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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생활 속의 우리말

    상거래 용어 - 에누리와 디스카운트

  물건값을 정가보다 낮추는 일을 에누리라 한다. 에누리는 본래 "어히다, 에이다(할)"에서 나온 말로 베어 낸다, 잘라 낸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 에누리없는 장사가 어딨어"라는 노래말에서 보듯 예전에는 값을 깍는 맛에 물건을 산다고 했다. 그러나 이 에누리 풍속도 정찰제에 밀리고, 또 "디스카운트(줄여서 "디시")"나 "바겐세일(또는 "세일")"  등의 새로운 서구식 상거래 풍속에 점차 사라지고 있다. 물건을 살 때 덧붙여 오는 것을 "덤"이라 하는데, 이것이 에누리보다는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것 같다. 덤은 인정과 통하는 말로서 콩나물 한 봉지를 살 때도, 밥 한 술을 덜어 줄 때도 덤이 예외없이 따라 붙는다. 인정 넘치는 민족의 언어답게 덤이라는 말도 어떤 말에든 그야말로 덤처럼 붙어 다닌다. 일 년 열두 달에서 한 달이 거듭되는 윤달을 덤달이라 하고, 호선으로 두는 맞바둑을 덤바둑이라 한다. 옛날에 법도 있는 가정에서는 "세덤"이라 하여 식구 외에 두세 몫의 밥을 여분으로 준비하곤 했다. 새우젓 장수는 알젓 외에 덤으로 주기 위한 덤통을 아예 준비하고 행상에 나섰다. 지금은 보너스 또는 상여금이라 칭하는 기본급 이외의 보수를 일러 "덤삯"이라 부르면 어떨까 싶다. 인정이라는 부가 가치가 붙는 덤은 더없이 좋은 것이긴 해도 한계를 넘으면 문제가 된다. 월부책 판매나 이발을 할 때 덤이 지나칠 정도로 극성을 부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형국이 될 수도 있다. 덤이란 주는 이의 정이나 상식에 의존해야지 받는 이의 요구에 의한다면 난처한 입장에 처할 수도 있다. 덤이 벼슬로 옮아가면 권한 밖의 권한을 함부로 휘두르는,  이른바 직권 남용이 된다. 덤이 세금에 따라 붙으면 이른바 인정세라는, 세금 아닌 세금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흔히 "떡값"이라 불리는 이 인정세는 돈을 "낸다"고 하지 않고 "뜯긴다"는 별도의 용어를 사용한다. 뜯긴다는 표현에 이르면 이는 분명 인정의 한계를 넘어선 부정이며, 또 영어의 "팁"과도 전혀 다른 개념이다.

  공중전화에서 통화를 끝내고 남은 요금 가운데서 십원짜리 동전을 거슬러 받지 못한다 하여 말썽이 된 적이 있다. 마땅히 되돌려 받아야 할 거스름돈을 일반적으로 낙전이라 부른다. 그런데 화투판에서 낙장이라는 말은 들어보았으나 "떨어진 돈", 곧 낙전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생소하기 이를 데 없다. 국어사전에도 오르지 못한 이 용어는 마땅히 거스름돈 또는 우수리돈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어떤 이는 이를 "잔돈"이라고 하는데, 잔돈은 작은 단위의 돈을 뜻하기에 거스름돈이 꼭 잔돈일 수는 없다. 거스름돈은 거슬러(반대로) 받는 돈(역전), 다시 말하면 지불한 금액에 대하여 우수리 부분을 거슬러 받는 돈이라는 뜻이다. 거슬러 받아야 할 돈이 어디 공중 전화 요금뿐이겠는가. 술집에서 술값을 치를 때, 택시를 타고 요금을 낼 때, 이발을 하고 봉사료를 낼 때 이 거스름돈이 자주 말썽을 일으킨다. 인정이라는 덤이 주는 것(파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것(사는 사람)으로 여길 때 문제가 야기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쩨쩨하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인지, 아니면 주머니 사정이 두둑해서인지 마땅히 받아야 할 거스름돈을 기꺼이 사양하는 부류가 많다.  당장 보기에는 멋져 보일는지 모르나 그렇게 호기를 부린 본인의 속마음은 그리 편치만은 않을 터이다. 과거 상거래에서 자주 쓰이던 "드림셈"이나 "드림흥정"이라는 용어는 이제 들어보기 어렵게 되었다. 물건을 사고 팔 때 값을 한목에 치르지 않고 여러 차례 나누어서 치르는 할부 판매를 예전에는 드림셈이라 했다. 지금의 할부와 차이가 있다면 언제, 몇 회에 걸쳐 치른다는 규정만 없을 뿐 채무자의 형편에 따라 빚을 갚아 나가는, 어찌보면 가장 한국적인 지불 방법이다. 드림셈이나 드림흥정이라는 제도가 우리 정서에 맞는 만큼 월부라면 달드림, 일부라면 날드림이라 하여 오늘날에도 되살려 썼으면 한다.

  "도르리"도 되살리고 싶은 말이다. 도르리는 본래 여러 사람이 제각기 음식을 돌아가며 내서 함께 먹는 일, 즉 이번에는 이 집에서 음식을 내면 다음에는 저 집에서 내는 식으로 차례대로 내는 방식이다. 이런 도르리는 식당에서 여럿이 음식을 먹고 똑같이 값을 치른다는 이른바 "더치페이"라는 말의 대용으로도 쓸 수가 있을 것이다. 금전 거래에서 현금 대신 사용되는 수표는 그 말의 유래가 확실치 않다. 북한에서 수표라 하면 수결과 마찬가지로 사인을 뜻할 뿐 우리의 수표와 같은 개념은 없다. 아마도 고유어 "어음(본래는 "어험")"이 일본이나 중국의 영향으로 수표라는 용어로 대체된 것이 아닌가 한다. 어음은 상거래에서 언제까지 돈을 지불하겠다는 약속의 증표로서 액수를 기록한 글씨가 두 쪽이 나게 잘라서 거래 당사자들이 한쪽씩 나누어 가졌다. 이는 현금 대신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었는데, 받는 사람은 지불 날짜에 그 발행인을 찾아 두 쪽을 맞추어 보고 돈을 받는 금전 거래법이었다.

  어음이라는 말 역시 고유어로서  앞서 말한 에누리의 "어히다"에서  파생한 말이다. 경제 용어도 가능한 한 우리말을 되살려 써야 하지 않을까 한다. 디스카운트 대신 에누리, 프리미엄 대신 웃돈, 캐시나 현금 대신 맞돈이라고 써도 무방하지 않을까.  IMF 사태 이후 우리 사회가 겪은  변화가 있다면 "경제의 국제화"일 것이다. 국제화라는 명분 아래 경제에 관한 한 모든 용어가 외래어로 채워지고  있다. 이런 거대한 홍수 속에서 우리말은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참으로 비참한 지경에 이른 우리말의 신세,  이것이야말로 "우리말의 IMF 사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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