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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정호완



  7. 아이와 알


  7-1. 아이와 알

  '아이 자라 어른 된다'고 하거니와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되는 건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다. 불완전하고 보잘것없는 사물이 차츰 발달하여 기능면에서 더 완전에 가까운 것으로 되는 자연의 이치를 이르는 말이다. 어린 사람 또는 자기의 아들을 낮추어 부를 때 '아이' 라고 한다. 워즈워드 의 <무지개> 라는 시에 나온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란 시구는 그 내용을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그럴 듯함이 있다. 낡은 것은 점차 사라져 가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이 자리를 잡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섭리라고 할 밖에. 육체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정서적으로도 또한 그러하다 노인이 되면 되돌아을 길이 없는 젊은 날을 그리며 산다. 그래서 노인은 과거에 살고 젊은이는 미래에 산다는 건지. 젊은이는 '아이'로, 노인은 '어른'으로 대표하여 가리킬 수 있다. 아이들은 항상 어떤 일을 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틀에 박혀 있지 많아 젊음 그 자체만으로도 노인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층분하다, 가능성은 씨앗에 비유되기도 하는바, 경우에 따라서는 일이 이루어지는 계기 또는 실마리로 되풀어지기도 한다. 사람의 '아이' 에 상응하는 말로 짐승의 새끼는 '아지 ((훈몽: 상18)' 라고 이르는데, 이는 궁중에서 유모 또는 보모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 '아이'는 중세어에서도 '아기 ((석보) 9-15)' 로쓰이는데, '아지(훈몽), 하 12)' 가 그 전단계의 형태이다. 이는 다시 '아시' 혹은 '앗'에서 그 비롯됨을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지금도 방언에 따라서는 '아시당초, 아시 벌매기 (층청. 경상.강원)'와 같은 형태가 쓰이는 것으로 그 근거를 잡아 보는 것이다. 음운변천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ㅅ> > o'의 과정을 생각하면 금세 이해할 수 있다.

  좀더 덧보태어 풀이하자면 '아지'의 단계에서 하나는 '아지>아이 (>애)'의 과정을 거쳐 '아이' 가 되었으며, 다른 한 쪽으로는 '아씨'에서 음운의 강화현상이 일어나 '아지' 또는 '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아시/앗'은 근왼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낮'과 '아침'의 부분에서 풀이한 바와 같이 '앗'은 시작'이요 '태동'의 뜻으로 보인다. '앗'은 받침이 바뀌어 '앗'(신어) 4-12)' 으로도 드러나며 다시 'ㄷ>ㄹ'의 변화를 따라서 '알'로 드러나기도 한다. '알'은 생명이 촐발하는 공간이요 시간이라면, 보이지는 않으나'알' 이 있게 한 내면의 과정 혹은 하나의 힘이 '얼' 이 아닌가 한다. 물론 모음의 교체를 따라서 이루어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앗'이 표면상에 드러난 것 또는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면 '어시 (엇)' 는 '앗(아시)'이 있게 하는 하나의 근거로 생각한다. 부모를 가리키는 중세어의 '어ㅅ(석보)'는 바로 '어시 >어 >어 이 '의 증간단계라 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아시'를 부모의 몸을 이어받은 생명체로 가정할 수 있지 않올까. '아이'는 어른들이 낳은 자식이지만 생명을 이어 가는 가장 기본이 되는 단계이기도 하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니, 서로는 삶을 이어 감에 있어 반드시 교체되어야 하는 위상에 속한다.

  '앗_/엇-' 계와 '알-/얼-' 계에 해 당하는 형태들을 찾아 보자. 먼저 '앗_' 계에 들어가는 말에는 '아스라이 (흐릿하고 아득하게 ; 태초의 시간과 공간이 멀 듯, 인식하기 어려운 사실이나 사물을 이를 때), 아시 (아씨 ; 미흔녀로서 생산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 아시빨래 (애벌빨래 ; 경상도 방언), 아예 (처음부터), 아우, 아수(아우 ; 충청 경상 방언), 아이, 아이다(빼앗기다), 아이배다, 아저씨(부모와 한 항렬의 남자. '앗>엊'의 과정을 거쳐, 부모를 뜻하는. 어시 '가 블어 만들어겼다), 아주먹이 (더 이상 손을 댈 필요가 없이 깨끗한 쌀), 아주, 아직, 아침, 애 (아이), 애 갈이 (애 벌 갈이), 애기, 애호박, 애기플, 애늙은이 (나이는 어리면서 하는 짓이나 체질이 아주 노숙한 사람), 앳되다(어려 보이다), 애띠다(앳되다 ; 충청 방언), 애새끼, 애시 (당초). 애송이 (애티가 나는 사람), 애잇기름(애벌기름), 애저녁 (초저녁), 애 젊다(아주 젊다)'와 같은 형태들이 있다. 여기에서 '아이>애'의 과정을 거쳐 내 (아이)'가 접두사로 쓰이면서 많은 파생어를 만들어 내는 일은 흥미롭다. '엇_'계에 드는 말로는 어시('어이'의 함경도 방언), 어이 (짐승의 어미), 어이없다(어처구니가 없다. 터무니가 없음을 일컫는 말), 어이아들[母子], 어이 딸[母女]' 등이 있다. 이와 함께 '엇'은 접두사로 쓰이어 서로 어긋나게 되어가는 뜻의 파생어들을 만들어 가는 경우가 많다. 그 의미로 보아 아이에서 부모는, 부모에서 아이로 넘어 오는 것과 달리 거슬러 을라 가야 하는 속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반대'의 의미로 쓰이는 '엇'이 붙어 이루어지는 말에는 '엇가게 (한 쪽으로 어슷하게 기울여 덮은 헛가게의 한 가지), 엇가다(언행이 서로 엇나가다), 엇갈리다(서로 만나지 못하다), 엇결 (나무의 결이 비꼬인 것), 엇노리 (에누리 ; 받을 갔보다 더 많이 부르는 일), 엇대다(어긋나게 대다), 엇된놈(좀 건방진 놈), 엇뜨다(빗보다 ; 사실대로 보지 못하고 잘못 보다), 엇먹다(사리에 맞지 않게 비꼬다), 엇물리다, 엇셈 (서로 맞물리는 셈), 엇비슷하다(거의 같다-부모가 같으니까), 엇섞 다(서로 어긋매껴 섞다) '와 같은 형태가 있다. 그러니까 '엇'이 '거꾸로'의 뜻으로 쓰이는 것은 자손의 대에서 부모의 대로 이르는 억행의 순서이고, '앗'이 '앞으로 나아감'을 뜻하는 것은 부모에서 자식으로 이어지는 순행의 순서가 전제되기 때 문이다.

  '앗다'는 '나아가는'의 뜻으로 쓰이기도 하며, '빼앗음'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먼저 있던 뒤의 것을 부정해야 한다.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도 사람은 그 부모의 소질이나 능력 혹은 재산을 물려받는다. 아이는 어머니의 몸 안에서 가장 소중한 영양을 공급받아 살아 간다. 제 흘로 영양을 섭취하기까지는 어머니의 품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얻어내야 하는 필연성이 있으므로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 한, 어머니는 의무적으로 아이에게 필요한 일들을 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형태로 보아 '앗/ㅇ/알'은 '엇/얻/얼'과 대립되는 짜임새를 갖는다. 척기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알/얼'이다.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앗'은 어린이요 '엇'은 부모이다. 따라서 '알/얼'이 그에 상응하는 계열이라면, 결국 알은 얼에서 비롯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부모가 만나 아이를 낳고 기르듯이 알은 얼에서 말미암는다. 남녀가 서로 성적인 관계를 갖는 것을 중세에는 '얼다(두해)'라고 하였다. 부모들이 가정을 이루고 결합함으로써 그 아이들이 태어난다. 일반적으로는 '씨알(씨앗)'의 '씨' 는 아버지의 혈통으로, '알'은 어머니의 혈통으로 말하지만, 필자는 얼을 부모로 알을 자식으로 보면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알-'계에는 '알, 알나리 (어린 사람이 벼슬한 경우에 놀리는 말), 알도요(작은 물새떼), 알뚝배기 (작은 뚝배기), 알땅(비바람을 막을 수 없는 땅)' 등의 형태가 있고 '얼-'계에는 '얼갈이 (겨울에 대강 논밭을 갈아 엎어 놓는 일), 얼다, 얼녹이다. 얼어붙다(어우러져 붙다)' 등이 있다. 부모에게서 자식이 태어나듯이 얼'에서 '알'이 비롯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얼다'는 옛말에서 물이 어는 것과 남녀가 성적인 결합을 하는 것을 일렀다. 결국 부모들이 서로 결합하여 하나의 애기로 굳어져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그럴 듯한 논리 정연함이 있다.

  7-2. 앎과 진통

  '아는 놈 붙들어 매듯한다'고 한다. 죄를 다스리는 사람이 죄인을 맬 때 죄지은 사람을 잘 아는 경우에 아무래도 사정을 보아 주어 아프지 않게 맬 수 있다는 애기다. 어쨌든 물건을 느슨하게 잡아 맴을 비유하고 있다. 어떤 사물이나 사실에 대하여 직간접으로 인식하거나 인정하는 일을 '안다'고 한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고 한다. 무슨 일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이는 어느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성취를 하기란 어렵다. 안다고 하는 건 적어도 어떤 사실을 플기 위한 비롯함이요 출발점이 된다. 할 일의 앞뒤를 을바르게 정할 수 있고 잘되고 못된 점을 가려 낼 수 있으려면 '알아야' 한다. 한편 모르면 마치 눈먼 사람이 길을 가듯 그 방향과 상태를 바르게 파악하기가 어려우며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게 된다. 육체를 밝히는 등불이 눈이듯이 앎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밝게 하는 햇불이며 신호등인 것이다. '알다'는 명사 '알'에 접미사 '-다'가 들어붙어 이루어진 동사로 보인다. '아이'에 대한 말의 뿌리를 플이하는 부분에서 살펴보았듯이 '알'은 '앗~ㅇ>알'과 같은 과정을 통하여 낱말이 분화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알'이 개체 생명의 비 롯됨이요 효시이면서 동시에 '얼 (엇/얻)' 에서 얻어진 소산물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 '알다'차 사물인식의 과정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사물을 대하여 인식함에 있어 우리 사람들은 눈, 입, 코, 귀, 피부 등의 감각기관을 통하여 보고, 먹고, 냄새를 맡고, 듣고, 점촉하여 사물을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즉 우리의 감각기관이 사물에 관한 동작이나 상태를 판단한 결과로부터 우리는 어떤 수준의 앎에 이르게 된다. 한마디로 우리의 감각기관과 인식하고자 하는 사물과의 상호작용을 '얼(바탕)'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 '앎'에 이르는 일련의 의식현상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뭘 안다고 하는 것은 얼에서 알로 이어지는 순행적인 흐름이며, 나아감인 것이다. 이를테면 '얻다'의 경우, 중세어에서의 뜻은 '찾다, 결혼하다, 갖게 되다'의 의미로 쓰였는바, 감각과 사물 상호간의 교호작용이 가져다 준 것이 앎이라는 또 하나의 개연성올 더해 준다.

  더 확고하고 실증할 수 있는 지식의 탐구와 연마를 위하여, 이른바 진리탐구를 향하는 학문의 영역은 꾸준히 깊어지고 넓어져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으로 짐작된다. 낡은 지식은 새로운 지식으로 대신하게 되며 그릇된 지식은 바른 지식에 의하여 고쳐지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제나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는 하나의 명제는 아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이에 걸맞은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는 올바른 정신 곧 얼이 바르게 서지 않으면 안 된다. 얼이 가버린 사람을 '얼간이'라고 하거니와 얼이 빠지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에게서 그럴 듯한 인식 (앎)이나 행동을 기대할 수는 없다. 정신병을 밞고 있는 사람에베 산황에 알맞으며 모두에게 공감이 될 만한 일을 수행할 것을 기대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밀알이 떨어져 엄청난 열매를 거두게 하듯이 진정한 하나의 앎(지식)은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의 사회를, 인간을. 문명을 다르게 만들 수 있는 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 지식이 바로 하나의 큰결과를 낳게 하는 말미암음이 되기 때문이다. 중세어에서 보면 '까닭'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로 'ㅇ(금삼))'이라는 형태가 있다. 이 말도 '앗/ㅇ/ㅇ/알'의 계열에 드는 것으로서 알은 하나의 큰 까닭이 되는 것이다. 한 개의 성냥불이 온 산을 불사르듯이 바른 지식 (앎)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을 수도 있다. 원자병기를 지키는 한 병사의 오판이 제동을 받지 않고 원자폭탄을 상는 행위를 가걱을 경우 인류의 파멸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말미암음을 생각해 볼 때 그럴 듯함이 있지 않은가. '지식인의 윤리'라는 말이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참으로 지적인 산업이나 할동을 하는 사람들의 책임이 큰 것은, 그들의 판단이나 지식이 우리 인류가 앞날을 살아감에 커다란 교두보의 역할을 하기때문이다. '알다'와 관계되는 말로서는 앞의 '아이'에서 알아 본 것은 제외하고, '아랑곳(남의 일에 나서서 알려고 들거나 참견하는 짓), 아랑곳없다, 아리송하다(비슷한 것이 뒤섞여 있어서 무엇인지 또렷이 알아 내피 어렵다), 알쏭달쫑(생각이 헛갈리어 분간할 수 있을 듯 하면서도 얼른 분간아 안 되는 모양), 알음알이 (꾀바른 수단), 알음알음(서로 아는 관계)'` 과 같은 형태들이 있다.

  7-3. 어둠과 얼

  어두운 밤중에는 아무리 중요한 눈끔적이기를 한다고 해도 정확하게 그 뜻을 전달할 길이 없으니, 쏠데가 없다. 이를 일러서 속담으로는 '어둔 밤에 눈끔적이기' 라고 한다: 한마디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음을 드러내는 말이다. 혹은 남이 알지 못하는 일을 하는 것은 인정을 받지 못함을 암시하고 있다. 밝은 빛이 없으므로 환하지 않고, 눈으로 보는 힘이 약하거나 밝지 못한 상태를 '어둡다' 고 한다. 우리 주변에는 참으로 어두운 일이나 장소가 많이 있다. 때로는 '어두움' 을 인간이 불행해지는 까닭으로 이르기도 한다. 개인의 탓으로 일어나는 불행도 있지만, 전반적인 사회구조의 모순과 엇갈림으로 인어나는 불행들이 많이 있음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더러 역사의 새 벽이라는 말을듣게 된다. 새벽에는 어둠과는 대립되는 아침의 밝음이 서리기 시작하므로 그러한 표현을 하는 것이 아닐까. 흔히 어둠과 밝음, 밤과 아침은 대립되는 개념으로 쓰인다. 이와 관련하여 어둠이란 말의 의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낱말겨레란 관점에서 살펴 보고자 한다. 밤이 가면 낮이 오듯이 어둠이 물러가면 밝음 곧 아침의 빛이 찾아 온다. 시간이나 상태의 이어짐으로 보아 어두운 밤은 아침의 터전이 되는 것이니, 둘의 관계는 대립관계이면서도 연접현상이 아닌가 한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아침'은 '앗(자식)/ㅇ/알'의 낱말겨레에서 비롯한 분화형태로 보인다. 다시 말헤서 '앗' 에서 어말자음이 터짐갈이소리 (파찰음)가 되면서 '앗>ㅇ(ㅇ)'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앗/ㅇ/알'의 계열이 모음이 바뀌면 '엇 (부모)/얻/얼'의 계열이 만들어진다. 이 '얻'과 상관되는 형태가 곧 '어둡다로 보면 될 것이다. 오늘날의 '어둡다'는 중세어에서는 '어듭다((용가) 30)' 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를 풀어 보면 '얻 十으十 ㅂ다>어둡다'로 그 과정이 설명된다. 결국 '얻'은 '엇'에서 비롯하였으며'앗/ㅇ/알'과 대렵되는 것으로 보인다.

  '엇/얻/얼' 로 드러나는 어둠의 뜻이 담긴 낱말겨레에는 어떤 형태들이 있을까. 먼저 '엇-'계의 형태를 보면, 어스름(저녁이나 새벽의 어스레한 빛 또는 그때), 어스레하다, 어스름 달밤, 어슬어슬(날이 어두워지거나 밝아지는 모양), 어슴막(초저녁의 경상도 방언), 어슴푸레하다, 어슷어슷(여럿이 조금씩 다 기울어진 모양) 어슷썰기 (한 쪽으로 비슷하게 써는 일), 어슷하다(물건의 모양이 한 쪽으로 비뚤어져 았다), 어슬렁거리다(몸이 크고 다리가 긴 사람이나 짐승이 천천히 걸어가는 동작)'와 같은 낱말들이 있다. '얻-'계에 드는 말로는 '어두컴컴하다, 어둑새벽(여명), 어둑어둑하다(물건이 보일락 말락 보이다 ; 어둡-'의 비읍(ㅂ)이 자음교체를 하여 기역(ㄱ)으로 바뀐 결과임), 어둠침침하다, 어득하다(>아득하다), 어뜩하다(갑자기 어지럽다), 얻다(어떤 원인으로 결과를가져 오는 동작)'와 같은 형태가 있다. '얼-' 계에 드는 말에는 '어른, 어른거리다(그림자가 회미하게 움직이다), 어름대다 (우물쭈물 명확하지 않게 움직이다), 어름적거리다(느릿느릿하다), 어리다(나이가 젊어 모든 게 똑똑하지 않다), 어리대다(공연스레 어정거리다), 어리둥절하다(정신이 얼떨떨하다),어리뜩하다(말이나 행동이 똑똑하지 못하다), 어리마리 (잠이 든 둥만 등한 모양), 어리벙벙하다(갈피를 잡을 수 없다), 어리석다(어리숭하다(>아리송하다 ; 보기에 어리석은 듯하다), 어리치다(너무심한 자극으로 정신이 흐릿해지다), 어린이, 어림없다(짐작할 수없다), 어릿거리다(말과 행동이 생기가 없이 움직이다)'와 같은 형태가 있다.

  '얻/엇/얼'의 낱말 겨레에서 우리의 인식작용과 증요한 관계를 드러낸 것은 '얼' 이 아닌가 한다. 인간의 모든 인식작용과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그 바탕이 바로 얼이다. 얼은 다른 사물이나 사실과 관계하여 어떤 앎에 이르도록 한다. 개인이나 겨레나 온 인류로 보아서도 생산적이고 참된 얼이 있는 데에서 올바른 일이 만들어짐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배달의 겨레는 흥익인간의 정신을 살려인간이 인간다운 우리의 누리를 빚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겨레가 하나 되기를 지향해야 한다. 얼이 알의 심층구조라면 알은 얼의 표면구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니, 얼은 알과 함께 모든 일을 처리함에 값진 말미암음이 된다.

  7-4. 젊은이와 짧음

  '젊은이의 망녕은 몽둥이로 고친다'고 한다. 아직 망녕이 들 때가 안 된 사람이 정신없이 함부로 굴 때는 매로라도 다스려야 한다는 교훈적인 내용을 이르고 있다. 나이가 비교적 어리고 혈기가 왕성한 상태를 '젊다'고 하는데, 혈기가 왕성하고 나이가 젊기 때문에 짧은 점도 많으나, 하는 일이 진취적이다. 살아 온 시간보다는 살아 갈 시간이 횔씬 길어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 힘이나 그 패기에서라면 나이 든 사람은 비길 바가 못 된다. 청춘을 인생의 황금기로 비유한 이도 있듯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층분히 예찬의 대상이 된다. 젊음의 가능성에 적절한 자극과 반응을 꾀하는 조건화 과정을 거쳐, 더 성숙한 인간으로 이끌어 가는 문화유산의 전달작업이 교육이다. 가르칠 교(敎)를 글자의 짜임으로 보더라도 그러하다. 이끌어 감과 매로 침의 뜻을 합한 것이니, 여기서 매는 적절한 자극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때로는 직접 매로 다스리는 것도 물론 포함된다. 젊음은 계절로는 이제 막 싹이 돋아 오는 첫봄이요 꽃으로 이르자면 봉오리가 맺혀 삶의 열기를 불사르는 개화기에 비교할 수 있다. 그러기에 노인은 젊은 시절을 회상하고 그리워한다. 비록 시행착오가 많지만 언제나 넘치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옛말에 '젊다'는 '져므니 ((초두해) 25-29)' 혹은 '졈다(능엄) 4-64), 'ㅈ다(역해보), 19)' 로 쓰이었다. 이남덕이 지적한(1985) 바와 마찬가지로 필자도 '젊다' 는 '뎌르다(短 ; 법화, 2-167)' 에서 비롯 한 것으로 본다. 그는 '젊다'가 발달하여 온 과정을 '뎌 ㄹ(르)다>져르다>졈다>젊다'로 상정한 바 있거니와, '뎌ㄹ(르)-+오十ㅁ>뎔옴>덞 (ㄷ)'의 과정이 앞선 것으로 보인다. 구개음화가 이루어진 것은 근대국어에 와서의 일임을 미루어 보아, '덞>젊>젊'으로 바뀌어 갔다고 풀이하는 것이 좋을 듯하기 때문이다. '뎌ㄹ(르)->ㄷ-' 이 된 것은 마치 'ㅅ로-十오十ㅁ>ㅅ->삶-' 이 된 것과 같이, 용언의 어간에 명사형 어미 (ㅁ)가 붙어 어간을 이룬 형태로 생각한다. 요컨대 '젊다'는 '뎌 ㄹ(르)다>덞다(덤다)>ㅈ다>젊다'와 같은 과정을 거쳐 오늘에까지 쓰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뎌ㄹ(르)-' 의 꼴은 어디에서 비롯하고 그 뜻은 무엇인지 살펴 보기로 한다. '뎌ㄹ(르)다'가 '뎔다((법화), l-190)' 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것으로 보아 '뎌ㄹ(르)-' 의 모음이 줄어 '뎔-' 이 되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일본어에서 절을 '데라' 라고 하거니와 범어의 '데라 ' 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한다. 결국 '뎌ㄹ(르)' 는 사찰을 뜻하는 범어의 '데라'에서 빌려쓴 말로 보인다.

  그런데 '절'과 '짧다' 그리고 '젊다'는 어떤 의미의 유연성을 보이는가. 세속적으로 보면 절에서 이루어지는 수도생활이란 금욕이며 절제요 삼가하는 것이다. 단(短)은 긴 것[長]의 반대요, 짧게 자르는 것 (斷)이라고 본다. 필요한 것을 더 적게 그리고 작게 줄이는 속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금욕의 수도생활이 이루어지는 '절'과 '짧다' 사이에 서로 관련성이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럼 '젊다'와의 상관성은 어떠한가. 앞 부분에서도 플이한 바와 같이 늙은 사람에 비하면 젊은 사람은 살아 온 날이 짧으며, 세상 욕심에 그래도 덜 찌들었으니, 금욕적이라고 할 것은 없으나 순수하며 영혼의 맑음을 가지려는 지향이 강하다. 그들은 이상에 치우친 나머지 갈팡질팡할 때가 많이 있다. 비약이 될지 모르겠으나 '짧다'고 하는 속성은 결국 순수함이요, 현실보다는 미래지향을 갖고 있다. 엄청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동식물의 싹이나 새끼를 보아도 그러하다. 우선 그 크기에 있어 짧고 경험 또한 넉넉하지 못하지 않은가.

  모음의 바뀜을 따라서 '뎌ㄹ(르)-' 는 '댜ㄹ(르)-' 로 바뀌어 쓰이었으며, 뒤로 가면서 '쟈르-(ㅈ-)>자르-(짧-)' 의 과정을 거친다. 현대국어에서 보아 '뎌ㄹ(르)'에서 파생되어 온 형태들은 '젊-/절-/자르-/짧-/덜-' 과 같은 계열의 말들로 무리를 지어 나아간다. 이제 그 보기를 들어 보자. '젊-'계에 드는 말로는 '젊다, 젊으신네 (젊은이의 존칭), 젊은것(젊은이)'과 같은 형태가 있다. '절-'계에 드는 것으로는 '절, 절다(걸음을 절뚝거리며 걷다, 한 쪽 다리가 더 짧으니까.), 절뚝거리다, 절뚝발이, 절렁태 (절름발이의 핑안도 방언), 절렁거리다, 절름거리다, 절버덩거리다(절름거리며 걷는 사람의 걸음을 의성화한 소리), 절써덕거리다, 절쑥거리다, 절음나다(짐승이 다리 저는 병이 나다)' 등의 꼴이 있다. '자르-' 계에는 '자르다, 자르르(자르는 데에서 느끼는 감정의 표시), 자리자리하다, 잘가닥(자물쇠 같은 것이 잠기거나 열리는 소리), 잘각거리다, 잘강거리다, 잘그다(자르다), 잘그랑(>짤그랑>찰그락), 잘라 먹다, 잘록하다, 잘름거리다'와 같은 형태들이 있다. 아울러 '잘되다(사물 또는 신분이나 처신이 좋게 되는 것)' 의 경우도 절과 상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절에서 불공을 어떻게 드리느냐에 따라서 생과 사를 뛰어넘어 소원을 성취하기도, 이루지 못하기도 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정이 가능한 것이라면, '잘(옳고 바르게)'도 절의 뜻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겠다. 절에서 이르고 가르치는 내용은 선한 것과 바른 것을 중심으로 하니까. '짧-'계에 드는 형태로는 '짧다, 짤따랗다, 짧아지다, 짧은작(길이가 짧은 화살)' 등이 있고, '덜-'계에 드는 말로서는 '덜다(적게하다), 덜되다(하는 짓이나 생각이 모자라고 온당하지 못하다), 덜렁거리다(덤벙거리다 ; 단점의 하나일 수 있음), 덜름하다(아렛도리가 드러나도록 옷의 길이가 짧다), 덜리다(덜어짐을 당하다), 덜(한도에 다 차지 못함을 드러냄)'과 같은 형태들이 있다.' 덧붙여 두고 싶은 것은, 같은 말무리에 드는 것으로 '절하다'가있는데, 절에서 부처님께 예배를 을리듯이 웃어른에게 인사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앞에서 설명한 문화적인 전통이 우리 말에 되비쳐 살아 남아 쓰이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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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7/12 by 바람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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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2 - 1. 압록강과 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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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7/10 by 바람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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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2 - 1. 금강(錦江), 그 영원한 어머니

  5. No Image 08J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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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7/08 by 바람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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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12. 울림과 진실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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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7/07 by 바람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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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12. 울림과 진실 (2/3)

  7. No Image 06J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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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7/06 by 바람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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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12. 울림과 진실 (1/3)

  8. No Image 30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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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6/30 by 바람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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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11. 고움과 원형(圓形)

  9. No Image 29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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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6/29 by 바람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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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10. 막다른 골목 (2/2)

  10. No Image 17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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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6/17 by 바람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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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10. 막다른 골목 (1/2)

  11. No Image 16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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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6/16 by 바람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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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9. 겨레와 분화 (2/2)

  12. No Image 15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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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6/15 by 바람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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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9. 겨레와 분화 (1/2)

  13. No Image 12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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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6/12 by 바람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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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8. 힘과 해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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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5/31 by 바람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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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8. 힘과 해 (1/2)

  15. No Image 30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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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5/30 by 바람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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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7. 아이와 알

  16. No Image 28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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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5/28 by 바람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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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6. 가루와 분절

  17. No Image 26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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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5/26 by 바람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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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5. 물의 순환 (2/2)

  18. No Image 25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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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5/25 by 바람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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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5. 물의 순환 (1/2)

  19. No Image 20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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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4. 돌과 원운동 (2/2)

  20. No Image 17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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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4. 돌과 원운동 (1/2)

  21. No Image 15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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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5/15 by 바람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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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3. 풀과 목숨 (2/2)

  22. No Image 12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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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5/12 by 바람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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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3. 3-1. 싹과 사이 (1/2)

  23. No Image 09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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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2. 굿과 혈거생활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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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5/09 by 바람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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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2. 굿과 혈거생활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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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5/04 by 바람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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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2. 굿과 혈거생활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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