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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정호완


  2. 땅과 존재

  2-I. 굿과 혈거생활

  어떤 일에 회망을 걸거나 몹시 기대하는 것을 희롱하는 투로 얘기할 때, '굿에 간 어미 기다리듯 한다'고 한다 굿을 치르면 그에 따르는 이바지 물건이 있기 때문이다. 새에게는 보금자리가 있고 여우에게는 굴이 있듯이 우리 사람도 문화가 발달하기 이전에는, 모두가 굴살이(혈거)를 하였으며 다시 굴 속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였다. '굴살이'에서 '굴' 은 '굿'과 같은 의미로 쓰이다가 지금은 다른 뜻으로 굳어진 말이다. 두 말을 비교해 보면 음절.구조는 같고 다만 받침이 다른데, 받침 소리가 시옷(ㅅ)에서 디굳(ㄷ)으로, 다시 리을(ㄹ)로 넘나드는 변이 형태는 우리말에서 흔히 발견된다. 무당이 노래나 춤을 추며 귀신에게 치성을 드리는 의식이나, 연극과 같이 여러 사람이 모여 떠드는 볼 만한 구경거리를 통틀어 '굿'으로 정의한다. 또는 구덩이가 줄어서 변한 말로서 묘를 쏠 때에 구덩이 안에 널이 들어갈 만큼 잘 다듬어 놓은 속 구덩이를 '굿'이라고도 하는데, 구덩이가 무너지지 않도록 단속하는 일을 일러 '굿단속한다' 고도 한다. 지금도 방언에 따라서는 '소구시' 라는 말이 쓰이는데 (상주 지역 등) 소먹이 통을 뜻한다. 강원도 지방에서는 혼히 '구유. 구융'이라고 하는바, 모두가 '굿'의 변이형태로 보면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러니까 '굿/굳/굴' 은 하나의 단어족을 이루어서 쓰인 말인데, 이들 형태들은 배달겨레가 혈거생활(굴살이)을 했던 까닭에 그것이 언어적으로 투영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 당시는 '굴(굿/굳)'이 곧 삶의 보금자리였으니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굿'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낱말의 떼 (단어족)는 뒤에 살펴보기로 하고, 먼저 굴살이와 관련한 옛적 문헌에 대하여 대강을 알아보도록 한다.

  우리들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 ((삼국유사),의 기록들인데 먼저 단군신화의 경우, 한 마리의 호랑이와 한 마리의 곰이 같은 굴에서 살면서 [同穴而居]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환응신에게 빌었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호랑이와 곰은 신화학적으로 보아 각각의 부족을 상징한다는 풀이도 있거니와 일종의 토템신이기도 하다 곰은 '곰/고마'로 표기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고마(곰)'은 태음신으로서 물과 땅, 결국은 생산을 주재하는 여성신이었으며, 환응은 니 마(님>임)'계의 태양신으로 하늘과 불을 다스리는 제우스격의 신이었으니, 님과 곰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바로 단군왕검이었던 것 이다. 태어난 곳이 바로 굴이었고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장소도 굴이었으며 부족을 다스리는 공간(관청)도 굴의 형태였으니 '굴'은 모든 삶의 근거를 마련해 주는 공간이었다. (석보상절), 같은 중세어 자료에는 관청을 '구위'라고 하였는바, '굿>구위'의 변모과정을 거쳐서 된 말로 보인다. 시옷(ㅅ)이 반치음(△)으로 읽히다가 아예 음운의 탈락이 일어나고 한 음절이 덧붙어 '구위'가 된 것이다 (삼국유사),의 고구려조에 해모수가 유화를 압록강변의 굴에 감금하고 햇빛을 쬐어 잉태하게 한다는 기록도 역시 굴과 무관하지 않다. {(고구려국본기,, 에 따르면 삼신을 제사함에 있어 굉양의 기 림굴(林篇)에서 제사를 모셨으며, 맞이하는 의식은 무덤과 같은 굴(수혈 ; 隱穴)에서 행하였다고 한다. 한편 중국의 문헌에서는 어떠한가 ((후한서 (後舊書)),에는 동이전(東夷傳) 조의 일부분에서 '성곽을 쌓지 않고 흙으로 방을 만들었는데 그 모양은 마치 무덤파 같고(室形如舊) 그 위에다 문을 만들었다'고 하였으며, {(삼국지), 에는 '큰 집은 굴의 사다리 아흡 개를 놓아야 들어갈 만하고 깊이가 깊을수록 좋다(常穴房大家澤九構以多爲好)' 고 하였으며, {(진서 에는 동이전 부분에서 '여름에는 나무 위에서 살고 겨울이면 굴속에서 산다(夏則舊居冬則穴處)'고 하였다. 이상의 기록들로 보아 우리 서조들이 굴살이를 하였던 것은 분명하다.

  박용숙의 {(한국의 시원사상), (1987)에 따르면, 여기 무덤과 같은 굴은 일종의 거룩한 성역이요, 그런 굴은 성전이었으니 이를 테면 하늘신을 제사하는 스투파 곧 절대적인 탑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다. {(삼국유사),에서는 소도(蘇塗)라는 종교적인 성역에 큰 나무를 세우고 가지에 방울과 북을 매달아 귀신을 섬겼다고 했다. (삼국지)등에서는 '소도'를 불가에서의 부도(浮居)와 같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의 장군총이나 광개토왕의 묘는 그 자체가 곧 소도였다. 지금도 무당의 집에 성황목(城皇木)을 세우는데, 이는 소도의 퇴화한 화석과 같은 것이며 약식화한 상징물포 보면 된다. (삼국유사),의 석탈해조에 탈해가 토함산에 올라 돌무덤을 지어 약 7일을 거기에서 살면서 왕성의 터를 물색하였다고 하니, 돌무덤이 곧 신전이 아닐까 한다. 고대의 신전이란 천문지리라든가 시간과 방향을 측정하는 공간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바, 신과 교통하는 영험스러운 장소였다. 글자의 발달과정을 보면 고(古) 자도 신전을 뜻하였다. 백천정 (白川靜)은 다음의 두 가지로 풀이한다 하나는, 신전과 그 내부의 모습으로 신상을 모신 집안에서 제사장이 여러 가지 제단 위에 제기를 벌여 놓고 예배를 드리는 광경이라는 것이다. 즉, (덮개.움막) + (물)+(그릇) +(제사장)十(음양의 접합)-舊이다. 다른 하나는, 신전의 모양은 드러나지 않지만 장막이 드리워진 상자 속에 우상이 앉아 있는 형상이 라는 풀이이다. 즉,  (그릇)+(장막) +古(우상)-圍이다. 결국 글자의 모양이 간추려지는 과정에서 모시는 대상의 뜻만 남아 古로 쓰이게 되었으니 본래는 신전을 드러낸 글자였다는 것이다. 그 신전이 바로 굴의 형태로 상징되었다

  '굴'과 연관되는 낱말 겨레들은 어떻게 발달해 나갔는지를 좀더 알아보도록 한다. 지금은 무당이 치성 을리는 의식을 '굿` 이라고 하지만, 제정일치 시대에는 '굿' 이 국가적 차원에서 신을 제사하는 대회 (國中大會)로 치러졌으며, 제사를 모시는 사람도 부족의 통치자이자 제사장이었으니 지금 서양의 교황에 맞먹는 구실을 하는 인물이었던 것 이다. 제사를 모시는 신전은 거룩한 장소로, 오늘날의 '굴'과 같은 공간이었다. 공간을 조금 확대하면 거룩한 숲(聖林) 으로서 산과 교통하는 장소였고, 공간을 축소하면 속은 굴이지만 겉으로는 솟아 있는 '소도(蘇塗)' 였다. 오늘날에도 소수 남아 있는 국사당t國師棠)이나 심지어는 절간이나 기독교의 교회당이 모두 높은 곳에 자리를 잠고 있는 것도 이 '소도'의 특성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요컨대 '굴'은 '궂/굳'과 같은 의미로 쓰였는데, 증세어로 오면 그 의미가 갈라져 쓰이게 된다. 그 중 '굳'은 단독으로 쓰일 수 없는 형태지만 분화의 모습을 살펴 보기 위하여 함께 비교해 보기로 한다

  '굴/굿/굳'의 의미와 낱말겨레

  1) 굴-의 의미- 땅이나 바위의 깊숙히 파인 곳. 흑은 산이나 땅속을 인공적으로 길게 뚫어 만든 공간[관련형태] 구르다, 구름, 구렁이 (굴헝 十이>구렁이), 구렁말[栗色馬], 구레, 구리 (굴+이>구리 ; 굴에서 나온 것), 구리다[굴(구멍)+-이다>구리다], 꾸리, 꿀(굴>꿀), 굴(굴의 모양을 한 바닷조개), 굴다리, 굴대, 굴레, 굴렁쇠, 굴러다니다, 굴림대 등.
2) 굿-[의미] 잡귀나 불행을 피하기 위하여 무당이 노래.춤으로 치성 올리는 일. 무덤 속 널이 들어갈 만큼의 속구덩이.[관련형태] 굿것, 굿드리, 굿바얌(굿뱀 ; 土桃蛇-{유씨명), 구슬(-굴의 모양이 둥근 데서 연유), 구석 (방언에서는 구시.구역), 구실[굿+일>굿일>구실(稅役 ; 굿을 위한 부역과 물자)]굿거리, 굿막(광부들이 연장을 두기 위하여 구덩이 밖에 지은 집),굿병 (광산의 굴 안에서 생기는 병), 굿옷(굴 안에서 입는 작업복), 구스르다 등.
  3) 굳-[의미] 굴. 땅을 우묵하고 깊게 파 놓은 곳[관련형태] 굳복(굴 안에서 입는 옷), 굳잠(깊은 잡), 굳다, 굳세다, 굳어지다, 구들(구들골), 구들목, 구들미, 구들장, 구데기(굳+에기 >구데기), 구덩이, 구덕구덕 (-어떤 모양의 굴이든 단단하게 만들어야 그 안에 들어가 살 수 있으니까), 구두질(구들을 뜯어 다시 놓는 일) 등.

  이상의 판련된 형태 가운데에는 두음이 바뀌거나(굿굿하다>꿋꿋하다, 구들구들>꾸들꾸들), 말음이 바뀌어(긋-궂다) 새로운 어휘를 생산하는 경우도 있다 위에서 본 '굴/굿/굳'은 모음이 바뀌어 양성모음계의 형태로 이어지기 도 한다. 예컨대 '골/곳/곧' 이 그것이다. 음성모음계의 '굴/굿/굳' 이 내면의 잘 보이지 않는 공간이라면, 양성모음계의 '골/곳/곧' 은 보다 환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장소를 이른다. 이들의 의미와 분화형태를 알아 보면 다음과 같다.

  '골/곳/곧'의 의미와 날말겨레

  4) 골- [의미 ] 물체에 얕게 파인 긴 흠과 같은 줄, 또는 그런모양으로 된 금. 지명 (밤나무골 가마골 ; 고구려의 '-홀(忽)'계와 같은 뜻으로 보임).[관련형태 ] 골감, 골갈이, 골골샅샅, 골갱이 (밭에서 쓰는 살써레의 한가지), 골바람, 골목, 골방, 고랑(두둑 사이의 길고 좁게 파인 곳), 쇠고랑, 고랑창(물이 있는 좁고 깊은 고랑), 고로록고로록(목구멍에서 나는 소리의 한 가지), 고름(곪아서 생기는 것),고름(옷고름), 고름하다(골막하다) 등
  5) 곳-[의미 ] 일정한 자리나 지 역. 이수(里數)의 단위(완전명사]로서의 독립성이 거의 없는 의존적인 형 태임).[관련형태] 곳(>곶>꽃 ; <월석> 1-9), 곳갈(>곶갈, ((초두헤,,7-2I), 곳광이 ((한청), 3IOb), 곶의, 곶(>꽃 ;위로 솟고좁은 골이 졌으니까) 등
  6) 곧-[의미 ] 곳((용가), 26). 바(((석보), 6-7). 일정한 장소[관련형태] 고둥(곧+-웅>고둥, 소라 우렁이와 같은 것의 총칭), 고달(송곳 따위의 자루에 박홴 부분), 고달이 (노끈 등으로 고리처립 만든 것), 산고뎅이 (산꼭데기), 고두리 (물건 끝의 뭉툭한 곳), 고드름(얼음이 아래로 길게 얼어붙은 것) 등.

  앞에서 예를 보인 음성모음계의. '굴/굿/굳'과 양성모음계의 '골/곳/곧'등은 여기에서 그 가지벌음이 끝나지 않고 중성모음계의 '길/깃/긷'으로 낱말의 떼를 형성해 나간다. 여기에서 풀이하고 있는 양성과 음성, 그리고 중성모음의 대립이나 자음의 교체 현상이 모든 형태에서 다 발견되는 구조는 아니다. 그러면 '길/깃/긷' 계의 낱말들이 어떻게 가지를 벋어 나아갔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우선 '길-' 계를 살펴보자

  '길/깃(짓)/긷' 의미와 낱말겨레

  7) 길-[의미]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 도중. 두루마기.저고리 따위의 섶과 무 사이의 그 옷의 주장이 되는 넓고 큰 폭. 광산 구덩이의 통로, 키의 높이[관련형태 ] 갈갈래 (광산 구덩이 안의 이리저리 통하는 길), 길갈림, 길길이 (물건이 높이 쌓인 모양), 길동무, 길마(소의 등에 얹어 짐을 싣는 안장 ; 보금자리 또는 날개와 같은 도구에 해당함),길들다(짐승을 잘 가르쳐서 부리기에 뭉게 되거나 잘 따르게 되다), 길속(전문적인 일의 속내, 특정한 공간이나 영역) 등.

  길은 사람이 다니는 통로요, 삶의 본거지이다. 서로는 한 길에서 만났다가 자신의 일이 끝나면 다시 헤어지게 되어 있다. 어찌 보면 사람은 나그네 속성을 갖고 있어서, 늘 길을 걸으며 살아가고 있다. 다른 사람이 걸었든 안 걸었든 자기의 길을 걸어 가야 한다. 군인은 군인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정치인은 정 치인대 로, 모두가 그 나름의 길이 있다. 보이는 길이 있는가 하면 전혀 보이지 않는 길이 있 어, 죽음에 이른 뒤까지도 우리 인생의 길은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도 한다. 번연 은 <천로역정 >,이란 글에서 영흔이 하늘의 길을 가는 미래의 길을 제시함으로써, 현재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진지한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 해주고 있지 않았던가. 우리 배달겨레의 경우, 겨레와 올바른 삶의 도리를 위하여 끊임없이 순국하는 정신, 순교하는 정신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 간 선지자들을 쉽게 기억할 수 있다. '길' 은 '굴' 도 아니요, '골' 도 아닌 그 중간쯤 되는 통로요, 삶의 여로인 것이다. '굴'이 보이지는 않으나 신전을 모시던 제단이요, 보통 사람들의 삶의 보금자리였다면, `골'은 눈으로 볼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겉으로 튀어나온 모습을 한 공간이었다 결국 '길'은 굴과 골의 공간을 오고 가도록 만들어진 굴과 골의 연결통로라고 할 것이다. 다음에는 깃-'계의 의미와 낱말겨레를 살펴 보도록 하자.

  8) 깃-[의미] 짚이나 대싸리로 바구니 비슷하게 만든 등우리(깃爲巢 ; {훈례). 새 날개에 달린 털. 짐승 우리에 까는 짚이나 마른 풀(새집 ; {(훈몽,, 하 7). 차지할 자신의 몫[관련형태 ] 깃다(풀이 무성하다), 깃것 [깃옷 : 졸곡(卒哭) 때까지상제가 입는, 생 무명이나 광목으로 지은 상복], 깃고대, 깃깃다(깃들이다 ; {(초두해), 9-2o), 깃들다, 깃털, 깃 (어린 아이의 포대기 ; (삼강), 열 3l), 깃목숨(남은 목숨 ; (보권문), 39), 깃그다(기쁘다, 가장 좋은 곳은 집이니까), 기숫잇 (궁중에서 이불을 덮는 횐 보자기), 기숭('구유'의 강원도 방언, 궂. 굴과도 같은 뜻으로통용됨), 기음(논밭의 풀 ; 일종의 숲의 뜻으로 쓰이며 방언에서는 기심), 기저귀 (깃'의 어말자음이 파찰음화한 형태), 짓다(깃'이 구개음화한 형태) 등.

  위의 보기에서 (훈몽자회), (훈민정음해례본), 등 중세어 자료를 보면 깃' 은 새의 보금자리를 뜻하는 둥우리와 같은 형태이며 '기숭'은 강원도 방언으로 구유와 같이 움푹하게 들어간 곳을 말하고, 기숫잇은 덮는 보자기의 뜻으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보기들로 보아, 깃이 굴이나 골이 드러내는 '굴살이' 공간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진서), 동이전 (東夷傳) 에 보면 '여름에는 나무 위에서 살고, 겨울이면 굴 속에서 산다(夏則렸居冬則穴處)'고 하였으니,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선조들도 새와 같이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았음을 엿볼 수 있다 굿과 깃, 다시 말해 굴과 나무는 소도(蘇塗)의 계절 변화에 따른 형태임을 짐작하게 된다. <단군>의 기록에서 '신단수(神壇樹)'가 나오는바, 그 나무는 신을 상징하는 성황목(城皇木)으로 거룩한 신전의 공간이 그곳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단군의 어머니가 그 신전에서 빌어 잉태를 하였으니 계절로는 겨울이 아닌 여름이었을 것이다. 웅녀가 살았던 공간은 굴이었으니 그곳은 시련의 도장이요, 이미 조건화되어 제의를 통과하면 신분변동이 일어나는 성지 (聖地)였다. 인도의 불교가 보이고 있는 탑문화 와 비슷한 속성을 갖고 있다.

  집을 세우는 동작, 재료로 무엇을 만들어 이루는 일을 통틀어 '짓다. 라고 한다. 짓다'는 깃다'의 깃'이 구개음화하여 된 말로 오늘날에도 물건을 만드는 것을 이른다. 원래는 삶의 보금자리를 만드는 데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수풀은 곧 보금자리였고 삶의 조건을 해결하는 곳이었다. 숲이 삶의 터전이었으니 거기에 보금자리를 만들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우에 따라서 보금자리로서 깃'은 삶의 안식처요, 피난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같은 겨레가 모여 만났다가 헤어지고 헤어졌다가 다시 모여드는 자리, 삶과 죽음, 젊음과 늙음의 바탕을 이루는 터전이었으니 말이다. 짐의 의미로부터 가지가 벋어 새의 날개 깃이라든가 옷깃과 같은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던 것 이다. 짓다'의 짓'과 연관을 보이는 말들의 겨레와 그 문헌 자료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9) 짓_[의미] 일을 행하는 노릇. 깃[깃 우(羽) ; <훈몽> 하 3].집 [어즈러온 짓 (逆家), (내훈) I-77].[관련형태] 짓거리 (홍겨워 하는 짓), 짓다, 짓내다, 짓두돌기다,짓둥이 등

  짓' 이 집의 의미로 쓰인 <내훈>의 경우를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깃을 숲이라 하였고, 숲은 바로 삶의 터전이요, 거기에 보금자리가 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결국 플과 나무, 굴 속의 어떤 장소에 보금자리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풀을 '김' 이라고 하는데 오늘날 반찬으로 먹는 김도 바로 바다에서 생산되는 플인 것이다. 집을 만드는 재료로서 김 ' 곧 풀을 빼 놓을 수가 없었으니 김과 집은 서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김'은 방언에 '기심/지심,/짐'으로 쓰이는데 집과 관련되는 형태는 '짐'으로 생각할 수 있다. 풀 곧.짐'으로 사람 사는 '집'을 만들었으니 '짐/집'은 같은 겨레의 낱말로 볼 수 있다. 어말자음이 교체되어 '짐' 은 풀섶이요 재료인데 '집'은 그것을 재료로 만들어 놓은 짓/집'이 되 었으니, 혈거생팔을 하던 시대에 풀, 나무를 이용하여 살 보금자리를 만들던 습속이 언어 속에 메아리처럼 깃들어 쓰여지면서 오늘날의 집, 곧 주택문화에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길/깃/긷'계에서 마지막으로 '긷'의 의미와 형태, 쓰이는 분포에 대하여 살되 보자.

  10) 긷_[의미 ] 기둥(긷爲柱 ; (훈례), / 네긷 寶帳이잇고 ; (월석),8-l9). 그룻[관련형태] 긷다(우물이나 내 같은 데에서 물을 퍼서 그릇에 담다), 깃들이다, 긷티다((내 훈), 1-58), 긷그다(왜해,상 21), 기들오다(기다리다 ; (초두해) 21-3; 집으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 기둥, 기둥서방, 기등뿌리 등.

  집과 관련된다는 점에서는 '깃'과 대동소이하다. '깃'이 보금자리요, 둥우리라면 '긷'은 넨'을 받쳐 주는 받침나무요, 보금자리와 비슷한 그릇을 나타낸다. 앞의 보기에서 '기다리다' 를 중세어 자료. 기들오다'와 연계지은 것은, 집으로 돌아오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렇게 본 하나의 가정에 지나지 않는다. '기들오다'의 형태를 긷 十_을十오다>기들오다'의 과정으로 풀어 본 것이다. 어버이가 집을 나간 자식을 기다릴 수도 있을 것이요, 어린 자식들이 어버이를 기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루에 배를 놓아 먼 곳으로 가버린 임을 그리는 <서경별곡>의 주제도 기다림의 미학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립고 안타깝고 아름다운 공간과 시간을 만들며,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삶의 보금자리를 빚어 나아가야 한다. 그 거룩한 소명이 있기에 우리는 어려운 삶의 고비를 끈기 있게 넘겨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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