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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탄천과 동방삭 - 수청과 탄천

  이승에서 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명계를 다스리는 염라대왕을 두려워 하지 않을수 없다. "염라 대왕이 문 밖에서 기다린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누구나 때가 되면 염라대왕의 소환을 거역할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런데 저승에 살면서 18명의 장관과 8만명의 옥졸을 거느리고 있는, 게다가 명석하기 이를데 없는 대왕이 어쩌다 실수할 적도 있었던 모양이다.  저승으로의 소환자 명단에서 그만 한 사람의 이름을 빠뜨리고 만 것이다. 말하자면 염라대왕의 리스트에서 빠진 대신 "쉰들러의 리스트"에 오른, 이 억세게 재수 좋은 사나이를 후세인들은 동방삭이라 부른다. 그의 이름 앞에 반드시 삼천갑자라는 수식어가 무슨 아호처럼 붙는걸 보면 사람들이 그를 한없이 부러워 하는 모양이다. 삼천갑자가  도대체 얼마나 긴 세월인지  한번 계산해보기로 하자. 한 갑자가 60년이니까 60 곱하기 3,000은 18만,  그렇다면 이승에서 그가 누린 나이가 무려 18만년이라는 얘기가 아닌가? 원래 영약하기 이를 데 없는 동방삭이 인간 사회에서 그토록 오래 살다 보니 세상 만사 모르는 것이 없게 되고 나중에는 명계의 일까지 꿰뚫어 보게 된 것 같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염라대왕은 노발대발하여 당장 그 놈을 잡아들이라고 엄명을 내린다. 그러나 인간의 잔꾀로 무장한 그 도사를 어떻게 잡아올 것인가?

  경기도 성남 땅 어디메 살고 있다는 막연한 정보만을 가지고 온, 최 판관을 비롯한 베테랑 저승 사자들도 동방삭을 찾아내기에 진땀을 흘린다. 궁리 끝에 내 놓은 계책이 유인 작전, 저승사자 일행은 숯골에 이르러 숯을 몇 가마 얻어다가 이것을 시냇물에 빠는 시늉을 해 보인다. 숯골은 지금의 성남시 태평동과 수진동 일대인데, 옛날에는 숯 굽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숯이 너무 검어서 희게 하기 위해 숯을 물에 빤다고 떠벌리면서 며칠간 같은 짓을 반복해 보인다. 이런 엉뚱한 행동을 본 행인들은 한결같이 "숯을 희게 하다니 별 미친놈들 다 보겠네."라는 반응이다. 그러기를 여러날, 드디어 노리던 물고기가 계략에 걸려 들었다. "내가 삼천갑자를 살았어도 숯을 물에 빠는 미친놈은 처음 보겠네."라는 탄식과 함께 혀를 끌끌 차는 노인이 등장했다. "바로 이놈이다!" 그 순간 저승사자들은 번개같이 그 노인을  덮쳤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오로지 그 한마디로  동방삭은 황천객이 되고 말았는데, 18만 년의 생애가 단 한번의 실수로 허망하게 종말을 고한 것이다. 그가 저승사자에게 끌려간 뒤 후세인들은 이 시내를 숯내 또는 한자말로 탄천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그런 전설이다.

  지명이 숯내이다 보니 이런 재미있는 전설도  묻어 들게 되었겠지만 아무렴 이처럼 맑은 물에 탄천이라는 검은 이름이 어울리기나 하는가? 어떤 이는 이 지역에 홍수가 나면 피해가 막심하기에 한탄스런 시내, 곧 탄천이 되었다고도 말한다. 한탄의 탄천이든 숯골의 탄천이든 아무튼 맑은 시내의 이름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탄천은 경기도 용인에서 발원하여 판교와 분당을 거쳐 서울에 이르러 한강의 품 안으로 흘러드는 한강의 제1지류이다. 서울 시민들은 이 탄천을 생각하기를 전에 운전면허 시험장이 있던 곳, 잠실 운동장에 경기가 있을 때면 주차장으로 이용되는 곳으로 알거나 그보다는 시커먼 폐수가 흐르는 샛강정도로 알고  있을지 모른다. 이름조차 탄천이다  보니 그럴만도 하다. 그러나 탄천의 물이 본래 검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맑고 푸른 물이 흐르던 큰 시내였음은 발원지의 마을 이름이 수청동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수청동의 전래지명은 "물푸레골"로 물이 푸른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런 고운 이름이 "검은 내"로 변질된 것은 고유지명을 한역화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어쩔수 없는 결과라 생각된다.

  옛 지도를 보면 이 시내를  험천이라 하여 우리말로 "검내"라  부른다고 적고 있다. 한자 험은 검과 통하는 글자로서 현 발음대로 하면 "험"이 아니라  "검"으로 읽힌다. 그런데 이 "검"을 다시 소급하면 "거마" 또는  "고마"가 되어 옛날에는 "고마내" 정도로  불리었으리라 짐작된다. 고마는 크다는 뜻 외에도 방위상 뒤편을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팔꿈치, 뒤꿈치라고 할때의 꿈(곰)과 같은 말이다. 따라서 고마내, 곰내는 마을 앞으로 흐르는 시내가 아니라 마을 뒤로(북쪽으로) 흐르는 시내란 뜻이다. 여기서 마을이란 한신주, 곧 지금의  광주 일 것으로 짐작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탄천은 광주의 남쪽에  있으며, 이 내는 북으로 흘러 한강으로 들어간다고 언급하고 있다.

  고을 뒤로 흐르는 곰내, 검내는 뒷날 검은 내로 오인되어 탄천이 되었으니 흑천이라 부르지 않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어쨌든 탄천이라는 이름은 잘못된 것임에 틀림이 없다. 동방삭이 저승으로  압송된 지도 벌써 삼천갑자 정도로 세월이 흘렀고, 또 저승사자가 숯을 구입했다던 숯골도 이제 도시의 한가운데가 되고 말았다. 최근 분당에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탄천 주변도 말끔히 단장되어 멋진 시민의 휴식처로 거듭나게 되었다. 필자는 집에서 가까운 이 탄천의 물길을 내려다 보면서 수청이라는 발원지의 이름에 걸맞게 좀더 푸르고 맑은 물이 흐르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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