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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영일과 호미동 - 호랑이꼬리에서의 해맞이

  한반도가 구부린 자세에서 엉덩이를 한껏 동해로 치민 곳, 영일은 이 땅에서 가장 먼저 해를 맞는 곳이다. 이 해맞이골은 옛날 신라 아달라왕 때의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의 태양신과 관련된 전설로도 유명하다. 바닷가 "도기뜰"에 살던 어부 연오(연오 또는 연오)는 어느 날 해초를 뜯던 중 거센 파도에 밀려 일본땅으로 흘러간다. 섬나라 왜인들은 홀몸으로 바다를 건너온 연오가 예사 인물이 아님을 알고 그들의 왕으로 추대한다. 뿐만 아니라 남편을 찾아 뒤따라온 세오 부인도 왕비가 된다. 한낱 어부에 지나지 않았던 이들이 졸지에 섬나라의 왕이 되었다니 신나는 일이지만 반면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는 이변이 벌어진다. 일식과 월식이 한꺼번에 생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월이 갑자기 사라져 온 천지가 암흑으로 변한 것이다. 이때 일월을 관측하던 천문학자가 해와 달의 정기가 일본으로 옮겨 갔다고 아달라왕에게 아뢰자 왕은 사신을 급파하여 이들 부부를 소환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연오는 자신이 일본왕이 된 것은 하늘의 뜻이라며 소환에 불응하고 대신 세오 왕비가 짠 비단을 보내 그것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게 한다. 신라 조정에서는 연오의 말에 따라 사신이 가져온 비단을 모셔 놓고 정중히 제사를 올렸고 이내 해와 달이 밝은 빛을 되찾게 되었다. 베를 짜는 행위를 가리켜 우주의 질서에 호응하는 인간의 의식이라고  이른다. 그렇다면 세오 왕비를 두고 그 비단을 짠 여신이라고 당시 신라인들은 생각했을지 모른다. 아무튼 신라 조정에서는 비단을 잘 갈무리해 두고 그곳을 귀비고라 하여 국보로 삼게 되었다.

  "해야 솟아라"고 절규하는 박두진님의 시가 생각난다. 옛날 영일땅에서도 이처럼 해가 솟기를 바라는 간절한 절규가 있었을 것인데, 당시 제사를 올리며 기도 드리던 곳을 "도기야"라 부른다고 "삼국유사"(권 1)는 기록하고 있다. 도기야는 지금의 동해면 도구동이며 이곳에 일월지라 일컫는 "해달못"이 남아 있다. 해달못에 관한 이야기는 단순히 연오, 세오 부부의 이동설화만이 아니라 고대 태양신화의 한 유형으로 설명된다. 연오와 세오 두 사람의 이름에서 공통으로 쓰이는 "오"는 까마귀를 뜻한다. 예로부터 태양 속에 까마귀가 있다는 설을 고려할 때 연오는 해맞이로, 세오는 달맞이로 해석될 수도 있다. 또 이 전설은 일본측 문헌에 전하는 신라 왕자 천일창 설화와도 관련이 있는 듯하다. 아무튼 연오랑, 세오녀의 이야기는 일찍이 우리 조상들이 일본에 건너가 그곳을 다스렸던 역사적 사실을 원시적 태양신화에 동점설화까지 가미하여 설명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영월은 지리적인 여건으로 인해 일본과각별한 관계에 있다. 과거 우리 땅을 침범했을 때 일본은 영일이라는 지명을 조선이 일본을 맞는다는 뜻으로 해석하여 우쭐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연오랑, 세오녀의 전설을 안다면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를 깨달았을  텐데 말이다.

  영일은 옛날 삼한시대에는  근기국이라 했고, 삼국시대에는 근오지라 적고 있다. 여기서 "근(근 또는 근)"은 우리말 "큰(대)"의 옛말 표기이며, "기(기 또는 기)"는 땅을 지칭하는 고유어로서 큰 고을이라는 뜻이다. 영일땅에서도 일출이 가장 빠른  곳이 영일만의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대보면 장기곶이다. 이곳 지형이 반도의 등줄기나 말(마)의 갈기와 같다 하여 어려운 한자를 빌려 쓰고 있다. "긴 갈기" 곧 장기곶을 때로 호미등, 구만리, 또는 삐중다리라 부르기도 한다. 동해안으로 삐죽 나왔기에 삐중다리요 등줄기가 여러 겹으로 중첩되었기에 구만리라 이름한 것이다. 호미등이라는 이름은 호미의 등처럼 생겨서가 아니라 호랑이 꼬리처럼 생긴 비탈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우리를 얕잡아 보려는 일본인들은 이를 두고 "토끼꼬리" 곧 토미등이라고 격하시켰다. 그러나 어느 문헌을 보아도 토끼에 관한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다. 분명히 말하건대 한반도는 호랑이가 중국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형상이며, 장기곶 곧 호미등은 호랑이의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곳이라 강조하고 싶다. 호미등에는 한말 고종 때 건립된 등대가 있고 그 옆에는 등대박물관이 있다. 호미등에 처음 등대가 세워질 때 이곳 주민들의 반발이 매우 컸다고 한다. 이유인즉 호미등, 즉 호랑이꼬리에 불을 붙이면 호랑이가 요동치는 통에 그 일대가 불바다가 되리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실지로 등대의 건축 과정에서 타지로 이주하는 주민들이 속출했고, 준공 후에는 일본인 등대수가 부임한 지 두 달 만에 화재로 온 가족이 몰사하는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장기갑이 토끼꼬리인지 호랑이꼬리인지는 이 정도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을까.

  동해 연안이 풍경은 어디나 그렇지만 영일만에서 보는 바다  풍경은 특히 아름답다. 김포에서 구룡포와 대보의 장기곶 등대를 거쳐 도구동에 이르는 호랑이꼬리 해안은 그야말로 절경의 연속이다. 최근 정동진이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있다지만 모름지기 일출을 보려거든 해맞이의 본고장, 이곳 호랑이꼬리를 찾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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