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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3. 생명의 말미암음

      집과 수풀

  집도 절도 없나. 거처하는 집이나 재산도 없이 이리저리로 떠돌아 다니는 사람을 보고 하는 말이다. 목숨살이 모두에게 집이란 늘 안식과 희망의 샘터가 된다.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나 짐승들의 보금자리 혹은 겨레붙이의 한 떼나 물건을 담아 두거나 끼워 두는 그릇을 싸잡아 이른다. 보금자리는 특히 새들이 깃들이는 둥우리를 가리키며 지내기가 매우 포근하고 아늑한 장소를 뜻하기도 한다. 옛 적에는 우리들의 한아비들이 바윗굴이나 나무숲 같은 데에서 살았다고 한다.마치 여우나 새가 굴 또는 둥지에서 살아 가듯 말이다. 중국의 자료에서 한민족-동이들은 여름에 둥우리 살이, 겨울에는 굴살이를 했다고 적고 있다(진서(辰書)등). 거리에 따라서는 조금씩 다르기는 하다. 심지어 굴의 깊이가 아홉개의 사다리가 들어 갈 만큼의 깊고 큰 무덤과 같은 집이 있었다고 한다(삼국지). 여기서 잠시 새들이 사는 둥지와 같은 보금자리에서 살았다는 데 유념해 보자. 하긴 숲속에서 먹거리로서 열매며 옷감으로서 실오라기는 물론이요, 집 삼아 나무 위에서 살며 살아있음의 가능성을 키워 나아갔을 법하다. 소리상징으로 보아 집과 숲의 걸림은 없는 것일까.  있다면 소리의 질서는 어떠한 것인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흔히 밭에 풀을 맬 때 '김'을 맨다고 하며 밥상에 놓는 바다풀은 '김'이라 한다. 먹는 것이나 매서 뽑아 버리는 것이나 모두 풀이 되기는 한 가지이다. '김'은 '기음'의 줄임말이다 그럼 '기음'은 어떤 소리에서 바뀌어 온 것일까. '김(草)'을 사투리말로 '기음·기임·기심·지슴·지섬·지심·짐'으로 소리 내는 일이 있다(최학근(1987) 한국방언사전 참조).
  사투리말의 보기 가운데에서 '기심'이 상당한 실마리를 준다고 본다. 시옷이 모음 사이에서 약해져 떨어지면 '기임'이 되고 한 소리마디로 되면 '김'이 된다. 이 때 모음이 길어지는 기움현상이 일어남은 보편적이다.'기심'의 경우 '깃'에서 갈라져 나온 갈래말이 아닌가 한다. 하면 '깃'은 무얼 가리키는가. 새가 깃들인다고 할 때의 '깃'은 곧 보금자리이다. '깃'은 '굿-곳'의 또 다른 형태로 같은 낱말의 겨레들이다. 더 좁혀서 살피자면 '깃-긷-길'은 같은 계열에 따라 붙는 말임은 물론이요, 소리와 뜻이 함께 걸림을 보이는 보기들이다. 옛말글 자료를 보면 '긷(내훈(서)4)'은 오늘날의 기둥을 드러낸다. 아울러 '깃'이 기둥 위의 어느 곳에 만들어 놓은 둥우리-보금자리라 하면, '길'은 보금자리로 통하는 통로를 이른다.
  사람의 말을 잘 듣도록 짐승을 가르치는 일을 '길 들인다'고 한다. 보금자리로 들자매 오고 가게 마련이요, 오고 가니까 낯이 익게 되어 있다. 하기야 나쁜 일도 한두 번 길이 들면 자꾸 하게 되니까 말이요. 지렁이도 그 나름의 길이 있듯이 겨레들만이 잘 알고 눈에 익은 길이 있다. 서로가 사는 길이 다르면 공동체가 아니듯이 생존을 위한 수단이나  그릇으로서의 길이 없으면 살아 남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김-집'의 걸림을 떠 올려 본다. 집은 '김'에서 말미암음은 것으로 보인다. '김'이 입천장소리되기를 따라  '짐'이 되며 이는 다시 받침이 바뀌어 터지는 입술소리로 되면 '집'이 되지 않는가. 중세말에서 '집'은 '사는 집·풀짚'의 뜻으로 쓰이다가 뒤로 오면서 서로 독립된 말 '집(家)-짚(지푸라기·볏집등)'으로 쓰이게 된다.

         집은 숲이 뿌리

  마침내 '짐-집-짚'은 '깃'에서 비롯한 낱말들의 겨레로서 숲-풀에다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새가 깃들이다'뿐만 아니라 '집을 짓다'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깃'이 입천장소리로 되면 '짓'이 되니 모두가 나무와 숲을 전제로하는 숨은 뜻이 있음을 알아 차릴 수 있다. 중세어에서 '깃깃다(둥지를 틀고 살다)·깃다(풀이 무성하다)'가 되는데 이 또한 '집'과의 걸림을 보이는 경우들이다. '김'은 짐-집-짚으로 발달한 한편, '김-깁-깊'으로도 새끼를 쳐 나아간 것으로  짐작이 간다. 비단으로, 집 지을 때 쓴 재료를 일러 '깁'이라 한다. 한자어로 급(級)이 있기는 하다. 본래 우리말 '깁'과는 구분해서 써야 된다. 형용사 '깊다'의  '깊'도 나무와 숲에서 멀리 있는 말이 아니다. 숲은 생명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희랍신화의 숲 이야기들은 거의  그러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성경에  나오는 에덴동산의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그리 수고하지 않아도 살아 갈 수 있는 자연의 어우러짐이 깃든 곳. 이름하여 낙원이라 한 것이다. 먹고 입고 쉴 안식처가 있으매 더 무얼 바라랴. 그래도  일이 있어야 할텐데. 일하지 않는 이는 먹지도 말라 했으니까. 그건 우리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에서도 '소도(솟대)'가 그 좋은 보기라고 할 것이다.박달나무가 있는 숲속의 제단-소도. 해서 거룩한 얼안이요, 사람과 하늘 땅이 함께 교통하는 장소가 아니던가. 이름하여 신단수(神壇樹). 배달겨레가 말미암은 거룩한 숲이요, 나무이며, 겨레의 얼이 깃든 솟음터인 것이다.
  먹거리의 샘은 숲속에서 풀의 열매로부터 비롯된다. 나무와 숲으로 뒤덮힌 공간은 목숨살이들의 깃들임이 있다. 풀을 먹는 짐승은 말할 것도  없으며, 고기를 먹는 짐승 또한 같은 무리에 든다. 고기를 먹는 짐승도 근본적으로 풀 먹는 짐승을 먹이로 하는 고리사슬이 있으니까. 그 곳에는 흔히 얘기 하는 낭만이 있는 것만은 결코 아니다. 먹고 먹히는, 숨막히는 살아 남기의 싸움이 줄곧 일어 난다. 같은 나무 가지도 해를 받지 못하는 가지는 말라 죽듯이 적응하지 못하는 부분들은 그  빛을 잃고 죽음의 누리로 갈래를 달리 하기 마련. 숲을 목숨이 깃드는 집이라면, 집은 우리의 몸과 얼이 함께 더불어 사는 보금자리요. 삶의 터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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