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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의 상상력 1 - 정호완



   10. 막다른 골목 (1/2)


  10-1. 낮과 늦음

  '낮에 난 도깨비'라 하여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이 인사불성이고 체면도 없이 기괴망측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이른다. 해가 떠 있는 동안으로서 밤과 대립되는 시간대를 '낮'이라고 한다. 시간의 순서로 생각해 보면 하루는 아침-낮-저녁으로 이루어져서 주기적으로 되플이된다. 아침은 하루 중 가장 이른 시간이고, 낮은 그 뒤에 오는 시간이며, 이어서 밤이 된다. 우리 조상들은 이렇듯 시간의 앞서고 뒤섬에 따라 때를 가리키는 말들을 만들어 나아갔다.

  심재기가 지적한(l982) 바와 같이 아침은 (조선관역어) 등의 중세어 자료에서 '이르다[早]'와 서로 대응하고 있다. 아침은 방언에서 '아칙 (강왼), 아적 (경기, 서울)' 등으로 나타난다. 대략 열두시를 전후하여 그 이전을 아침, 그 이후를 낮이라 한다. '낮-'은 '날, 저물다[暮], 저녁, 늦다[晩]' 등의 뜻으로 쓰이는바, 이가운데에서 중심을 이루는 뜻은 '늦다[晩]'로 보인다. 오늘날에는 하루 중 해가 저무는 때를 '저녁'이라고 하지만 옛말로는 '나조(ㅎ)((능엄) 2-5)' 였다. 지금도 방언에 따라서는 저녁을 '나조, 나주왁(함경)'이라고 한다. 그러면, '낮-' 은 그 중심된 의미인 '늦다'의 '늦-' 과 어떠한 관련성을 보이는 것일까 ? '늦다'의 '늦-'은 '낮-'이 모음교체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파생, 또는 합성을 하여 이루어지는 '낮_' 계와 '늦-' 계의 낱말겨레를 살펴 보기로 한다.

  '낮_' 계에는 '낮거리 (대낮에 하는 남녀간의 성관계), 낮곁(한낮으로부터 해지기까지의 시간을 둘로 나누었을 때의 전반), 낮다, 낮때, 낮잠, 낮추다'와 같은 형태들이 있다. 한편 '늦-'계에는 '늦다, 늦더위, 늦둥이(나이가 많이 들어 늦게 본 자식), 늦마(늦장마), 늦심기 (곡식이나 식믈을 제철이 지나서 심는 일), 늦은불(그리 심하지 않은 곤욕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늦잡죄다(늦게 잡두리를 하다), 늦하늬 (서남풍)'와 같은 말들이 있다. '낮(늦)-'계의 말이 중세어에서 '낫_' 계로 나타남은 '낫-' 계가 더 기원적인 형태임을 드러낸다. 'ㅅ>ㅈ'의 마찰음이 파찰음으로 발달한 단계를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생산,해'의 뜻을 드러내는 '나(ㅎ) ((법화1 5_18)' 의 단어족으로도 묶일 가능성이 있다(서재극,((중세국어 단어족 연구) l980). 여기서 '낮'의 형태로 돌아가서 몇 개의 뜻을 같이하는 변이형들을 찾아서 그들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보고 어떤 까닭으로 '아침'과 시간적인 순서로 이어지게 되었는가를 살펴 나아가기로 한다. 중세어의 자료를 더듬어 보면 '낮'은 '낫(훈몽)' 으로도 표기되며, '낫'은 다시 '낫(穀 簡 ; (중두해))' 의 뜻으로도 쓰인다. '낫'은 또한 '낟(훈례)), 낟(嫌 ; (훈례))' 으로 드러난다. 앞부분에서 지적하였듯이 '낮'이 '해' 를 뜻하는 것임을 고려해 보면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올까 싶다. '해'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곡식이나 풀은 자라고 성장하며 마침내 완성된 개개의 알맹이로 익어 가게` 마련이다. 아울러 풀올 베는 '낫(낟)'도 곡식이나 자란 풀을 베어 들이거나 거두어들일 때 사용하는 것올 생각해 보면, '곡식'의 뜻을 나타내는 '낫'과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낮'과 '아침'은 서로 시간의 순서로 보아 '아침'이 앞서는 것을 어떻게 플이할 수 있올까. 방언에서 '아침' 올 '아적, 아칙'이라고 하거니와 '아사(阿斯)' 또는 '앗'이라고 했올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앗'은 '아우(석보))` 의 의미로도 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을 방언으로 '아시 (흑은 아이)'라고 하거니와 본시 동일한 어근 '앗'에서 비롯한 것으로 본다. 오늘날 일본어에서 아침을 '아사'라고 함도, 어떤 경로를 거쳐 이루어겼는지는 모르지만, 동일한 형태 '앗'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보인다. 첫번 논매기를 '아시논매기 (혹은 애벌논매기)'라고 하고, '아시당초'라는 말을 쓰는 것으로 보아 분명 '아시' 는 '처음' 곧 순서의 머리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앗' 이 '동생' 올 뜻하는 것은 어떻게 순서의 머리로 볼 수 있을까.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부모편으로 보면 맏이보다는 더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와 사랑을 기울이게 마련이다. 따라서 바로 위의 형제로 보면 부모의 사랑을 아우에게 빼앗긴 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우를 뜻하는 '앗'에 '-다'를 붙여 '앗다>빼앗다'로 했을 가능성도 있다. 아우를 일부 방언에서는 지금도 '아수' 라고 하는데, 이는 '앗'에서 발달한 형태로 보인다. 결국 하루 해가 떠오르는 아침은 '처음'의 개념으로 그 중심된 의미를 삼아 '이르다[早]'의 듯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앗' 은 음성 인식으로 보아 '디굳(ㄷ)' 과 같이 드러나는데, 디굳 (ㄷ)이 리을(ㄹ)이 되어 '알'로 갈라져 나아감으로써 생명의 씨앗을 나타내게된 것으로 보인다.

  플이나 곡식으로 보면 아침은 이제 막 싹이 터서 움이 솟는 때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루를 해에 비유한다면 이제 해가 떠을라 환한 빛을 이땅 위에 비추는 단계로 볼 수 있다. 또한 '낮'은, 풀이 자라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과, 그리고 해가 만물의 성장을 돕기 위해 자신을 불사르는 것과 같지 아니할까. 이처럼 아침과 낮은 마치 풀의 싹이 틈과 그 싸이 자라 피어남과 같다.  이내 해는 기울어지고 어두워져, 낮은 가고 밤을 맞게 된다. 저녁올 중세어에서 '나조(ㅎ)' 라고 하거니와 이 말은 '나중'이란 형태와도 같은 뜻을 드러낸다. '나조'가 되면 해가 짐과 함께 밝음은 물러가 다음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해가 지는 것을 '져믈다((훈몽) 상 l; 져[彼]十므르[>믈 ;退+-다)' 라고 했다. 또한 저녁도 이쪽 아닌 저쪽의 공간이라고 보아 '뎌[彼]十녁 [方, 所]>뎌녁 >져녁 >저 녁 '이 되었다고 할 것이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으로 '낫다(능엄), 9-72)' 를 쓴 것도 해가 아침에 처음 떠오른 뒤 점점 제 모습으로 펴 나아가는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한다.

  모든 사물은 때가 있다고 한다. 태어날 때가 있고 숨을 거두어 들일 때가 있는 것이다. 하루는 해가 처음 떠올라(아침), 제 모습으로 세상을 밝히다가(낮), 이내 저물어 가는 흐름인 것이다. 그 끝은 곧 '물러남[退]'의 상황이다. 해를 받고 살아가는 사람이 해를 바탕으로 사물을 인식하고 다시 그것을 언어 형성의 기본으로 삼았으니, 말에 사람의 얼이 비치어 있음을 다시 한 번 알게 된다.

  10-2. 갓과 한계

  '갓 이사온 집에 볶음질 않는다'는 금기어(禁忌語)가 있다. 새롭게 이사를 해서 바로 볶음질하는 것은 좋지 않으니 삼가라는 내용이다. 딴은 이제 이사를 한 뒤 아직 새로운 환경에 적응도 채 안 되고 마음이 조금은 불안정의 상태인데 콩과 같은 식품을 볶아대면 십중팔구 가족들의 심적인 안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를 이야기할 때 '갓 스물' 이라고 하는데, '이제 막'의 뜻을 드러내고 어떤 동작이 끝난 뒤 오래 되지 않음을 뜻하는 말로서 '갓'이란 형태를 흔히 쓴다. 중세어 자료를 보면 니제 막, 겨우, 방금' 등의 뜻으로 쓰인 말에 '갓 ((석보) 6-35)' 이 보인다. 아울러 같은 형태이면서 '끝,가장자리'의 뜻으로서 쓰이는 '갓 (邊 ; ((월석) 23-90)' 도 확인된다. '갓/갓'은 그 형태와 의미에서 어떤 상관성을 보이는 것일까. 우선 형태로만 보면 같은 음절의 짜임새를 바탕으로 '아래아(?)가 '아(ㅏ)'로 바뀜을 따라서 만들어진 표기적인 변이형으로, 같은 낱말겨레로 묶을 수 있다. 즉 '갓>갓'의 과정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의미상의 관계는 어떠한가. '가장자리'의 뜻을 나타내는 공간명사 '갓'은 '갓갑다(近 ; ((한청), 264 b)'에서도 보이듯이 어떤 사물이 서로 가까이 있는 상태로 그 뜻을 풀이할 수 있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둘 이상의 사물이 잇닿는 경계선 곧 한계선은 그 둘 혹은 그 이상의 사물이 가장 가까이 맞닿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쳐음'으로 그 뜻을 새길 수 있음도, 한 사물로 들어가는 첫부분이니 시간 흑은 사실의 '첫머리'로 유추가 가능하다. '한계'는 사물에 있어서 '거죽[表面]' 을 의미할 수도 있는데 중세어 자료에서 확인되는 '갓(갓)-' 계열의 낱말겨레는 크게 '갓(갓)/것(겉)/긋(귿>끝)'의 형태로 무리지을 수 있다.

  '갓 (갓)' 의 낱말겨레
1) '갓(갓)-'계-갓 ((목결) 20), 갓갑다((한청) 264 a), 갓다(같다 ; (중두해), 11-42) /갓갑다((월석) 2-50), 갓가ㅅ로(>가까스로 ; (석보, 6-5) /ㄱ다(한계를 함께 하다 ; ((용가) 85) 등.
2) '것(걸)-'계-것 (皮 ; (초두해), 15-5), 것거플((한청), 197 c),것다(같다 ; (한청), 255 c), 것ㅁㄹ죽다(까무러치다 ; (석보) 11-20), 것보리 ((구황) 7), 것조((역해), 하 9)/겉다(같다 ; (오륜),3-62) /ㄱ (거죽 ;(구급방) 하 73) 등.
3) '긋'-'계-긋(끝 ; (내훈) 1-26), 긋긋다((법화) 3-156), 긋누르다(그처누르다 ; ((몽법) 32)/귿((석보) l1-29) 등.

  '갓' 은 다시 'ㄱ장(>가장)'계로 발달하여 오늘날의 '가장자리/까지/까장(꺼정)'계로 갈라져 나와 한 낱말겨레를 이루게 되었다. '갓/갓'의 관계가 모음의 바뀜을 따라 이루어지듯이 '긋' 또한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쳤다고 보인다. 결국 'ㅈ/갓/긋'은 동일한 형태소 '갓'이 분화하여 된 변이형태로 보인다. '갓'은 접미사 '-갑다'가 붙어 '가다>가깝다'의 과정을 거쳤으며, 받침의 다름을 따라서 '갖(겆)'으로 변이한 것이 아닐까 싶다. '긋'은 '끝`을 뜻하는 말로서 '긋>귿>ㄱ>?>끝'과 같은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고 본다. 그러니까 '끝'은 가장자리가 사물의 한계를 이루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의 형태가 갖는 가장 중심을 이루는 의미는,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시대나 공간에 따라서 조금씩 달리 가지 벋어 나아간다.

  먼저 '갓(갖~겆)-'계에 속하는 형태를 들어 보면, '가깜다, 가까워지다, 가까스로(간신히, 겨우), 가까이, 갓나다(막 태어나다) 갓나오다, 갓난아기, 갓난이(갓나온 아이), 갓밝이 (밝은 무렵), 가죽, 가죽다(가깝다의 경상도 방언), 가지다(손에 들어와 있게 하다 ; 소유의 한계 즉 경계선을 다르게 하여 소유자를 바꾼다는 뜻을 바탕으로 한 듯), 가지런하다, 갖바치(가죽신 만드는 사람), 갖옷(가죽으로 만든 옷), 갖다 주다, 갖벙거지, 갖춘마디'와 같은 형태들이 있다. 아울러 풀이해 두고 싶은 것은 '같다'의 경우이다. '같_'은 '갓'에서 받침이 자음교체되어 분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 뜻으로 보면 '같다' 는 '두 개 이상의 대상이 서로 다르지 아니하다'로 정의된다 서로가 다르지 아니함은 그 성질이나 상태가, 혹은 정도가 다르지 않다는 말이지만, 우선 사물인식에서는 표면 곧 시각적인 공간이 가장 두드러진 인식의 초점이 된다. 한마디로 표면에 드러난 모습 곧 겉모양이 동일한 것이다. '겉/같'은 동일한 어근 '갓(갓)'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물론 모음교체에 따라서 이루어진 형태들이다.

  '겉_' 계에 드는 말로서는 '겉가루(먼저 되는 가루), 겉고삿(지붕을 이을 때, 이엉 위에 걸쳐 매는 새끼), 겉꺼풀, 겉꾸미다, 겉날리다(대충 되는 대로 해치우는 것), 겉넓이, 겉놀다(건성으로 따로따로 노는 것), 겉눈감다(속으로는 눈을 뜨고 무엇을 보고 있으면서 남 보기에는 눈올 감은 듯이 보이는 것), 겉늙다, 겉맞추다, 겉보리, 겉볼안(겉으로 보아 안을 짐작할 수 있음), 겉봉, 겉수작, 겉여믈다, 겉잠(선잠), 겉장, 겉잣(껍데기를 까지 않은 잣), 겉짐작, 겉치레, 겉절이다(김장할 래 배추의 억센 잎을 부드럽게 하기 위하여 우선 소금을 뿌리어 절이다), 겉치레 (-속치레), 겉피 (겉껍질을 벗기지 아니한 피), 겉흙'와 같은 형태들이 있다.

  '같_'계로는 '같다, 같이, 같이하다, 같잖다(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같지다(씨름에 두 사람이 같이 넘어지다)' 등의 꼴이 있다. '긋'에서 비롯한 '끝(귿)-' 계에는 어떠한 말의 무리들이 있는지 알아 보도록 한다, '귿-'계에는 '그지없다(한이 없다), 그지없이, 그치다(계속되던 일이 멈추게 되다)' 등이 있고, '끝-'계에는 '끝걷기 (서까래 등을 흩어 까는 일), 끝나다, 끝내기, 끝닿다, 끝돈(믈건 값의 나머지를 끝으로 마저 치르는 돈), 끝마치다, 끝바꿈(어미의 변화), 끝반지 (노느매기할 때 맨 끝판의 차례), 끝빨다(끝이 뾰족하다), 끝소리(말음), 끝장, 끝장나다, 끝지다(끝에 이르다), 끝판(일의 마지막 관)'과 같은 형태들이 있다.

  가장자리 곧 한계는 사람들이 사물이나 사실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사람들은 그것이 시간이든 공간이든 관계없이 서로의 한계를 분명히 하고자 한다. 이러한 의식은 '갓(끝)'이란 형태의 낱말밭을 통하썩 많은 갈래를 드러내고 있다. 가장자리는 동일한 물체가 갈라져 나아간 분기점이며, 시간이 오래 지나면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되어 버리는 근거가 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를 좁히고 가깝게 느끼면서 살고자 하는 것 역시 이상과 현실의 가장자리를 맴도는 일 아닐까.

  10-3. 끼니와 때

  형제 또는 이웃에 양식이 없어 굶는 사람이 있게 되면 누군가는 걱정을 하게 된다. 몹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에 대해 우리는 '끼니를 굶는대서야' 햐며 혀를 찬다. 일정한 때에 밥을 먹는 일을 '끼니'라고 한다. '끼니'는 '끼 [時]十니[稻]'로 분석된다. 한마디로 '끼' 는 특정한 때를 이름이요, '니'는 벼를 뜻하는 말에서 유추하여 식사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때만 되면 주기적으로 아침, 점심 저녁에 맞추어 밥을 먹어야 하니 그러한 말이 샘긴 듯하다. 옛말에 '끼' 는 '끼((월석), 2-26), 끼 ((용가) 113), 끼 ((노해)상 47)' 의 형태로,  '니'는 '니(稻 ; (구급간), l-86), 닛딥 (稻草 ; (역해) 하 10)' 의 꼴로 나타난다. 여기 벼의 뜻으로 쓰이는 '니'는 벼 그 자체가 쌀을 대신한 것으로 보이며 식 량을 원관념으로 하는 형태로 풀이할 수 있는데, 아침밥, 점심밥, 저녁밥의 의미로 써 온 지가 오래다. 'ㄲ/끼'는 본래 장소를 드러내는 말이었는데, 시간의 뜻을 드러내는 말로 전이되어 쓰인 것으로 보인다. 공간적인 거리가 시간적인 간격으로 인식된 것이 니, 시간의 인식은 공간적인 것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앞에서도 말한 바 있다. 곧 일종의 유추현상에 따른 의미의 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날 불을 끄다의 '끄다'는 중세어서는 'ㄲ+-다>끄다'와 같이 쓰였는바, '끄'는 공간적인 틈으로 풀이된다. '끄다'의 파생명사는 '끔'으로, (훈민정음해례본),에는 '끔爲際'로 대응되니, 현대어의 '틈'은 분명 공간적이 거리 '끔'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하겠다.

  한숨을 너무 크게 쉬면 '땅이 꺼질 듯하다'고 한다. 이때 '꺼지다'는 정상적인 땅의 표면에 일정한 공간이 푹 내려알아 그 사이가 벌어진 것을 뜻한다. '끼니'의 지역에 따른 방언분포는 '끄-/끼-'계가 중심을 이룬다. 끄녁 (전남 담양,화순), 끄니 (전남 여수, 담양, 곡성, 구례, 함평/강원 평창), 끄니때 (경남 남해/층남 홍산,예산/전남 구례, 곡성 여수 순천, 광양, 강진, 화순, 보성, 영광), 끼니 (전남 구례, 곡성, 순천) 등.

  따지고 보면 시간도 어느 시점과 또다른 시점 사이를 말하는 것으로 공간의 개념과 아주 가까이 연접해 있음을 알겠다. (설문해자(認文解字)에 보면 '時'는 '日十土+寸'으로서 공간에 나타나는 해 그림자의 길이로써 시점과 시점 사이를 이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끄-' 의 계열에 드는 형태로는 '끄다, 꺼지다(불이나 거품이 없어지다, 속이 곪아서 우묵하게 들어가다), 끈(일정한 공간을 제거나 잇는 줄), 끈질기다, 끊기다, 끊어뜨리다, 끊다, 끊어치다, 끊임없다' 등이 있다. '끼-'의 계열로서는 '끼니, 끼니때, 끼다(안개나 연기가 끼다, 겨드랑이 같은 페에 넣어 빠지지 않게 죄다), 끼들다, 끼리 (일정한 공간에서 일정한 집단으로 전이), 껴안다, 끼얹다, 끼웃끼웃(기웃기웃 ; 이쪽 저쭉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과 같은 꼴로 분화되어 한 무리를 이루어 나아간다. 마치 손자에 손자를 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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