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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우리말에 대한 반성

   허망한 언사들 1 - 별 볼일 있는 말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처럼 말의 힘은 참으로 무섭다. 몇해 전인가 TV드라마 "사랑이 뭐길래"가 인기를 끌자 전국이 온통 "뭐길래" 선풍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사랑이 뭐길래"라는 말은 사랑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역설적으로 사랑의 열정이나 그 힘을 강조한 것이지만 자칫하면 반의어로 쓰일 위험성도 없지 않다. "뭐길래 선풍"은 그 대상이  사랑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미인이 뭐길래, 친구가 뭐길래, 성적이 뭐길래, 정치가 뭐길래"로 확산되고, 이는 다시 구체적인 단체나 인물로 옮아 간다. 기존의 질서나 권위는 물론 윤리, 도덕이나 미풍양속에 이르기까지 그 파급효과는 겉잡을수 없게 된다.

  대학에서 학생들은 "교수가 뭐길래" 라면서 그들의 스승을 구타했다. 어떤 망나니는 "부모가 뭐길래"하면서 아버지를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뿐인가, 위계질서가 생명인 군에서는 "상관이 뭐길래"하면서 장교를 폭행했다. 그 결과는 어떠한가? 지휘관이 부하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며느리가 시부모를 길들이는 세태, 곧 세상이 거꾸로 가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질서없는 사회에서 언어라고 온전할 리 만무하다. "우습다"는 말은 그 반대말인 "우습지도 않다"와 구분되지 않는다. 그 일이 우습다거나 그가 웃긴다고 할 때 이와 상반되는 그 일이 "우습지도 않다"와 그가 "웃기지도 않는다"는 말과 실제 표현상으로 차이가 없어 보인다. 엉터리나 변명이라는 말도 본뜻이 전도되었다.

  본래 어떤 일의 개략적 내용이나 윤곽을 일러 엉터리라고 한다. "엉터리가 없다", "엉터리를 잘 모른다"고 해야 이치에 맞지 않는다거나 윤곽을 파악할수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현재 쓰이는 엉터리는 그 자체로 허위를 뜻하는, 참으로 엉터리 같은 말로 변질되었다. 옳고 그름을 가리고 죄가 없음을 밝힌다는 변명도 예외는 아니다. "변명하지 마라, 이건 변명이 아닙니다"에서 보듯 변명은 그 자체로 거짓말이나 엉터리가 없다는 뜻으로 타락하고 말았다. 참으로 그 신세가 우습지도 않게 변해버린 말이라고 할까.

  한자어 별 역시 본래의 뜻을 버리고 그야말로 "별 볼일 없게"되었다. 별은 분명 보통과 다름을 나타내는 말로서 "별 볼일 없다, 별수 없다, 별게 아니다"에서 보듯 "별"에 부정을 뜻하는 어사가 연결되어야 보통이란 뜻을 나타낸다. 그러나 현실어에서는 어디 그런가, "별놈 다있네, 별일 다 본다, 참 별꼴이야"등의 예문에서 보면 앞서 말한 "뭐길래"와 마찬가지로 언급되는 대상의 특별함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명백히 드러난다. 어떤이는 말하기를 지랄같은 성질이 "지성"이요 개같은 성격이 "개성"이라는 것이다. 언어가 왜 이 지경까지 뒤틀리게 되었을까? "별것"과 함께 "어차피 다 그런 것, 주제에" 따위도 부정적이면서 체념적인 이미지를 내비치는 좋지 않은 어사들이다.

  "어차피 한번 죽은 몸인데, 어차피 맺지 못한 인연인데"에서 보듯 어차피는 필연적으로 어쩔수 없다는 체념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 "다 그런거지 뭐"도 이런 숙명 의식을 깔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의식은 속담에서도 잘 드러난다. 벼룩도 뛰어봐야 지척이요, 손오공도 날아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며, 도토리는 키를 재봐야 그렇다는 자조성 짙은 속담이 그런것들이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이왕이면 긍정적인 표현이 좋다. 해봐야 별수 없다는 말은 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 않으면 안된다 식의 표현으로바뀌어야 한다. 위의 속담도 그 내용을  뒤집어 보면 벼룩은 자기 몸의 수백 배를 뛸 수 있고, 손오공은 슈퍼맨처럼 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뜻으로 해석 될 수 있다. "엽전이 무얼 하겠느냐"는 자조에서 우리도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뀐 지도 오래며, 질서는 좋은 것이고 편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지도 이미 오래 되었다.

  언어의 타락에도 물리학에서 말하는 관성의 법칙이 작용된다. 한번 의미가 나빠지고 말투가 거칠어지기 시작하면 이는 끝간 데 없이 구르다가 결국 허탈과 공허 속으로 매몰된다. 이처럼 언어가 나빠지면 사회의 기존 질서나 미풍양속, 또는 그 바탕이  되는 윤리 도덕의 타락까지도 동반한다. 우리가 국어 순화를 외치는 소이도 바로 여기에 있다. 바꾸어 말하면 언어가 본래의 뜻을 되찾지 못하는 한 기존 질서나 권위의 회복은 요원하다. 세계화, 국제화를 부르짖는 요즘 "그것이  뭐길래"라는 자세로 임한다면 그 말 역시 별 볼일 없는 말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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