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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정호완



I. 언어적 상상력의 바탕

  우리 사람들은 제한된 상황 속에 살면서도 그 지평을 넘어서고자 언어적 존재로서의 영역을 넓히고 깊게 해 가면서 생존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그윽한 의미를 전달하는 사람의 말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입을 나와 퍼져 울리는 순간, 그 말은 영원한 시간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림 또는 매듭이나 조개띠와 같은 구체적인 물건을 통하여 서로 약속을 정해 의사소통을 하다가, 마침내는 의미와 소리를 담아 놓을 수 있는 '말'의 체계를 이루게 된다 이른바 문자언어를 이용하여 생각과 느낌을 적게 된 것이다. 문자언어가 생겨난 뒤로, 사람들의 귀증한 체험이나 슬기는 기록으로 남아 후손에게 물려짐으로써 문화유산이 후대에 전 달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인류만이 누리는 이른바 '문화'라는 것을 이룩하게 된 것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그에 상응하는 많은 새로운 문화들이 형성되고, 일단 형성된 문화는 무리 없이 특정한 언어에 반영되어 담겨 쓰이게 된다. 사람이 보고 듣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에 층동을 주고, 상상력은 강물처럼 출렁이며 언어라는 논과 밭에 여러 가지 모양의 싹들을 틔운다. 사람들의 언어적 상상력은 특별히 뛰어나서 문학과 같은 정서적인 언어의 상상력을 촉발하기도 하며, 실용문과 같은 언어표현을 통하여 어떤 판단이나 생각을 듣는 이에게 층실하게 전달하기도 한다. 상상력이 없는 개인이나 민족 흑은 그러한 인류를 생각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다만 본능적인 다른 동물들의 세계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문화의 침체를 의미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 러한 언어적 상상력의 바탕은 무엇인가.

  심리 학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나 사물을 재료 삼아 새로운 사실이나 관념을 만들어 내는 정신작용을 통틀어 상상(想像 ;이라 이르고 있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어떤 대상에 대한 분별 있는 인식(認識)을 뜻한다. 인식이라 하면 단순히 사물을 분별하고 의식하고 지각하는 작용을 총칭하는 것이지만 학문 체계로서의 인식론은 특정한 사물을 대상으로 하여 참값 truth value을 찾을 수 있는가 없는가를 문제로 삼아 사물의 기원. 본질. 범주에 대하여 더듬어 보는 것이다.  칸트가 지적한 바에 따르면 인간이 인식하는 모든 대상의 한계는 그들이 인식하는 시간과 공간에 제약된다. 인간이 지니는 언어적 상상이란 결국 인간 인식의 공간이나 시간에 기초하는 것이다. 필자는 언어적 상상력의 바탕이 되는 대전제를 분절성, 유추, 모방, 가정 및 문화의 반사로 나누어 살펴 보고자 한다


1-1. 분절의 조건

  이 세상에서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참으로 다양하다. 아이가 울거나 웃는 소리에서 시작하여 병으로 신음하는 소리에 이르기까지 여러 갈래의 소리가 있다. 그러나 언어와 관련하여 중요한 가치를 갖는 것은 음성적인 특질에 따라서 구별할 수 있는 부류의 소리들이다.(훈민정음)에서는 자음을 조음위치에 따라서 아음.설음.순음. 치음.후음으로 나누고, 다시 음향감에 따라서 전청. 차청. 전탁. 불청불탁으로 나누어 분절음의 기준으로 삼았다. 현대 음성학의 관점에서 정리하면, 크게 세 가지 방법을 가지고 가를 수 있다. 첫째는 혀의 위치에 따라 설첨성. 전방성 등으로 가르는 것, 둘째는 혀의 조음 방법에 따라 파열성. 지속성. 파찰성 등으로 가르는 것, 셋째는 모음을 변별하는 혓몸의 특질로 가르는 것이다. 이들 음성적인 분절성에 바탕을 두어 '달/탈/딸' 이 서로 다른 말로 들리게 되고, 서로의 의사소통이 원만해지는 것이다.

  소리의 분절과 함께 의미의 분절은 어떻게 풀이할 수 있을까. 소리가 처음에는 한 소리로서 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음과 모음으로 분화되듯이, 의미 곧 전달하고자 하는 뜻도 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분화되는 특징을 보인다. 낱말의 집합은 일정한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낱말 하나하나의 가치는 그 체계 안에서 결정된다. 즉 낱말의 의미는 그러한 계열관계 속에서 얻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부분으로서의 낱말은 전체 속에서만 통용가치가 실현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향이 설정될 수 있다. 하나는 트리에르처럼 전체에서 개체로가는 방향이며, 또 하나는 포르치르 에서와 같이 개체에서 전체로 가는 방향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바이스게르버의 주장대로 언어로 드러나는 언어기호와 자연물 사이에, 특정한 언어 대중이 이해하고 있는 중간세계 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더 자세히 풀이하면 어떤 추상적인 낱말의 의미특성은 서로 변별적인 특징으로서 분절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땅' 이란 낱말의 밭은 제일 주요한 의미특성이 '공간성' 인데 여기에서 접촉. 분화. 연소 닫힘 근거' 등과 같은 의미 특질들로 하위분류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특징은 이에 맞먹는 낱말의 겨레 로 드러나게 된다. 배해수는 생명종식어를 생명체적이고 추상적이고 내세관적인 특징으로 분절시켜, 각각의 영역에 들어가는 낱말의 밭을 그 예로 들고 있다(l982). 생물진화를 보아도 미분화 단계에서 분화단계로 설명하는 게 보편적이다. 따라서 필자는 변별적인 의미의 특징을 전체의 큰 범주로부터 하위범주로 나누어 가는 것이 부분(개체)에서 전체로 가는 것보다 합리적이라고 본다. 앞의 것은 특정한 분야의 낱말밭을 플이하는 데 쏠모 있고, 뒤의 것은 한 문장이나 단락을 설명하는 데 알맞다고 판단되기 때 문이다.

  소리이든 의미이든 어떤 대상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또다른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는 힘이 상상력인 만큼, 소리와 의미의 변별적인 특징들이 있고 없음으로 구조화하는 작업은 가볍게 다룰 수 없다고 하겠다. 따지고 보면 음성을 분절시켜 알아차린다는 것 자체가 인식론상의 한 가정으로부터 비롯되어 가능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언어의 전달과정이 공통의 약속이라고는 하여도 인간의 상상력에서 우러나온 결과라고 하겠다. 의미 또한 그러할 수밖에 없다. 언어적인 기능을 하는 음운 자체가, 연속체인 음성을 끊을 수 있는 불연속의 상태로 놓고 보는 한 가정, 곧 상상력의 조건을 층족시켜 주는 정신활동과 심리적-생리적 -물리적인 과정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정해진 소리의 체계는 구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개인이 마구 바꿀 수는 없다. 여기에 언어의 사회성이 있다.

  1-2. 유추작용

  말의 소리나 형태는 그 수가 무한정일 수는 없다. 그 수가 무한정이어서는 사람이 그것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따라서 같고 다른 형태나 의미를 구분하여, 비슷한 것들이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는 단어나 문법을 모형으로 하여 단어가 만들어지거나 변화된다. 혼히 논리학에서는 어떤 특수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그와 비슷한 성질을 가진 다른 특수한 사실을 미루어 짐작하는 것을 유추(類推 ;로 정의한다. 여기에서 모형 이라고 함은 물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원래 이미지라는 말은 모방을 의미하는 말이었다는 것이 암시하는 것처럼, 유추는 어떤 원래의 이상적인 원형을 전제로 한 개념이기도 하다. 유추의 본질은 변화를 통한 일종의 언어창조라고 보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처엄>처음, 일홈>이름, 소곰>소금'과 같이 '-음'꼴로 만들어 가거나, '호랑>호랑이, 배암>배암이, 납>나비'와 같이 동물의 이름을 '-이'꼴로 만들어 가는 예는 그 좋은 본보기라고 하겠다. '처음' 과 '이름', '소금' 은 처엄', '일홈', '소곰' 에서 각각 말음이 '-음'으로 바뀌는 작은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이름씨 (명사)' 라는 공통 요소를 가지고 기억하기 편하게 '-옴'으로 통일하는 유추심리가 작용하고 있다. 위에 든 동물 이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의 설명이 가능하다.

  유추의 모형은 크게 통합관계에 따른 형과 계열관계에 따른 형으로 나눌 수 있다. 예를 들어 '배암+-이>배암이'와 같은 통합관계에 따른 모형이 있다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이 계열성 조건이라고 할 것이다. 문장 단위로 볼 때, 기본문형은 일종의 글의 모형 으로 여기에 알맞은 어휘만 넣으면 얼마든지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언어의 유형으로 한국어, 독일어, 영어 등과 같이 단일어가 모여 합성어를 이루는 경향이 짙거나, 특히 음소문자를 쓰는 언어에는 유추에 따른 언어창조가 가장 알맞다. 우리말의 경우, 중세어 조어법에서 명사를 어근으로 하여 여기에 정동사 어미 '-다'를 붙이는 틀은 매우 생산적으로 이 모형에 따라 많은 용언이 생겨날 수 있었다(신+다>신다, 배+다>배다, 새+다>새다 등).

  경덕왕 때에 인명. 지명. 관명을 한자식으로 모두 갈았다고 하는데, 예를 들면 사람의 이름을 석 자로 짓는다든가, 땅 이름을 '-주(州).-군(郡).-현(縣)'을 붙여 고친다든가, 한자의 소리만을 쓴다든가 하는 식으로 새롭게 고침도 일종의 유추현상으로서, 언어의 모양을 바꾸어 놓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아무리 일상적인 형태에서 유추된 모형을 따르는 어휘나 문법형태소라도 말을 직접 사용하는 언중이 쓰지 않으면 사어가 되고 만다 반대로 많은 독자층을 갖고 있는 작가의 말은 다소 생소하더라도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사어가 되이 버렸던 '아스라이'가 어느 서정시인의 시에서 쓰인 뒤로 보편적인 말이 된 것은 그 좋은 예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 한때 정치 경제적으로 유력했던 사람의 방언이 특수성을 쉽사리 뛰어넘어 보편적인 말로서 자리잡는 말도 있었다.

  유추는 음운변화와 함께 언어변화의 증요한 원리가 된다. 음운변화는 일정한 형태 안에서의 음절구조의 변동에 한정되지만, 유추는 음질구조의 제약과는 관계없이 새로이 고쳐진 형태로 닮아 가는 경향을 띤다. 음운의 변화는 미시적이고 유추는 보다 거시적인 언어변화의 주요한 통로라고 할 것이다. 형태의 변화를 보면 음운변화는 자음과 모음, 모음과 모음, 모음과 자음, 자음과 자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음절구조 내의 변동이지만, 유추는 아예 음절을 달리하여 덧붙이거나 완전히 이동시켜 버리는 일이 있다. 공시적 (共時的)으로 볼 때, 지명자료나 인명자료에서는 유추작용의 결과는 생산적이다. 유추작용은 일정한 틀을 마련한다. 새로운 문화가 수용되어 기존의 어휘자료가 다시 분석되어 새로운 말이 만들어질 경우, 유추작용은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유추작용과 관련한 언어적 상상력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공간지각에 따른 심상을 바탕으로 하는 표상(衰象)이라고 할 수 있다. 보고 만질 수 있는 사물을 포함한 '공간성'으로부터 사실을 포함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의미'로 유추 전이되어 간다는 것이다. 인식의 기초로서 공간은 우리의 존재가 존재일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

  우리는 사고작용을 통하여 여러 가지 다양한 선(線)과 색채와 사물의 모양들이 있는 공간에서 그 존재들에 대한 인식에 눈을 떠간다. 공간 상황을 인식하는 기본요소를 몇 갈래의 범주로 나누어 보면, 밝기. 길이. 높이. 넓이. 무게. 거리. 크기. 두께. 방향. 생김새. 요철(凹凸). 강도. 속도. 온도. 맛 등이 있다. 공간상에 또는 공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위와 같은 기본요소들에 대한 우리의 감각과 판단을 통하여 제대로 인식된다. 구체적인 사물 대상에 대해서는 이러한 인식상의 여러 요소들을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있지만, 일단 어떤 사실이나 추상적인 개념 등에 접어들면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 좋은 예로 시간을 들 수 있다. 시간은 공간의 개념에서 전이되어 이제는 인식의 기초가 된 아주 대표적인 보기이다. 시간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으나, 운동의 주기라든가 지구의 표면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상환을 미루어 물리적인 시간과 심리적인 시간 등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순수하게 공간적인 개념에는 시간을 설정하기 어렵지만, 일정한 공간을 움직이거나 특정한 사물이 운행하여 변화가 생길 때 우리는 시간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말에서 본래는 장소를 뜻하는 말이었다가 시간을 가리키는 말로 변한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말로 '때.끼니.쯤.녁 즈음' 등이 있다. 독일어의 경우도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 방면이나 방향을 뜻하는 Seite 와 시간을 뜻히는 Zeit 는 본래 같은 말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다. 일본어의 경우 도코로 는 위치도 되고 경우, 때로도 쓰이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공간에서 시간으로의 유추, 전이는 우리말에서만 드러나는 현상은 아니라고 하겠다. 이렇게 의미상의 유추. 전이로 말미암아 언어적 상상력은 언어의 기능을 확대하여 나아간다.

  심상(心像)은 드러내려는 물체를 닮거나 거울에 비친 물체의 모습과 같이 우리의 청각영상으로 이루어진다. 근원적으로 심상은 코실린이 설명한 바와 같이 상사형 표상을 중심된 내용으로 한다. 이를테면, '사과'라고 했을 때 머리속으로 이에 상응하는 물리적 장면을 상상하면서 구성하는 표상이 바로 상사형 표상이 된다. 그러나 언어로 드러낼 수 있는 모든 형태가 청각영상으로 치환될 수는 없다. 필자가 보기로는, 일단 가장 알기 쉬운 심상에서 파악된 기본적 인 인지요소들의 속성에 맞도록 의미상의 유추가 일어남으로써 추상명사와 같은 비실체적인 명제표상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열렬한 사랑' 이라고 할 때 '사랑' 이란 명제표상은 뜨겁고 환한 사물의 속성으로 그 심상이 환기된 것이다. 이처럼 근원적으로 상사형 표상에서 유추. 전이된 높은 수준의 개념들을 연상함으로써 마음대로 언어적 표현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알아차린다는 것은 비교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반드시 그 기준이 될 인지의 속성이 있어야만 한다. 인지의 속성에 따른 전이가 바로 유추로서의 주요한 구실을 한다. 부룩스의 실험에 따르면, 언어적인 조건보다는 시각적 조건에 따른 반사로서의 기억이 횔씬 쉽다고 한다. 이른바 양식의존적인 논거는 상사형 심상으로서 시각적인 정보가 중심을 이루게 된다. 우리의 감각기관에 와 닿는 것들이 직접적인 자극이라면, 언어적 상상력에 따른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인 청 각영상들은 간접적인 반응과 자극으로 그 구실을 해 낸다. 상사형 표상은 일차적이고, 언어에 의한 명제 표상은 이차적인 것이다. 앞서도 말한 바, 증간세계라고 일컫는, 사물과 언어 표상 사이에서의 언어적 심상의 형성과 정은 상사형 표상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보인다.

  1-3. 모방과 언어적 사고

  아무리 훌륭한 예술가라고 하더라도 그의 창작은 모방에서 시작된다. 플라톤은 창작을 이데아에 대한 모방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모방층동 이 있어 예술활동의 동기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언어의 경우는 어떠한가. 처음 말을 배우는 시기의 언어를 남어 라고 한다. 어린이는 몇 마디의 말을 배우기 위하여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친다. 어린이 자신에게 가장 영향력이 큰, 함께 사는 주변 사람의 말을 모방하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언어모방설 이 그것이다. 어린이는 이처럼 모방을 거쳐 올바른 발음과 의사 전달에 이르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소리를 내는 방법 또는 위치, 소리감각을 모두 흥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을 배우기 이전의 상태에서는 아무리 홀륭한 생각을 한다 하더라도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등 감각에 따르는 언어 감정을 몸짓으로, 흑은 울음과 웃음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가운데에서도 시각적인 사고가 가장 두드러진다. 인간의 사고작용이란 본래 시각적인 사고에서 싹이 튼다(김춘일, 미술과 교육론,1989). 우선 말하는 모습을 보아야 입술의 모양을 홍내내고 혀의 놀림을 모방할 수 있으니까. 말의 본질은, 가장 소박하게 정의하면, 보이지 않는 생각과 느낌을 소리로 전달하는 것인 만큼 소리 자체가 가지는 상징성이 관여되지 않올 수 없다.

  빗소리도 듣기에 따라서는 아주 다양한 느낌과 상징을 드러낸다. 이슬비가 내릴 때와 소나기가 올 때, 부슬비가 내릴 때의 소리는 서로 다른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물론 지표면을 흐르는 물의 소리와도 사뭇 다르다. '미/비/피'에서 보듯이 세 형태는 모두가 물과 관련이 있지만 존재하는 양상이 다름으로 해서 별개의 형태로 쓰이게 되 었다. 이 가운데 '비'는 다른 것에 비하여 보통의 파열성을 드러내는 소리의 상징을 갖고 있다 - 이와 같이 모방의 대상이 되는 소리는 모두가 상징하는 느낌이 있는데, 자음에서는 터짐과 갈림, 그리고 터짐 길이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성대의 떨림과 같은 소리의 상징도 있으나, 앞의 세 갈래의 상징보다는 확실하지가 않다. 자음은 특히 말의 머리에서 '예사소리/거센소리/된소리`와 같이 강하고 여린 정도에 따라 구별되기도 한다.- 한편 모음에서는 입의 벌림에 따라서'고설/중설/저설' 로, 혀의 위치에 따라서 '전설/중설/후설' 로, 입술의 모양에 따라서 '원순/평순'으로 상징적이고 가시적인 소리의 차이들이 각각의 상징으로 드러난다.

  상징성이 제 일 두드러지는 것이 의성어나 의태어일 것 이다. 특히 의성어의 경우를 보면, 소리가 나는 느낌을 이용하여 실제로 나고 있는 소리를 모방한다. 이를데면 물이 냄비에서 끓는 소리를 들으면 파열성의 비읍(ㅂ)으로 시작되어 정말로 '부글부글`하는 듯하다. 일단 소리의 상징으로 채택된 형태는, 모음이나 자음의 교체를 통하여 뜻은 같으나 소리의 느낌이 다른 형태로 언어적 사고와 상상력을 다양하게 늘려 나아간다. '부글부글/보글보글/버글버글' 이나 '찰랑찰랑/촐랑촐랑/출렁출렁/철 렁철렁/쩔렁쩔 렁'의 경우 모음과 말머리의 자음이 바뀌어 서로 조금씩 다른 느낌을 자아내니, 그 각각에 각기 다른 정서들이 실려서 듣는 사람에게로 옮아가게 된다. 이와 같은 모방은, 언어학습기의 아이들에 있어서는 '감각적 사고에 의한 되돌림으로서의 언어적인 반영'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림 l은, 감각적 사고가 직접적인 자극으로서 모방을 수반하는 언어적 사고를 일으키는 말미암음이 됨을 표현한 것이다.

  근원적으로 언어는 행위이며, 행위는 자극과 반응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면 모든 언어가 꼭 상사형 표상, 곧 실물 반영에 해당하는 형태로만 이루어지지 않음은 어떻게 설명할 것 인가. 이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유추작용을 따라서 일어나는 속성의 전이로 풀이 하면 될 것이다. 구체적인 사물대상의 상사형 표상이 가장 기본적 틀이 되어 비가시적인 명제 표상들을 가능하게 하나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모방이라고 하여 한없이 많은 양의 모방이 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말의 경우 그것은 한정된 수의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지는 형태소, 일정한 언어운용의 고리들, 이들 형태소로 만들어지는 문장의 규칙 안에서의 모방이어야 한다. 그것은 모방의 결과가 언어 공동체 속에서 통용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언어학습기가 지나면서 모방의 단계는 가고 자기화의 단계가 이루어진다. 이 단계에 이르면 때때로 일어나는 복잡한 생각과 느낌을 언어적 상상력을 따라 명제 표상으로 바꾸어 놓게 된다. 모방의 원리는 앞에서 플이한 바, 분절과 유추작용의 질서를 포괄하는 일반성을 갖고 있다. 언어적인 모방은 곧 분절의 과정을 전제로 하며, 상사형 표상에서 추상적인 명제 표상으로의 언어적인 여과가 가능하려면 유추작용이 활발하게 밑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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