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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4. 믿음이 깊은 곳에

         길 쓸 별의 노래

        옛날 동쪽 물가에 건달파(乾達婆)의
        논 성으로 바라보고
        왜군이 왔다고 봉화불 사른 모양이야
        세 화랑이 산구경한다는 말 듣고
        달도 바삐 불 켜는 터에
        길쓸 별 바라보고
        혜성이야 말한 이가 있다.
        아아
        길잡이 하러 떠갔더라
        이에 벗들 궂히는 빗자락 별이 있을고
       ('삼국유사'에서)

  가까우면서도 먼 이웃 나라 일본. 왜군이 쳐 들어 옴을 노래로써 경계하고 있다. 이 노래에서 혜성을 길쓸이별이라 하고 세 화랑이 산구경하러 감은 무슨 뜻인가. 그 중요한 때에 산구경이라니. 또 건달파가 노래와 춤을 추던 사람인데 왜군이 침입했는데 무슨 건달파가 있어야만 한단 말인가. 참으로 해괴한 일이지를 아니한가. 해를 초점으로 하여 타원으로 돌아 가는 별이 혜성이다. 흔히 살별, 꼬리별이라 하며 오늘날 가끔 64년만에 찾아 온다는 헬리 혜성이 가장 두드러진다. 행여 혜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면 그 건 곧 이 땅의 끝이 나고 만다는 엄청난 사실인바, 왜적을 이에 비유하다니. 그 제나 이 적이나 일본  사람들은 언제나 힘겨운 사람들이었다. 얼핏 보아서는 빗자루처럼  보이니까 빗자루 별로 불러서 이상할 건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비로  쓴다면 길을 가로막는 왜군을 쓸어 버린단 말인가. 그렇다. 왜군의  앗음을 물리침으로 평화를 되찾고  우리의 길을 걸을 수가 있었던 정황. 융천스님은 마침내 '길을 쓸어 내기를 별에게 기도했던' 것은 아닐런지. 옛부터 별님에게 행복을 빌었음은 우리 민속에서도 드러난다. 혼인할 때 초례청에 든다고 하는데, 여기 초례의 초(醮)가 별을 보고 점을 치고 복을 빈다는 뜻이니 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도 같은 뜻으로 쓰인 경우이다. 사람이 다니는 길뿐만이 아니고 군인의 길, 학도의 길, 물길, 불길과 같이 길은 참으로 다양하다. 길이란 '긷-깃'에서  갈라져 나온 말로서 보금자리로, 일터로 통하는 공간을 이른다. 새가 깃 들인다에서 '깃'은 집이요, 보금자리이니까 말이다. 한데, 왜군이 우리들의 길을 막았으니 그 집안이며  나라가 편할 턱이 있을까.

  길이 막혔는데 세 화랑인들 어떻게 산구경을 갈 수가. 또 무슨 놈의 산구경이라니. 이거야 말이 되질 않는다. (허.참). 하필이면 또 셋일까. 하늘, 땅, 사람일까. 아니면 임금과 신하, 그리고 백성들일까. 아니면 신(神)과 인간, 그리고 대자연일까. 상황으로 보아 왜군과 싸우려는 우리 모든 이들일게다. 거기에 임금이, 신하가, 백성이 따로 있을 수가 없는 것을. 혜성 곧 왜군이 쳐들어 옴을 횃불로 알렸던 것이다. 정신 없이 건달파의 노래와 춤을 즐기는 이들을 향해서. 횃불로 잘 안되니까 밝은 달에게 알려 달라는 기원을 겸하여서, 달은 극락으로 오가는 석가세존의 사자이니까 부처님의 법력(法力)을 빌어 보려는 애씀은 아니었을까. 산구경의 본 바탕은 무엇일까. 흔히 사냥이라고 하지만 기실 헤치고 보면 전쟁 훈련을 하기 위한 산행(山行)이었던 것이다. 용비어천가 에서는 임금이 직접 산행하였음을 예로 보이거니와 소리가 바뀌는 과정에서 '산행-사냥'이 된 걸로 보인다. 이르자면 짐승을 적으로 보고 전술을 갈고 닦는 싸움마당이 곧 사냥터란 말이다. 이제 화랑이 군사를 이끌고 전쟁 훈련을 하려는데 느닷없이 혜성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바로 그 왜군이 갑자기 쳐 들어 온 것이다. 싸움을 알리는 횃불도 필요했지만 그럴 겨를도 없이 달을 횃불 삼아서 바쁘게 싸움터로 나아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여기 길잡이는 곧 화랑이란 생각을 할 수 있다. 막느냐 못 막느냐 하는 기로에서 길잡이란 흥망성쇠를 가늠하는 주요한 구실을 한다.목숨을 걸고 왜군을 물리침으로써 마침내 건달파와 같이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과 평안을 안겨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이 노래에 담겨 있다고 본다. 길쓸별의 별은 소리 상징으로 보아 '불'이 된다. 역사로 보면 광명을 숭배하는 태양숭배요, 어두운 밤을 밝히는 하늘에 비친 또 하나의 횃불일 수도 있다. 위험신호임과 아울러 어려움에 대비하라는  가르침이기도 하기 때문에 별은 아주 상징적이요, 암시하는 바가 크다. 나라와 겨레의 평안을 비는 융천 스님의 절절한 소원이 하늘의 별만큼이나 높고 빛난다. 노래의 가락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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