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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우리말의 풍토성

    농경 생활 용어 1 - 북돋워 주고 헹가래치고

  현대를 산업화 또는 정보화시대라 규정하지만 한국 문화 속에는 아직도 농경시대의  유습이 뿌리깊게 남아 있음을 본다. 수천 년 동안 지속된  농경 생활에서 우리의 언어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으니 우리말 속에 남아 있는 이런 흔적들을 농경 용어라 이름한다. "짓다"라는 말처럼 농경 용어를 대변하는 어휘가 또  있을까. 농사만 짓는게 아니라 집도 짓고 옷도 짓고 밥도 짓는다고 한다. 의식주 전반에 걸친, 그야말로 생산과 창조의 근원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짓(작)과 집(가)이 같은 어원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짓"은 사람에게도 달라붙어 지아비, 지어미라 하여 부부의 호칭으로도 활용된다. 지아비가 노래하면 지어미는 따라 부른다는 부창부수라는 숙어도 남편과 아내가 모두 농사일에 종사한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 같다. 자연에 순응하여 식물에 열매를 맺게 하는 작업, 이 농사일을 일러 "여름짓다"라고 한다. 또한 이 일에 매달리는 농부를 "여름지슬(을)아비"이라 하여 곧 열매를 맺게 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쓰인다. 농작물을 가꾸는 일만이 짓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도 짓는 일로 여겼다. "자식농사"도 그래서 생긴 말이며, 이와 관련하여 교육에 해당하는 "가르치다"란 말도 농사일과 같은 개념에서 비롯되었다. 교육이란 바로 심전의 밭을 갈고(경 또는 마), 가축을 치듯(육)  정성을 다해 후세를 기르는 일이다. 거칠고 메마른 마음의 밭을 갈고 북을 돋우고 물과 거름을 주어 가꾸는 작업, 가르쳐 일깨우고 힘과 용기를 더해 준다는 "복돋우다"라는 말도 이와 다름 아니다. "북"은 초목의 뿌리를 덮고 있는 흙덩이를 이름이다. 북을 돋운다는 말은 농작물의 밑동에 흙을 긁어모아 영양분이 고루 퍼지게 하며 바람에 쓰러지는  것을 막아 주는 일이니, 자식을 키우고 이를 뒷바라지하는 일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재배라는 한자어의 배에 해당된다고 할까.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 용어도 모두 농사일과 결부되어 있고, 동서남북 네 방위를 주축으로 하는 바람의 이름도 농사일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현대인들이 즐기는 바둑의 기원도 역시 농사짓는 일에서 찾을 수 있다. 바둑이란  "밭돌(독)", 곧 네모 반듯한 밭에다 희고 검은 돌을 번갈아 놓은  데서 유래한 말이다. 아울러 개를 부르는 보통명사 "바둑이"도 털무늬가 바둑판의 희고 검은 모습을 닮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찧고 까분다"는 말도 농사 용서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가실할(추수할) 때 거둬들인 곡식을 방아나 절구에 넣어 찧기도 하고, 키에 담아 까분다는 데서 이 말이 생겼다. 지금은 함부로 경솔하게 군다는 좋지 않은 의미로 쓰이지만 본뜻은 전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팽개친다, 평미리친다, 헹가래친다"등 이른바 "치다"류 어사들도 농사일에서 유래하였다. 팽개치다, 곧 하던 일을 중도에서 포기한다는 "팽개"는 본래  "팡개질"에서 나온 말이다. 팡개는 곡식이 여물 무렵 새를 쫓는 데 쓰이는 대토막을 이름이다. 이 대토막의 한 끝을 네 갈래로 쪼개어 작은 막대를 물려 동였다. 이것을 흙에 꽂으면 그 틈새로 흙덩이가 끼이게 마련인데, 이를 휘두르면 흙덩이가 퉁겨 나가면서 새를 쫓게 되는 것이다. 평미리치다의 평미리(레)는 됫박이나 말에 곡식을 담고 그 위를 평평하게 고를 때 사용하는 방망이를 말한다. 곡식의 분량을 잴 때 두가지 방법이 있는데, 고봉이라 하여 되 또는 말에 수북이 담는 경우와 평미리쳐서 담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평미리친다는 말은 매사를 평등하게 처리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헹가래친다는 말은 항용 운동 경기에서 쓰는 말이다. 시합에서  이긴 경우 선수들은 그들의 지도자를 높이 쳐들어 공중에  헹가래침으로써 기세를 올리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한다. 헹가래질은 본래 가래로 흙을 파기 전에 빈 가래로 손을 맞춰 보는, 일종의 예행 연습인 헛가래질에서 유래한 말이다. 사람을 들어올릴  때도 거기 참가하는 사람들의  호흡이 맞아야 하는 것처럼 가래질에도 손발을 맞추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헹가래치는 장면을 보면서 필자는 가끔 불안감을 느낀다. 한 사람을 높이 던져 놓고 뭇사람들이 일시에 빠져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 말이다. 물론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아무튼 헹가래질을 보면 서 이들 농경 용어들을 우리릐 실생활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부단히 어린 새싹들을 가르쳐야 하고, 부정한 일은 과감히 팽개쳐야 하며,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모든 여건이 평미리쳐야 한다. 여기게 곁들여 우리 사회에 헹가래칠 일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다만 모두가 합심하여 들어올린 지도자가 졸지에 추락하지 않게 자리를 지키며 끝까지 복돋워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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