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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철원과 한탄강 - 큰 여울 줄기 따라 한탄의 전설이


  연천군 전곡에서 철권군 월저이로 이르는 한탄강 줄기에는 슬픈 전설이 흐르고 있다. 한탄강은 강원도 평강의 추가령곡에서 발원하여 철원과 연천벌을 거쳐 전곡에 이르러  임진강에 합류된다. 한탄이란 쉽게 말하면 "한여울", 즉 튼 여울을 뜻한다. 고유어로 불러야 할 강 이름을 굳이 한자말로 부르다 보니 자칫 한숨쉬며 탄식한다는 한탄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급한 개울을 일러 "여울"이라 한다. 한자어로 말하면 천탄이 되겠으나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지명이 가지는 주술성 때문인지 이 강은 이제 한민족의 비극의 강으로 인식되게이 이르렀다. 한여울과 같은, 이처럼 멋진 우리말 멋진 우리말 이름을 두고 왜 굳이 한탄이라는 한자말을 써야 하는지, 그래서  탄식 서린 비극의 강이 되어야 하는지 바로 그 점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한탄이라는 이름에 대한 색다른 풀이도 있다. 예로부터 이 강은 지배자에 대해  항거했던, 궁예나 임꺽정같은 걸출한 민중 지도자가 철저히 패배했던 쓰라린 역사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어쨌든 한탄강은 국토의 허리를 자르는 민족분단의 강이기에  우리의 뇌리 속에 비극의 강으로 인식되는 게 아닐까?  

  한탄이라는 강이름뿐만은 아닌 것 같다. 이 강 부젼의 지명에 물과 관련된 한자를 붙이다 보니 자연 "탄"이나 "천"과 같은 거센소리 지명을 가지게 되었다. 한탄, 신탄, 차탄, 포천, 회천, 연천, 동두천, 운천, 철원등과 같은 거센소리 지명들은 한결같이 슬픈 전설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탄강이 긴 탄식을 그치고 임진강의 품에 안기는 전곡을 지나면 연천의 차탄리에 이른다. 차탄이란 "수레여울"이란 뜻, 여울이 수레바귀처럼 빙빙 돌기에 이런 이름을 얻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옛날 이 고을 원님이 수레를 타고 민정을 살피다가 태봉 앞여울에서 수레와 함께 빠져 죽었다고 한다. 선정을 베풀던 그 원님의 덕을 기려 차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이 고을 사람들은 유독 인정이 많고 그래서 울기를 잘했던 모양이다. 고을 원님이 순직했을 때도 주민들은 여울 앞에 나와 울었고, 조선조 마지막 임금인 고종이 승하했을 때도 마을 뒷산에 올라 서울을 향하여 다시 한 번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그 산이름마저도 망곡산이라니, 옛날의 울음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차탄리 북쪽 신탄리에는 또 하나의 통곡이 있다. 더 이상  달려갈 수 없는 철도 중단점이다. 이번에는 인간의 울음이 아니라  "철마는 달리고 싶다"면서 더  이상 갈수 없는 한탄을 토해 내는 수레바퀴의 울음이다. 남방 한계선 철책 앞, 예로부터  "달우물골"이라 불리던 월정리역에도 같은 구호가 적혀있다. 그것은 단순히 철마의 통곡이 아니라 민족의 염원을 담은 절규가 아니겠는가. 연천이라는 지명의 앞 글자인 "연"이 눈물을 흘린다는 뜻이어서 그럴까. 차탄천이 끝나는 군남면 남계리에도 눈물과 관련된 아픈 전설이 있다. 옛날 삼형제를 키우던 홀어머니가 그만 삼형제를 모두 차탄천 급류에 잃고 말았다. 아들을 잃은 어미는 매일 이 냇가에 나가 울다가 끝내 세 아들의 뒤를 따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최근 몇 해 동안  이 지역이 홍수가 나서 물바다가 되었다는 소식이 결코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연천읍 고문리의 재인폭포에 얽힌 전설도 슬프기는 매한가지다. 재인은 재주 부리는 광대를 일컫는 말인데, 옛날 외줄타기를 장기로 하는 재인이 아내와 함께 이 고을에 살았다. 대단한 미인이었던 재인의 아내를 탐낸 고을의 수령이 재인에게 폭포위에서 줄을 타게 한 뒤 그 줄을 몰래 끊어 죽게 만들었다. 재인의 아내는 용오 못잖게 절개도 곧았던 모양이다. 겁탈하려는  수령의 코를 깨물어 저항하고 그녀는 스스로 혀를 물어 자살하고말았다. 그 뒤 재인의 한이 서린 이 폭포를 재인폭포라 이름하고, 수령의 코를 깨문 여인이 살았다 하여 그 마을을 "코문리",  즉 고문리로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철원으로 향하는 국도에서 삼팔교를 지나 지포리 방면으로 향하면 우람한 산줄기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바로 "울음산"이라 불리는 명성산인데, 이 산에는 한때 태봉국을 세워 위세를 떨쳤던 궁예의 울음이 아직 남아있다. 그가 부하였던 왕건에게 쫓기다가 이곳에서 성을 쌓고 저항했으나 끝내 운세를 돌이키지 못하고 식솔들과 헤어지면서 대성통곡했다는 그런 산이다. 산정호수쪽에서 보면 우람한 산세가 용트림이라도 하듯 위세를 펼치지만, 비라도 내리는 밤이면 지금도 울음소리가 메아리치듯 울려 퍼진다던가. 궁예의 패주와 관련된 지명은 이 밖에도 더 있다. 왕건에게 항복했다는 항서밭골,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다는 야전골, 싸움 끝에 줄행랑을 쳤다는 패주골, 적정을 살피기 위해 망원대를 세우고 봉화를 올렸다는 망봉등이 그것이다.

  고아로 태어나 세달사라는 절에서 나무꾼 노릇을 하던 애꾸눈 승려 궁예는 "삼국사기"의 기록처럼 정말 탐욕스럽고 흉악무도한 악한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당시 반란 농민군을 이끌고 부패한 왕조에 저항하면서 한 시대를 호령했던 걸출한 인물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월정역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비무장지대 한가운데에 희미하게 윤곽만 잡히는 하회산 근처가 궁예가 세웠던 태봉국의 대궐터라고 한다. 그 옆으로 흐르는 역곡천도 한탄강으로 합류될 것이지만 지금은 가 볼수 없는 곳이어서 궁예의 생애만큼이나 허무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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