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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정호완



  11. 고움과 원형(圓形)


  11-1. 인지 (認知)와 아름다움

  '꿈에 세수 그릇을 보면 아름다운 아내를 얻게 된다'고 한다. 물론 그 말에 필연성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면 기분이 전환되므로 꼭 아름다운 아내를 얻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좋은 일이 아닌가. 세수하는 것은 얼굴을 깨끗하게 해 줄 뿐만아니라, 손과 얼굴, 그리고 몸을 움직이는 동작이 이루어짐으로써 운동도 된다. 세상 사람들은 나이나 성, 동과 서를 불문하고 아름다운 몸과 마음씨를 갖기 원한다 사물의 상태가 아주 원만하게 어울려, 예쁘고 고운 모양을 일컬어 '아름답다'고 한다. 키츠가 말한 대로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기쁨'일 수 있다.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사라져 가는 아름다운 감정이나 사물들을 보존하거나,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예술이란 미적인 표현 행위를 한다. 사람의 성격이 좋은 것을 원만하다고 하고, 보기에 좋은 것을 곱다고 하거니와, 아름다움의 가장 기본이 되는 형태는 '등근 모양(圓形)'과 '구부러진 모양(曲形)'이 아닌가 한다. 아무래도 직선의 고갯길보다는 굽이져 앞이 똑바로 보이지 않는 고갯길에서 상상을 통한 마음의 움직임이 싹트는 법이니까. 우리는 흔히 '각선미가 있다: 허리가 잘록하다'고 하여 몸매가 아름다운 여성을 표현한다. 이 모두가 그 대상의 조화 있는 구부러짐을 아름담게 인식한다는 증거이다.

  아름답다고 느끼게 하는 형태의 전형은 둥근 모양이다. 사람의 모습을 보라. 어느 것 하나 기본구조가 둥글지 않은 것이 없다. 우선 눈이나 얼굴이 그러하며 원초적으로 세포의 원형질이라든가 생식을 위한 난자의 모습 또한 그러하다 이렇게 둥근 모양을 갖추게 되는 것은 지구가 둥근 데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둥근 모습을 하는 것이 살아가기에 가장 편안하기에 그렇게 되는지도 모른다. '아름답다'에서 접미사 '-답다'를 떼면 '아름'이 남는다. 이 '아름'에 대하여 몇 가지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알다, 안다, 아름'과 각각 관련지어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세 어에서는 '아름'에 해당하는 말로 동음이의어인 '아름[私,抱]'이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아름' 에 '-답다'가 붙어 이루어진 말인 듯하다. 그러면 파연 동사의 명사형에 '-답다'가 붙어 형용사가 된 경우가 있느냐고 되물을 수 있다. '아름[抱]'은 본시 '안다[抱]' 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명사형이 아니고 파생명사이기 때문에 그러한 의문은 큰 어려움 없이 줄어나갈 수 있다. 파생명사는 대개의 경우 용언의 어간에 'ㅇ/으'와 '-ㅁ' 이 붙어 이루어지는데 완전한 자립명사로서 사용되기 때문이다. '아 ㄹ [抱]'의 원형은 '안다'이며, 그 듯은 두 팔을 벌려서 껴안은 둘레의 길이로 풀이할 수 있다. 그 동작으로 보아 두 팔로 껴안으려면, 즉 안으로 끼려면 팔을 둥그렇게 해야 한다. 구부리는 동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두 팔로 껴안아 보고 난 뒤에라야 그 길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즉 안는 행위는 대상의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 된다. 또한 자신의 두 팔로써 품안에 넣어 자신의 것으로 느끼고 소유하는 경우도 있으니, 때에 따라서는 자신만이 아는 비밀스러움이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아 ㄹ [抱]' 은 그 동작의 과정이나 결과로 보아 원형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아 ㄹ ' 이나 '알음' 과 상당히 가까운 의미의 유연성을 띤다. 원형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인식의 자기화라고나 할까. '아름답다'의 세 가지 가정, 抱 知, 私는 따라서 결코 서로 완전히 독립된 별개의 형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단, '알다 ' 를 기본으로 삼는 것은 그 명사령으로 '알옴' 은 보이나 '아ㄹ'은 찾아지지 않아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이 세 형태의 기본형은 '알-' 이라고 생각한다. '알' 은 동물의 생명을 간직하는 가장 소중한 공간이며 물체로서는 등근 모양을 하고 있다.

  '곱다(曲 ; (석보), l1-6)' 도 곱다고 인식하는 본바탕이 '곱음(굽음)'임을 말해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곱음은 굴절이요 변화다. 조지훈이 한국의 미의식을 '곱다/아름답다'로 갈래지은 것은 이러한 의식에 그 터를 둔 것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공감이 가는 풀이라고 하겠다.

  11-2. 그림과 상징

  '그림의 떡' 이라고 한다. 그림 속에 있는 떡은 먹음직스러워 보여도 먹을 수가 없는 것이어서 자기 마음에 든다고 하더라도 욕구를 층족할 수 없음을 비유하고 있다. 어떤 물체가 있을 때 그 물체의 모양과 비슷하게 모습을 그리어 나타낸 것을 '그림'으로 풀이한다. 그림은 '그리다'에서 갈라져 나온 말이다. 중심이 되는 의미는 '사물의 형상을 그리는 것'이 며, 부차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고 싶어하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다. 마음 속에 어떤 물체나 정황을 그리는 애틋함이 간절할 때 '그립다'고 하며 이에서 말미암은 파생명사는 '그리움'이 된다. 누구나 무지개 같은 그리움이 피어오를 때 삶의 참다운 보람을 느끼고 삶이 축복임을 느끼게 되는 것. 또 누구나 자유와 평등을 누리며, 기펴고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 사물을 그리는 그림은 원형적인 관점에서 보아 상징성을 갖고 있다. 구체적인 어떤 도상 으로 상징화되는 것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환웅천왕이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는바, 도장은 하나의 도상이요 상징인 것이다. 도장에 새겨진 그림이 보여 주는 상징은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제사장격인 군왕들만이 그러한 상징적인 도상(圖像)을 가졌으며, 거기에서 진정한 군왕의 권위가 인정되었던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글씨도 그림과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림의 상징적인 특징을 살려서 변형시켜, 더 편리한 모양을 갖춘 것이 오늘날의 문자가 아닌가 한다. 상형문자의 경우에는 이러한 특징이 더욱 강하다. 표음문자라고는 하지만 ((훈민정음해례본), 제자해를 보면,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자음을 만들고, 천지인의 삼재 (三才)를 흉내내어 모음을 만들었다 하니, 이 역시 일종의 그림의 성격을 강하게 퐁기는 게 아닌가.

  바라다보기만 써도 낯익은 태극기는 참말로 우리들에게는 위대한 가치를 드러내는 도상이요 상징이다. 이른바 음양오행에 입각한 우주의 생성 원리를 따라서, 불과 물을 드러내기 위하여, 붉은색과 푸른색을 써서 태극을 만든 것이다. 천부인과 관련하여 김양기는(한국의 신화 전설),에서 천부인 세 개를 칼, 방울,거울로 풀이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용숙은 ((한국의 시원사상),에서 '칼-산술, 거울-천문지리, 방울-음악'으로 대응할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요컨대 그림의 본질은 상징이며, 이러한 상징을 드러내는 도상은 특정한 종교나 집단을 드러내는 징표가 되어 쓰이는 일이 혼히 있다. 지금은 오락 기구가 되었지만, '윷놀이 판'은 단군시대에 자부선생(紫府先生)이 만든 것으로서, 신성 (神性)을 뜻하는 거북이의 등에 그려지는 그림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물론 그림에 대한 풀이나 의미부여는 보편성을 갖는 범위 안에서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이 인위적으로 하는 것이다. 빛이 있고 어떤 실체가 있으매 그 형체에 해당하는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옛말로는 그림자를 '그리메 ((월석), 9-22)' 라고 한다. '그리다'와 상관을 보이는 증세어의 낱말겨레에는, '그리다((용가50), 그리메 ((금강) l51), 그리이다((초두해), 22-46), 그림((초두해) 16-25), 그림재 ((역해보) 1), 그립다((윌석) l7-15) 등이 있다. '그리다'는 '글十이 十-다>그리다'이며, 여기에서 '글'은 '긋/글/굳'의 계열로 간추릴 수 있다. 오늘날에는 지역에 따라서 여러가지 형태로 분화되어 쓰이는데, 그 꼴은 아주 다양하다.

거렁지(경북 영주, 안동, 봉화, 영 양), 거름자(강원 삼척), 거림자(전남 장성), 그럼자(경남 합천, 함양, 층무, 거제), 그늘(경남 함양, 합천, 진양), 그렁지 (경북 군위, 선산, 예천 문경), 그링지 (경북 상주), 기림자(경북 경산, 군위, 대구/경남 충무 남해/층북 연풍, 단양/전북 임실, 진안, 장계/전남 여수, 순천, 광주, 완도, 영암, 해남, 진도) 등. 

  우리 겨레가 하나됨은, 정녕 거리도 멀고 척러 모양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으나, 계절이 끊임없이 피고 지듯 우리의 하나 됨에의 그리움 또한 마구 솟구처 오르나니......어릴 적 하늘에 높이 아롱져 빛나는 무지게를 보며 그리움을 키우다가, 자라 높은 산 위에 올라 무지개가 발 아래 드리우매, 몹시 실망한 일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 속에 무지개에 대한 그리움, 곧 하나의 위대한 가정 흑은 이상이 없을 때 삶은 메마르고 보잘것없어지리라.

  11-3. 고움과 원형(圓形)

  '고운 일 하면 고운 밥 먹는다'는 말이 있다. 좋은 일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럴싸한 몫을 차지하는 건 아니지만, 대략 자신이 어떤 원인 행위를 하였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결정된다. 원천적으로 좋은 일 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이미 보상을 받은 것이니까 고운 밥은 이미 떼어 놓은 당상이렷다. 겉모양이 산뜻하고 아름답거나 말 또는'소리가 귀로 듣기에 좋을때 '곱다'는 말을 쓴다. '곱다'에서 나온 고움의식은 둥그렇게 생긴 원형(圓形)의 사물인식에서 말미암은 것이라고 본다. ((훈민정음해례본)을 보더라도 원형은 하늘의 상징이요, 시간의 순서로 보아 맨 첫번인 자시(子時)에 해당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곧은 직선에서보다는 꼬부라진 길이나 산의 능선을 바라다보면서 마음의 펀안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꼬부라져 있는 모습들은 원형에서 그 완성된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인격이 원만하다'고도 하며, '예술이 원숙한 경지에 이 르렀다'고도 한다. 이는 모두 둥그런 원형에 마지막 구경(究竟)을 두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곱다'와 첫 음절의 모음이 다른 말로 '굽다'가 있다. '굽다'는 큰 모양의 원형으로 생긴 것을 이른다. '곱다'가 주는 음상이 '굽다' 보다 작고 귀여우니, '곱다' 가 작은 모양의 원형으로 생긴 것을 이르는 줄을 알 것이다. 따라서 '곱다'는 작은 것이 잘 어우러져 있을 때 느끼는 마음의 만족 곧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하겠다. 자연의 누리에는 정말 둥근 모양으로 존재하는 것이 많이 있다. 당장 우리의 눈과, 손발의 끝부분이 그러하며, 얼굴 또한 그러하다, 봄철이면 다투어 피는 꽃들의 모양이 그러하며, 식물의 열매며 가뭄 끝에 내리는 빗방울이 그러하다. '곱다'와 한 동아리를 이루는 말로는 '곱다랗다(아주 곱다), 곱다래지다, 곱살스럽다, 곱살하다'와 같은 꼴이 있다. 방언 분포를 보면 아주 다양한 형태를 확인하게 된다.

  '곱다'의 방언 분포
1) 어간의 비읍(ㅂ)이 유지되는 경우-고바서 (경상 대부분 지역/전남 전역/강원 삼척), 고벙께(경남 층무, 거제), 고붕께 (경남 함천, 거창), 고바(경상 전역/전남 돌산, 여수, 순천 구례/강원 삼척).
2) 어간의 비읍(ㅂ)이 떨어지는 경우-고아(전라 대부분 지역/층남 금산), 고옵다(강원 호산), 고웁다(층남 예산), 고읍다(전북 무주).
3) 기타-미하다{경남 창녕), 야무다(경남 남해), 에쁘다(전남 진상), 예뿌다(경남 산청, 울주/전남 광양), 이뿌다(경남 합천, 창녕, 김해/전남 여수, 순천), 이쁘다(전남 화순, 광양, 진상)

요컨대 어간의 '-ㅂ-' 이 유지되기도 하고 탈락되기도 하며 활용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가 중세어에서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살펴보자.

 '곱다'의 낱말겨레
1) 어간의 비읍(ㅂ)이 유지되는 경우-곱다(曲 ; ((석보), 11-6), 곱돌다((악장), (이상곡)), 곱숑그리다(꼬부리다 ; (가곡원류) p.26), 곱흐리다((한청), 198 C) 등.
2) 어간의 비읍(ㅂ)이 떨어지는 경우-고ㅂ며뷔트디아ㅎ며 ((월석), 17-53), 너추른고바((초두해) 15-8), ㄱ장고오ㄷ((초박해) 상 63), 얼구리고오몬 ((법화), 2-74), 고우닐스ㅅ옴널셔  ((동동) (악범)) 등.

  위의 보기를 보면 오늘날의 방언 분포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비읍(ㅂ)'이 어말에서 다음 음절 초성으로 이어나는 활용의 과정에서 보존되기도 하고 그러하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주시경 선생은 '-ㅂ-/-순경음 비읍-'의 양계열로 기본형을 재구성하기도 하였다.

  11-4. 단단함과 동그라미

  마음이 야무지고 단단해야 재물이 모인다고 하여 '단단한 땅에 물이 괸다'는 속담이 쓰인다. 상대적으로, 낭비벽이 있는 사람에게 재물을 모을 수 없다는 내용으로, 무서운 결심과 절약하는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혼히 속이 꽉 차서 실속이 있거나, 약하지 않고 굳센 상태를 '단단하다'고 이른다. 단단하다는 말은 '단단(團團) +-하다>단단하다'로 풀이할 수 있는데 여기서 주목하고자 함은 단단(團團)이 드러내는 물체의 모양이라고 하겠다. 가장 안정되고 견고한 사물의 상태를 '원형(圓形)' 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근원적으로 이땅 위에 있는 모든 사물들은, 원형의 지구가 둥글게 돌아가는 질서의 제약 속에서 그 가치를 실현해야 하기 때문에, 원형지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달이나 이슬과 같은 물체를 묘사한 자료에서 그런 가능성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團團似明月 ((만첩여)), 團團滿葉露(江捨의 時), 心若磨廳月夜團團轉((僧惠洪))].

  '단단'은 우리말에 수용되어 하나의 어근을 형성하여 발달하여 가는 과정에서 파생어와 합성어를 이루며 낱말의 겨레를 만들어 왔다. 낱말의 겨레를 이루는 틀은, 음성상징에 따른 자음의 바뀜으로 일어나는 것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모음의 바뀜에 따른 분화형태들의 집합이라 하겠다. 먼저 자음교체에 따른 분화형태를 이루는 말무리는 예사소리와 된소리, 그리고 거센소리의 형태를 뿌리로 하여 각각의 계열이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단단하다/딴딴하다/탄탄하다'). 이들 형태들은 다시 모음의 교체를 따라서 말의 무리를 만드니, '단단하다/든든하다, 딴딴하다/뜬뜬하다(방언), 탄탄하다/튼튼하다'와 같이, 양성모음과 음성모음의 대립을 따라서 분화한 것으로 보인다.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이라고 할 때 '튼튼(하다)'도 사실은 '단단(하다)'에서 비롯함을 알 수 있다. 경우에따라서는 음절의 끝부분(받침)에서 자음의 바뀜을 따라 만들어지는 같은 계열의 이형태(異形態)들이 있어 홍미를 더해 준다. '딴딴하다'가 'ㄴ>ㅇ'에 따라 '땅땅하다'로 다시 모음교체를 입어 '땡땡하다/띵띵하다'로 바뀜이 그러한 경우다. 속이 꽉 차는 그 정도가 강하여 마주 켕기어서 몹시 괭팽함을 이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땅땅하다'는 모음교체에 따라 '땅땅하다/뚱뚱하다/똥똥하다'와 같은 말로 계열울 늘려 가기도 한다. '탄탄하다, 탱탱하다, 팅팅하다, 퉁퉁하다, 통통하다'도 역시, 모두가 실속이 꽉 차고 등그런 원 모양의 '차 있음, 원형성'올 특질로 하는 말로, '단단하다'와 같은 겨레의 말로 보인다.

  이상에서 한자어 '단단(團團)' 올 어근으로 하여 갈라지는 말의 무리에 대하여 살펴 보았다. 그러면 고유한 우리말 가운데 '단단하다'와 같이 왼형 (圓形)을 드러내는 형태는 없었을까. 현대국어에 '둥글다 동글다, 담기다, 담다'와 같은 말들이 있는데, 중세어 자료의 지명이나 중세어 이전의 형태에서는 '두무(ㄱ)/도무(ㄱ)'의 꼴을 확인할 수 있다. 몇 가지 실례를 들어 보기로 한다.

1) 舊拏山在州南二十里鎭山其日舊拏山者以雲舊可拏引也一云 頭 無岳峯峯???一云圓山((동여) 권 37)
2) 道康郡本百濟道武郡新羅景德王改爲陽武郡((삼사) 35)
3) 耽津郡本百濟冬音縣新羅改耽津縣爲道康領縣高麗改靈쌍 任 內((세종실록) 지리지 전라도조)
4) 표音山, 효毛曉 豆尾山, 豆땋只, 豆毛山, 斗理, 豆잘領 豆毛浦 豆無山, 豆廊川, 都麻時, 豆無領, 杜門洞 豆붐洞, 斗흄里,斗武里,볐無谷(<대동여지도>)
5) 딜둠기 쪼 豆도 푹니 라(陶盆亦可 ; (자초))
6) 두무골(전남 완도), 돔방골(전남 노화도), 두멍 (큰솥, 水鐵大料貯水者 ; (行吏))

  이상의 보기에서 '도무(두무) ~돔[둠(ㄱ)]' 은 둥그런 모양이거나 적어도 둘러싸인 모양의 특성을 드러내는 형태임을 알 수 있다. '도무[돔(ㄱ)]' 계열보다는 '두무[둠(ㄱ)]' 계열의 형태가 더 많은 보기를 드러낸다. '둠(ㄱ)>둥(ㄱ)[동(ㄱ)]' 의 형태로 갈라져 나아 가기도 하였으며, 모음이 바뀌어 '담' 으로 쓰인 경우도 확인된다. 먼저 '동-'계에 드는 낱말들로는 동그라미 (원 모양), 동그랗다, 동그래지다. 동그마니(둥글게 따로 떨어져 있는 모양), 동그스름하다(모나지 않고 좀 둥글다), 동글갸름하다(동근 편이면서도 좀 긴 듯 하다), 동글납대대하다(생김새가 둥글고 납작스름하다), 동글납작하다(<둥글넙적하다), 동긋하다(동그스름하다), 동글다(중심에서 둘레 가장자리의 거리가 어느 곳이나 같다), 동글반반하다(생김새가 둥그스름하고 반반하다), 동글동글, 동글리다(동글게 만들다), 동긋이 (동긋하게)와 같은 꼴들이 있다.

  한편 '둥-'계에 들어가는 말에는 '둥글다, 둥그렇다, 둥그미, 둥조리(((역해), 하 19), 둥그스름하다'와 같은 말들이 있다. 다시 '동-/둥-' 계의 자음음상에 따르는 형태들이 있으니 '똥그랗다(<뚱그떻다), 통통하다(<퉁퉁하다)'와 같은 보기들이 그러한 예이다. 아울러 모음교체에 따른 꼴로는 '당그렇다(<덩그렇다)'와 같은 형태가 있다. 요약건대 '단단' 계의 말은 둥그런 원형에 꽉 차 있는 속성을 드러내는 것이 중심이라면 '동(ㄱ)-/둥(ㄱ)-' 계는 둥그런 모양 곧 원형 자체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덧붙여 두고자 하는 것은, 모음의 바꿩에 따라 '돔(ㄱ)-/둠(ㄱ)'은 '담(ㄱ)-'계의 말로도 발달하여 갔다는 것이다. '담다, 담기다. 담그다, 담다(닮다 ; 동일한 틀 속에 넣어 같은 사물의 모양을 빚어냈으니까)'와 같은 낱말겨레가 그러한 예이다.

  시가 음악적인 상태를 그리워하듯, 모든 사물은 원형에의 지향성을 가진다. 그러한 지향성은 언어에 되비치어 낱말의 겨레들로 가지를 뻗는다. 가지는 더욱 많은 잎새로 번져 가서 말의 숲을 이룬다. 그 청정한 빛으로.......

  11-5. 두께와 양면성

  '두꺼비의 꽁지만 하다'는 말을 쓴다 두꺼비의 꽁지란 얼핏 보아서는 알아 볼 도리가 없다. 사람의 배움이나 솜씨가 아주 짧은 경우를 이르고 있다. 때로는 게의 꽁지만 하다고도 한다. 두꺼비는 겉모양으로 보아 두꺼운 개구리와 같다고 하여 그렇게 이름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말의 동물이나 식물 이름 가운데는 이렇게 모양이나 소리를 흉내내고, 그 뒤에 동작이나 상태의 주체가 되는 행위자 '이 '를 어울러서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컨대 '따오기 (따옥十-이>따오기), 부엉이(부헝 +-이>부헝이>부엉이), 두꺼비 (두껍 +-이>두꺼비)'와 같은 것들이 있다. 이렇게 상징적인 의성어나 의태어를 이용하는 동식물의 이름은, 언어 형성이란 관점에서 볼 패 매우 생산적임은 이미 누누이 말한 바이다. 한 면과 그에 나란히 가는 맞은 면과의 사이에서, 감각적이든 구체적이든, 인식되는 넓이를 '두께' 라고 하며, 그 두께가 많은 상태를 '두껍다'고 한다. 옛말을 찾아 보면 '두껍다'는 '듯겁다((삼역)9-10), ㄷ텁다((소해) 5-22), ㄷ겁다((월석) 17-53), 두텁다-((훈해) 와 같은 형태들로 드러난다. 여기서 어간의 기본이 되는 것은'ㄷ'으로 보인다. '둘-' 은 '둘(ㅎ) ((석보))' 의 표기적 변이형이 아닌가 한다.

  한 면에 맞서는 다른 면과의 사이에 생기는 공간을 두께라고 하였다. 결국 두 면이 전제되어야 하고, 그 사이에 생기는 공간이 존재함을 요구하는 공간개념이라고도 하겠다. 점심 도시락이라는 말을 쓰거니와 '도시락'은 옛말 '두스락'에서 비롯되었는데, 서재극은 이와 관련하여 향가 <두솔가(料率歌)>의 '두솔'도 '뭘 싸 둔다' 는 뜻으로 풀이한 바 있다. 이 말은 바로 '듯'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니까 가운데에 어떤 물건을 놓아 두고 다른 것으로 쌀 경우, 그 모양이 직선이든 아니면 곡선이든 심지어 원형이든 간에 싸인 물체의 겉모양과 나란히 됨으로써 두 개의 면이 생기게 되며, 그 사이에는 하나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 공간이 두껍든 얇든 그것은 큰 문제가 안 된다. 야단법석을 떠는 것을 '두스럭 떤다'고 하거니와, 이 말도 결국은 하나의 물건을 다른 것으로 싸맨다든지, 아니면 갑작스런 도시락처럼 갑자기 처리하게 됨을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받침에 쓰이는 자음의 교체를 따라서 그 형태가 분화되는 일이 있다. 이를테면 '듯/ㄷ/둘' 이 그러한 보기들인데, '듯/ㄷ'은 앞에서도 형태를 들어 보였거니와 '듯겁/듣텁-/듣겁-' 과 같이 쓰이다가 오늘에 와서는 '두껍다'로 굳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면 '둘' 은 어떻게 플이할 수 있을까. '싸서 가리다, 원을 그리며 돌리다, 사물을 이리 저리 변통하다, 사람을 마음대로 다루다, 이치에 그럴 듯하게 하여 남을 속이다'의 뜻을 드러내는 말로 '두르다'가 있다. 이 가운데 '싸서 가리다, 원을 그리며 돌리다, 남을 속이다'와 같은 뜻은 분명 두 개의 평행되는 면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로 하여서만 가능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싸서 가리다'는 한 믈체를 다른 물체로 가리니 두 개의 면이 생기며, '남을 속이다'는 겉면과 속이 달라야 속일 수 있으니 이 또한 두 개의 면이 있어야 한다 '원을 그리며 돌리다'도 하나의 공간에 원을 그리면 결국 그 선을 안과 밖으로 하여 두 개의 면이 이루어진다. '두껍다'의 방언형으로 '두루막하다(전남 담양)' 형이 있음을 생각해 보면 '두껍다'가 '싸서 가리다'는 뜻의 '두루막'과 상통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사람들은 앞과 뒤 흑은 위와 아래, 처음과 끝에 해당되는 공간을 인식함으로써 그 두께의 정도를 알게 된다. 다른 풀이로 '듯(듣)' 은 '뒤'와 상관이 있지 않은가 한다. 물건을 두어 둔다고 할 때, 옛말에서는 '뒷다((월석) 21-118), 듯다((남명), 하 48)' 로 나타난다. 비교언어학적 인 풀이는 그만두고라도 우리말에서 이와 같이 실현되는 변이형들을 통하여 그 원형태를 짐작할 수 있음은 재미있는 일이다. 이렇게 공간이나 사물을 알아차림에 있어 긴요한 것은, 가시적인 공간에서 다음 공간으로 이어지는 공간의 변화이다.

  사람이 살아 감에 있어 양면성을 전혀 띠지 많기란 어렵다. 흔히 염치없는 이를 일러 '얼굴이 두껍다'고 한다. 염치를 잃음에 대한 양심의 감정이 무딘 사람이란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겉과 속이 서로 다름을 고민하며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록, 우리 사회는 밝고 좋은 세상이 된다. 양심의 두께가 염치없음의 두께에 비해 두터우면 두터울수록 좋은 일이다. 옛부터 '물박후정(物薄厚情)`이라고 하였거니와, 우리는 진실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지는 인간다운 누리를 만들어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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