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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우리말의 풍토성

    명절, 절후 용어 2 - 한가위, 수릿날 아으 동동다리

  "팔월 보름은 아으 가배날이언만 님을 뫼셔 녀곤 오늘날 가배샷다, 아으 동동 다리." 고려 때 유행하던 "동동"이라는 제목의 달거리 노래(월금농가)이다. 8월 보름에 아아, 님을 모시고 함께 지낼 수만 있다면 오늘이 참 한가위 명절다울 텐데, 대략 이런 정도로 해석되는 구절이다. 여기서 가배는 한자로 표기하고 있으나 "가운데(중)"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다. 이 고유 명절을 두고 세인들은 한결같이 추석이라 부른다. 가을 저녁, 곧 추석이라는 말이 더 유래가 깊고 운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러나 본래 우리말은 "한가위"였고 정식 한자명은 중추절이라 해야 옳다. 한가위가 우리 고유 명절인 만큼 이름도 고유어로 불러 주어야 마땅하겠기에 하는 말이다.

  "동동"에 나오는 가배는 고유어 "가배(기본형은"갑")"를 소리 나는 대로 한자로 적었다고 했는데, "갑"이 가운데를 뜻하다 보니 한가위는 한가운데를 이른 말이다.여기서 한가운데는 계절의 정중앙을 말한다. 음력 7월과 8월, 9월까지의 가운데, 곧 8월이 삼추의 중앙이요 한 달 30일 중에 15일(보름)이 한가운데가 되니 한가위를 중추절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곡이 영그는 가장 풍성하고 아름다운 계절 가을의 한가운데, 그런 한가위하면 우선 둥근 보름달이 떠오른다. 그 보름달 아래 둥글게 둘러앉아 오순도순 정담을 나누는 가족들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른다. 풍요와 화합을 의미하는 원형은 한가위의 상징이다. 달떡이라 부르는 송편은 보름달을 닮아 둥글고, 한가위 음식의 별미인 토란이나 송이 역시 둥글기는 매한가지다. 마을 아낙네들은 한 방에 둘러앉아 두레길쌈을 하면서 돌림노래를 즐긴다. 남정네들의 씨름판이나 쾌지나칭칭나네의 놀이판도 역시 둥글게 펼쳐진다. 둥근 보름달이 둥실둥실 떠오르면 여인들은 둥글게 원을 그리며 감감술레 놀이를 펼친다. "감고 감아라, 수레바퀴처럼 감아라." 이때 목청껏 부르는 노래가 "감감술레"가 되고 이것이 오늘날 강강술래가 되었다. 강강술래의 어우너에 대한 견해는 매우 분분하다. 강한 오랑캐가 물(바다)를 건너오기 때문에 대비하라는 뜻에서 강강수월래가 되었다거나, 또  "꽁꽁 숨어라, 술레한테 잡힐라."에서 왔다는 설도 모두 억측에 불과하다. 고려시대에 불린 노래에 어떻게 임진왜란 때의 이순신 장군이 등장할 수 있겠는가?

  마땅히 고유어로 불러 주어야 할 명절로는 수릿날(단오)도 예외일 수가 없다. 월령가  "동동"에서 음력 5월장을 찾아본다. "오월 오일에 아으 수릿날 아침 약은 즈믄 핼 장존하실 약이라 받잡노이다. 아으 동동다리." 5월 5일 수릿날 아침에 드리는 날은 천년 만년 장수할 약으로 알고 바치옵나이다, 대략 이런 뜻인데 여기서 말하는 장수약이 값비싼 보약이 아니라 쓰디쓴 익모초와 쑥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음력 5월이면 닥쳐올 무더위와 각종 여름병에 대처하기 위해 쑥과 익모초를 뜯어 이를 약으로 알고 먹었다. 특히 5일 단오에 여인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 뿌리로 비녀를 만들어 머리에 꽂았다. 쑥과 익모초와 창포는 어느 것이나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자연의 산물이며, 그 효능에 대해서는 현대 의학에서도 증명되고 있다. 머리 꼭대기를 정수리라고 한다. 여기서 "정"은 곁다리로 붙은 한자어로서 "수리"라는 말 자체가 맨 꼭대기란 뜻이다. 수릿날은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서 똑바로 내리쬐는 날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수릿날은 한자어로 단오, 단양, 중오절, 천중절이라 함도 그런 이유에서다. 태양빛이 하늘 정수리에서 내리쬐기에 일년 중에서 가장 양기가 왕성할 것이며, 이런 날 정오에 창포물로 머리를 감으면 그 양기가 몸으로 곧장 스며들 것이 틀림없다. 지금도 창포가 비듬 제거용 약의 원료로 쓰인다고 하니 우리 조상들의 지혜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고유 이름을 잘 보존하고 있는 명절은  단연 설날의 "설"과 대보름날의 "보름"일  것이다. "설(원단, 정초)"은 나이를 세는 "살"과 마찬가지로 처음(초), 시작(시)을 뜻하는 "서리" 또는 "사리"가 줄어든 말이다. 서리,사리에 모음간 "ㄹ"이 탈락하면 새 또는 쇠가 되는데, 이 말은 현대어의 "날이 새다, 새롭다, 설을 쇠다"에서 흔적을 볼 수 있다. 설이라는 고유 이름이 지금도 쓰이고 있는 만큼 11월(음력)의 동짓날은 "아치설" 또는 "작은 설"로 불러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치"는 본래 "아시"가 변한 말로서 작다는 뜻의 고유어이다. 둘째 아이가 태어날 때 "아시본다"고 하는데, 여기서 아시는 작은 아이, 곧 동생을 뜻한다. 그런데 아치설이 난데없이 까치설로 둔갑한 것은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라는 동요 탓이 아닌가 한다. 찹쌀 새알심을 넣어 팥죽을 쑤어 먹는 동지는 단순히 24절기의 한자식 명칭에 불과하다. 정초의 큰설을 맞기 전 그 전초에  해당되는 작은 설이기에 고유어대로 아치설이라고  불러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지금은 전통의 세시 풍습이  변하여 명절에도 부모님이 자식을 찾아 상경하고, 또 자식들은 고향에 가는 대신 해외 여행이나 유원지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다. 풍속은 세태에 따라 이처럼 변한다  해도 고유한 명칭만은 잊지 말아야겠다. 특히 고유 명절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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