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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우리말에 대한 반성

   형벌 관련 욕설 - 오라질 년과 경칠 놈

  "도무지 어쩔 수가..."  이렇게도 저렇게도 어찌해 볼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 우리는 흔히  "도무지"라는 부사를 앞세운다. 불가능을 일컫는 단순한 말 같지만 속뜻은 그리 가볍지 않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언급된 이 말의 어원풀이가 맞는다면 결코 함부로 쓸 말이 아닌 것 같다. "도무(모)지"는 옛날 엄한 가정에서 자식이 잘못했을  때 아비가 눈물을 머금고 자식에게 비밀리에 내렸던 사형의 일종이라 한다. 도모지, 곧 한자어 도모지는 글자 그대로 얼굴에 종이를 바른다는 뜻이다. 꼼짝 못하게 결박한 자식의 면상에 물이 먹은 창호지를 겹겹이 발라 놓으면 그 종이가 마르면서 자식이 서서히 질식해 죽는다는 것이다. 아들을 뒤주 속에 가둬 굶겨 죽인 부왕도 있었다지만 과연 아비가 자식에게 이런 끔찍한 형벌을 내렸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가장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던 그 옛날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지만 지금처럼 자식이 부모를 학대하고 구타까지 마다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그야말로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나 홍명희의 "임꺽정"을 보면 형벌에 관련된 걸쭉한 욕설이 쏟아진다. "이 난장 맞을 년, 이 오라질 년, 주리를 틀 놈, 경을 칠 녀석" 등이 그런 예인데, "난장"이나 "오라', "주리", "경"도 결코 예사로운 벌이 아니다. 난장은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 마구 쳐대는 곤장을 이름이다. 곤장의 크기도, 맞을 대수도 미리 정하지 않는다. 게다가 뭇 사람에게 사정없이 두들겨 맞는, 그래서 맞다가 죽을 수도 있는 형벌이다. 여기서 난장 맞을(난장 칠)이란 말이 나왔고, "네 난장을 맞을"이 줄어 "넨장맞을"이 되고, "제기 난장을 맞을"이 줄어 지금처럼 "젠장맞을"이 되었다. 주리를 틀 놈도 난장 맞을 놈과 별로 다르지 않다. 주리는 주뢰가 본말로 죄인이 두 다리를 묶고 그 사이에 대를 끼워 엇비슷이 비틀어 대는 형구틀의 이름이다. 오라질의 "오라"는 죄인을 결박하던 홍줄의 이름이다. "오라를 지다"의 준말이 "오라질"인데, 여기서 지다는 맞잡거나 포개어 손 위에 얹는다는 뜻으로 오랏줄에 묶인, 요즘말로 하자면 수갑에 채인 몸을 가리킨다. "우라질"은 오라질의 모음교체에 불과하다.

  "경치고 포도청 간다"는 말이 있다. 단단히 욕을 보고도 구속될 처지라는 이야기인데, 여기서 말하는 "경을" 경으로 알고 그 벌을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순라꾼이 도둑을 잡아 순청(지금의 파출소 같은 곳)에 가두었다가 5경이 지나서야 풀어 주었으므로 "경을 치렀다"는 뜻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본래 경은 더 무서운 경으로 소급된다. 경이라 하면 죄인의 얼굴이나 몸에 살의 일부를 떼내어 홈을 파고 그 속에 먹물로 죄명을 찍는, 이를테면 낙인을 찍는 것과 같은 지독한 형벌이었다. 경을 자자 또는 묵형이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형벌 욕설의 최상급은 "오살할(오사랄)" 또는 "육시랄" 놈이다. 오살이나 육시는 반역을 꾀한 이들에게나 내리는 극형으로서 보통 사람과는 무관한 벌이었다. 오살은 죄인의 머리를 찍어 죽인 뒤에 시신을 다섯 토막으로 갈랐으며, 육시는 죄인의 사지를 소나 말에 묶은 채 사방으로 달리게 하여 머리, 몸통, 사지를 찢어 죽게 하는, 그야말로 가공할 형벌이었다. 요즘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회초리(흔히 교편이라 불리는)조차 잡지 못하게 하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옛 형벌이 얼마나 잔인했는가 새삼 몸서리가 쳐진다.

  그런데 이들 형벌 관련 용어가 대부분 한자어에서 유래한 것을 보면 이런 극형이 먼저 중국에서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아무튼 정 많기로 소문난 우리 조상들이 그런 지독한 형벌을 만들어냈을 리 만무하다. 기껏해야 곤장이나 치고 오라나 지우는 정도에 그쳤을 터이다. 우리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짜증이 날 때, 또는 남에게 부당한 대접을 받을 때 무심코 이와 유사한 욕설을 내뱉는다. 그러나 그 어원을 따져 보면 함부로 쓸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상대에 대한 꾸지람이나 경멸 또는 몹시 고통스럽고  치욕스런 일을 통틀어 욕이라 한다. 욕을 달리 칭하여 욕설이라고도 하지만 욕어나 욕언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본래부터 욕으로 생성된 언어는 없었다는 이야긴데, 말은 쓰기에 따라 칭찬도 되고 욕설도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경상도 방언에서는 수고했다는 인사말 대신 항용 "욕 봤다"는 말을  즐겨 쓴다. 이 말은 강간이나 치욕의 뜻이 아니라 그저 어려움을 잘 이겨냈다는 격려의 인사다. 우리 조상의 고운 심성이 그대로 반영된 예라 하겠는데, 어떻든 자신의 수향을 위해서라도 욕이나 욕설은 자제해야겠다.

  욕설에 대한 막심 고리키의 다음과 같은 말은 되새겨 볼 만하다. "욕설은 한꺼번에 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다. 욕을 먹는 사람, 욕을 하는 사람, 욕을 전하는 사람. 여기서 가장 큰 상처를 입는 사람은 욕설을 뱉는 바로 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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