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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속살 - 천소영
 



     보은과 속리산 - 속세가 산을 떠나 있네


  보은에서 상주로 가는 25번 국도에 서면  오른쪽 산줄기에서 시냇가로 흘러내린 두 개의 큰 바위가 보인다. 흔히 북쪽 것은  보은바위라 하고 남쪽 것은 상주바위라 하는데, 가까이 붙어 있는 두 바위의 이름을 달리 부르는 것은 그 사이로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도 경계선이 지나기 때문이다. 보은이라는 지명의 기원이 된 이 바위를 치마바위 또는 속곳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전설이라기보다 실화라 할 수 있는, 이 고을의 지명 유래는 조선조 선조 때 청백리로 알려진 장현광의 미담에서 비롯된다.

  장현광이 잠시 이 고을 현감을 지낼 때의 이야기다. 평소 학문과 교육에 뜻을 두었던 그는 부임한 지 반 년 만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장 현감의 인품과 선정에 감복한 주민들이 몰려와 석별의 선물을 전하며 좀더 머물러 주기를 간청한다. 그러나 그는 주민들의 선물을 모두 사양하고 부임할 때와 똑같이 빈 손으로 그 고을을 떠난다. 행렬이 보은과 상주의 경계선인 이곳 바위에 이르러 잠깐 쉬고 있을 때 그는 우연히 부인의 치마 속에 내비치는 비단 속곳을 보게 되었단다. 출처를 추궁하니 부인은 고을 백성들이 보은의 성의로 준 것이라 차마 물리치지 못했다고 변명한다. "청빈을 생활신조로 삼아 왔는데 부인이 그만 손상을 입혔구려."라는 남편의 장탄식에 부인은 몸둘 바를 몰라 하며 즉시 속곳을 벗어 보은 쪽 바위 위에 걸쳐 놓고  "보은에서 받은 것을 보은으로 돌려 드립니다."라는 글을 남긴 채 상주 쪽으로 떠났다고 한다.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이야기다. 하찮은 속곳일망정 이를 되돌려 주는 것이 목민관으로서 갖추어야 할 진정한 자세가 아니겠는가. 전별금이 어떻고 "옷로비" 사건이 어떻고 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꼭 들려 주고 싶은 지명전설이 아닐는지.

  보은이라는 지명은 세조에 의해 명명되었다는 설이 있다. 피부병을 앓던 세조가 이곳 속리산의 법주사 계곡 목욕소에서 목욕을 한 뒤 병이 깨끗이 낫자 이에 보답하는 뜻으로 그렇게 지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헌상의 기록을  보면 이 설이 성립되지 않는다. 보은의 신라 때 이름은 삼년산이었고 고려에 와서 보령이라 불렀다. 그런데 보령이라고 하면 충청남도의 보령과 혼동될 우려가 있으므로 태종 6년에(세조보다 60여 년이 앞섬) 이를 보은으로 개칭한 바 있다. 어쨌든 지역 풍속도 지명을 닮아가는가 보다. 보은만큼 열녀나 효자, 효부가 많이 난 고장도 드물다. 신라 때 훗날 선덕여왕이 된 덕만공주가 속리산에서 수도할 때 부왕을 그리워하며 경주를 향해 절하는 모습을 닮은 배석대 전설을 비롯하여 10여 곳에 이르는 효자문, 열녀문 들이 이 고을에 흩어져 있음이 그 증거라고 할까.

  특히 속리산 입구에 있는 정이품송에 얽힌 전설은 사뭇 감동적이다. 이 소나무가 서 있는 서편 마을을 진터 또는 진대라 하고 그 안 골짜기를 가마골이라 하는데, 이곳에는 도저히 맺어질 수 없는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숨어 있다. 맺어질 수 없는 남녀란 세조의 딸과 세조에게 죽음을 당한 김종서의 손자를 가리킨다. 이 두 남녀가 놀랍게도 부부의 연을 맺고 이곳 가마골에서 숯을 구우며 살았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부왕인 세조에게 직언을 하다가 노여움을 받아 쫓겨난 공주가 이곳에서 김종서 대감의 손자를 만난 것도 기연이지만 훗날 이곳에서 이루어진 부녀 상봉도 더 기막힌 인연이다. 피부병 치료차 속리산으로 행차하던 세조가 이곳 소나무 아래서 쉬고 있을 때 구경 나온 동네 아이들 가운데 공주를 빼닮은 두 아이를 발견했단다. 진터라는 이름은 세조가 훗날 딸과 사위를 찾기 위해 이곳에 진을 쳤던 데서 비롯된다. 아버지의 눈에 벗어난 딸이었지만 자신의 혈육임에 분명하고 또 정적의 자손이지만 사위임은 부인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를 인정해 주려 했던 세조는 끝내 딸과 사위를 찾지 못한 것 같다. 사위에게 주려고 했던 선물, 곧 부마도위라는 정이품 작위는 세조가 쉬었던 소나무에게 내려지고 만 것이다.

  세간에 이르기를 왕의 가마가 지날 때 가지를 들어 올리고 소나기를 만났을 때 피신처를 제공한 공으로 이 소나무가 그런 벼슬을 하사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볼 때 인간에게 내리는 벼슬을 한낱 나무에 내릴 수는 없지 않을까.  세조가 끝내 사위를 찾지 못하자 부마에게 내릴 정이품을 그만 소나무에게 주고 만 것이라고 생각함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어떻든 보은처럼 뜻 깊고 아름다운 지명은 없을 것 같다. 보은뿐 아니라 이 땅이 품고 있는 속리산과 그 속에 안긴  법주사라는 이름도 역시 멋지다. 속세를  떠난 속리산과 불법이 머무르는 법주사이니 산과 절의 이름이 참으로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속리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불구대천의 원수 사이에 기막힌 화해를 보여 준 진터의 가마골, 골골이 절효정문이 즐비한 보은벌을 속세라 부를 수는 없다고 본다. 또한 속세를 벗어나야  불법이 머무를 수 있다는 우리의  통념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최치원의 다음과 같은 한시가 좋은 해답을 던져줄 것이다.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으나 사람이 도를 멀리하고 산이 속세를 떠난 것이 아니라 속세가 산을 떠나 있네. (도비원인 인원도, 상비이속 속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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