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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모어에 대한 인식 3 - 언어와 민족, 그리고 문화

  세계화를 지상의 화두로 삼는 현금에 이르러 영어 학습의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영어에 능통해야만 남보다 앞설수 있고, 나아가 국제사회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러한 추세에 편승하여 영어를 국가 공용어로 삼자는 주장도 심심찮게 제기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려되는 점은 우리말을 더 천시하게 되고, 또 영어가 한국어보다 훨씬 우수한 언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 주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영어 사용권 국가들이 대부분 강대국이므로 그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어는 우리보다 못한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국가의 언어보다 우수하다고 말할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말하여 결코 그렇지 않다. 언어학자들은 한 지역의 문화의 발전도는 언어구조의 추상성이나 복잡성의 정도와는 아무 상관 관계가 없다고 지적한다. 미개인들의 언어도 고도 문명사회의 언어만큼 얼마든지 추상적이고 복잡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하면 문명사회의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내용이라면 미개 사회의 언어로도 표현될 수 있고, 미개 사회의 언어로 표현 할수 없는 것이라면  이와 마찬가지로 문명 사회의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다는 얘기다. 어떤 황홀한 정경을 보았을 때 아프리카 시인은 서구의 보통 사람보다 얼마든지 더 멋진 표현을 할 수 있다. 이들 언어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언중이 많아서 그것이 적은 언어보다 문법이 더 정제되었거나 전문적인 학술용어가 많을수 있다는 것뿐이다. 이런 외형적인 차이만으로 언어의 수준이 높고 낮음을 평가할  수는 없다. 따라서 지구상에 현존하는 모든 언어의 차이는 그 언어가 쓰이는 지역의 기후나 풍토 등과 같은 지리적 여건이나 언어 사용자들의 생활 풍습등 문화적인 차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열대 내륙지역의 언어에서 눈, 얼음, 바다, 조개 따위의  어휘가 없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눈(설)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우리말의 눈은 중국어의 설, 영어의 snow와  같이 하나의 어휘만을 가진다. 그런데 눈 속에서 생활하는 이누크족(흔히 에스키모라 부름)의 말에는 내리는 눈, 쌓인 눈, 집을 짓는 데 쓰이는 눈 등 몇  개의 어휘가 공존하여 쓰인다고 한다. 그들의 생활 환경에서 눈이 그만큼 중요하기에 다른 언어보다 개념이 더 세분화된 결과이다. 우리말에서는 모, 벼, 쌀, 밥등으로 세분화하여 구분되는 어휘가 영어에서는 rice라는 한 단어로 표현된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와 빵을 주식으로 하는 서구인의 식문화차이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그렇다고 하여 영어는 추상능력이 있는 언어이고, 우리말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할수 있는가?

  개별 언어들이 수준 차이가 없다는 사실은 이들 언어사이의 번역상의 문제점을 생각해보아도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완벽한 번역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은 문학 작품, 특히 상징성이 짙은 운문(시)의 경우에서 쉽게 발견된다.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를 우리말로 옮기거나 김소월의 시를 영어로 옮겼을 때는 그 느낌이 전혀  다를 것이다. 어휘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이를테면 비젼(vision), 멜랑콜리(melanncholy), 델리커시(delicacy) 같은 외국어를 우리말로 정확히 옮기기에 부적잘한 것들도 얼마든지 있다. 맛이 달짝지근하다, 시금털털하다도 그렇지만 시원섭섭하다, 삼삼하다에 이르면 더 난감해지지 않겠는가.

  언어는 또한 어느 특정한 종족과 불가분리의 연관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어는 한국인만이 할 수 있고 중국어는 중국인 만이 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모어가 무엇인가 하는 점인데, 이를테면 미국에 사는 흑인들은 아프리카에서 왔지만 그들은 영어를 모국어로 삼는다. 이는 서양 선교사의 아이들이 한국에서 자라면서 한국인과 똑같은 우리말을 잘할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다. 언어와 종족사이에 필연성이 없는 것처럼 어떤 특정한 언어와 특정한 문화 사이에도 불가분리의 연관성은 없다. 언어가 다르면 문화가 반드시 다르다든가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회는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앞서 번역에 대한 문제를 언급했지만 완전한 번역이 존재할수 없는 이유는 한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에 있는 어휘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에 없거나, 또 있다 하더라도 그 개념이 한결 같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특정언어와 종족과의 관계 또는 특정 언어와 문화와의 관계, 문화의 발전도와 언어 수준의 차이, 언어와 사고 사이에는 필연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사실등을 언급해왔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우리는 개별 언어의 특수성, 언어와 언어 사이의 차이점을 과대 평가하고 그것에 너무 집착했기 때문에 전세계의 언어가 공유하고 있는 언어의 보편적 특질에 대해서는 깊게 이해하지 못했다. 개별 언어에 대한 이해는 언어 일반의  보편적 특질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하여야 하고, 또 개별 언어에 관한 연구는 일반 언어의 보편적 특질을 이해하는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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