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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우리말의 풍토성

     몸짓 언어 3 - 입으로 하는 또다른 말

  입은 음식을 먹는 일 이상으로 말을 하는 일을 주임무로 삼는다. 먹고 말하는 일이 일상 생활에 절실한 만큼 옛말에도 "입이 보배"라 하여 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경상도 말로 "이바구"라고 하는 "이야기"는 입에 기원을 두고 있다. 입을 열다, 입을 떼다, 입을 다물다, 입이 더럽다, 입이 걸다, 입담이 좋다, 입심이 세다, 입이 싸다, 입에 오르내리다, 입방아 찧다, 입씨름하다, 입버릇이 고약하다 등은 모두 말하기로의 입의 기능을 나타내는 말이다.

  말(어원)의 어원은 입, 그 가운데서도 혀에 있다고 한다. "혓바닥을 조심하라"는 우리 속담이나 "세 치의 혓바닥이 다섯 자 몸을 좌우한다"는 중국 속담에서 혀가 곧 말의 의미로 쓰임을 본다. 옛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가로되, 가라사대의 (왈)은 혀를 지칭하는 몽골어와 뿌리를 같이한다. 영어의 "language"도 혀를 가리키는 라틴어 "lingua"에서 나온 말이며, 영어의 "tongue"이나 독일어의 "Zungue" 역시 "lingua"와 맥을 같이하는 말이다. 현대를 "자기 PR 시대"라 한다. 입이 무거워야 점잖은 사람으로 대우받던 옛날과는 달리 현대인들은 자기 표현에 능숙하다. 말하자면 입이 가벼워야 인정받는 그런 시대라고나 할까.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이라고도 하고, 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가린다"고 했다. 무언가 말하고 싶을 때 "입이 근지럽다"고 하고,  심지어 "입고프다"고 투정하는 사람도 있다.

  말의 본질적인 기능은 생각이나 느낌을 입을 통하여 소리로  내보내는 일이다. 여기에 곁들여 입이 담당하는 또 하나의 기능은 소리 없는 애정 표현이 아닌가 한다. 쫑긋이 내미는 도톰한 입술, 입가에 어리는 잔잔한 미소, 한걸음 더 나아가 상대와 서로 입을 맞추는 행위는 애정 표현의 절정이다. "키스"라 불리는 이런 행위는 일반적으로 서양인의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이 멋진 애정 행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시도 때도 없이 내놓고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서양인과 다를 뿐이지 우리에게도 그보다 더 은밀한 입맞춤이 있었다. 말하자면 "밥물림"이라는 전통 풍습에서 입맞춤의 기원을 찾는다. 밥물림이란 옛날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들이 당신의 입 속에서  죽으로 변한 밥을 입에서 입으로 되먹이는 방식을 이름이다. 이  고귀한 애정 행위는 후일 남녀  간의 애정 표현으로 옮겨가 "입주다"라는 고유어를 낳게 된다. "사랑은 주는 것"이라는 사랑의 참 뜻을 우리 조상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옛 문헌에도 보이는 이 말은 아마도 몸을 바치는 최종 단계에 이르러 이를 허락한다는 신호정도로 인식했던 모양이다.

  입맞춤을 한자말로 접문이라고 한다. 때로 "입 구"자를 두 개 나란히 쓰고 그 아래 "합할 합"자를 보태어 독특한 고유 한자를 만들어 쓰기도 한다. 그러나 한자를 그토록 선호했던 우리 조상들도 이 접문이란 한자말은 잘 쓰지 않았다. 밥물림이나 "입주는"행위를 단순히 입을 갖다 맞추는, 그런 동물적 행위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맞춤이라는 말조차도  최근에 와서 비로소 쓰이는 걸 보면 이런 행위가 부부 사이에서나 가능하고, 또 은밀한 장소에서 몰래 이루어 지는 "짓"이기에 우리네 정서로는 내놓고 입에 올리기를 꺼렸던 모양이다. 입맞춤이라는 말은 사용자의 나이를 낮춤으로써 어색함을 덜어 보고자 한다. TV의 "뽀뽀뽀"라는 어린이 프로가 그 좋은 예인데, 그 이후로 "뽀뽀"나 "쪽쪽" 또는 "응아"라는 어린이말이 보편적으로 쓰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러나 좀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더 멋진 고유어를 찾아낼  수도 있다. "심알을 잇는다" 또는 "심알을 맺는다" 는 말이 그건데, 이 말의 본뜻을 안다면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심알은 마음의 알맹이, 곧 심성의 핵을 지칭한다. 너와 내가 심알을 잇는다면 속마음을 서로 연결한다는 뜻이니 이보다 더 멋진 표현은 없으리라.

  독일의 시인 셸리는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입술이 서로 닿는 넋의 맞닿음"이라는 표현을 썼다. 셸 리가 말하는 "넋의 맞닿음"이 바로 우리말 "심알"의 본뜻이 아닐까 싶다. "뽀뽀"는 너무 가볍고, "쪽쪽"은 천박스러우며, 외래어 "키스"는 여전히 거부감을 준다. 입으로 하는 또 다른 언어, 입맞춤은  어떤 용어로도 심알을 맺는다는, 고유어의 그  은근하고 고상한 품위를 따를 수가 없다. 인정이 날로 메말라 가는 요즘, 그 인정의 샘을 되찾는 의미에서도 이웃끼리,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서로 심알을 맺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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