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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우리말의 풍토성

    주술적 용어 2 - 고마워하고 비는 기원의 말

  성경에 이르기를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가르친다. 종교의 유무에 관계없이 누구나 평생 좌우명으로 삼을 만한 좋은 가르침이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처음 이 구절을 우리말로 옮길 때 순수한 고유어로 번역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매사라면 몰라도 범사라면 지금도 생소하기 이를 데 없고, "감사"나 "기도"라는 말 역시 한자말이기 때문이다. 일상어에서 "고맙습니다"와 "감사합니다"가 공존한다. 언젠가 학생들을 상대로 두  어사의 빈도수를 조사했더니 한자말 감사합니다가 약간 우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감사합니다는 사용자가 주로 중, 장년층이고 점잖은 자리에서 사용된다는 것인데, 이는 한자말이 더 점잖고 고상하다고 느끼는 일반의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사의를 표해야 할 자리에서 어떤 사람은 급한 나머지 "곰사합니다"라고 했다던가. 감사와 고맙다가 뒤섞인 한한합작어인 셈인데, 어떻든 두 말 가운데 과연  어느 것의 의미가 더 좋을까 생각해 보자. 우리가 고유어 고맙다의 어원을 안다면 이 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고맙습니다는 영어의 "댕큐(Thank you)"와는 격을 달리 한다. 왜냐하면 고맙다는  사의의 대상이 그 어느 누구도 아닌, 인간 이상의 어떤 위대한  존재에 대한 외경의 표현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고맙다의 어원 "고마"는 신 또는 신령을  지칭하는 말이며, 동사 "고마하다"는 공경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고마 경, 고마 건, 고마 흠이라 훈한 자전이 이를 대변한다. 또 고맙습니다의 기원형이 " 업습니다"이며 이 " 업다"를 신령스럽다 또는 신령의 은혜를 입었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고맙습니다는 단순히 어떤 상대에 대한 사의가 아니라 "할렐루야"와 같은 신에 대한 찬미로 볼 수 있다. 영어로 말한다면 어느 누구에게나 어느 상황에서나 입버릇처럼 내뱉는 "Thank you"가 아니라 "Thank God"또는 "God bless you"쯤에 해당된다고 할까. 따라서 우리말 "고맙습니다"는 결코 격이 낮고 가볍게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기도(또는 기원)"에 대한 고유어도 마찬가지다. "빌다"나 "바라다"가 기원에 대한 고유어인데, 그저 빌어먹고 공짜나 바라는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도 두 말의  본뜻을 이해함으로써 좋지 않은 인식을 깨끗이 씻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우리 천씨 장손 수명 장수케 해 주시고..."  필자의 생일날, 할머니께서 정화수가 놓인 상 앞에서 두 손을 싹싹 소리 나게 빌면서 이렇게 간절히 기도드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옛 사람들은 생일뿐만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이처럼 천지신명께 빌면서 살아 왔다. 키에르케고르도 기도는 인간의 호흡이라 말한 바 있지만 우리네처럼 한평생 손발이 닳도록 빌면서 살아 온 민족도  드물 것 같다. 빌다란 말에는 어떤 일이 성사되기를 바란다는 뜻 외에도 잘못에 대한 용서, 없는 것을 채워 달라는  구걸, 돌려 주기로 하고 차용해 오는 일 따위가 모두 포함된다. 빌면서 사는 삶이었기에 이처럼 "비다", "빌다"라는 말의 용례가 다양해졌는지 모르겠다. 또한 빌다라는 어사만큼 종교적 색채가 짙은 말도 없을 듯하다. 전지전능한 신에게 자신의 허물을 고백하고 신의 힘을 빌려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곧 은총을 바라는 것도 바로 비는 일에 속한다. 그렇다면 "비다", "비우다"의 본뜻은 신을 향한 인간의 무소유, 무능, 무력에 대한 진실한 고백에 다름 아니다. "마음을 비운다"라는 말이 있다. 무심의 경지를 이름인데, 여기서 마음이란 쓸데없는 인간의 욕심일 것이다. 불교에서도 색즉시공이라 하여 눈에 보이는  현상계는 모두 빈 것이라고 가르친다. 공이나 무, 부연한다면 인간이 가진 그 하찮으 것들을 포기하고 절대자에게 매달렸을 때, 비로소 구우너을 얻을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바라다"라는 말은 단순히 원하다, 기대하다를 뜻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바라보다"와  같은 말로서 의지하다, 곁따르다는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다. "바라다니다"가  "곁따라 다니다"는 뜻이므로 "사랑은 바라다니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바라본다면 어디를 바라보는가? 그것은 바로 인간이 신을 향하여 자기가 원하는 바를 구하고, 신을 알고 그와 똑같이 닮기를 바라는 것이다. "알음"이란 인간 관계에서 형성되는 친분뿐 아니라 신령의 보호와 보람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앞으로는 정초에 이런 덕담을 나누기로 하자.

  "그대에게 늘 알음이 있기를 바라오, 언제나 고맙습니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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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책을 읽으며 언뜻 생각이 났다. 언젠가 칼럼으로 '감사합니다' 와 '고맙습니다' 에 대한 의미를 쓴 적이 있다. 감사(感謝)는 중국어발음으로 '시에시에' 로 발음된다. 흔히 중국영화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우리말에는 주술적인 - 신에게 마음을 전하는 - 용어들이 많다. 그것을 미신이나 사이비종교처럼 취급 한다면 당신은 아무런 말도 뱉지 못할 것이다. 지난 시절 어머니들이 정화수 떠놓고 빌던 용어들처럼 한결같은 정성이 담긴 말이 어데 있겠는가. 한자를 완전히 없애고 한글로만 살아가기에 버거움이 있다. 그러나 더 좋은 뜻과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다면 당연히 바꿔써야 맞다.

- 윤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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