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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마산과 무학산 - 가고파의 바다가 보이는 마잿골


  마산 앞바다에 그림처럼 떠 있는 작은 섬을 돋섬이라 부른다. 이 섬을 가리켜 오리가 먹이를 구하는 형상이라고도 하고, 돼지가 드러누운 형상이라고도 하나 항구 어느쪽에서 보아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마산항의 진주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아름다운 섬을 두고 하필이면 왜 돼지섬이라 부르게 되었을까? 옛날 가야국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진가야의 왕에게 귀여운 공주(일설에는 후궁)가 있었는데 불행히도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골포(마산의 옛 이름) 앞 바다의 섬에 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부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 섬에서 공주처럼 보이는 미희가 웬 노파의 피리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노파는 마귀할멈이라고도 하고 지리산의  마고선녀라고도 했다. 어떻든 정보를 입수한 왕은 군사를 풀어 그 할멈을 잡고 공주를 구출해 오라고 명한다. 수많은 군사가 섬에 올라 포위망을 좁혀 가자 춤추던 공주는 돌연 금빛 돼지로 변하고, 피리 불던 할멈은 한줄기 연기로 화하여 무학산 정상의 바위 틈새로 사라졌다. 공주 구출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아리따운 공주가 일순 돼지로 변하다니, 현장에 달려온 왕은 자신이 손수 걸어준 조개 껍데기 목걸이가 돼지 목덜미에서 발견되자 그만 경악하고 만다. 이 일이 있은 뒤, 왕은 이 섬을 돋섬이라 명명하고 공주의 화신인 돼지가 편안히 살 수 있게 사람의 접근을 금하며 먹이감을 충분히 넣어주도록 배려했다. 그러나 돋섬은 이후로도 평안하지 않았다. 밤이면 돼지 울음소리가 요란하고 괴이한 광채가 밤새 섬주변을 맴돌았다. 그런데 이런 괴변은 대학자 최치원에 의해서 말끔히 해결된다. 당시 해변에 월영대라는 정자를 짓고 기거하던 최치원이 섬을 향해 활을 쏘았더니 울음과 광채가 멎었다고 한다. 이튿날 섬으로 건너가 화살이 꽂힌 곳에서 제를 올렸더니 다시는 그런 괴변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쪽 바닷가 마산은 물 좋고 따뜻한 항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십리 밖에서는 눈이 펄펄 내려도 이곳 마산 포구는 주룩주룩 비가 내리며, 무더운 한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고 한다. 이는 오로지 마산의 진산인 무학산이 북풍을 막아주기 때문이란다. 봉우리의 형세가 학이 춤추듯 펼쳐져 있다고 하여 최치원이 무학이라 명명했다고 하는데, 확인할 길은 없고 다만 일제 때 일인들이 지은 이름이 아닌가 한다. 문헌상으로는 이 산을 두척산이라 적었는데, 두척은 큰 고개라는 뜻의 고유어 "마루재(준말로 마재)"를 차자표기한 것이다. 지금도 마을 이름에 두척동이 남아 있고 현지인들은 이를  "마잿골"이라 부른다. 따라서 현 지명 마산도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마산이라는 지명과 말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고려 때 몽골 군사가 이곳까지 들어와 왜구 정벌의 전초기지, 곧 정동행성을 설치했다고 하니 말도 함께 들어왔을 법하다. 그러나 그 이후로 말과의 인연은 끊어졌고, 또 이곳 지형에서 말을 닮은 곳도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마산의 마 자는 마루재, 마재의 "마"를 단순히 차음표기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개항 백년의 마산은 그 역사가 짧은 만큼 유적이나 유물도 별로 많지 않다. 신라 때 고운 최치원이 후학을 가르쳤다는 월영정이나 고려 때 몽골 군사가  물을 마셨다는 몽고정, 조선시대 서원의 모습을 보여주는 관해정등이 고작인데, 그것마저도 잘 보존되지 않은 실정이다. 유물, 유적은 적으나 마산은 예향이라 부를 만큼 노래와 시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산호 공원에 "시의 거리"를 조성하여 10여개에 이르는 이 고장 출신 시인의 시비를 세워 놓았다. 뿐만 아니라 여객선 터미널에 "반야월 노래비" , 역 광장에 "선구자 노래비"등도 외래인들의 눈길을 끈다. 이 고장에서 태어난 노산 이은상은 타향을 전전하며 그렇게도 남쪽 바다 그의 고향을 "가고파" 했고, 출생지는 아니지만 이곳을 고향 이상으로 여긴 아동문학가 이원수는 동요의 고전 "고향의 봄"을 이 곳에서 지었으며, 또한 40여 년을 이 고장에서 살아 온 작곡가 조두남은 민족의 노래 "선구자"를 작곡하여 3, 15의거를 일으킨 이곳 마산 시민의 혼을 기렸다.

  마산은 문화제가 적은 만큼 작은 전설 하나라도 현실로 만들어 놓는다. 무학산 중턱, 신마산에서 예곡동 감천골로 넘어가는 산마루에 "만날 고개"가 있고, 이 고개에 얽힌 전설을 상기하여 오늘날까지 그 일을 되새기고 있다. 만날고개는 먼 옛날 가난한 집 맏딸이 고개 너머 부잣집의 장애인에게 시집간 뒤 친정 가족과 극적인 상봉을 이루었다는 곳으로, 지금도 그 날이 오면 감천 사람들이 이 고개에서 만나 각자 준비해 간 음식과 함께 인정을 나누는 일이 지역 행사로 정착되고 있다.

  노산 선생만큼 고향의 푸른 바다를 그리워한 마산인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그가 태어난 집, 그가 뛰놀던 동산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아 아쉬움을 준다. 집은 이미 허물어지고 그의 부모가 아들의 출생을 기념하기 위해 팠다는 "은상이 샘" 만이 폐정이 된 채 버러져 있다. 그가 뛰놀던 동산, 곧 노비산은 이제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였다. 예전에는 백로가 날아와 온통 산을 하얗게 뒤덮었던 노비산에 이제는 백로도, 제비도 날아오지 않는다. 이를 미리 예측이나 한 듯 선생은 "날 비"를 빼고 노산만을 자신의 호로 삼았던 게 아닐까. 노래말 그대로 내 놀던 옛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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