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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고유 이름 산책

   잃어버린 지명 - 아름다운 이름, 보은단, 고운담

  어느 해 초 대학을 졸업하는 의대생이 6년 동안 받은 장학금 3천 여 만원을 몽땅 모교에 내놓아 화제가 되었다. "장학금까지 주면서 의사의 길을 가게 한 학교에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라고 했던 그는 장차 인술을  베푸는 좋은 의사가 되리라 믿어진다. 이  흐뭇한 선행을 일컬어 모 신문은 "보은의 반환"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은혜에 보답하는 일,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그런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우리는 흐뭇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런  보은 설화는 우리 주변에 널리 흩어져 있다.  특히 지명에서 많이 눈에 띄는데, 인간사뿐 아니라 동물 세계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본다.

  인간에 대한 개의 보은은 의견총 설화로 전승된다. 술에 취해 잠든  주인 쪽으로 산불이 몰려오자 개는 계곡에서 자신의 몸에 물을 적셔 달려와 불을  끄고 결국 죽음을 당한다. 이런 개의 충직을 기리기 위해 전북 오수에서는 의견상까지 건립해  놓았다. 또 꿩 사냥에 동원된 매는 주인이 마시려는 샘물에 독이 든 것을 알고 이를 말리려다 자신이 죽음을 당한다. 전쟁터에 따라 나선 말도 이와  유사하게 주인을 위해 목숨을 잃는다. 모두가  동물들이 그들의 주인을 위하여 희생한다는 이야기인데, 짐승도 이렇거늘 하물며 사람이야 하는 식의 교훈을 담고 있다. 가축뿐만 아니라 깊은 산중의 호랑이나 까치 이야기도 자주 거론된다. 인육을 먹은 호랑이의 목구멍에 비녀가 꽂혀 신음중일 때 스님이 이를 구해 주어 후일 크게 보답을 받았다는 풍기의 희방사 연기 설화, 또 원주 치악산 까치의 보은 전설은 너무나 유명하다.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가 까치 새끼를 위협하는 구렁이를 죽인 뒤 자신은 그 구렁이의 암놈에게 잡혀 사경에 이른다. 이때 까치가 높은 망루에 달린 종을 머리로 세 번 쳐서 선비를 살리고 자신은 죽는다는 이야기는 옛날 교과서에도 실린 바 있다.

  "보은에서 받은 물건은 보은으로 되돌려 준다"는 충북 보은 땅의 속곳바위 전설은 실제로 이 고을에 부임해 왔던 원님의  이야기로 이 때문에 보은이라는 멋진  지명을 얻게 되었다. 서울 땅에도 그런 멋진 지명 전설이 있어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서울의 중심가인 중구 을지로 1가를 전에는  "보은단골"이라 불렀다. 이 보은단골은 음이 약간 변하여 "고운담골"이 되고 이를 한역하여 미장동이라 했다. 지금의 롯데 1번가, 현 롯데호텔 지하 주차장이 된 그  자리에 조선조 선조 때 홍순언이라는  역관의 집이 있었는데, 보은단은 그 집의 담장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은혜에 보답하는 비단"이라는 뜻의 보은단과 그 음이 와전된 고운담은 한결같이 아름다운 이름이다. 이런 고운 이름을 얻게 된 데는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 홍 역관은 사신을 따라 자주 북경에 갔는데, 한 번은 홍등가에  들른 적이 있었다. 이른바 객고를 풀기 위해서였는데, 그날 밤에 꽃값(화대)이 유독 비싼 어느 창가에서 절세의 미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 유곽에서 몸을 팔 것 같지 않은 그 미인은  소복을 하고 있었는데, 홍역관에게 들려 준 사정이 매우 딱했다. 즉 객지에서 부친상을 당하여 장례 치를 돈을 구하기 위해 처음 홍등가에 발을 디뎠다는 것이다. 중국판 심청과도 같은 그녀의 효심에 탄복한 홍 역관은 노자 2천 냥을 받아 딱한 사정을 해결해 주었다. 홍 역관의 도움으로 그 여인은 자유의 몸이 되어 객지에서 진 부채도 갚고 아버지의 시신을 절강성 고향으로 모실 수 있었다. 몇 년이 지난 뒤 홍 역관이 다시 중국에 갔을 때 그녀는 놀랍게도 명나라 예부시랑의 계실이 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그녀와 재회한 홍 역관은 융숭한 대접을 받았을 뿐 아니라 돌아올 때는 그녀가 손수 짠 비단 옷감까지 선물로 받았다. 비단에는 보은단이라 하여 꽃무늬 글씨가 곱게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수년 전 2천 냥의 희사에 대한 보상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선은 명나라에 지원을 요청하게 되었는데 이때 그녀의 부군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당시 그녀의 남편 석성이 지금의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는 병부상서라는 자리에 있었기에 손쉽게 조선에 지원군을 파병시켰던 것이다. 이런 보은단의 사연이 알려지자 홍순언은 이내 부자가 되어 아름다운 담장이 있는 큰 집을 짓게 되었다. 그 담장에는 효제충신이라는 문구를 채색 벽돌로 새기고 흰 분칠로 장식했다. 이 집 때문에 보은단골이라 부르던 마을 이름을 금세 고운담골로 바꿔 부르게 된 것이다.

  고운담골이라는 이름은 한때 미장동으로 한역되어 법정동명이 되더니 일제 때 엉뚱하게도 황금정 일정목이 되고 광복 후에는 다시 을지로 1가로 고정되었다. 지금은 롯데 1번가라 불리는 이 유서 깊은 골목이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과 젊은 베르테르의 애인 롯데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이야긴지... 세월 따라 산천의 이름이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이런 아름다운 이름이 없어지는 게 아쉽기만 하다. 담장의 일부라도 남아 있었으면, 그도 아니면 호텔 로비 어느 구석에라도 이런 미담을 적은 표석이라도 세웠으면, 아니면 인근 수많은 점포 가운데 보은단,  고운담이라는 상호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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