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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우리말의 풍토성

    몸짓 언어 2 - 가슴으로 하는 말

  얼마 전 새로 부임한 서울대 총장은 신입생 선발에서 머리가 좋은 학생보다는 가슴이 따뜻한 학생을 뽑겠다고 했다. 모처럼  들어 보는 "가슴에 와  닿는" 말이기는 하지만 문제가 없는건 아니다. 두뇌가 좋고 나쁨은 시험으로 가릴수 있다지만  가슴의 온기는 무슨 잣대로 잴 수 있을지 그것이 의문이다.  이 시대 우리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는 차가운 머리보다는 따뜻한 가슴의 소유자일 것이다. 온기 있는 가슴만이 인정이 흐르는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가슴과 함께 훈훈한 입김, 거기에 부드러운 미소가 무엇보다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신체는 고유한 기능과 관련하여 의미 있는 정서 표현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좀더 완전한 신체와 부위별 기능 발휘를 위한 우리의 바람이 그 속에 숨어든 탓일 것이다. 코는 오똑 서야 제격이다. 콧대란 말은 단순히 콧등의 우뚝한 줄기만을 일컫지 않는다. 코가 납작해지거나 타인에게 쪼임을 당했다면 그것은 바로 자존심에 손상을 입었음을 뜻하는 것이니, "쫑코 먹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머리는 차되 가슴은 따뜻해야 하고, 손은 부드럽고 두루 미쳐야 하며, 발은 가능한 빨라야 한다. 어깨는 항상 펴있어야 하고 목과 허리는 유연하되 배에는 두둑하게 힘이 들어 있어야 한다. 앞서 "눈이 맞았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된 것을, "눈이 멀었다"면 사랑에 빠져 분별력을 잃은 상태의 표현이라 했다. 사랑에 눈이 멀면 "배맞아 가는" 사랑의 도피행으로 연결되기 쉽다. 뒷골목 건달이 한동안 쉬게 되면 "주먹이 근질근질"해지고 볼썽 사나운 꼴이라도 보게 되면 배알이 꼴리거나 속이 뒤집혀서 그만 "손을 보아주기"에 이른다. 언젠가 귀양지에서 근신중이던 전직 대통령의 "손 보아 줄 사람"이 많다는 발언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신체부위에 대한 우리의 바람이 이처럼 어긋날  때는 그만 점잖치 못한 표현으로 이어진다. 손 또는 손길은 어디까지나 두루 미치고 부드러워야 하듯이 쓸개도 제 뒤치에 있어야 하고 허파도 제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런데 줏대 없는 사람을 일러 "쓸개 빠진 사람"으로, 실없이 구는 사람을 가리켜 "허파에 바람든 사람"으로 표현하는데, 이 지경에 이르면 매우 곤란해진다. 간도 인간의 감정 표현에 빠지지 않는다. 놀랄 때는 "간 떨어질"만큼 놀랐다고 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면 "간이라도 빼 줄 듯이" 호들갑을 떨면서도 그에게서 배반이라도 당하면 "간덩이가 부은"듯이 무슨 일이든지 저지르고 만다.

  한국인에게 얼굴은 또한 단순한 얼굴만이 아니다. 얼굴로 통하고, 얼굴로 부탁하고, 얼굴이 뜨겁고, 얼굴이 안 서고, 얼굴도 들 수 없게 되는 등 한국어의 얼굴은 체면,체통,권위,면모 등과 동의어로 쓰인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도 40대 이후에는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라고 하여 얼굴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바도 있지만, 어떻든 한국인의 얼굴의 권위에는 미치지 못한다. 어떤 분은 이런 현상을 두고 한국인은 체면의 자갈밭을 맨발로 걷고 있다고  표현했지만, 어떻든 우리의 얼굴이 상징하는 바가 서구인의 명예와는 의미 범주가 다른 것은 분명하다. 얼굴에 못잖게 배에 대한 인식도 유별나다. 기쁠 때는 배꼽이 웃으나 그 반대의 경우 배알이 꼬이고, 심술이 동하면 배가 아프다고 엄살을 떤다. 이로 미루어 보면 우리는 사고나 정서까지 배에서 나온다고 믿는 모양이다. 마음 속에 간직한 계획을 복안이라 하고, 이 배를 또한 자신을 지키는 최후의 버텀대라 생각한다. IMF 사태 이후 "배 째라"는 풍조가 만연한 적이 있는데, 이는 버티기가 극단에 이른 경우를 이름이다. 군에서 장교의 위상을 규정할 때 신체에 빗대어 위관급은 발이요, 영관급은 머리이며,  장성급은 배라고 한다. 초급 장교 때는 그저 발이 안 보일 정도로, 또는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이 최상이지만 영관급에 이르면 정보를 수집하고 작전을 구상하는  등 정확한 판단을 위해 명석한 두뇌가 필요하다. 그러나 장성급에 이르면 두둑한 배짱과 함께 부하를 지휘, 통솔하는 권위와 위엄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배가 불룩한 장성이 많은지 모르지만 이럴 경우 배보다는 가슴으로 비유하는 편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최근에는 배 나온 장성은 퇴출감이라고 하니, 따뜻한 가슴을 가진 덕장이 지장이나 용장보다 더 존경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인정이 메말라 가는 이 시대에는 차가운 머리보다는 따뜻한 가슴이 더 아쉽다. 크고 화려한 겉치레만을 추종하는 현세태에서 얼굴이나 큰손보다는 작은 손길이나 빠른 발이 더욱 절실하다. 부지런한  손발이 서로 힘을 합치고 따뜻한 가슴들이 서로 모일 때 이 세상은 한결 밝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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