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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우리말의 풍토성

    주술적 용어 3 - "고시"는 가까이, 잡귀는 물러가라

  언젠가 대학에서 대형 컴퓨터를 들여올 때 그 앞에서 고사를 지내는 광경을 보고 묘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과학 문명의 상징인 최첨단 기계 앞에 놓인 고사떡과 돼지머리... 자연물이나 귀신을 섬기던 샤머니즘의 풍습이 현대 물질문명 속에서도 그 명맥을 유지한다는 데 대한 감탄이랄까. "떡해 먹을 집안"이라는 저주의 말이 있다. 고사에서 떡은 필수적인 제물이라 집안에 우환이 있어 고사라도 지내야겠다는 그런 이야기다. 고사 외에 "푸닥거리"라는 전통적인 행사도 있다. 푸닥거리는 무당에 의하여 행해지는 해원굿을 말함인데, 이를테면 얽히고 맺힌 것을 풀어 주는 의식 전반을 가리킨다. 누군가는 우리 문화를 가리켜 "푸는 문화"라 했다. 살풀이에서부터 원풀이, 한풀이를 거쳐 심지어 심심풀이에 이르기까지 맺힌 것을 모두 풀어 줌으로써 평온을 되찾는다고 믿는 것이다. 모든 질병이나 재앙의 근원이 되는 악귀를 살이라 한다. 아 살을 적절히 위로하고 달래지 않고서는 우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는다. "푸념"이라는 말도 여기서 생겼으니, 본래 굿판에서 무당이 신의 뜻이라 하여 정성들이는 사람을 향해 꾸짖는 말을 푸념이라 한다. 무당이라는 말도 "묻다(문)"라는 동사에 접미사 "앙"이 연결되었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무당은 신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로서 인간의 일을 신에게 물어 보는 일을 담당하기에 점쟁이를 일러 "무꾸리(옛말로는 "묻구리")"라 부른다는 것이다. 만주어로 소리(음)을 "무단"이라 하고 무당이 되는 최초의 순간을 "말문이 터졌다(열렸다)"고 표현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란다.

   원시종교, 곧 무속이 지배하던 시절에는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는 모두 최고의 무당이었다. 우리의 국조 단군도 당시의 무당을 뜻하는 "당굴"의 한자 표기이며, 이 말은 지금도 "당골" 또는 "단골"로 남아 쓰이고 있다. 단골은 호남 지방에서 세습무를 지칭하기도 하나 대개는 늘 정해 놓고 불러다 쓰는, 그야말로 단골집의 단골 무당을 가리키는 말이다. 스님을 지칭하는 "중"이나 선생님을 뜻하는 "스승"이라는 말도 본래 무당을 뜻하는 말로 추정된다. 신라의 왕칭어인 차차웅 또는 자충이라는 표기가 바로 중이나 스승을 지칭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은 불교가 들어오기 전 제정일치시대의 제사장이나 존경받는 스승의 칭호로 존재했던 것이다. 신라의 왕칭어에는 차차웅 외에도 마립간이나 거서간같은 고유어가 공존했다. 여기서 마리, 마루(종)은 으뜸이라는 뜻이며 거시, 구시는 복이나 행운을 뜻하는 말로 무당이 행하는 "굿"의 어원이 된다. 굿의 어원에 대하여 어떤 이는 일본어 "구스리"와  관련지어 약이라고 주장하고, 또 어떤 이는 농사법과 불을 얻는 방법을 일러 준 "고시"라는 신의 이름에서 나온 말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지금도 야외에 나가서 무엇을 먹을 때 먼저 "고시레(또는 "구시레")"를 외치면서 음식 일부를 때서 신에게 바치는 의식을 치른다. 또 푸닥거리할 때  무당이 음식을 귀신에게 바치면서 이렇게 외치는데, 이 고시레의 고시, 구시가 줄어 굿이 되었다는 것이다.

  고시, 구시, 거시가 복이나 행운을 점지해 주는 좋은 신이라면 "살"이나 "액" 또는 "손"은 사람을 해치는 악귀의 이름으로서 피하거나 달래 주는 대상이었다. 예로부터 살은 위로해 주고(살풀이), 액은 미리 예방해 주며(액막이), 손은 가능하면 피하라고 일러 온다. 종류에 따라 그 성질에 따라 우리 조상들은 이처럼 현명하게 대처했던 것이니, 요즘 사람들도 이사할 때나 먼 길을 떠날 때 "손 없는" 길일을 택하려고 한다. "손"은 날수에 따라 네 방위로 돌아다니며 인간의 활동을 방해하는 고약한 귀신의 이름이다. 대개 음력 1~2일은 동쪽에 있고 3~4일은 남쪽에,  5~6일은 서쪽에, 7~8일은 북쪽에 있으나 9~10일은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 따라서 9일과 10일(19, 20, 29, 30일도 마찬가지)에는 이 악귀의 해코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상을 당했거나 출산한 가정에서는 금줄(안줄)을 매어 귀신이나 사람의 출입을 막는다. 이 금줄에는 귀신은 꼴 수 없는 왼 새끼줄에 귀신이 싫어하는 붉은색 고추와 새까맣게 타버린 숯, 사철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솔가지를 꽂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다. 사람의 출입을 금한다기보다는 부정을 타지 않기 위하여 또한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악귀의 폐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고사나 굿 같은 무속 신앙은 미신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터득한 지혜의 소산으로 생활의 일부가 되어 왔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마을 지킴이(영물)로서 의 당산나무와 성황당 또는 남녀 한 쌍의 장승이 우뚝 서 있다. 집안에는 터주와 조상신 또는 곡물의 씨앗을 담은 부룻단지를 모시는 풍속이 있어 이런 무속의 흔적이 아직도 건재함을 보여 준다. 지금도 붉은색 내의를 즐겨 입는 할머니들도 있다. 불을  상징하는 붉은색은 귀신이 가장 무서워한다 하여 옛날부터 신부는 시집가는 날 붉은 연지, 곤지를 얼굴에 찍었다.  얼굴만이 아니라 의상에도 붉은 천을 달았는데, 팔로 들어오는 귀신은 소매의 빨간 끝동으로 막고, 젖가슴으로 들어오는 귀신은 빨간 깃으로, 목덜미로 들어오는 놈은 붉은 댕기로, 앞으로  들어오는 놈은 붉은 옷고름으로 침입을  막았다고 한다. 그 당시 우리  조상들의 일상의 화두는 오로지 "고시는 가까이 오고 잡귀는 물러가라!"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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