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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진안과 마이산 - 난달래골에 내려온 신선 부부


  천상의 신선도 때로 속세에서 살고플 때가 있나 보다. 한 신선 부부가 무슨 연유인지 이곳 진안 고을에 내려와 살았다. 사랑의 도피행인지 아니면 죄를 지어 일시 추방당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떻든 소풍이라도 온 듯 이들 부부의 이승 생활은 매우 행복했다. 꿈 같은 세월이 흘러 아이가 둘이나 생길 무렵 이들은 다시 하늘나라로 올라가야만 했다. 떠날 때는 말 없이, 그리고 흔적 없이 사라져야 함이 신선 세계의 불문율인지라 이들 부부도 한밤중을 택하여 승천하려고 했다. 그러나 일이 잘못되려고 그랬는지 그날 따라 아내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그만 출발이 늦어지고 말았다. 이미 동이 터 오는 새벽녘에야 비로소 하늘로 솟았으나 두 신선은 공교롭게도 사람에게 들키고 말았다. 어느 부지런한 아낙네가 우물에 물 길러 나왔다가 거대한 두 산봉우리가 둥둥 떠오르는 광경을 보고 그만 소리를 지른 것이다. 천기를 노출시킨 이들에게는 두 번 다시 승천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건 모두 게으른 당신 탓이야!"

  남편 신선의 분노는 폭력으로 나타나 아내가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두 아이를 빼앗으며 아내의 옆구리를 걷어 차고 만다. 이렇게 싸우면서 지상으로 추락한 신선 가족은 거대한 바위산으로 굳어져 갔다. 전북 진안과 마령군에 걸쳐 솟아 있는 마이산은 신선 부부가 땅으로 떨어질 때 다투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 동쪽으로 떨어진 남편 신선, 즉 수마이봉(웅봉)은 지금도 화가 풀리지 않은 듯한 형상이며, 등을 맞댄 채 서편으로 돌아앉은 아내 암마이봉(비봉)은 한 대 얻어맞고 잔뜩 토라진 모습 그대로다. 그 밑으로 덩치는 작으나 수마이봉 발 밑에 제법 오똑하게 솟은 봉우리는 두 아이의 형상이다. 속칭 "나도산"이라 불리는 이 봉우리를 두고 사람들은 "너만 마이산이냐, 나도 마이산이다."라는 새끼봉우리의 기상을 가상히 여겨 그렇게 불러준다고 한다.

  땅에 떨어진 신선의 형상이 마이산이라 한다면 마땅히 지상에 있어야 할 인간이 하늘로 오른 상이 우화산이다. 마이산과 더불어 전설상이 묘한 대칭구조를 보이는 우화산은 진안 읍내에 있다. 옛날 진안 고을에 효성이 지극한 한 선비가 살았다. 일찍이 아내를 잃은 그는 부모님께 효도할 뿐만 아니라 이웃에게 선행을 베풀어 주변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이런 선비의 행실에 하늘도 감복했음인지 부모 삼년상을 치른 그에게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난다. 하루는 앞산 기슭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천둥 번개와 함께 한 선녀가 나타나 선비를 하늘로 들어 올린다. 때마친 선비의 양 겨드랑이에 깃이 돋아나 스스로 날 수 있게 되어 선녀의 안내에 따라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이를 두고 세상에서는 "우화이등선"이라 했다던가. 월왕산의 남쪽 누각에서 보면 우화산은 이름 그대로 예쁜 선녀가 진안 읍내를 향해 너울너울 춤추는 형상이며, 우화정이 선 산중턱은 깎아지는 절벽이어서 부여의 낙화암을 연상케 한다. 

  마이산은 오르는 산이 아니라 바라보는 산이다. 암, 수 모두 700M 미만의  낮은 산이어서 오르는 맛도 적을뿐더러 수마이봉은 아직도 노기가 덜 풀렸는지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마이산은 본래 "섰다뫼" 또는 "섰다봉"으로 불리웠던 것 같다. 남성의 상징을 그대로 닮은 이 봉우리를 신라 때는 서다산이라 적었고 고려 때는 용출산, 조선시대에는 속금산이라 적었다. 이 밖에도 돛대봉, 용각산, 문필봉 등 점잖은 이름도 있는데, 이는 모두 우뚝 솟은 산의 외형상이 특징을 묘사한 것이다.

  마이산은 조선 왕조의 창업과 관련하여 태조 및 태종과 인연이 깊다. 두 임금 모두 이 산을 다녀간 바 있으며 그때마다  새 이름을 하사받았다. 앞서 말한  속금산은 태조가 명명한 이름이며, 말 귀를 닮았다 하여 붙인 마이는 태종이 하사한 이름이다. 또한 태조가 이 산에 머무를 때 말을 매놓던 자리가 지금도 주필대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고, 태종이 다녀간 10월 12일(1413년)은 지금도 마이제로 매년 기념되고 있다. 뿐인가, 암마이봉 밑에 있는 마이탑사와 함께 즐비하게 늘어선 80여 기의 돌탑은 현대의 새로운 전설을 만들어 가고 있다. "무진장"이라면 강원도의 "영평정"과 함께 우리나라 두메산골의 대명사로 불린다. 무진장, 곧 무주, 진안, 장수는 영월, 평창, 정선에 못잖은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다. 흔히 호남의 지붕이라 일컫는 무진장, 그 가운데서도 진안은 그 중심에  위치하여 속인들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신선 부부가 이곳을 택한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닌가 한다.

  진안은 본래 "난달래골"이라 불리었으니 문헌상으로는 난진아현으로 표기되었다. 이 지명은 산골 마을을 뜻하는 "달래(진아)"에다 아주 높다는 지명접두사 "난"이 첨가된 어형이다. 진아를 "삼국사기" 지리지에서도 월량 또는 월량으로 부기하여 이 표기가 "달아" 또는 "달래"임을 뒷받침해 준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가운데에 위치하여 금강과 섬진강의 발원지이기도 한 난달래골은 예나 지금이나 산간벽지로 남아 있다. 사람의 발길이 드문 곳이라 예스러운 풍정을 지금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세속의 일이 번거롭게 여겨질 때, 벚꽃이 만개한 초봄쯤에 가서  말 귀를 빼닮은 마이산의 모습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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