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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4. 믿음이 깊은 곳에

       고리모양의 어우름, 한라산

  물 맑고 별이 아름다운 밤이면 하늘의 선녀는 달빛을 타고 연못에 내려온다. 몸과 머리를 깨끗이 하고 하늘이 그리운 마음에 달빛을 타고 다시 하늘에 오르곤 한다. 어느 새 선녀의 벗님이 된 사슴은 시나브로 예쁘고 나이 어린 선녀에게 정이 들고 둘이는 서로 사랑을 나누었다는 이야기. 부족함이 없이 둘은 하늘과 땅, 풀꽃과 짐승, 새들의 축복 속에서 복된 삶을 누리며 달 밝은 밤이면 뭇 사슴들의 부름을 받고 이바지 음식을 대접 받기도 하였다. 한데 이게 웬 일입니까. 용왕의 부름을 입고 선녀는 사슴도 모르게 용이 되어 구름을 타고 하늘로 되돌아 간 게 아니겠습니까. 그리운 임을 찾아 헤매었으나 사슴은 찾지를 못하였고 별이 내리는 못물 위에 선녀의 환상이 흐느끼는 듯 부는 바람에 물결만 드높을 뿐. 먹이도 물도 잃어 버린 채 밤과 낮으로 선녀를 그리워 하다가 물 위에 어린 선녀를 찾아 물속으로 들어 갔다가 아예 물속에서 죽게 된 슬픈 사연이 전해 온다. 해서 백록담 - 흰 사슴못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라산은 깨달음의 원산이라

  한라산, 이는 곧 제주를 뜻한다. 그 한라의 기슭에 뭇 목숨들이 보금자리를 틀고 살아 간다. 끊임 없는 바람이 불어 산을 넘듯 역사의 수레바퀴는 숱한 아픔의 발자취를 남겨 놓았다. 그것도 섬 아닌 육지 사람들이 들어 오면서부터 말이다. 산은 제주섬의 남쪽 20리에 있으며 섬의 바람막이이자 울타리가 되는 진산(鎭山)이다. 한라(漢拏)라. 은하수나 구름을  손으로 잡을 만큼 높고  아름다운 곳이 아닌가. 산은 달리 머리가 없다는 뜻의 두무산(頭無山) 또는  머릿부분이 둥글다고 원산(圓山)이라고도 한다(대동지지 참조). 막상 산 위에 올라 보면 백록담이 꼭대기에 있으며 이렇다 할 봉우리가  없다. 거의 둥근 모습을 한 백록담은 물론이요, 산아래로 펼쳐 진 바다로 둘러 싸인 큰 산이란 느낌을 준다. 하긴 산 중턱에서 올라다 보아도 반쯤 둥그스레한 산의 머리통을 알아  차릴 수 있다. 이름으로  보면 '한라-두무산-원산'이 같은 산을 가리킨다. 먼저 두무산은 어떤 내용인가. 글자대로라면 머리가 없는 산이니 우선 머리가 평평하고 둥그니까  그렇게 이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당한 암시가 될 수 있다. 마을 이름으로 두무실이 있듯이 '두무(둠)'는 그 보기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모음이 바뀌면 '둠-담-돔'과 같은 말들이 한 낱말의 겨레를 이루는 걸로 보인다. 기역을 말 끝으로 취하는 특별한 형태변화를 하여 곧 '둠(ㄱ)-둥/돔(ㄱ)-동/담(ㄱ)-당'과 같은 변이형들로 퍼져 나아 간다. 둥그미·동그라미·당그러하다와 같은 말이 같은 뜻 '둥그러함'을 드러 내는 말들이다. 탐라만 해도 그렇다. 옛말에는 아직 거센 소리가  자리잡지 못하였음을 떠 올리면 탐라-담라의 맞걸림을 생각할 수 있다. 하면 탐(담)은 원(圓)이지만 '-라(羅)'는 무엇인가. 신라의 '-라'와 같이 '땅'을 아니면 큰 마을을 드러낸다. 제주가 바다에 둥그렇게 둘러 싸였음에 터한 지도 알 수 없다. 바다와 구름과 안개 속에 둘러 싸여 보는 이로 하여금 느낌의 숲을 이루게 한다.

  지구가 둥글게 돌아 가니까, 우주는 원의 모습으로  움직여 나가니깐 이 땅 위에 실존하는 모든 존재들은 원형성 지향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동그란 귤나무의 꽃들이 아픈 세월의 한라산을 이야기하듯 계절을 두고 피다가  열매로 접어든다. 한라에 대하여 덧붙여 둘 것은 크고 좋다는 뜻의 '한'에 땅을 가리키는  '-라'가 본디의 속내가 아닌가 한다. 한라산(두무산 ·원산)은 둥글고 크고 좋은 산이란 의미로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 남한에서는 가장 높은 산(1915미터)이요, 보기 드문 풀과 새들이 떼지어 사는 곳. 겨레의 하나 될 동그라미를 진작부터 말 없는 외침으로 우리를 손짓해 준다. 어서 빨리 뭉치라고. 해서 잘 굴러 가라고. 산은 깨달음의 성자인가. 조선왕조초 권람의 글을 옮겨 놓으며 글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푸른 하늘 아래 한갓 한라산이라네
         멀리 보이는 저 큰 바다는 끝 없이 넓기도 하여라
         사람이 하늘별을 타고 바다의 나라에 왔는가.
         말인듯 용인듯 바다와 산이 한가롭구나
         땅은 사람들에게 보금자리를 주었나니 배는 바람을 타고 갔다간 되돌아 온다.
         태평세월에 벼슬 하는 이 고을의 그림만 만지작거려
         이 고을이 비록 별수 없어 보인다 해도 그림에서 베어내면 어떡할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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