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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황지와 태백산 - 밝은 뫼에서 솟는 시원의 샘

  태백산은 백두대간의 중추이자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부연하면 국토의 모산이자 한민족의 시원지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한밝산 곧 태백이 민족의 영산이라는 사실을 서해에 사는 이무기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용이 되고픈 욕망에 514km에 이르는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 이곳 태백산 자락 금대봉골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주저앉은 곳이 검룡소, 비록 신령스런  용이 산다는 이름은 얻었으나 그 이무기는 아직도 용이 되어 승천하지는 못한 것 같다.

  한때 이곳 주민들이 검룡소를 메워버린 적이 있다고 한다. 용이 될 때까지 매사에 조신해야 할 이무기가 인근 마을의 소를 잡아먹는등 행패를 부렸기 때문이라 한다. 승천하고자 몸부림치던 이무기의 흔적이 지금도 못 아래 암반에 선연히 드러나있다. 두 번째 한강의 기적이 일어나 우리나라가 명실공히 선진국으로 진입할 때 까지 이무기의 승천은 더 지체 될 수 밖에 없을 듯하다. 용이든 이무기든 하루 수십톤의 물을 내뿜는다는 검룡소의 물은 맑고도 차다. 샘의 깊이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겨울에도 일정한 수량의 물이 펑펑 솟는걸 보면 신비스럽기 그지없다.

 또 하나의 시원지, 곧 낙동강의 발원지이자 장자못 설화의 본거지인 황지는 태백시의 중심가에 위치한다. 옛날 이 마을에 지독한 노랑이 황씨(황동지라 함)가 살았다 한다. 하루는 노승 한분이 찾아와 시주를 청하자 이 노랑이가 박절히 거절한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스님이 계속 목탁을 두드리자 마침 외양간을 치고 있던 황부자는 쇠똥을 잔뜩 퍼서 스님의 바랑에 쑤셔 넣는다. 이런 대접에도 스님의 태도는 의연하다. 쇠똥 보시면 어떠냐는 듯 주인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그 집을 나선다. 이때 부엌에서 방아를 찧고 있던 며느지  지씨가 몰래 뒤따라와 쌀을 시주하고  시아버지 대신 사과를 드린다. 이 착한 며느리에게 노승은 이렇게 귀뜸하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 이 집의 운세가 다했으니 며느님은 빨리 이곳을 떠나시오. 다만 가는 도중에 절대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되오."

  그러나 며느리 지씨는 스님의 당부를  지키지 못한다. 황급히 애기를  들쳐업고 내달리던 중 난데없는 천둥소리에 놀라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만 것이다. 순간 몰아닥친 홍수에 황부잣집은 물속에 잠기게 되고, 며느리는 등에 업은 아이와 뒤따르던 강아지와  함께 그 자리에 돌로 굳어지고 말았다. 한국판 "소돔과 고모라"라고 할까. 지금도 도계읍 구사리 산등성이에는 "미륵바우"라 불리는 모자상과 "개바우"라 불리는 개의 형상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하루 2,3천 톤의 물이 솟아 오른다는 황지는 세 개의 못으로 연결되어 있다. 위쪽의 가장 큰 못이 황 부자의 집터였다고 하고 가운데가 방앗간 터, 아래쪽에 있는 작은 못이 뒷간터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황지가 장자못 설화의 전형을 보여 주는 곳이라고는 하나 어떻든 520km 낙동강의 발원지가 탐욕스러운 부자의 집이었다는 사실이 왠지 꺼림칙하다. 그 이름도 주인 황씨와 며느리 지씨의 성에서 따온것이라는 설이 있으나 이는 단지  지어낸 말일 뿐 본래는 "넓은 못"이라는 고유어를 한자를 빌려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태백이 본디 영산이라 그런지 이 산자락에서 솟는 샘에는 대체로 용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산 정상의 천제단 밑에 있는 용정이 그 대표적인 셈이다. 예로부터 하늘로 제사를 지낼 때 제수로 썼다는 용정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서 솟는 샘물로서 어떤 가뭄과 장마에도 수량이 일정할 뿐 아니라 부정한 사람이 마시면 물빛부터 흐려진다는 설이 있다. 소천 땅에는 희고 검은 두 마리 용이 살고 있다는  용연이 있고, 소도동 창원사 경내에는 용이 된 어머니와 아들 삼형제의 전설이 서린 용담이라는 못도 있다. 뿐만 아니라 용궁으로 통하는 문의 흔적이라는 동점동의 구문소 전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황지천이 굽이쳐 흐르다가 바위산이 가로막자 큰 구멍을 뚫어 석문을 만들고 깊은  소를 이룬 곳, 이 구문소는 물이 구멍을 뚫었다 하여 "구무소" 또는 "뚜루내"라 불리기도 한다. 물의 위력을 절감케 하는 이 구멍못은 무지개처럼 생긴 석회 동굴과 자개문이라 불리는 천연 석문과 어울려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태백은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의 아버지 환웅께서 하늘에서 내려와 당신의 큰뜻을 펼치신 성지로도 알려져 있다. 다만 민족의 성지 태백이 바로 이곳을 말하는지, 아니면 백두산이나 묘향산인지는 잘 모른다. 다만 이 산 정상에 모셔진  천제단이나 입구에 건립해 놓은 단군성전은 차지하고라도 인근의 소도동이나 혈리등의 지명은 결코 예사롭지가 않다. 소도를 지금의 소도로 적고 있지만 예로부터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성지 "소도"와 같은 이름일 것이다. 혈리 역시 샘이 솟는 구멍이 있어  "구멍 형"자를 쓰고 있지만 한반도 지맥의 혈을 뜻하는 풍수용어라 생각된다.  더구나 훗날 이 지역에는 단종의  원혼까지 묻어 와 정상 부근에 단종 비각이 세워지고 그 아래에 어평이니 정거리같은 지명까지 남겨 두고 있다.

  우리나라 최대의 탄광촌인 태백도 이제  크게 변모하고 있다. 지난 시절  그 검고 삭막한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지금은 무공해의 새로운 관광지로 탈바꿈하려고 한다. 겹겹이 둘러쳐진 산도 산이려니와 태백 기행의 주제는 무엇보다 차고 맑은  샘이 되어야 할 것이다. 승천하고픈 용들이 모여드는 곳, 그 샘은 다름 아닌 이 땅과  이 땅에 사는 우리 민족의 시원의 샘이기에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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