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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1. 강은 우리의 어머니

         강과 삶

  산이 있는 곳에 물이 있듯 강이 흐르는 곳에 삶이 깃든다. 목숨살이의 말미암음이요, 여름지이의 어머니가 강이다. 강이란 무엇인가. 한자로 보면 강은 샘물이 모인 내가 이루어 낸 것이요, 본디 말로는 가람이 된다. 이름하여 가람이란 갈라 놓은 가름. 가람이 흐르는 곳이면 반드시 이 마을 저 마을이 나누어 지고 이런 저런 겨레들의 갈래가 이루어 진다. 사람의 삶이 처음 열리던 문명의 새벽은 모두 강에서 비롯했다. 하루로 치면 분명 새벽이요, 계보로 따지자면 어머니에 값한다. 마침내 문화와 문명이 펴어 나아가는 삶의 모꼬지요, 옹달샘이 된다. 우리의 경우 한강, 낙동강, 대동강을 비롯한 5대강 유역에 6대 도시가 형성되었으며 그 물을 쓰면서 오늘의 문명을 열어 왔던 게 사실이다. 이제 인류 문명의 새벽을 연 강물에 얽힌 이야기를 더듬어 보자.

  메소포타미아와 서남 아시아 그리고 이집트로  이어지는 오리엔트 문명을 먼저 살펴 본다. 늦 여름이나 이른 가을이면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비가 내려 홍수가 진다. 나일강의 상류 지방은 우리보다도 훨씬 많은 비가 내린다. 하여 큰 피해도 입지만 동시에 중류 하류 지역으로 가면 기름진 들판이 만들어져 말 그대로 엄청난 생산의 보금자리를 이루게 된다. 해서 그리이스의  유명한 역사가인   헤로도투스(Herodotus 기원전 484-425)는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라고까지 하였다. 참으로 나일강  없이 이집트 문명이란 생각할 수조차 없지 않은가.  때때로 밀어 닥치는 홍수가  주는 어려움을 막기 위하여 둑을 쌓아야 했으며 여름지이에 물을 쓰기 위하여 저수지와 많은 도랑도 만들어야 했다. 중하류의 나일강 유역에는 일년 중 거의 비가 오지 않으니 홍수가 났을 때 물을 가두기 위한 저수지가  필요했다. 엄청난 노력이 들었다. 둑과 저수지를 만드는 물 다스리기 - 치수의 일은 도저히 한 마을의 힘으로는 해 낼 수가 없었다. 해서 여러 마을이 어우러 힘을 합했으니 이에 큰  마을이 생겨 났고 이른 시기에 힘 센 나라가 만들어 졌던 것이다. 이집트를 다스리는 임금의 권위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힘 든 일을 슬기롭게 해 나가기 위해서는 억센 정치력이 있어야만 했다. 서력 기원전 삼천년 경에 앞 선 이집트와  뒤 선 이집트가 힘을 합해서 통일된 이집트를 이룬다. 고왕국 - 중왕국 - 신왕국시대를  지나 약 이천오백년의 역사를 누린다.

  겨레를 다스리는 사람과 신에게 제사하는 종교직능자가 같은  사람의 시대 곧 제정일치 시대가 옛 문명의 새벽적에 공통된 특징이다. 이집트 경우도 그 예외는 아니었으니 파라오(Paraoh)가 바로 교황에 맞먹는 통치자였다. 파라오는 태양신 라의 아들이었으며 파라오가 제사를 모시는  것은 다름 아닌 태양신 라(Ra)였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신으로 우러름을 받았으니 그의 권위는 '신 - 태양신'이 내린 만큼 절대적이었다. 권력의 상징물 가운데 하나가 피라미드로서 죽어서도 사는 권위의 화신이 아닌가. 쿠푸 왕의 피라미드는 높이 146미터 밑변의 한쪽 길이가 230미터 평균 1.5톤의 돌 230만개를 쌓아올렸다 하니 놀랄 만하다. 매년 10만명씩 일을 하였고 30년이나 걸렸다는 얘기. 영혼불멸이라 해서 육체를 남겨 두면 죽은 뒤에도 저승에 가서 이어 산다고 믿었던 것이다. 시체에 약을 바르고 천을  감아서 썩지 않게 미이라로 만들어 피라미드 안에 넣어 두는 것으로 본을 삼는다.  일종의 부활 - 다시 태어나는 삶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은 부활인가.

  다시 사는 부활신앙도 그 뿌리는 나일강이라 한다. 나일강과  관련해서 옛부터 전해 오는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신화가 있었다. 오시리스(osiris)와 이시스(Isis)의 이야기다. 같은 어머니 몸에서 태어나 부부가 된 것이다. 이는 모르간(Morgan)의 고대사회(하) 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형제들끼리의  혈족혼이 옛적에는 행하여 졌을 가능성을 드러낸다. 죽은 뒤에 모두가 신이 된다. 오시리스는 이집트 사람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고, 쇠붙이로 농기구를 만들어 쓰게 했으며 법률을 널리 알려 사회 질서를 바르게 하는 등의 거룩한 임금이며 신으로 숭배를 받았다. 이집트는 물론이요, 그의 가르침은 나라 밖에까지 미쳐 많은 겨레들에게 빛을 남겨 주었다. 그러다가 동생인 세트(Set)신은 질투와 노여움으로 에티오피아의 여왕과 함께 짜 가지고 오시리스를 죽여서 시체를 나일강에 던져 버린다. 그의 아내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주검을 찾아 내었지만 세트는 다시 빼앗아 오시리스의 주검을 14개로 잘라 여러 곳에 흩어 버린다. 이시스는 여러 곳에 흩어진 주검을 거두어 베로 온 몸을 감아 약을 뿌리고는 미이라로 만들었다(비옥근안정 애굽종교문화사 174면). 기쁨에 넘친 나머지 이시스(Isis)는 새가 되어 오시리스의 둘레를 이리저리 날았는데 날개 바람이 오시리스의 코에 들어가 다시 숨을 쉬게 된다. 오시리스는 이미 저승에 가서 그곳에서 임금이 되어 있었다는 것. 그의 아들 호루스(Horus)는 자라서 세트를 죽임으로써 아버지의 복수를 한다. 호루스는 본디 남쪽의 신이었는데 옛 이집트에서는 독수리의 신으로 떠받들기도 하였다. 뒤에 여신 하톨(Hathor)의 아들이 되었다가 오시리스신 숭배와 어우러짐으로써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아들로 다시 바뀐다. 마침내 태양신 라(Ra)의 숭배와 결합해 태양신의 자리로 오른다. 사납고 못된 신 세트(Set)를 물리침으로써 이집트 왕들의 할아비가 되어 임금들은 자신들이 '호루스의 아들'임을 스스로 일컬었다.

  영어로 강을 리버(River)라 한다. 말의 뿌리를 캐어 보면 라틴말로 리파리우스(Riparius) 곧 '둑'- 물을 막기 위하여 쌓아 놓은 흙더미란 말이다. 또 리버는 '죽사리의 갈림길'이란 뜻으로도 쓰였으니 강이란 참으로 삶의 결정적인 구실을 하는 역사의 뿌리 깊은 의미를 드러낸다. 이와 같이 말이란 사회생활의 쟁기가 됨은 물론이요, 사람들의 문화를 알게 하는 까닭에서 비롯한다. 이집트 신화 또는 벽화에서 이시스가 그의 아들 호루스를 팔에 안고 젖을 먹이는 모습을 아주 좋아 하여 많은 돌그림이나  조각에 이들 모자의 모습을 그려 넣는다. 상징적으로 보아 이는 무엇을 드러내고 있을까. 호루스의 어머니 이시스는 나일강이며 강의 여신이다. 아들 호루스는 이집트 겨레들이며 사람들은 나일강의 젖줄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 강은 생명인 동시에 죽고 사는 갈림길의 상징임에 틀림 없다. 또한 부활의 말미암음이다. 힘은 힘을 부른다. 강력한 생산력과 공격의 힘을 갖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더 많이 다스리고 싶어 하고 더 많은 땅을 갖고자 싸워 댔다. 빛이 있는 곳에 그늘이 따라 가게 마련. 하지만 쇠붙이로 말미암아 먹고 입고 살아  가는 집의 모양이 아주 달라졌으니 큰 개혁이 일어난 셈이라고 할까. 강이 흐르는  곳에 삶이 있고 삶이 깃드는 곳에 문화는 꽃 피어 그 열매를 거둔다. 마치 봄이면 나일강 가에 씨앗을 넣고 가을 되면 열매를 거두어 들였다가 이듬 해 다시 씨앗을 내어 놓는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신화인 것처럼.

    강의 질서와 인간

  이집트와 때를 같이 하여 오늘날의 이라크 땅인 메소포타미아의 벌판에서도 강을 따라 문명의 강은 흐르기 시작. 본래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란 '두 강 사이에 있는 땅'을 뜻한다. 이르자면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서 생겨난 삶의 터전이란 말이 된다. 홍수 때문에 물난리를 겪어야 했던 일은 나일강에서와 마찬가지이다. 벌판을 일구고 여름지이를 하자매 강물을 쓰는 건 당연한 과정이었으니 여러 마을이 합하여 도시국가를 이루기에 이른다. 여기에는 강력한 힘의 통제와 다스림이 필요했다. 큰 강물의 홍수에 맞서는 것만큼이나 말이다. 주로 슈메르족이 중심을 이루었으며 신전을 세우고 청동기와 글자도 만들어 썼으니 옛 문명의 새벽길을 활짝 열어 젖힌 셈이라고 할까. 이른바 쐐기 모양의 설형문자가 그것이다. 기름진 메소포타미아는 주위 여러 겨레들이 눈독을 들이던 터전이었다. 마침내 기원전 이천년 경에 바빌로니아 왕국이 서게 되었고, 그 가운데 함무라비 왕은 많은 백성을 강력하게 다스리기 위하여 법률을 만들었으니 이가 곧 '함무라비 법전'인 것이다. 죄인은 지은 죄만큼 벌을 받게 하는 대응처벌이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뼈에는 뼈'와 같이 그대로 갚아 주는 법이 중심을 이루었다는 속내. 기원전 1500년 경 세계에서 가장 먼저 쇠를 썼던 힛타이트 사람들에게 무너졌다. 어쨌든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가에서 나일강의 이집트와 더불어 옛 문명의 길을 열고 닦은 일은 우연의 일치라고는 할 수 없다. 농사를 짓느라고 이에 필요한 달력.셈.하늘 보고 점치는 천문학이 비롯하였다. 이집트 사람들이 태양력을 썼다면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태음력을 썼던 것이다. 뒤에 페르시아 제국으로 이어졌으며(기원전 525년), 힘이 센 중앙 집권의 정치를 행한 터전이 되었다.

  믿음으로 보면 이들은 색 다른 점이 있었으니 배화교(拜火敎)로 불리우는 조로아스터교가 그것이다. 세상을 선과 악의 두 신이 싸우는 마당으로 보아 광명의 신 아후라마즈 다. 곧 착한 신과 함께 하면 죽어 천당에 가고 나쁜 신인 암흑의 아리만과 함께 하면 지옥으로 떨어진다. 이 같은 생각은 뒤에 유다교나 그리스도교에 큰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어 기독교의 처음이라 할 유다의 왕국이 뒤를 잇는다. 이들의 조상은 말할 것 없이 헤브라이인들이었다. 헤브라이는 히브루(Hebrew)라고도 하는데 '강을 건넌 사람'이란 뜻으로 이집트에서 학대에 못 이겨 요단강을 건넌 사람들이란 말로 간추려 진다. 그럼 인도와 중국의 경우는 어떠했는가. 성자의 강이라고 불리우는 갠지스와 인더스 강의 가장자리에 빛나는 문명의 보금자리를 튼 것이다. 인더스 문명은 모래 속에 파묻혀 있던 나머지 물건들이 드러남으로써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유물로서 구리로 만든 그릇과 아름다운 흙그릇들, 갖가지 금은으로 된 장식품들이 나왔으니 당시에도 상당한 수준의 문명이 있었음을 보이고 있다. 까닭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기원전 1500년 전후에 무너졌으니 지금의 드라비다족의 조상들이 아닌가 한다. 중국의 경우는 어떤가. 황하와 양자강이 곧 중국의  옛 적 문명의 터전이었으며 특히 황하 유역인 화북지방이었다. 기름진 황토 벌판은 농업생산에 알맞은 보금자리라. 기원전 2000년 경에는 흙으로 이루어진 토성으로 둘러 싸인 자연부락 - 도시들이 생겨났고 작은 마을을 한데 어울러서 점차 큰 도시국가로 펴 나아갔다. 한자로 나라국자의 네모는 바로  토성으로 둘러 싸인 도시 모양을 본 뜬 것. 네모(口) - 큰 입구 안에  창과 사람이 하나의 통치자를 중심으로 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國). 이는 바로 농업생산과 마을의 번영을 지키기 위하여 함께 힘을 모은 공동체가 나라란 뜻이 아니던가.

 끊임 없이 쳐 내려 오는 흉노족들의 공격을 막으려고 쌓은 만리장성도 나라를 지키고 중국의 전 국토를 하나로 묶어 보려는 상징물이다. 특히 중국에는 땅이 커서 그런지 가뭄과 홍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전해 온다. 우(禹)임금의 물 다스림이 바로 그 대표이다.  서경(書經) 에 따르면 강물이  넘쳐 흘러 아픔을 겪었다. 해서 순 임금은 곤 임금에게 물을 잘 다스리도록 하였으나 잘 안 되었으므로 우 임금에게 10년 동안 물을 다스리게 해서 뜻을 이루었다. 따라서 순 임금은 우 임금에게 임금의 자리를 물려 주었으니 그만큼 강물에 대한 관심이 컸던 게 아니었을까. 삼황오제에서 하 왕조로 다시 은 왕조로 이어지면서 강과의 삶이 펼쳐 진다. 은나라의 도읍을 은허라 하는데 이 곳에서는 제사 그릇, 무기 등 청동기 제품과 글자가 새겨진 거북의 껍데기 - 귀갑(龜甲)과  짐승의 뼈가 나왔다. 이르러 갑골(甲骨)문자라 한다. 갑골문자는 귀갑점이라 해서 은나라의 왕들이 전쟁이나 물로 말미암은 큰 어려움이 있을 때 점을 치는 데 썼던 글자이다. 불에 태운 거북의 껍데기나 짐승의 뼈 안쪽에 간 금을 보고 좋고 나쁜 걸 점쳤다는 얘기. 하지만 일종의 물신앙이요, 토템이기는 하지만 어찌 보면 유사시에 발뺌을 할 구실을 미리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거북이는 주로 물신의 상징으로, 짐승의 뼈는 소나 곰과 같은 짐승을 숭배하는 수조신앙(獸祖信仰)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해서, 임금이 정치는 물론이요, 신에 대한 제사도 아울러 맡았으니 이런 때를 제정일치 시대라고 한다. 황제들의 옷에 용을 그린 것은 바로 물신 숭배요, 황금빛은 하늘의 태양을 섬기는 제사장의 옷을 드러내는 보람이 된다.

   강은 겨레의 어머니

  태양숭배나 짐승을 숭배하는 제정일치의 문화는 우리 겨레에게도 있었다. 삼국유사에 따르자면 '단군'은 곰부인과 하늘에서 내려 온 환웅 사이에서 태어난다. 여기 곰(혹은 고마 <용비어천가>)은 바로 사람의 조상으로 섬겨지는 토템이기도 했다. 조선왕조의 옛 말 자료에서 곰(고마)은 경건하게 그리워 해야 할 대상으로 풀이된다(고마敬 고마虔 고마欽 <신증유합>). 같은 계통의 말인 퉁그스어에서는 '곰(고마)- 영혼 - 조상신'과 같은 뜻으로 그 걸림을 보이고 있다. 나머지 태양숭배는 어떻게 풀이하면 좋은가. 단군왕검에서 왕검은 '님금(임금)'으로 읽고 이는 다시 니마(님)와 고마(곰)로 가를 수 있다. 이 때 니마(님)가 태양신을 드러낸다. 본시 단군이란 오늘 무당을 뜻하는 전라방언의 당골. 당골레미. 당굴레와 같은 뜻으로서 제사장을 이른다. 하면 제사하는 그 대상이 바로 태양신 '니마(님)'와 태음신 '고마(곰)'가 된다. 부모에 비긴다면 단군에게는 태양신계의 환웅이 아버지요, 태음신계의 고마(곰)가 어머니이다. '어머니'의 사투리말이 지역에 따라서는 '오마 옴마 암마 엄마 어무이 어매 어머이 어머니'와 같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드러난다. 우리는 이런 여러 가지 형태들을 변이형이라고 한다. 우리말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소리도 바뀌고 그 뜻도 바뀌었다. 이르자면 '새비 - 새우 개금 - 개암 누비 - 누에 가슬 - 가을 겨슬 - 겨울' 등과 같은 보기들이 그러한 경우다. 옛 적에는 마누라 영감이 모두 벼슬에 대한 부름말이며 가리킴말이기도 하였으니까.

  마찬가지로 겨레들의 조상신이요, 영혼으로 떠  받들던 숭배의 대상 고마(곰)의 '곰'에서 곰(굼 검 금 감) - 홈(훔 험 흠) - 옴(움 음 엄 암)으로 바뀌고 말조각이  덧붙어 오늘의 '어머니'가 되었다. 옛날 신화의 표현이나 대표적인 말은 겨레의 뿌리됨을 드러내는 일이 많았다. 우리는 이를 일러 뿌리상징이라 한다. 수렵생활에서 농경생활로 뿌리 내리면서 고마(곰) 신앙은 그 내용이 물과 땅, 그러니까 지모신 숭배로 그 속내가 바뀐다. 물과 땅은 농사의 어머니요, 젖줄이며 밑바탕이니까 말이다. 땅이름 가운데에서 강의 이름이 아주 오래동안 변하지  않고 쓰인다고 한다. 가령 경북 제일의 큰 평야요 농업생산의 터전인 금호평야의 금호 - 금호강이 그러하고 충청도의 금강(錦江) 또한 이러한 어머니의 신앙이요, 고마(곰) 숭배신앙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한다. 지금도 금강가 곰나루엔 곰사당이 있으며, 금호강의 말미암음인 영천의 보현산을 대동지지 에는 모자산(母子山 - 어머니산)이라고도 함을 보고 이는 다시 검단산(儉丹山)으로 이어짐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쓰이는 한자는 다르더라도 드러내는 소리상징은 같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방위로 보면 이들 고마(곰)계의 강이나 산은 거의가 북쪽인데 이는 우리 겨레의 뿌리가 북방지향에서 말미암은 탓. 이르자매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는 별에 대한 믿음 따위가 그러한 보기들이다.

  굽이쳐 흐르는 강은 언제나처럼 우리들의 몸과 마음의 고향이다. 하지만 산업사회의 공해, 사람들이 쓰다 버리는 나쁜 물로 강물은 더 이상 우리들에게 젖과 꿀이 아니며 아예 해독을 주는 독약이 되어 간다. 강이 죽어 가고 있다. 우리 삶의 어머니가 점점 시들어 가지를 않는가. 금수강산이 공해의 강산으로 바뀌고 있음은 실로 안타까움이요, 통탄스러운 일이다. 조상 대대로 물려 받은, 하늘로부터 받은 우리들의 강은 우리의 얼이 담기는 삶의 공간, 안식과 정서가 깃들이는 온누리 문화의 옹달샘이어야 한다. 어머니의 젖을 빨던 어릴 적의 마음으로 물을 다루고 강과 우리의 자연을 가꿀 일이다.

     강을 건너며

  노을은 지고 어두운 밤의 어스름. 봄가물로 메말라 가릴 것 없이 드러난 강바닥을 철벙거리며 건너고 있다. 언제나처럼 금호강은 높낮이를 따라 가벼운 바람에도 흔들리면서 스스롭게 밤의 세상을 안아 돈다. 오염이 심하다고, 강이 죽어 간다고 아우성들이건만 말없는  강은 뭇 시름을 나르고 있을까. 물새들만 찾아오는 밤을 홀로 깨어  흐르는듯 술렁이며 흐르는 강이 어쩐지 외로워 보인다. 연암이 건너던 강물도 이러했을까.  거룻배 하나 없는 강언덕을  굽이쳐 능금꽃 향내음을 머금어 늘 그 양으로 가는 곳은 낙동강. 그리운 영혼이듯 초승달이 오르면 강은 마음을 열고 눈을 두리번 거린다. 내 별은 어디 있을까를 헤아리면서. 언제나 미리내 고운 흐름으로 그 먼 나라  두고온 영혼의 강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음을 설레이는 건 아닐지. 이내 낙동강이  강어구에서 손짓을 한다. 어서 따라 오라고 저 구름 흘러 가는 곳으로 가자고. 밤강이 새를 부르는가. 바람의 노래를  부르는가. 갈대밭 향내로운 언덕에 꺼웍이며 물오리들의 소리가 가까이 들리고. 더러 달밝은  밤이면 달님은 도처에 저승에의 꿈을 뿌린다. 저리고 아픈 강의 가슴과 허리를 감싸 안는다. 좀 쉬라고. 너무 지쳤다고. 다시 온 누리에 우리네 사람들을  보고 타 이른다. 여기 당신들의 젖줄이 흐르고 그 영혼이 사위어 간다고

. 옛말로 강은 가람이었다. 이 마을과 저 마을이 갈리고 이 겨레와 저 겨레가 갈리던 가늠자. 애틋한 마음으로 못 잊을 임을 강건너 보내고 출렁이는 강물만. 그 속의 푸른 하늘만 물끄러미 보던 남정네와 아낙네들. 때로 갈라짐이란 새로운 삶에의 비롯됨으로도 떠 오른다. 불타오르던 꽃잎이 갈라져 떨어진 그 자리에 하늘과 땅이 만나는 목숨살이의 말미암음이 있듯이. 세월속에 묻혀 버린 가야와 신라의 사이가 곧  낙동강이었으니 말이다. 가까이 북녘으로 팔공산을 바라보며 왕건과  견훤의 이야기며 연구산의  돌거북 이야기를 들려 준다. 바람에 서걱이는 묵은 갈대의 소리와 물굽이에 부딪는 바람소리로. 밤만 되면 낙화암 아래 보로 생긴 못물 위에 전설같은  별꽃이 피어 오른다. 두고온 영천의 어머니산을 그리는  설레임으로. 전혀 흐르는 물소리조차  멎어 버린다. 어둠침침하게 구름에 가린 달그림자 사이로 물비린내가 바람결에 묻어 온다. 때로 독한 시궁창 냄새와 같이. 참으로 야단이구려.

  이제 초승달은 지고 더욱 어두워 온다. 이 어두운 밤을 나르는 밤새들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가까이서 들린다. 자갈밭을 걷는  내 발자욱 소리에 놀랐음인가. 솨-악 퍼드득 거리며 밤의 허공을 새들이 날아 오른다. 소나기  내린 뒤 부는 바람에 떨어지는 나무숲의 빗소리 같다. 그 가난한 강의  어름쯤에서 새들은 무얼하고 있었단 말인가. 먹거리를 찾는 너희들이나  일 마치고 이 밤을  따라 강물을 건너는 나나 다를 게 없구나.  먹이사슬의 고리들로 강물은 어둠만큼이나  짙게 드리워져 있다.

  살다 되돌아 갈 고리처럼. 강은 이 밤도 말없이 뭇  목숨을 갈라 놓으며 엄청난 목숨살이들의 뜨락에 물을 댄다. 불을  지핀다. 생명의 불꽃. 강물이  여러 갈래의 시내를 어우르듯이 큰 어울림의 가락으로 흐른다.  맑고 푸른 금호강의 꿈은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보리삼단 같은 그 치렁치렁한 어머니의 머리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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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우리말의 상상력 1 - 3. 3-1. 싹과 사이 (1/2) 바람의종 2009.05.12 3071
173 우리말의 상상력 1 - 2. 굿과 혈거생활 (4/4) 바람의종 2009.05.09 3110
172 우리말의 상상력 1 - 2. 굿과 혈거생활 (3/4) 바람의종 2009.05.09 2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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