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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춘천과 의암 - 맥국의 맥이 흐르는 쇠머리골


  숨막히는 서울을 벗어나 청평, 가평을 거쳐 춘천의 의암호반에 이르면 28km의 경춘 계곡은 정말 멋진 드라이브 코스다. 그 중에서도 강촌 유원지에서 북한강이 삼악산을 휘돌아 흐르는 의암댐에 이르면 경춘가도의 풍경은 절정에 달한다. 이를 두고 누구는 "한국의 로렐라이"라 했던가. 그러나 이런 비유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등선 폭포 입구에서 옷바위가 마주 보이는 등선교에서 보는 풍정은 라인 강병 로렐라이의 무미건조함에 견줄 바가 못된다. 뿐만 아니라 그 옛날 맥국의 최후를 증언하는 삼악산성과 그 아래 옷바위의 전설은 그 규모나 내용 면에서 단연 로렐라이의 전설을 압도한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우리에게는 그 슬픈 전설을 유명하게 만든 하인리히 하이네와 같은 대시인이 없었고, 또 전설의 현장을 잘 보존하고 그것을  널리 알릴수 있는 유람선과 우리것을 귀하게 여기는 인식이 없다는 점이라고나 할까. 삼악산성을 달리 일컬어 맥국산성이라고도 한다. 부족국가 시절 우리 민족의 근간이라 일컫는 맥족이 이 산에 성을  쌓고 북한강 남쪽의 개국과 대치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춘천을 중심으로 한 맥국은 한때 대단한 위세를 떨쳤지만 후일 개국에 패배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금도 군데군데 흔적을 남기고 있는 산성과 그 아래 의암은 맥국패망의 전설을 가만히 이야기 해준다. 북한강을 사이에 두고 두 나라 군사가 대치하고 있을 때 개국 장수 가운데 위장전에 능한 이가 있었다. 이 장수는 군졸의 옷을 모두 벗겨 물에 적셔 이를 삼악산성에서 빤히 내려다 보이는 바위둑에 늘어 놓고, 실제 주력 부대는 삼악산 뒤편 강선산에 매복시켜 놓았다. 교묘하게 맥국 군사를 유인한 셈인데, 이 전략이 그대로 적중하여 쉽사리 맥국의 진영을 유린할 수 있었다. 등선폭포 뒤에 있는 만경대는 최후의 격전지로서  당시 만여명에 달하는 맥국 군사가 이 절벽에서 희생되었다 하여 만군대, 망국대라 부르게 되었다. 만여명이 넘는 젊은 병사들이 꽃잎처럼 강으로 떨어져 죽은 곳을 불과 수십명의 어부가 야릇한 소리에 홀려 물귀신이 되었다는 로렐라이 언덕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는가. 등선계곡의 폭포에는 금강산 전설을 닮은 나무꾼과 선녀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지만, 만군대의 비극에 묻혀 잊혀진 지 오래다. 폭포의 이름만은 소동파의 적벽부를 인용하여 등선폭포라 하였으나 하늘로 오른 것은 신선이 아니라 맥국 병사의 망국한이었을 게다. 벌써 2천년도 더 지난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지만 당시 기와를 구웠다는 "와대기"에는 지금도 기와 파편이 발길에 채인다. 성터의 흔적을 따라 삼악산 정상에 오르면 병사의 옷을 늘어놓아 적군을 유인했다는 그 문제의 옷바위, 즉 의암이 바로 발 아래 굽어 보인다. 어디 옷바위뿐일까, 북으로 굽이치는 북한강 줄기 따라 마치 조각배처럼  흩어져 있는 섬들을 비롯하여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춘천 분지의 원경은 정말 슬프도록 아름답기만 하다. 

  맥국이라는 이름은 중국인들이 우리를 낮잡아 붙인 이름이다. 맥은 "오랑캐 맥"자로 본래는 해성자인데 우리 민족 전통의 광명사상을 뜻하는 밝음을 표기한 차자이다. 이 밝음의 나라 백국의 본거지는 지금의 신북면 발산리라 일컫는, 춘천 북쪽의 한적한 마을이다. 이곳의 전래지명이 "바리뫼"로서 "바리"의 축약형 "발"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지금도 이 마을 뒷산을 맥국산 또는 왕대산이라 부르는데, 이 산앞으로 펼쳐진  광활한 벌판이 맥국의 도읍지로 추정되는 곳이다. 춘천의 진산이 봉의산인데, 이 산 위쪽으로 또 하나의 한강인 소양강이 흐른다. 지도를 펴 놓고 보면 소양강과 북한강이 휘돌아 흐르는 그 북쪽에 꼭 소머리처럼 생긴 물돌이 벌판이 길게 펼쳐져 있다. 예로부터 하늘의 소가 강을 건너는 형상이라 하여, 쇠머리골, 곧 우두동이라 이름한 마을이다.

  맥국의 맥을 이어 온 춘천의 역사는 바로 이 쇠머리골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지리지에 따르면 "고구려의 동남쪽예의 서쪽이 옛 맥의 땅인데, 현 신라의 북쪽이 삭주이며, 선덕여왕 6년에 우수주로 하여 군주를 두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우수주를 때로 우두주로 적은 기록이 보인다. 이는 한  나라의 으뜸고을이라는 뜻인 "수리마을"의 축약형 "쇠머리"를 한자를 빌려 차자표기한 것이다. 따라서 맥국의 도읍지 "바리뫼"가 신라때 "쇠머리골"로 바뀌고, 이를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수약주 또는 삭주로 적었다가, 고려때 춘주를 거쳐  조선소에 와서 춘천으로 정착되었다.

  우두산은 지금 와보면 한낱 야산에 불과하지만 옛날에는 도성 방위에 없어서는 안 될 주요거점이었던 모양이다. 일제 때만 해도 이 야산에 토성으로 된 산성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거대한 충렬탑만이 솟아 있다. 비록 옛 모습은 사라졌으나 탑 위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멀리 소양강 줄기 따라 서쪽으로는 우두벌이, 동으로는 샘밭벌이 드넓게 펼쳐져 있어 옛 도읍지로서의 면모를 되새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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