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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선산과 금오산 - 복사골에서 솟는 불도의 샘

  먼 옛날 신라땅에 불법을 전하고자 이곳 일선(선산의 옛 이름)으로 숨어든 한 스님이 있었다. 그 스님을 일러 묵호자 또는 아도라고 부르는데, 옛 기록이 워낙 들쭉날쭉하여 두 이름이 별개인지 아니면 동일인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필자는 동일인으로 보고자 하는데, 곧 한 사람을 두고 부르는 사람에 따라 호칭을 달리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북쪽에서 온 얼굴이 검은 사람이어서 "묵호자(묵호자, 또는 묵호자)"라 했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어서 "아무개"라는 뜻으로 "아도(아도 또는 아두)"라 하지 않았나 싶다. 어떻게든 얼굴이 검은 이 아무개는 일곱 살 나이로 모례라는 부잣집에 머슴으로 들어가 여러 해 동안 숨어 살게 된다. 소년 아도는 소와 양 각 1천 마리를 키우면서 새경 없이 열심히 일하다가 주인의 신임이 두터워질 무렵 어디론가 훌쩍 떠난다.

  "이 집에 칡순이 뻗거들랑 그 칡순을 따라오면 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아도는 열두 살이 되던 해에 주인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났는데 그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어느 해 겨울, 집 문턱을 넘어온 칡순 줄기를 따라 냉산 중턱으로 갔더니 과연 그곳에서 수도중인 아도를 만날 수 있었다. 옛 주인을 만난 그는 절을 짓기 위한 시주를 부탁하면서 두 말들이 망태기를 내밀었다. 그런데 그 망태기는 요상한 물건이어서 곡식을 아무리 부어도 완전히 채워지지 않았다. 망태기를 다 채우지는 못했지만 모례는 1천 섬을 시주하게 되었고, 그 시주금으로 냉산 기슭에 절을 지을 수 있었다. 해동 최초의 가람 도리사, 절을 짓던 때가 한겨울이었는데 냉산 기슭에 복사꽃과 오얏꽃이 만발했다 하여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도개면 도개동, 복사꽃 피는 마을에서 신라 불교의 길이 열렸다는 뜻으로 이런 지명이 붙었을 것이다. 모례 장자의 집터에는 아직도 옛 우물이 남아 있고, 소와 양 1천 마리씩을  키웠다는 소천골과 양천골은 냉산 북쪽 골짜기에 숨어 있다. 모례장자샘 또는 모례가정이라 일컫는 이 우물에서는 지금도 맑은 물이 퐁퐁 솟는다. 아도스님(묵호자)이 창건한 최초의 가람 도리사, 신라 불교의 뿌리가 닿은 도리사의 역사와 전설이 이 정자 모양의 우물에서 영원히 샘솟는다고 할까.

  도리사 절문을 나와 모퉁이를 돌면 눈앞에 펼쳐지는 전망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멀리 황악산과 금오산 산줄기 사이로 넓은 벌판과 유장히 흐르는 낙동강이 아련한 모습으로 들어온다. 김천의 황악산에는 아도화상과 탯줄이 연결된 또 하나의 고풍 서린 가람이 있다. 이름하여 직지사, 스님이 도리사를 세운 뒤 다시 손을 들어 북쪽의 산을 똑바로(직) 가리키며(지) "저 산에도 좋은 절터가 있다."고 한 데서 직지사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이 이름은 선가의 가르침인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에서 따온 말이겠으나 적어도 이 자리에서는 "똑바로 가리킨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다.  또 하나의 명산인 금오산은 구미의 상징인데, 이름부터 따로 떼어 생각할 수가 없다. 금오산이 명산, 명당임은 풍수지리의 비조 도선국사가 이곳에서 수도하고 득도한 사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케이블 카가 닿는 이 산 중턱에 자리잡은 도선굴이 바로 그 현장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금오산이 와불의 형상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거인산이라 일컫기도 한다. 먼 발치에서 보면 산의 능선이 임금 왕 자를 새겼다고 하고, 정상의 봉우리가 흡사 하늘의 북두칠성을 응시하며 누운 거인의 옆 모습이라 말하기도 한다. 또 정상에서 보는 산세가 낙동강에서 끌어올린 매의 형상이라 하고, 또는 거북의 꼬리를  닮았다고도 하는데 이런 연유로 구미라는 이름을 얻었다던가. 더 그럴듯한 설은 옛날 이 산을 지나던 아도화상이 저녁놀 속으로 황금빛의 까마귀, 곧 태양 속에 있다는 그 금오가 나는 모습을 보고 금오산이라 이름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금오의 전설은 한때 구미시 상모동 출신의 박정희 대통령에게 미쳐 그가 태양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것으로 희자되기도 했다.

  지명이 전설처럼 금까마귀가 노닌다 하여 금오산이 되었고, 거북 꼬리를 닮았다 하여 구미라 명명했다고 쉽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지명 전설을 액면 그대로 믿거나 지명을 한자 뜻대로 해석하고 만다면 지명 학자들은 따로 연구할 일이 없을 터이다. 구미는 원래 변진 24개 나라 가운데 군미국에서 기원하여 훗날 금오나 구미라는 이름으로 달리 표기되었다. 따라서 군미, 구미, 금오 등은 한자의  뜻과는 상관없이 하나의 어형을 나타내기 위한 차자표기로 보아야 한다. 그  하나의 어형은 큰 산이나 물(낙동강)을 지칭하는 고유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고구려의 스님 아도가 뿌린 신라 불교의 씨앗은 선산땅에서 뿌리내려 무성하게 꽃피었으니 황악산에서 팔공산에 이르는 낙동강변에만도 무려 30여 곳을 헤아리는 가람이 지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한때의 일로 오늘날에 와서 이들 사찰은 한결같이 세월의 흐름에 묻혀져 가고 있다. 더러는 몇 조각 탑신이나 주추만을 남긴 채 폐허가 된 곳도 적잖으니, 갈항사가 그러하고 동방사나 법수사가 그런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쉬운 곳은 군위에 있는 인각사이다. 이 절은 일연 스님이 만년을 보내며 "삼국유사"를 저술했다는 유서 깊은 가람이다. 울도 담도 없이 길가에 내팽개쳐진 절의 흔적들을 보며 일연 스님의 부도만이라도 거두어 법당 안에 모셔 놓은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우리에게 신화나 전설의 샘을 물려 준 일연 스님에 대한 우리의 대접이 너무 소홀하지는 않은지 한번 반성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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