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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우리말에 대한 반성

   가족 호칭어 - 며느리와 새아기

  아들의 아내를 자부라 하고 우리말로는 "며느리"라 부른다. 시부모가 며느리를 다정스런 목소리로 "이애, 며늘아가!" 하고 부른다면 언뜻 생각하기에  매우 좋은 호칭이라 여겨진다. 그러나 며느리라는 말의 본뜻을 안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특히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여권운동가라면 며느리 호칭 추방에 나설지도 모를 일이다. 우선 "며느리 밥풀"이라는 꽃이름에 얽힌 사연에서 며느리란 말의 어원을 풀어 나가기로 한다. 옛날 못된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하던 어느 며느리가 너무나 배가 고파 몰래 밥풀을 훔쳐 먹었단다. 이를 알아차린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혹독하게 다스린다. 견디다 못해 며느리는 "제가 먹은 것은 밥이 아니라 이런 밥풀이에요."라며 삼키지 못한 밥풀을 혀 끝에 내보이면서 끝내 숨을 거두고 만다. 이렇게 죽은 며느리는 밥풀나무로 환생하게 되었는데, 죽어서도 자기 신세가 처량하여 아무도 없는 깊은 산 속에서만 피게 되었다고 한다. 며느리밥풀은 종류도 다양하여 새며느리밥풀, 수염며느리밥풀, 애기며느리밥풀등으로 나뉜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며느리주머니"나 "며느리발톱"도 있고, 심지어 "며느리밑씻개"라는 고약한 풀이름도 있다. 식물명에만 있는게 아니라 "쥐며느리"라는 동물명도 있고, "며느리고금"이라는 학질을 뜻하는 병명도 있다. "며느리바퀴"라면 쳇불을 메는 데 쓰이는 두 개의 좁은 테를 지칭하고, "며느리서까래"라는 서까래 이름도 있다. 며느리서까래에 얽힌 사연도 재미있다. 옛날 대궐을 짓던 어느 목수가 마름질을 잘못하여 서까래를 너무 짧게 자르고 말았다. 짧은 서까래를 걸어 놓고 보니 집이 제대로 설 수 없는지라 목수는 큰 벌을 받게 되었다. 이 때 사정을 안 며느리가 "아버님,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네모난 서까래를 잇달아 걸고 짧은 것은 집모양을 내느라 일부러 멋을 부렸다고 말씀드리면 어떻겠습니까?" 라는 멋진 제안을 내놓아 위기를 모면할수 있었다. 중벌을 받을 줄 알았던 목수는 오히려 임금님에게 큰 상을 받고 명장이라는 칭호까지 얻게 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 본서까래에 덧붙이는 작은 것을 며느리서까래라 부르게 되었다던가.

  이쯤 되면 "며느리"의 본뜻이 저절로 밝혀진다. 이 말의 본래 형태인 "마늘, 미늘, 며늘"은 하나의 주된 것에 덧붙어 기생한다는 뜻을 가졌다. 따라서 "며늘아이"의 준말인 며느리는 내 아이(아들)에게 더부살이로 기생하는 존재에 다름 아니다. 말하자면 조카며느리는 조카에게 딸린, 손자 며느리는 손자에게 딸린 지어미라는 뜻으로 철저한 남존여비 사상에서 비롯된 호칭어임이 자명해진다. 짐승이나 조류에도 "며느리 발톱" 이란 게 있는데, 이 명칭을 통해보면 며느리의 본 뜻이 더 분명해진다. 소의 발톱 가운데 평소 땅을 디디는데 소용되는 것은 앞쪽의 두 발톱이요, 뒤쪽에 있는 두 개는 그저 여벌로 달려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며느리"란 유사시에나 쓰일 뿐 퇴화하여 쓸모없게 된 것을 일컫는 말이 아닌가. 이는 지나친 남성 중심의 사고가  언어에도 반영된 흔적이다. 내 집에 살러 온 며느리가 여벌의 존재이다 보니 가족들, 특히 시어머니나 시누이에게 미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속담에 "배 썩은 것은 딸을 주고 밤 썩은 것은 며느리 준다"고 했고, "며느리 아이 낳는 것은 보아도 딸이 낳는 것은 못 본다"고 했다. 게다가 "며느리 시앗은 열도 귀엽고 자기 시앗은 하나도 밉다"고 했다. 시앗이란 첩을 지칭하는 말인데, 아들은 첩이 많을수록 좋고 자기 남편의 첩은 하나도 용납할수 없다는 이야기다. 며느리를 얼마나  밉게 보았으면 이런 지독한 속담이 생겼을까.

  고유어 며느리에 해당하는 한자 부도 그리 좋은 의미는 아니다. 부는 "겨집 녀"자에 "비 추"자가 합친 글자로서 여자가 빗자루를 들고 서 있는 형상이다. 아내를 뜻하는 처 자도 이와 같은 구조의 글자로서 그저 집안에서 청소나 하는 존재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난  지금 종래의 부부 호칭에서 안과 밖(내외,집사람)의 개념은 없어져야겠고, 며느리도 여벌로 딸린 존재가  아닌 꼭 필요한 동반자의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 진정한 남녀 평등을 원한다면 "며늘아가"라는 호칭에서 "며늘"을 다른 말로 교체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자주 쓰이는 "새아가"란  말이 산뜻한 인상을 준다. "새아기"도  좋고 "새아이", "새사람"도 무난할 것이다. 내 자식, 곧 내 아이에  대해서 새로 들어온 (생긴) 또 하나의 자식이란 뜻이다. 새아기도 나이를 먹어  또 다른 새아기가 생기면(시부모에게 손자가 생기면) 그때는 "어멈"이나 "에미, 어미"라고 부르면 족할터이다. 이 말에는 새아기에게도 자식이 생겼으니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 하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이애, 며늘아가!"라는 부름에서 "이애, 새아가!" 또는 "이애,  어멈아!"하는 부름으로 자연스레 옮겨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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