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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지리산과 섬진강 - 노고단 밑으로 달래강이 흐르고


  우리 민족의 영산 지리산을 지키는 산신은 천신의 딸인 마야고 또는 마고라 부르는 여신이다. 흔히 선도성모라고도 일컫는 마야고는 지리산에서 수도하는 반야를 너무나 사랑했다. 맹렬 여신 마야고의 구애에 넘어간 반야는 천왕봉에 보금자리를 틀고 한동안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즐긴다. 그러나 반야는 이런 세속에서의 행복에 더 이상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마야고가 여덟 번째 딸을 낳던 해에 반야는 홀로 수도의 길로 나선다. 지리산 두 번째  봉우리로 떠난 그의 수행길은 너무나 길었다. 여덟 딸이 모두 장성하여 무당이 되고, 이들이 각기 팔도로 흩어질 때까지 반야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산신도 늙음만은 어쩌지 못하는지 마야고도 할미가 되었다. 딸들마저 모두 떠나 더 외로워진 마야고는 천왕봉에 앉아 온종일 서쪽 능선을 바라보는  일이 일과가 되었다. 기다림에 지친 할미는 때때로 애꿏은 나뭇가지를 할퀴기도 하고, 때로 줄기에서 뽑아낸 나무실로 베를 짜면서 무료한 시간을 달랜다. 세석평전은 할미가 베를 짜던 능선이며, 주능선에 흩어진 고사목은 할미의 손톱에 희생된 나무들이라던가. 한 번의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되어 기다림에 지친 마야고는 남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끝내 세상을 뜨고 만다. 마야고가 죽은 뒤 반야 역시 아내의 뒤를 따라 열반에 들었다. 수도의 길은 그처럼 처절한것인지 팔도 무당이 된 여덟 딸의 모습도, 아내 마야고의 임종도 못 본채 수행만 하던 그도 그 자리에 선채 굳어져 반야봉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노고단에서 보이는 반야봉의 자태는 분명 해탈의 모습 그대로이다. 마야고가 죽은 뒤 할미의 넔을 위로하기 위해 노고단을 새워 해마다 제사를 올리고 있다. 언제까지나 반야봉을 올려다보고 있는 마야고의 넔은 이제 외롭지 않다. 지리산 관광도로가 뚫린 뒤로는 슬리퍼를 신은 신은 관광객까지 이곳 노고단을 참배하기 때문이다.

  노고는 늙은 할미라는 뜻으로 산이름에 쓰이는 노고, 즉 "할미"는 본래 큰 산(대산)을 뜻하는 "한뫼" 또는 "한미"를 한자어로 옮긴 것이다. 전국 곳곳에 노고산(대산)이 즐비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리고 한미, 즉 할미를 할머니와 동일시 하는 것은 큰 산을 모성의 품으로 여긴 데서 비롯된 것 같다. 세파에 부대끼다 오갈 데 없어 되돌아온 자식을 언제나 포근히 안아주는 어머니의 품 속, 그 넓은 모성의 품이 바로 성산 지리산이 아니던가.

  섬진강은 지리산 자락의 전설을 담아 남해로 흘려 보낸다. 눈부시게 흰 모래밭과 강바람에 휘청대는 대나무 숲, 어느강보다 맑은 물은 섬진강의 자랑이다. 지리산의 물을 담아 남해로 보내는 이 강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전설을 한데 뒤섞었다는 데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섬진이라 할때 한자말 그대로 해석하면 "두꺼비 나루"가 된다. "두꺼비 섬"이라는 어려운 한자를 강이름에 끌어 쓴 것은 이 강에 두꺼비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왜구의 침탈이 극심하던 고려 때의 이야기다. 왜구가 이 강을 거술러 침범해 왔을 때 난데없이 두꺼비 떼가 나타나 굉장한 소리로 울어대는 바람에 혼비백산하여 광양쪽으로 도망쳤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왜구를 물리친 두꺼비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섬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전설만 믿고 지명을 해석해서는 안된다. 섬은 차자표기에서 "달"로 읽히는 차훈자로 섬진은 "달나리, 달나루" 또는 줄여서 "달래" 라는 고유어를 한자 지명으로 적은 것이다. 달을 달리 섬토 또는 섬백이라 하고 달빛을 섬광이라 한다.  예로부터 달 속에 두꺼비가 있다는 신화에서 섬을 달로 읽은 것이다. 따라서 섬진강은 본래 달래강으로 불리었다고 생각한다. 이 강은 난달래골(진안) 상추막이에서 발원하여 진안고원을 거쳐 백두대간의 대미를 장식하는, 지리산 계곡을 감싸고 흐르기에 산골강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리라.

  하동은 달래강 동쪽 마음이란 뜻인데, 옛 문헌에는 한다사라 기록하고 있다. 한다사의 상류쪽, 그러니까 지금의 악양을 소다사라 이름한 것을 보면 한다사는 큰 강을 지칭하는 고유어로 짐작된다. "다사" 또는 "다시" 는 다시마라는 예에서 보긋 강이나 바다를 뜻하는 또 다른 어사이기 때문이다. 하동포구 팔십리가 시작되는 화개 탑리에는 지금도 화개장이 열리고 나루터에서 나룻배가 강을 건너는 손님을 기다린다. 그러나 화개는 너무 변하고 말았다. 옛 정취를 맛보기에는 화개가 너무 개화해 버린 느낌이랄까. 김동리의 단편  "역마"에서 보이는 시골 장터의 특유의 흥청거림이나 조영남의 노래 "화개장터"에서 들을 수 있는 인정스러움은 이제 섬진강 물결 따라 먼 바다로 흘러가 버렸다.

  탑리 버스터미널 한 켠에 선 작은 비석 하나가 그 유명했던 화개 장터임을 알린다. 매년 봄마다 쌍계사 가는 십리 길에 벚꽃 터널이 펼쳐지고, 작설차가 영그는 차밭가로 산수유,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다고 한다.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라느느 화개, 하동간 19번 도로상에 군데군데 배롱나무꽃이 피기는 한다. 그러나 옛 풍정만은 찾을 길  없으니 꽃 피는 산촌 화개도 이젠 어쩔수 없이 꽃지는 도시가 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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