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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수원고 화산 - 아버지를 그리는 효심의 물골

  서해가 가까운 옛 수원 화성땅, 물이 많아 "매골" 즉 물골이라 불렀던 곳, 이곳 바닷가에는 산이라고 해봤자 야트막한 야산이 고작이다. "꽃뫼"라 불리던 화산도 해발 1백미터 남짓한 낮은 산으로 옛날에 이 산 밑에 한 어부가 살았다고 한다. 일찍이 아내를 잃고 외롭게 살아가던 어부는 어느날 바다에 나갔다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여인을 구출한다. 어부가 구해 준 이 여인은 놀랍게도  지상의 온갖 꽃을 주관하는 선녀라 했다. 바닷가 벼랑 끝에 매달려서 시들어가는 꽃나무를  살리려다 그만 실족하여 자신이 죽을 뻔한 것이다. 외로운 홀아비에게 이런 행운이 올 줄이야. 선녀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어부와 일년동안 동거하기로 약속하고 화산 중턱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이들의 신혼은 꿈같은 세월이었으니, 꽃을 관장하는 선녀답게 두 사람이 사는 집 주변은 온갖 기화요초로 장식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그녀는 야속하리만치 철저하게 약속을 지켰다. 어머니를 꼭 빼닮은 화심이라는 딸이 태어났을 무렵 선녀는 미련없이 하늘로 오르고 말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상심은 컸지만 아내에 대한 그리움속에서 오로지 딸 화심만을 의지해 왔던 아버지는 딸이 성장하여 출가할 나이가 되자 병이 깊게 들었다. 미모의 딸을 탐하여 구혼자들이 줄을 이었으나 화심은 병든 아버지를 두고 시집갈 수는 없었다. 이럴 땐 으레 등장하는 권력자가 있게 마련, 그 구혼자 중에는 변사또와 비슷한  이 고을 부사도 끼여 있었는데, 화심에게는 불행히도 이 도령이 없었기에 억울하게 끌려가 참수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화심의 처형 장면은 여느 사형수와는  판이했다. 망나니의 칼이 목을 치는 순간 화심의 몸은 하늘로 치솟았고, 그 순간 그녀는 목청껏  "아버지"를 불렀다. 그 절규는 마디마디 피가 되어 튀었고, 그 피는 그대로 새빨간 꽃비가 되어 땅위에  흩어졌다. 이처럼 화심이 칼을 맞을 때 그녀의 몸은 선녀 어머니가 승천할  때처럼 하늘로 솟았는데, 지상에 흩어진 꽃비는 그 옛날 아버지가 선녀 어머니를 구할 때 그녀의 머리에 꽃혀있던 바로 그 꽃이라 했다. 형장으로 달려간 아버지는 딸의 시신 대신  흩어진 꽃비를 수습하여 그의 오두막집 옆에 고이 묻었다. 꽃비가 쌓여 만들어진 무덤, 그 꽃뫼를  후세 사람들은 화산이라 일컫는다. 화와 화는 서로 통하는 글자, 훗날 인구가 늘어 이 화산에 성을 쌓으니 물골 수원의 본고장인 지금의 화성이라는 얘기다.

  아버지를 부르던 절규가 꽃비가 되고, 그 꽃비가 쌓여 이루어진 꽃뫼, 그 화산에 훗날 아버지를 못 잊어 몸부림치던, 조선조 정조대왕과 사도세자가 나란히 묻혀 있음은 진정 우연의 일치일까? 수원에서 병점을 거쳐 발안으로 향하는 화산 중턱에 두 왕릉이 나란히 누워있다.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를 합장한 융릉과 그의 아들인 정조부부를 합장한 건릉이 바로 그것이다. 다 아는 대로 지금의 수원은 정조에 의해 새로 건설된 도시로서 본 수원의 중심지는 융, 건릉과 그 원찰인 용주사가 있는 화산 주변이었다. 열 살의 어린 나이에 뒤주 속에서 굶어 죽어 가는 아버지의 최후를 본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선친의 묘를 이곳 화산으로 옮기고 해마다 여러 차례 능참길에 오르곤 했다. 아버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능역 주변은 온통 꽃으로 장식하였고 그 관리에 온갖 정성을 다했다고 한다. 능행길에 꼭 넘어야 했던 지지대 고개의  지명 유래나 고개 밑 노송지대에서의 일화는 아버지를 위하는 정조의 효심을 잘 대변해 준다. 한때 소나무 숲에 송충이가 들끓었을 때 정조는 그 중 한 마리를 잡아 씹으면서 이렇게 진노했다고 한다. "네놈들이 아무리 미물이라고 하나 어버이를 위하는 과인의 충정을 이다지도 좀먹는단 말인가!"

  나랏님의 효심에 하늘도 감동했음인지 이 일이 있고 난 뒤 난데없는 까마귀떼가 몰려와 송충이떼를 모조리 잡아 먹었다던가. 능행길은 눈물겨운 효행길이었다고 한다. 시흥을 지나 화산이 보이는 고개에 이르면 정조는 "걸음이 왜  이다지 더디냐"며 행군을 재촉했고, 환궁 할때는 "제발 좀 천천히 가자"며 수십번이나 선친의 유택을 되돌아보곤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명명된 지지대와 선친의 내세 평안을 기원한다는 만안교도 정조의 효행길이 남긴 흔적들이 아니던가. 꽃뫼의 전설과 후일 정조대황의 효행사적이 절묘하게도 맞아떨어짐은 어떻게 설명될 것인가? "아버지"를 주제로 한 이 전설과 실화는 좋은 교훈이 된다는 점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 세대가 그대로 믿고 싶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지명이 숨기고 있는 본뜻은 전혀 그렇지 않다. 수원이나 화성은 물과 관련된 지명으로서 서해로 돌출하여 바닷가에 위치한  이곳의 지형상의 특징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수원은 "물이 많은 고을"이라는 뜻이요, 화성은 "바다로 삐죽이 뻗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강이나 바다로 불쑥 내민 지역을 일러 "고지"  또는 곶이라 한다. 이 "곶"은 옛말의 곶과 음이 유사하므로 화 또는 화로 차자표기한 것이다. 따라서 화산은 바다로 삐죽이 나온 산을 뜻한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화산은 고지뫼가 아닌 꽃뫼로 새기고 싶다. 또한 수원은  영원한 "효원의 성곽도시"로 그 특성을 언제까지나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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