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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1. 강은 우리의 어머니 - 금강(錦江), 그 영원한 어머니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물밀어 들어오는 외세에 대항하다 녹두장군 전봉준이 마지막 덜미를 잡힌 곳이 바로 금강이 북서로 휘돌아 가는 공주의 우금치 고개. 다만 동학혁명군 위령탑이 지는 노을에 외로울 뿐이다. 금강가에 살면서 '껍데기는 가라'고 외쳤던 신동엽 시인도 곰의 전설과 함께 강물 소리 속에서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물굽이이듯 우리의 땅을 안아 돈다. 금강의 본 이름은 웅천하(熊川河)였다. 공주의 동북 5리 쯤에서 흐르며 그 근원은 전라도 장수(長水)의 물갈래 고개에서 갈라져 북으로  흘러 진안의 용담, 무주, 금산, 영동, 옥천, 회덕을 거쳐 공주에 이른다. 공주의 북쪽을 고리 모양으로 안고 흘러 정산, 부여에 이르매 여기서는 그 이름을 백마강(白馬江)이라 한다. 다시 석성, 은진, 임천, 한산, 서천을 지나 진포(鎭浦)로 가서 바다로 든다. 그러니까 전체 모습이 낚시 갈고리처럼 흐른다. 해서 고려조의 왕건은 훈요십조(訓要十條)에서 공주 금강 이남의 사람들은 강의 모양처럼 마음이 갈고리져 있으니까 인재 등용을 삼가하라는 말씀. 아니 강이 뻐드렁니이면 어떻고 용의 모양이듯 뒤틀렸으면 어떤가. 별 수 없이 풍수지리설에 따라 지역 감정을 말뚝 박은 것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이러고서도 나라가 평안하기를 바랐던가. 한심한 일이다. '금강 - 웅천 - 곰내'로 그 걸림을 생각하면 '곰'에서 그 이름들이 지어졌으며 공주의 공(公)도 곰에서 비롯했음을 알 수가 있다. 본디 곰(고마 구무(굼))은 말끝에 기역(ㄱ)이 붙는 말이었으니 자음접변을 따라 공이 되었을 것이요, 짐승으로서의 곰보다는 귀공(公)을 쓰는 것이 훨씬 모양새가 좋아서 공주로 고쳤을 것으로 보인다. 곰이 무슨 까닭으로 땅이름에 끼어 들었을까. 지금은 아득한 옛 일로 우리의 정서에서 멀어졌으나 본디 곰은 사람의 조상으로 떠받들어졌던 경배의 대상이었던 까닭에서이리라.

  곰에 대한 믿음은 역사 이전의 때로 거슬러 오른다. 믿음의 분포는, 한반도는 물론이요, 동북아시아, 시베리아를 비롯해서 북미에까지 걸쳐 있다. 동북아시아, 시베리아 지역의 경우, 곰신앙은 대략  신석기 시대로 미루어 잡는다. 시베리아에서는 곰신앙을 보여 주는 곰의 상(熊像)들이 여기저기에서 출토된 일이 있다. 지금도 흑룡강 둘레의 아무르 강가에서는 나무로 만든 곰상을 숭배한다고 한다. 금강에 얽힌 곰전설은 말할 것 없고, 그 뿌리라고 할 삼국유사 의 고조선조에 나오는 곰계집(熊女)에 대한 이야기도 모두가 곰신앙의 한 거리로 보아 좋을 것이다. 공주의 웅진동에서 나온 돌곰은 무녕왕릉 주위에서 길목의 밭주인 이씨가 처음으로 보아 갈무리 하던 것을 1972년 공주박물관으로 옮겨 놓은 것. 돌곰이 나온 곳은 왕릉이 있는 신성한 곳이다. 부근에 백제의 옛 무덤들이 있음을 고려할 때, 곰상은 백제 때 만들어 제사 드리는 숭배의 상징으로 썼을  것이다. 마치 절에서 불상을 놓고 예배하듯이 말이다. 곰나루에 가면 지금도 솔숲에는 곰을 제사하며 모시던 웅진단(웅진사熊津祠) 터가 있다. 공주군지를 따르자면 여기서 웅진의 물신 제사를 제사하였으니 향교에서 제사 비용으로 매년 베 54자를 이바지하였다는  것이다. 한일합방 이후에 제사를 지내지 않고 사당도 무너지게 되었다는 것. 지금은 다시 지어져 외로운 영혼을 달래고 있다.

  곰을 '고마'라고도 한다. 한데 신증유합을 보면 고마(곰)가 경건하게 숭배해야 할 보람을 풀이하였으니 곰신앙은 역사적으로 끊임없는 하나의 흐름을 이어 왔던 것이다. 그러니까 금강은 곧 고마강 또는 곰강이랄 수가 있다. 하면 고마(곰)의 소리상징은 무엇인가. 뒤의 '어머니와  곰신앙'에서 살펴 보았듯이 고마(곰)는 곰신앙을 드러내며 마침내 소리의 바뀜을 따라서 어머니가 되었다. 수렵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정착하면서 곰의 상징은 다름 아닌 땅과 물 - 지모신으로 떠 오른다. 결국 곰(고마)의 동물상징이 곰에서 거북(검水神)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물신과 고마(곰 검)

  삶의 원초적인 가능성은 물에서 비롯된다. 물이 없는 곳에 생명 현상은 없다. 농업생산이 산업의 중심을 이루던 때는 실로 강물이나 샘이란 신의 축복이요, 그런 물신이나 땅신은 우러러서 마땅하다. 마침내 물의 신은 임금이 받들어 모시는가 하면 지방의 벼슬하는 이들도 농사 때에 비를 오게 하는 등의 제사를 모셨다. 해서 임금은 용이 그려진 옷이나 그릇을 쓰는데 여기 용은 바로 물을 다스리는 신으로 상징되기 때문이다. 용과 함께 북방 또는 물을 다스리는 신을 가리키는 짐승이 거북이다. '거북'이란 말은 '거미(거무)'에서 왔다. 이는 이미 앞서 캐어 본 살핌을 따르기로 한다(박지홍(1952) 구지가연구). 경남 양산지방의 왕거미 노래에서 '거미'가 그러하고 땅이름에서도 그렇다.왕거미는 거북을 뜻하며 곰(고마)의 또 다른 변이형이다. 한반도의 땅이름 가운데 곰(고마)계와 검(거미龜)계의 이름이 널리 분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이들이 물신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어 보자.

        ('곰(고마)'의 이야기)
  ㉮. 암콤은 고기잡는 어부를 데려 가서 굴 속에서 함께 살았다. 새끼곰 두마리를 낳고서 별 일 없겠지 하고는 바위문을 열어 놓고 사냥을 갔다 와 보니 어부는 도망치고 새끼들만 있었다. 어미곰은 새끼를 데리고 물 속에 빠져 죽었다는 것. 해서 사람들은 이 나루를 곰나루(고마나루)로 부르게 되었다. 이후로 까닭없는 풍랑으로 배가 뒤집혀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어 강가에 제단을 모셔 곰을 제사하였다(충남 공주)
  ㉯. 섬진강의 동방천에 곰소라는 곳에 물 위로  바위가 솟아 징검다리마냥 놓여 있어 곰의 다리로 불리워 진다(전남 구례).
  ㉰.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사람의 부녀자를  빼앗은 죄 막심하다. 너 만일 내놓지 않으면 그물로 널 잡아다가 구워 먹겠다(수로부인(水路夫人)).
  ㉱. 왕핑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산으로 겨우 피했다. 이어 암콤에게 붙잡혀 굴속에서 함께 살게 되어 아이를 둘이나 낳았다. 암콤이 마음 놓고 나간 사이에 왕핑은 배를 타고 굴을 벗어나게 되었으나 곰은 필사적으로 따라 왔다. 왕핑은 바다의 신에게 기도를 드려 무사히 돌아왔으며 그 뒤로 물신의 사당을 지어 경배하였다(중국 후민 마을).

  중국의 후민 마을의 후민도 '고마(고모)'에서 비롯하였음을 고려하면 보기로 들은 땅이름은 모두가  곰과 걸림을 둔 이름이다(koma(komo) -  homa(homo) - oma(omo)). 생각해 보면 곰신앙 중심의 사회에서 벗어나 농경생활로 접어 드는 사회의 특성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한다. 소리는 비슷한 고마(곰) - 거미(검)이지만 동물상징이 벌써 거북으로 혹은 용으로 바뀐 것이다. 물이나 곰이 여성으로 드러남은 선사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낯 익은 모습이다. 만씨족들은 곰을 '숲의 여인 산의 여인'으로, 돌칸족들은 곰이 본디 여성이었다고 본 것이다. 이같은 생각은 시베리아의 여러 민족들에게서도 널리 퍼져 있다. 물이 생명의 어머니임은 여성이 갖는 속성과 다를 바가 없다. 바슐라르를 따르자면 물은 재생이며 영원한 사랑이요, 죽음의 상징이란 것. 하긴 물과 불(태양)이 어울려 너울대는 삶의 말미암음을 빚지 않는가. 앞서 왕건 태조의 풀이처럼 금강이 갈고리처럼 생겨서 사람들의 마음이 잘못 되었다고 함은 되돌아 볼 아무런 그 무엇도 없다. 오히려 어미닭이 새끼를 품에 안듯 우리의 뭇 가람들은 어머니이듯 우리를 감싸 돌아 흐른다. 그 푸르른 몸짓으로, 목소리로. 하여 금강은 곰신앙을 드러낸 한국인의 고향이요, 정서적인 샘줄기인 셈이다. 고려 현종이 거란의 침입을 피하여 공주에서 피란을 하였다. 이 때 지은 글을 소개하고 마무리를 하면 어떨까.

        일찍이 남쪽에 공주가 있음을 들었노라
        신선의 지경이 예나 지금도 영원히 아름다운 것을
        여기 당도하니 푸근한 마음이어라
        뭇 사람들이 온갖 시름을 놓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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