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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안동과 하회 마을 - 제비연에서 물도리동까지


  신라 때 고창(지금의 안동)으로 들어가는 길목 주막에 심부름하는 한 처녀가 살았다. 연이라는 이 처녀는 일찍 부모를 잃고 이  주막에 들어와 낮에는 부지런히 손님들 시중을 들고 밤에는 글을 읽었다. 그러면서 먼저 가신 어버이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며 늘 염불을 외우곤 했다. 마음씨 고운 이 소녀의 불심을 가상히  여겼음인지 어느 독지가에게서 많은 재물을 얻게 되고, 이 재물로 고갯마루에 법당을 짓게 된다. 승려도 아니면서, 그것도 처녀의 몸으로 이런 큰 역사를 감당하기는 무리였는지 법당이 완성되던 날 연이는 서른여덟 나이로 부처님의 부름을 받는다. 그녀가 죽던 날 밤, 요란한 진동과 함께 법당 뒤 언덕 위의 바위가 갈라지면서 그 속에서 거대한 돌부처가 솟아난다. 안동 시내에서 영주로 가는 5번 국도를 타고 북으로 십리쯤 달리면 느릿한 고갯마루 암벽에 웅장한 부처의 형상이 고개를 내민다. 이름하여 "이천동 석불"(보물 제 115호), 흔히 "제비원 석불"로 통하는 이 미륵불 뒤에는 연미사라는 작은 절이 숨어 있다. 이 주변의 지형이 제비 꼬리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그런 형세는 찾아보기 어렵다.

  제비원 석불에 얽힌 전설은 매우 구구하다. "제비"라는 명칭도 연이의 혼이 제비가 되어 날아갔다는 설에서, 이 절을 지을 때 죽은 와송의 혼이 제비가 되었다는 이설도 있다.  그러나 제비라는 명칭은 이 처녀의 이름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연(혹은 "년")"이란 말은 "언년이, 끝년이" 등에서 보듯 여성 이름에 흔히 붙는 접미어이다. 전설의 주인공 연이를 문자로 기록할 때 한자 연으로 적는 바람에 이를 제비로 해석하지 않았나 싶다. 지형이 제비 꼬리를 닮았다거나 이곳에 "제비원"이라는 역원이 있었던 사실도 모두 차음자 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자 한다. 전설에 걸맞게 이 석불은 여느 불상과는 달리 풍기는 인상부터 특이하다. 산신의 형상이랄까, 불심보다는 주술성을 짙게 느끼게 하는 그런 마애불이다. 아니나 다를까, 남도 지방에서 유행하는 성주풀이에서도 이 제비원이 성주님의 본향이라고 알려 준다.

  "성주야 성주로다 성주 근본이 어디메냐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 본일러라...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여."

  안동땅은 주지하는 대로 우리나라 추로지향이라 불릴 만큼 유교문화, 양반문화로 대변되는 전통문화의 산실이다. 거기에 성주님의 본이 여기라면 이 또한 무속으로 대변되는 민속문화의 본거지가 아닌가.

  양반골 안동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 풍천면 하회 마을이다. 풍산 들판의 꽃뫼(화산) 주변을 꽃내(화천)가 마치 "오메가" 형으로 휘감아 흐르는 이 마을의  성황당을 찾는다. 이 마을 민속의 원류를 들여다보기 위함이다. 이곳 물도리(하회) 마을을 지켜 주는 여신은 무진생 서낭님이시다. 이 서낭님(또는 성황님)은 열다섯에 과부가 된 이 마을 삼신의 며느리라고도 하고, 열일곱 처녀인 의성 김씨라는 설도 있다. 어떻든 이 서낭님을 위해 마을에서는 매년 동제(당제)라는 제사를 오리고 3년, 5년 또는 10년에 한 번씩 별신굿이라는 특별한 행사를 마련한다.

  신내림(신탁)에 의해 펼쳐지는 별신굿에는 저 유명한 탈놀이도 선을 보이는데, 그 첫 마당에 등장하는 각시가 바로 이 서낭님의 현신이다. 굳게 다문 입술, 가늘게 뜬 눈매로 보아 이 서낭님은 퍽 차분한 것 같으나 눈초리만은 심상치가 않다. 그 옛날에는 그토록 조용했던 물도리동, 우리 전통문화의 보고라는 이 마을에 최근 도시의 저질문화가 몰려오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이 마을 주막이나 가게마다 걸려 있는 각시탈의 표정에서도 분명 불편한 심사를 읽을 수 있다.

  물도리동 하회 마을의 지형은 연못이 물 위에 떠 있는 형상이며, 낙동강과 함께 화산의 산줄기가 태극무늬를 연출하는 전형적인 명당으로 손꼽힌다. 외부와 철저히 격리되었기에 어떤 외침도 받은 적이 없으며 낙동강의 잦은 홍수 피해조차 입지 않았다고 하니 말이다. 임진왜란의 와중에도 왜적이 들어올 수 없었던 것은 이런 지리적 여건 말고도 서애 유성룡 대감의 숙부의 공로가 컸다고 한다. 치숙이라 불릴 만큼 우둔하게 처신하던 대감의 숙부는 조카를 살해하기 위해 잠입했던 중을 붙잡아 왜구의 첩자임을 자백케 하고, 그를 죽이지 않고 이용함으로써 전란 내내 안동땅이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연유에서인지는 모르나 서애 대감의 본가인 충효당은 오백 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고색 창연함을 잃지 않았다.

  옛날 큰 고을이라는 뜻의 "고타야"라는 고유지명은 신라 때 고창이란 한자말로 바뀌고, 이어 고려 건국과 함께 안동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동쪽이 안정되었다는(안어대동) 뜻의 이 지명은 왕건과 견훤의 전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왕건이 이 지역에서 견훤과 최후의 결전을 벌일 때 권, 김, 장씨 세 장군의 도움을 얻어 대승할 수 있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곳 주민들은 견훤이 지렁이의 아들인 점에 착안하여 낙동강에 소금을 풀고 얼개를 이용하여 지렁이를 짠 강물에 밀어넣음으로써 그 기세를 꺾어 버렸다. 오늘날까지 전승되는 차전놀이가 바로 그때의 모습을 재현한 놀이라는 것이다. 어느 시인은 안동을 "어제의 햇볕으로 오늘이 익고 과거로부터 현재를 대접하는 곳"이라 노래했다. 동쪽이 안정되었기에 안동이요, 전통문화의 보존이라는 긍정적인 면은 있으나 안정과 편안함이 너무 오래 지속되는 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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