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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고유 이름 산책

   신도시의 이름

  일산과 김정숙군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영변에 약산 / 진달래꽃 /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봄이 오면 우리 땅 어디든 진달래가 피지 않는 곳이 없으련만 우리가 유독 영변을 떠올리는 건 김소월의 "진달래꽃" 덕분이리라. 비록 가볼 수 없다 하더라도 영변은 우리에게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연인들의 애틋한 이별의 현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진달래꽃의 본고장 영변에 지금은 원자력 발전소가 있고 핵무기를 만드는 시설이 들어서 있다고 한다. 이별의 고장, 명시의 무대가 지금은 죽음과 공포의 무대로  돌변했다고나 할까. 진달래를 나라꽃(국화)으로 섬긴다는 북한이 하필이면 왜 그 꽃의 본고장인 영변에 핵무기 공장을 세울 계획을 세웠을까? 대포동에는 미사일 기지가 있다고 한다. 미사일도 대포의 일종이기에 그 이름은 그런 대로 어울린다고(?) 하겠다. 노동 1호, 노동 2호의 미사일명에서 "노동"은 노동이 아니라 지명이라고 한다. 어떻든 영변에 핵시설이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세월 따라 강산이 변할지라도 우리에게는 꼭 간직하고픈 지명의  유래와 전설이 있다. 영변의 진달래도 그런 것 가운데 하나이다. 영변이 핵무기가 아닌 진달래의 전설로 남아 있을 때, 어느 시구처럼 무궁화도 진달래도 백의로 물드는 그날이 올  때 비로소 하나 되는 한반도, 한마음 되는 그날이 오리라 믿는다.

  북한은 해방 후 반세기 동안 15회에 걸쳐 행정 구역을 개편했기 때문에 생소한 지명이 너무나 많다. 장진강과 허천강의 두 강에서 연유한 양강도, 평북 자성과 강제의 머리글자를 딴 자강도라는 도명도 우리에겐 생소하다. 그러나 이보다는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랄 수 있는 특수한 지명들, 이를테면 김일성의 부친명을 딴 김행직군, 전처명을 딴 김정숙군, 김정일을 지칭하는 새별군, 항일 유격대 대장이었다는 김책시 등은 우리를 더욱 당황스럽게 한다. 사람 이름을 딴 지명뿐 아니라 선봉군, 영광군, 낙원군, 천리마구역,  붉은거리동(평양), 태양동, 영웅동, 해방동, 전우동, 충성동, 전진동, 전승동 등도 한결같이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통일이 되면 이 지명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새롭게 마을이 조성되었을 때는 거기에 어울리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 다만 새 이름을 지을 때는 지역의 특성에 어울리는 합당한 이름을 찾아내야 한다. 북한의 경우처럼 국가 이념이 지나치게 강조되어서도 안 될 것이고, 남한의 경우처럼  충분한 논의 없이 졸속으로 명명되어도 또한 곤란하다.

  최근 수도권에 건립된 신도시의 이름에서 졸속의 예를 찾는다. 대표적인 신도시로 분당을 들 수 있겠는데, 이 지명의 유래와 뜻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 같다. 언뜻 생각하면  어떤 정당이 둘로 나누어지는 분당인 것도  같고, 또 "당"자가 있어  중국의 지명을 흉내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분당은 본래 분점리와 당우리가 합칠 때 머리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두 마을이 합칠 때 이런 식으로 머리글자를 따면 두 지역민의 반감을 줄인다는 이점은 있으나 지명 본래의 뜻을 잃어버린다는  단점도 있다. 정작 분당의 중심지는 "돌뫼(돌산)로서 이 이름은 채택되지 못하고("돌마"라는 이름으로 일부 남아 있음) 일제 때 억지로 붙인 분당이라는 이름만 남게 된 것이 아쉽기만 하다. 이름은 한 번 불리어지기 시작해면 다시 바꾸기 어렵다.  분당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이를 합당으로 고칠 수도 없는 일이니만큼 처음부터 명명에 신중을  기했어야 옳았다. 이런 지명은 비단 분당만이 아니다. 산본이나 평촌, 일산 중동 등 수도권 신도시의 이름이 한결같이 일본식 지명의 잔재라는 것은 이미 지적된 바 있다. 특히 산본이나 일산은 일본인의 이름 냄새가 진하게 풍겨 꺼림칙하다. 산본이란 수리산 아래 있던 마을로 산이름 그대로 "수리"라고  불러도 좋았으리라 생각된다. 수리는 꼭대기나 으뜸을 뜻하는 고유어로서 비록 한자가 없기는 하나 "서울"이 한자가 없더도 불편함이 없는 것처럼 그저 수리라는 고유어로 족할 것이다. 일산의 본래 이름은 큰 산이라는 뜻의 한산이었다. 한강의 하류로서 인근의 송포면 덕이리 한산 마을을 한뫼(한메)라고 불렀는데, 일제가 경의선을 건설하면서 의도적으로 일산으로 개칭한 것이다.

  일제가 빼앗아간 우리 고유 지명은 너무나  많다. 국호조차 Corea에서 Korea로 바뀌었고 동해 또는 한국해(Sea of Korea)가 일본해(Sea of Japan)로, 독도가 죽도(다케시마)로, 영일의 호랑이 꼬리(호미)가 토끼꼬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광복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회복하지 못한 지명이 많은데 이처럼 신도시  이름마저 일본식을 따른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최근 신도시의 건설이 졸속이었다는 비난이 있는데 정작 졸속은 그 땅의 작명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 지역 주민들이나 학술단체의 건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런 건의를 무시해 버린 당국의 처사가 졸속이었던 것이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지명은 단순히 지표상에 한 지점을 다른 곳과 구분 짓기 위해 붙인 이름만은 아니다. 그것은 조상들이 살고 간 흔적, 곧 숱한 역사가 앙금처럼 누적된 문화의  유산이다. 새로운 이름을 지을 때는 남쪽이든 북쪽이든 좀더 신중을 기했어야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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