳에서 영영 일어서지 못한다. 계시에 따라 처음 넘어진 곳에 통교사를 짓고 두 번째 넘어진 곳에 미황사를 지었다. 꿈에 계시를 준 금인의 황금색과 마지막 순간 소의 울음이 아름답고도 처량하였기에 절이름을 미황이라 지었다던가. 미황사의 창건설화는 금강산 오십삼불설화와 유사한  데가 있다. 또한 남방 불교의 해로 유입설을 뒷받침한다는 면에서 가야국 수로왕의 허왕비 도래설과도 일맥 상통하는 바가 있다. 돌배에 금인, 소, 용, 물고기등의 일치가 결코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자동차 여행만으로는 남도의 아름다움을 체감하지 못한다. 발로 걸을 때, 특히 미황사를 안고 있는 달마산 능선을 종주해 보아야만 남도의 풍경을 비로소 만끽할 수 있다. 선의 비조 달마의 울통불퉁한 상호를 닮았음인지 날카로운 톱니, 그보다는 공룡의 등뼈와 같은 바위 능선을 따라 북으로 오르면 한결 펑퍼짐한 산줄기를 만난다. 이름하여 두륜산, 흔히 대흥사로 알고 있는 대둔사는 이 두륜산의 둥글고 넓은 품 안에 안겨 있다. 두륜은 때로 두둔으로도 불리는데, 이 두 한자 이름은 둘러쳐진 큰 산이라는 뜻의 고유어 "한듬(또는 "한둠")"에서 유래하였다. "한"은 크다(대)는 뜻이고 "듬(둠)"은 둥글게 감싸고 있는 산골(두메)을 이름이다. 어떤 이는 두륜산이 백두산의 두와 중국 곤륜산의 륜을 따온 것이라고 하나 두륜은 그저 둘러쳐진 산이라는 뜻의 고유어일 따름이다. 대둔사도 본래 "한듬절"이라 불리었다. 두루두루 갖춘 산인 두륜산에 안긴 한듬절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천불전에 안치된 1천개에 달하는 작은 불상들이다. 저마다 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천불은 언제, 어디서,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대승 불교의 가르침을 눈으로 보여준다. 녹차 향기를 따라 두륜산 중턱에 오르면 대둔사에서 반시간여 거리에서 초가 지붕을 머리에 인 일지암을 만난다. 비록 작은 초가 정자일지라도 풍기는 녹향은 보통 깊은게 아니다.

  어디 다향뿐이랴. 혜장선사가 다선일미를, 강진 귤동에서 귀양살이하던 다신이 실학과 천주학을, 천하 명필 추사 금석학과 서지학을 강론하던, 그야말로 묵향까지 짙게 밴 곳이다. 그러나 정작 이 정자의 주인은 팔십 평생 풀옷 입고 풀잎 향내를 맡으며 입적했다는 초의선사다. 한국 녹차의 다성으로 불리는 이 스님은 일지암에서 40여년간 오직 차를 벗하며 독처지관했다지 않은가. 해남은 또 한분의 문화 인물 고산 윤선도의 시가 향기를 맡을 수 있어 좋다. 연동리의 녹우당에서는 지금도 고산의 체취를 느낄  수 있으며, 보길도의 부용동에서는 "어부사시사"가 흘러 나오고 있다. 해남과 강진을 유홍준 교수는 남도 답사 1번지라 하여 여정의 첫 손가락에 꼽았지만, 어디 남도뿐이랴. 전국 답사에서도 땅끝은 여행의 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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