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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4. 믿음이 깊은 곳에

          새와 산, 태양 숭배의 고리

        아홉이나 남아도는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잊어
        야삼경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김소월의 '접동새'에서)

  해 지고 밤이 들면 죽은 누나의 흐느낌같은 접동새가 울어 댄다. 자신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아홉 명 남동생들의 서러운 삶을 어이한단 말인가. 표독한 계모의 시샘에 시달리다가 저승으로 간 누나는 접동새가 되어 그것도 밤마다 뒷 동산에 와 울 적에 듣는  이의 마음은 서러움의 강물로 가득하다. 사람이 죽어 어떻게 새가 될 수 있을까. 돌고 도는 삶의 윤회라면 몰라도. 새에 대한 옛 어버이들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늘과 땅의 모든 사물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으며 신이 살고 있다고 믿었던 시절. 하늘로 높이 날아 올라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새는 곧 하늘의 사자이며 영혼의 상징이라고 여겼던 터. 언제나처럼 늙지 않는 저 거룩하고 위대한 해가 떠 올라 우리 삶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해서 '해'는 늘 우리들의 우러름의 표적이 되었던  것. 이른바 태양숭배가 그것이다. 그럼 해와 새는 소리로 보아 무슨 걸림이 있을까. 해의 히읗(ㅎ)과 새의 시옷(ㅅ)은 소리가 나는 자리만 다를 뿐 마찰에 따른 소리가 되기는 마찬가지. 시옷의 소리가  약해지면 히읗이 된다.  해를 드러내는 지역에 따라서는 '해-새'의 쓰임이 보인다.

  ('해'의 쓰임)
 닷새(어제소학언해 6.64) 닷쇄(구급간이방 6.77) 엿새(五日 六日) - 해
 해거름 ㅎㄷ(금강경삼가해 3.53)
 (새(鳥)의 방언) 새(전역) 사이(개성 서흥 수안) 생이(제주) 쌔(경산)
 새다 세다 시다 셈 심 해맑다 희다 힘 헴 허옇다 하얗다

  지금도 사투리말을 보면 '새-사이'이  맞걸림을 알 수 있다. 날아 다니는 새나 하늘의 해(새)가 다같이 중세국어에서는 두 홀소리로  소리를 냈으니 '사이'가 되는 셈. 하긴 하늘의 해가 하늘 땅 사이에 떠 있음이나 새가 하늘과 땅의 사이를 나르는 것이나 다를 게 없다. 그럼 '사이'의 말뿌리는 무엇인가. 그건 말할 것 없이 '삿'에서 비롯한 말이요, 삿은 '삿 솟 ㅅ 섯 숫 슷 싯'의  낱말겨레를 이루어  의미의 큰 덩이를 이룬다. 'ㅅ'과 관련하여  삼국유사 의 소도(蘇塗)가 바로 거룩한 태양 숭배의 공간이었으니 하늘신 곧 태양신에게 경건한 예배를 올렸던 제의 장소가 아니던가. 달리 말하자면 일종의 솟음현상이랄까. 민속 행사 가운데 솟대 혹은 살대라 함도 태양 숭배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장대 끝에 새의 모습을 만들어 올려 놓는 일이 암시하는 바 크다. 용강의 사신총이나 쌍영총 무덤에 그려져 있는 벽화를 보라. 해와 달을 새와 토끼로 드러냄을 말이다. 우리의  민속이나 상징적인 모습을 좀 더 생각해 보자. 저승으로 가는 길목에 접어들기 전 옛부터 마지막으로 상여에 실려 간다. 수많은 민초들은 그냥 가마니뙈기에 둘둘 말려 지개 위에 짐이 되어 간 게 사실이기도 하지만. 상여에는 여러가지 그림이나 간단한 나무 조각들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꽃과 물이며 용과 새가 그려져 있거나 조각되어 있다. 여기 새와 사람의 영혼은 무엇으로 드러냄일까. 이승과 저승의 사이를 이어주는 게 바로 새라고 본 것이다. 이승에서의 삶이 다하는 날 그의 넋은 다시 살아 꽃으로, 풀로, 더러는 새와 짐승으로, 더러는 흙과 모래로, 구름으로 되돌아 산다고 믿었던 옛 적을 짐작케 해 준다.

  고구려에서는 한 때 벼슬하는 이들의 모자에  새깃을 꽂았으며, 백제의 금관에서도 신라 화랑의 모자에도 새깃이 꽂혀  있다. 무당의 모자에도 새깃이 있음을 보면 이 모두가 새의 신령함을 통한 '새-해(日)'의 우러름을 위한 표상일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니까 태양이 새로 드러난 셈이라면 어떨까. 삼국지를 보면 큰 새의 날개를 타고 저승으로 간다는 기록도, 상여의 새도 같은 맥락에서 짚어 볼 수 있다(以大鳥羽送死). 소리 상징으로 본 새는 철기 문화 곧 쇠그릇 문화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사투리로는 날아 다니는 새나 인류 문화에 큰 빛을 던져준 쇠그릇의 쇠나 소리의 모습이 같다. 모두가 사이 서이 시(씨)로 말을 하는바 뒤로 오면서 동음이의어가 그 모습을 조금 달리 한 것뿐이다.  생각해 보면 쇠도 나무와 돌의 사이쯤 되는 물체가 아니던가. 나무와 돌의 장점을 모두 갖춘 걸 바로 쇠라 불렀던 것. 가장 힘이 있는 태양이 쇠의 강한 특성과 맞떨어진 것이다. 태양을 가리키는 말이 바뀌어 해를 뜻하는 말에서 갈라져 '세다'가 된 것만 보아도 그럴 가능성은 있다. 푸른 하늘에 영원히 타 오르는 태양이야말로 누리의 온 목숨살이를 이끌어가는 뿌리요, 샘인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한데, 하늘을 두려워 하는 마음이 갈수록 약해져 가니 환경을 어지럽히고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질 않은가. 정신 차려야 한다. 불 꺼진 창같은 세상이 되기 전에.


        기러기와 두고 온 고향

        하루밤 서리김에 기러기 울어 옐 제
        위루에 혼자 올라 수정렴 걷고 보니
        동산에 달이 나고 북극에 별이 뵈니
        임이신가 반기니 눈물이 절로 난다.
       (정철의 '사미인곡' 중에서)

  서리는 내리고 달은 밝은데 울며 나는 기러기의 울음소리. 엄마 기러기를 따라 따뜻한 남쪽으로 왔다가 철이 되면 두고 온 그리운 고향을 찾아 떼지어 하늘을 간다. 풀이하는 이에 따라서는 바이칼 호수 부근이 기러기들의 고향이라는 이야기. 배달겨레들의 옛 조상들도 이 부근 쯤에서 살다가 차츰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중앙아시아 곧 알타이 산맥을 지나 만주와 한반도 중심의 모꼬지를 마련했을 것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밀러. 1984. 일본어의 기원). 그래서인가, 전통적으로 혼례 때에는 반드시 전안례(奠雁禮)를 올린다. 먼저 신부집에 가면 신랑은 기러기를 예물로 바친다. 흔히 산 기러기 구하기가 어려우니까 나무로 만든 기러기 - 목안(木雁)을 쓴다. 이 때 기러기를 드는 이를 기럭아비라 한다. 기럭아비에게서 기러기를 받아든 신랑은 새를 상 위에 올려 놓고 거드는 이의 도움을 받아 두번 절을 한 뒤 신부의 어머니나 여자 하님에게 이 기러기를 넘겨  준다. 치마폭에 새를 싸서  안방으로 들어가 예를 올리고 혼례가 모두 끝이 나고 신부를 따라서 신랑네 집으로 가는 후객(後客)이 시댁으로 가져 온다. 대체 기러기는 어떤 새인가. 많은 형제를 기러기 떼가 날아가는 모양에 기대어 안항(雁行)이라 이른다. 약한 기러기를 가운데에 세워 길을 잃지 않고 따라오도록 난다. 해서 기러기의 나는 모습을 학익진(鶴翼陣)이라 하지 않는가. 의리와 우애가 있는 새가 바로 기러기인 것이다. 규합총서 에서도 기러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날 때 차례가 있다는 것. 앞에서 울면 뒤에서 화답을 하니 예(禮)스럽고 짝을 잃으면 다시 짝을 찾지 않으니 절(節)이라. 잘 때도 새들은 떼를 지어 잔다. 반드시 새 중에 한마리쯤은 곤히 자는 다른 기러기들의 망을 보느라 깨어 있으며, 낮이 되면 갈대밭에 깃들여 다른 짐승들의 공격을 피한다. 이렇게 기러기새는 슬기로우니  혼례의 본을 삼는다고 풀이한다.

  밤하늘에 별이 뜨고 기러기 울어 예는 무렵이면 헤어진 형제가 그립고 저승으로 가신 어머니의 품이 눈물겹도록 그리운 것은 나 혼자만의 느낌이겠는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던 배달의 옛 조상들은 늘 그렇게 새 한마리에도 그리운 고향 산천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였던 듯하다. 두고 온 고향의 산과 물에 대한 것은 장례의 풍습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가령 '복'을 부르는 경우 흔히 초혼(招魂) 또는 촌이라 한다. 한번, 두번,  세번을 거듭하여 사람이 죽었을 때 새  옷을 지붕에 던져 올리면서 복을 부를 때면 온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가눌 길 없는  슬픔에 사로잡힌다. 복(復), 그러니까 고향의 나라에 가서 다시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부활의 신앙을 꿈꾸는 몸부림이 아니겠는가. 육신은 가도 우리의 넋은  오래 살아 저승의 또 다른 삶과 누리를 오고 간다. 근심걱정 하나도 없는, 우리의 겨레와 나라가  꿈꾸는 영원한 그리움의 정신적 공간을 향한 영원회귀의 새는 끝없이 오래오래 우리들 잠재 의식 속을 날아 와서는 아름다운 꽃노래를 들려 줄 것이다. 하여 이승을 떠나는  날, 새의 날개를 타고 푸른 하늘 은하수 건너로 날아 오를 것이 아니겠나.

       새와 땅이름

  우리 둘레에는 새와 걸림을 보이는 땅이름들이 여기저기 눈에 뜨인다. 더러는 까치, 까마귀, 학, 제비, 닭, 봉황새, 독수리 따위의  많은 새들이 땅이름에 끼어 아주 스스롭게 쓰임을 알 수 있다. 먼저 간단한 보기를 들어보자. 많은 분포를 보이는 것은 역시 봉(鳳) 계열이라 할 것이다. 숫놈을 봉, 암놈을 황이라 하여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스스롭게 볼 수 있는 땅이름. 실제로 봉황은 중국사람들이 생각하는 불사조라 풀이 되기도 하는데 앞에 든 모든 새의 머리가 된다. 보기로는 대봉동, 봉두동, 봉미동, 봉무동, 봉덕동, 봉곡동, 봉원리, 봉대동, 봉전, 봉정리, 봉강리, 신봉리, 봉황동 등이 있으며 말 머리에도, 말 가운데에도, 말 끝에도 옴을 쉬 알 수 있다. 닭계열은 어떤가. 먼저 신라를 계림(鷄林)이라 함은 바로 닭을 드러내는 나라 이름으로 풀이할 수 있다. 사투리말로 보면 경상도 지역에서는 닭을 '달'이라고 한다(달구집 달구통 달집 등). 하면, 계림의 림(林)도 계를 소리로 읽지 말고 뜻인 '달'로 읽으라는 달의 끝소리를 적은 것으로 보인다. 뜻으로 보면 모든 새는 수풀에 깃들이니까, 또는 사람을 숲에 비유하였으니까 림(林)을 쓴 게 아닌가 한다. 날아다니는 모든 짐승은 다 '새'라고 한다(훈몽자회). 하니까 '계림-신라'의 맞걸림을 둔 게 아닐까. 앞에 든 봉-의  경우도 물론 마찬가지이다. 계룡산이 그러하고 치악산도 같은 어름에 든다. 밑바탕은 '새'인데 드러냄의 변별성을 더하기 위하여 서로 다른 글자를 빌어 쓴 것이다. 신라의 탈해(脫解)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 당시에는 유기음 곧 거센 소리가 없었으니 탈해-달해일 것이요, 해(解)를 '개'로 읽었으니 '달해 달개'의 등식이 이루어진다. 닭을 사투리로 '달 달구 달개'로 소리냄을 짚어보면 탈해가 '달구-달개-새'의 맥락이 흐름을 알게 된다. 석탈해의 석(昔)이 성으로 되기까지는 유래로 보아 까치작에서 새조(鳥)를 떼어 냈으니까, 나무상자를 풀어  헤쳤으니까 그럴 수는 있는 게 아닐까.

  높다 크다의 뜻으로 쓰이기는 하지만 땅이름 가운데 달(達)- 계열이 그러한 보기라 하겠다(달구벌 달성 달천 달내 달동 달비골 월성(月城) 월배 등). 어쩐 일인지 땅이름 가운데 많은 보기를 보이는 건 학(鶴)- 계열이기도 하다(학산 학성동 학교 학다리 학동 등). 그뿐인가. 새조의 조(鳥)로 시작하는 것도 상당하질 않던가. 조치원 조령 조촌 조곡리  등이 그러한 경우라고 할 것이다. 앞에서 풀이한 바 있거니와 새와 태양은 같은 말이며 뜻이 서로 다를 뿐이다. 결국 무엇이 알맹이인가. 두 말 할 것도 없이 해를 우러러 믿는 태양숭배에서 정신문화가 피어났으며 알타이 산맥을 거쳐 일어난 청동기 곧 쇠그릇 문화가 서로 어울어져 이루어진 강력한 신흥 부족국가들의 탄생을 온 누리에 심는 얘기들이다. 소박하게 보면 태양숭배요, 영혼불멸의 영원회귀 지향의 그리움을 안아 살던 옛 한아비들의 꿈이 어린 파랑새가 바로 새의 전설이 아닌가 한다.

          새와 산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지네
        (김소월의 '산유화'에서)

  무수히 피었다 지는 꽃이 있는 곳에 새가 운다. 새가 있으매 숲이 있고 둥지를 틀 나무들이 큰 산을 이루어 살아간다. 새와 산은 뗄 수 없다. 삼국사기를 보매 3산5악에 산제사를 모신 보기들이 나온다. 산은 솟아 있다. 가장 높이 솟은 것은 빛나는 태양이요, 그 산위를 돌아나는 구름이며 새가  있다. 신라의 경우 큰 제사는 3산 - 나력(奈歷) 골화(骨火) 혈례(穴禮)산에서, 가운데 제사는 동에 토함산, 서에 계룡산, 남에 지리산, 북에 태백산, 중앙에 팔공산에서 모셨다. 해서 모두가 지역과 나라를 지켜준다고 믿어 우러름의 대상이 되었다. 토함산은 석탈해가 스스로 산신이 되어 일본의 침략을 막고자 하였던 일로 알려져 온다. 신라의 화랑들이 명산대천을 두루 찾아 제사를 올린 것도 산악숭배요, 태양숭배로 이어지는 믿음의 고리들이라 할 것이다. 고구려, 백제에서는 산신숭배가 어떠했던가. 3월 3일 낙랑에 모여 사냥한 멧돼지와 사슴으로 하늘과 산천에 제사를 지냈으니 고구려 사람들 또한 산신숭배를 하였던 것. 몹시 가물었던지 26대 평원왕은 끼니를 줄이고 금식하면서 산천에 제사를 모셨으며, 부여왕은 산천에 제사를 올려 왕세자를  구하였다. 백제의 제5대 임금인 초고왕은 산천에 큰 단을 모아 제사를 모셨다. 요즈음도 큰 산 입구에 국사당(國師堂)이 있음을 더러 볼 수 있다. 더러는 서낭당이 있다. 글쓴이의 보기로는 이 국사당이, 서낭이 바로 산신을 모시는 제당이었을 것으로 본다. 그 안에 모신 신위(神位)를 보면 분명 호랑이를 탄 산신이다. 대개의 절간 한 모퉁이에 산신각으로 그  남겨진 모습을 볼 수 있어 쓸쓸하다. 이두식으로 읽으면 '국사'는 '굿'이  되고 뜻으로 읽으면 나라의 스승이 제의를 모시는 집이 된다. 지금이니까 그렇지 스승이란 옛말로 무당 임금 승려 선생의 여러가지 뜻으로 쓰였던 터. 삼국사기에서는 자충(慈充)을 무당으로 규정하였으니 암시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다름 아닌 산굿을 하는 곳이 국사당이요, 산신각이다. 옛부터 내림으로 지켜 온 우리의 믿음이 밖에서 들어온 외래 종교들에 떠밀려 한 쪽 모서리 그나마도 아예 없어져 버린 절간이나 산굿의 장소가 많이 있음은 우리  모두가 우리의 종교를 잘 지켜 발전시키지 못한 탓이 아니겠는가. 어차피 모든 것은 변하고 바뀌게 마련이지만, 볼품없이 되어 버린  우리의 정신문화가 너무 초라하다. 그럼 오늘날은 어떤가. 그냥 무당이라 해서 아예 산제사는 제쳐놓고 병 고치는 푸닥거리나 하고 길흉화복을 예언해 주는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되기는 마찬가지. 서낭마저도 거의 사라져 버린 게 오늘의 현실이다. 어디나 산은 스스롭게 높이 솟아 있어 우러러 보게 된다. 스승이나 솟음이나 모두 슷(솟)에서 비롯한 소리꼴로서 '사이(間)'를 뜻한다(훈몽자회). 그러니까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땅과 저 푸른 하늘 사이에 값하는 솟음현상의 상징물인 것이다. 하여 저 산은 우리들에게 언제나 저 높은 곳을 향한 믿음과 신비로운 경건함을 배우게 한다. 더러는 바람으로, 때로는 구름으로 손짓해서 말이다. 아이를 못 낳을 제, 가물어 온 나라라가 타 들어갈 때, 산신을 찾아 산치성을 드린다. 산(山)은 어머니의 품성으로 산 자나 죽은 이를 싸 안아 준다. 영원한 쉼터로서 우리들 정서 속에 자리잡고 있다.  단군신화의 하늘나라에도 거룩한 제단이었던 '소도'가 바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현재와 미래, 찰나와 영원을 이어 주는 공간이 된다. 소도의  밑바탕은 'ㅅ-솟-솔'로 이어지는 사이 곧 새의 낱말 겨레로 고리지어 짐을 생각하면 산과 새는 불가분리의 물과 고기라고 할 수 있다. 신이 내리는 나무를 주로 솔나무 - 소나무로 한 것은 이 또한 '솔-ㅅ-솟'의 걸림을 가늠케 하는 보기가 된다.

  해서 산이름에도 새의 이름을 부름말로 삼는 일이 왕왕이 있어 왔다(봉황산 봉의산 응봉 치악산 계족산 계룡산 등). 평면 공간으로 볼라치면 한 지역과 다른 지역의 사이를 가르는 가름이 산으로 일어남이니 산과 새는 상당한 걸림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한라에서 백두에 이르는 경건한 믿음의 숲이 있기에, 대대로 이어 살아 온 한민족은 기어이 하나가 될 것이며, 홍익인간의  횃불을 산봉우리에 높이 들어 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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