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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고유 이름 산책

    지명 속담 - 보은 아가씨 추석비에 운다

  어려서 필자는 "가시어미 눈멀 사위"라는 말을 듣곤 했다. 유난히 국을 좋아하던 나에게 할머니가 하신 말씀인데, 당시에는 그 말뜻을 알지 못했다. 훗날 가시어미가 장모의 옛말이라는 것과 제주도의 전통 가옥 구조를 안 연후에야 그 말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제주도에서는 부엌에 솥을 거는 아궁이가 따로 굴뚝과 연결되지 않아서 불을 땔 때마다 연기가 온 집안에 퍼지게 되어 있다. 유독 국을 좋아하는 사위를 둔 장모님은 사위가 올 적마다 모진 연기를 맡아 눈이 멀 지경이라는 뜻이다. "너무 국을 좋아한다"는 의미를 이처럼 우회시킨 표현법이 재미있다. 필자의 장모님은 아직 시력이 좋으시지만 어떻든 이 말은 지역 특성을 기반으로 한, 그 속에 따뜻한 정이 스며 있는 절묘한 표현법이다.

  "안성맞춤"이나 "함흥차사"라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안성에 가 본 적이 없어도, 또 그곳의 특산물이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도 상관없다. 단지 어떤 것이 거기에 꼭 들어맞을 때를 대개 안성맞춤이라 하고, 한 번 가면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 경우를 일러 "함흥차사"니 "강원도 포수"라는 말을 곧잘 쓴다. 이처럼 지역 특성이 속담에 반영된 말을 지명 속담이라 이르는데, 이런 속담이 우리말의 표현을 더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 지명 속담은 나름대로 독특한 유래를 가졌다. "강경장에 조깃배 들어왔나 떠들어대기는 천안삼거리"라는 속담은 그런 대로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유래를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도 적잖이 있다. 곧 "작아도 화동 애기", "보은 아가씨 추석비에 운다". "양천 원님 죽은 말 지키듯", "다시 보니 수원  손님", "안악 사는 과부", "양주 사는 홀애비",  "넉살 좋은 강화연" 등이 그런 예들이다.

  "벽창호"라는 말도 지역 특산물에서 유래하였다. 평북 벽동과 이웃한 창성에서 나는 소, 곧 벽창우는 몸집이 크고 힘이 센 반면 고집이 세고 우악살스럽다고 한다. 그 벽창우가 사람에게 옮겨 붙어 지금의 벽창호로 만들어 놓았다. 이처럼 지역 특산물은 곧잘 사람의 성격 묘사로 옮아 간다. 황해도 봉산의 수숫대는 유달리 키가 크고 평양에서 생산되는 나막신은 품질이 무척 좋았던가  보다. 껑충 키가 큰 사람을 일러 "봉산 수숫대 같다"고 하고, 사근사근 부드러운 사람을 만나면 "살갑기는 평양 나막신"이라 비유한다.  이 밖에 "파주 미륵 같다"면 대단한 뚱뚱보를, "자인장 바소쿠리"라면 유달리 입이 큰 사람을, "능라도 수박"이라면 "무등산 수박"과는 달리 지독히 맛없는 수박의 대명사로 쓰인다. 지명 속담을 쓸 경우 자칫하면 그 지역민의 반발을 살 우려가 있다. 좋은 이야기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내용이라면 해당 지역민의 애향심에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걸음 물러나 생각하면 지명 속담은 그 지방의 내력이나 고유한 특성을 담고 있기에 이를 지역감정만으로 받아들일 일은 아니다.

  "삼수 갑산을 간다 해도". "무주 구천동이야". "담양 갈  놈"이란 표현을 써도 이 지역 주민들이 언짢아할 일은 아니다. 예로부터 전남 담양은 귀양지였고, 삼수 갑산이나 무주 구천동은 심산궁벽의 대명사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고장이 궁벽한 곳이었기에 지금 와서는 오히려 무공해 지역으로 더 각광받지 않는가.

  "밀양놈 싸움 하듯"이나 "아산이 깨어지나 평택이 무너지나"라는  속담도 내용을 알고 보면 결코 나쁘지 않다. 밀양 사람들이 싸움을 잘해서가 아니라  임진왜란 때 이 지역의 전투가 길었기에 긴 싸움을 지칭한 말이며, 동학혁명 때  아산과 평택에서 청일전쟁이 벌어졌기에 붙여진 말이다.

  "개성 여자 남편 보내듯한다"는 속담도 언뜻 생각하면 개성 여인들이 언짢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 또한 직업상 항상 장사를 나가야 하는 개성 상인들의 생활상을 안다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강경 사람 벼락바위 쳐다보듯한다"는 속담도 마찬가지다. 이는 놀란 토끼 눈으로 바라본다는 이야기인데, 넓디넓은  들판 한가운데 사는 이  지역민들에게는 큰 바위가 생소하고 신비스럽게 여겨졌을 터이다.

  실제로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에는 지금도 삼천포 시민들이 흥분하고 있다고 들었다. 도중에 일이 잘못되었음을 뜻하는 말인데, 이 속담은 최근에 생긴 것으로 유래도 모호할 뿐만 아니라 동기도 좋지 않으므로 삼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추운 방을 일컫는 "삼청 냉돌"이라는 말이 와전되어 "강원도에 안 가도  삼척"으로 고정된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독 삼척만이 특별히 추울 리 없지 않은가.

  속담은 풍자나 교휸을 담아 비유의 형식으로 표현되는 관용구이다.  말 그대로 속된 말이기는 하나 그 속엔 선조의 예지나 독특한 정서까지 배어  있다. 언제, 어디서, 누가 처음 발설했는지는 몰라도 그 말의 타당성이 공인되기에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특히 지명 속담에는 그 지역 고유의 특성이 물씬 배어  있으므로 오늘에 와서 유래를 되새겨 보면 그 적절함에 새삼 놀라게 된다.

  "보은 아가씨 추석비에 운다"는 속담은 새길수록 애틋하고 귀엽다. 가을비가 오면 그 해 추수를 망치고, 추수를 망치면 시집을 못 가기 때문에 보은에 사는 처녀가 울었다는 이야기다. 반면 "서울놈은 비가 오면 풍년이란다"는 지방 농사꾼의 빈정거림에도 서울 사람은 오히려 웃어 넘길 만한 여유가 있다. 속담은 그저 속담으로 새겨듣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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