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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고유 이름 산책

    서울과 한강 - "아리수"가의 새마을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는  즉위한 지 3년 만인 1394년(음력 10월 25일)에 새로운 도읍지로 한양을 택한다. 따라서 1994년(11월29일)은  서울이 정도 60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였다. 도읍지로서의 서울의 역사는 이보다 더 멀고도 깊다. 지금부터 2천여년 전 이 땅에 삼국이 정립되던 시기, 곧 백제의 온조왕이 처음 도읍을 정한 때로 소급되어야 한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이 지역의 이름 또한 숱한 변화를 겪어야 했다. 문헌에 따르면 백제 초기 이 지역의 이름을 위례성이라 적고 있다.  우리글이 없던 때라 한자로 적고 있으나 위례는 "우리골" 또는 "여르(열)골"이라는 우리말을 차자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울"은 울타리, 신울 등에서 보듯 경계를 뜻하는 말로서 "나"의 복수형 "우리(we)"의 기원이 되기도 한다. "여르", 또는 "열(고어로는 열히)"은 수사 10을 뜻하는 말로 백제 초기에는  "여르제", 곧 십제라 불렀던 것으로 짐작된다. 초기에는 열 개 정도에 불과했던 마을(씨족 및 부족)이 점차 백여 개로 늘어나면서 "온제"라 부르게 되어 지금의 백제라는 나라 이름을 얻게 되었다.

수사 백의 고유어가 "온"인 것을 고려하면 온제란 말과 시조의 호칭  온조와는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온조의 "조"나 십제, 백제의 "제"는 마을을 뜻하는 고유어를 각기 다른 한자로 차음 표기한 것이다. 따라서 위례의 여르골은 열 개에 이르는 고을이란 뜻이며, 우리골은 마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토성이나 목책을 울러 우리(울)을 쌓은 도성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금도 "나"라는 단수보다 "우리"라는 복수 대명사를 즐겨 쓰는 것도 한 울타리 안에 사는 공동 운명체라는 본뜻이 좋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골은 언제까지나 우리의 골이 되지 못하고 세력의 부침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겪는다. 한산, 북한성, 남평양, 신주 등이 삼국시대에 사용되었던 이름인데, 이 가운데 한산의 "한"과 "신주"의 "신"이라는 말이 주목된다. 다만 고유어인 "한"을 표기한 차음자는 한민족이라 할 때의 한으로 적지 못하고 중국인을 지칭하는 한으로 적은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고유어 "한"은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크다(대)는 뜻으로 "한모르" 또는 "한뫼" 정도로 부르던 이름을 한산으로 표기했을 것이다. 또한 한산을 끼고 흐르는 강도 한수 곧 한강이라 이름하였다. 한양은 이 한수에서 나온 이름으로 지명에서 산의 남쪽, 강의 북쪽을 양(강의 남쪽은 음)으로 보기 때문에 한양이 된 것이다.

  우리 고유 지명을 두 자의 한자식 이름으로 고친 신라 경덕왕 이후 한주 또는 한양군이라 불리던 서울은 고려에 와서 양주 또는 남경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양주는 버들골이라 불리던 곳이 한어식으로 변한 것이며, 남경은 고려의 수도 개성을 염두에 두고 붙인 이름이었다. 그러나 조선 왕조가 들어서면서 도읍을 이곳으로 옮김에 따라 본이름 한양, 한성을 되찾게 되었다.

  5백 년 왕업과 운명을 같이한 한양은 일제 때 경성(경성, "게이쪼오")으로 일시 개칭되었다가 광복과 함께 그 옛날 신라 국명의 기원어가 된  "서울"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서울은 한반도에서 최초로 통일 성업을 이룩한 신라의 본이름인 서라벌 또는 서벌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새로운 마을(신읍)"을 뜻하는 고유어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서벌의 "서"는 새롭다(신)의 "새"와 샛바람(동풍)의 "새"와 같은 뜻이며 "벌"이 마을을 뜻하기에 서벌은 새로운 도시, 곧 새마을이 된다. 광복 후 한자식, 일본식을 거부하고 이렇게 고유한 이름을 찾게 된 것이 무엇보다 반가운 일이다. 특히 제 24회 서울 올림픽을 치른 뒤부터 서울은 지명의 뜻 그대로 뻗어나는 국력에 힘 입어 세계 속의 "새로운 도시"로 부상하게 되었다.

  서울을 끼고 흐르는 한강 역시 서울 올림픽을 통해 온 세계인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부각되었다. 올림픽에 즈음한 각종 행사가 한강에서 시작되고 한강에서 끝났기 때문이다. 인류 문명의 발생이, 또 한 도시의 형성이 물(강) 가에서 비롯되었기에 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행사는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한강은 큰 강을 뜻하는 말이지만 본래 이름은 "아리가람"이었다고 추정된다. 사료에 따르면 한강을 비롯한 낙동강, 압록강, 송화강과 같은 큰 강(또는 긴 강)은 모두 "아리수"라 기록하고 있다. "아리"는 길다(크다)는 뜻 외에도 아래(하)나 앞(전) 또는 남쪽(남)을 나타내는 고유어였다. 대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주거지나 집은 산을 등지고 강을 마주하는, 이른바 배산임수로 앉는 것이 통례이다. 방위어에서 뒤는 북쪽이요 앞은 남쪽이므로, 멀리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은 이러한 방위에 따라 고유 이름으로 삼는 예가 많았다. 아리수, 아리가람도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새마을에 아리수가 흐른다. 백제의 위례, 조선의 한양, 일제하의 경성, 그리고 한국의 서울로 이어지는 수도로서의 역사는 유구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제 남북통일이 이루어지는 날 서울은 또다시 새로운 수도로 거듭날 것이다. 이 새 수도를 안고 흐르는 큰 강 아리수 역시 이름 그대로 먼 미래를 향해 영원히 흐르는 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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