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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4. 믿음이 깊은 곳에

         나라 사랑의 꽃, 무궁화여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아려 눈을 감네
       (이호우의 ‘개화(開花)’에서)

  꽃을 보고 더럽다든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온 겨레의 가슴에 와 닿는 나라꽃에서라면 더욱 애틋한 느낌이 있을  법한 일. 무궁화꽃이 비록 뚜렷하게 아름답지는 않은 꽃일지라도 말이다. 무궁화라, 끝없이 피고 지므로 하여 모진 겨울의 추위도 아랑곳없이 그 어디서나 흐드러지게 제 삶을 누리다가 스스로 사위어 간다. 조선왕조 고종 무렵에 칠곡부사로 나라일을 보던 한서 남궁억 선생이 선친들의 고향인 흥천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 때의 일이다. 고향마을에 배움터가 없음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서면 모곡리, 곧 보리울에 보리울 학교를 세우게 된다. 이 때 무렵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삼아 나라 사랑의 보람으로 하자는 뜻을 세웠던 것. 해서 보리울 학교에서 무궁화 어린 나무를 길러 온 나라의 학교와 교회, 혹은 사회단체 앞으로  보내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나라꽃으로 가꾸고 사랑하자는 집념을 편 게 나라꽃의 말미암음이 됐다. 꽃이란 말의 속내는 두드러져 솟아 나온 부분을  이른다. 얼굴의 코도 옛말은 '고'였으며 때로는 '곳(곶)'으로도 쓰였나니 코의 두드러짐과 같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씨알  보존의 열쇠이며 자물통이 꽃이요 그에 따라 오는 게 열매라 하겠다. 겨레의 오래고 먼 그리움처럼 홍천에서부터 삼천리 강산에 무궁화의 봄을 지폈던 것이다. 호사다마라고 어찌 시련이 없었을까. 3 1 기미 독립 운동 이후 일본의 사이또 총독은 마침내 무궁화를 없애고 벚나무를 심도록 명령했다. 보리울 학교인들 예외일 수만은 없었다. 관리들이 찾아 오면 뽕나무 밭이라고 속여서 어물어물 넘기곤 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 아닌가. 제 나라 땅에 나라꽃 한 그루 맘 놓고 가꾸고 아낄 수 없다니. 그러니  어쩌겠는가. 망한 나라의 백성이 겪는 그 고초야 더 물어 무엇하리. 목숨이 오고가는 마당에. "내 죽거든 무덤을 만들지 말고 무궁화 나무 밑에 묻어 거름이 되게 하라"고 남궁억 선생은 이르셨다. 그래서일까. 800여 동학전쟁 때의 농민군이 마지막으로 외세에 맞서 싸운 곳도, 6 25 한국전쟁 때 몸으로 돌격, 적의 전차를 맞서 대거리 한 곳도, 월남 파병을 앞두고 훈련 중에 부하들의 안전을 위하여 터지는 수류탄을 몸으로 덮쳐 산화한 강재구 소령의 고향이 바로 넓은 내, 홍천이었던 것이다.

        벌력천(伐力川)에서 홍천으로

  사람마다 부르는 이름이 있듯 땅 또한 그러하다. 한데 땅이름이란 시대에 따라서 바뀌어 가기도 하는 것. 고구려 때에는 홍천을 벌력천(伐力川)이라고 했으며, 통일신라 때에는 벌력천정(停)이라 하여 군인이 상주하는 군영지가 있었다. 한산정에서와 같이 군인이 주둔하는 곳을 '정'이라 했다. 그 뒤 신라 35대 임금이었던 경덕왕(757)적에 벌력천이 녹효(綠驍)현으로 바뀐다. 여기 '효'는 경상도 현풍이 '현효'이듯이 정(停)보다는 좀 약한 예비군 겸 군사용 말을 관리하는 곳을 이른다. 그러나  고려조 태조 때에 접어들면서 오늘날의 홍천(洪川)으로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러면 바뀐 이름 사이의 맞걸림은 어떻게 되는 걸까. 눈에 뜨이는 건 먼저 '벌(버르)-풀(푸르)'의 걸림이다.  소리의 발달로 보면 옛적 우리말에는 거센소리가 없었으니 풀(푸르)이 불(부르)의 소리마디의 꼴이 된다. 하면 홀소리가 달라졌을 뿐 '벌-풀'은 같은 흐름의 소리임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긴 홍천강이  흐르는 넓은 벌판에 푸른 먹거리들의 향기로운 벼 내음이며 계절따라 갈아 입는 철옷을, 보는 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삶에의 용기를 돋우어 주기에 충분하다. 벌 곧 벌판은 산골짜기에 견주어 볼 때 넓고 크다. 하니까 넓을 홍자, 홍천(洪川)으로 풀이하면 어떠할지. 벌력(伐力)의 글자 풀이를 하자매 치는 힘 곧 국방력을 드러낸 게 아닌가 한다. 공격이 최상의 방어는 아닐지라도 마한 진한 변한과 고구려 사이에서 혹은 성난 이리떼처럼 밀려 들어오는 여진족의 침입을 막자매 힘을 길러야 막는다는 주요한 군사의 요충지임을 드러낸 것이다.

  군사적인 가치는 물론이요, 먹거리 생산의  보금자리이니 이를 잘 지켜야만 했던 것. 게다가 원주와 춘천, 그리고 서울과 속초로 이어지는 활달한 교통의 모꼬지임은 홍천을 지나본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떠 올릴 수 있으리라. 마치 하늘을 스스롭게 날으는 새처럼 어느 쪽으로도 어렵지 않게 여행을 할 수 있게 된다. '벌-녹'의 맞걸림은 앞의 마디글에도 풀이한바 있는 '보리울(벌울)'에서도 그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어 재미롭다. 한자로 쓰면 모곡(牟谷)이라고 했거니와 이 또한 크다는 뜻이고 보면 넓다는 뜻의 홍천과 바로 맞닿는 뜻의 줄기가 있다. 보리(벌)라 함은 신라의 땅이름 또는 백제의 땅이름의 접미사로 쓰이는 보기가 상당히 있다. 서라벌 밀벌 소부리 니릉부리가 그런 경우임은 다 아는 터. 여름지이가 산골에서 물이 있는 벌판으로 비롯됨에 따른 자연스런 마을 이루기의 한 흔적이라 하겠다.

        상서로운 학이 울고 넘는 우령(羽嶺) 

  산의 모양이 공작처럼 생겨서 공작산일까. 수풀 우거진 산골짝에 속세를 등진 해탈한 성자처럼 서있는 수타사(水墮寺)가 한겨울 눈 속에 외로워  보인다. 요즘 종문의 개혁 바람과는 아랑곳없이. 응봉산(鷹峰山)에서 흘러 내린 덕치천 냇물이 공작산의 공작골과 함께  어우러져 수타사를 감돌아 이내  홍천강으로 든다. 저승으로 간 소헌왕후 심씨를 잊지 못해 그의 명복을 빌어 주려고 둘째 아들 수양대군에게 시켜 지은 세종임금 적의 '석보상절'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세조 임금이 된 수양은 1458년 '월인천강지곡'을 어우러 '월인석보'를 만들었는데 '용비어천가'와 함께 수타사의 사천왕상의 뱃속에서 나왔고 이를 갈무리하고 있다. 물론 절을 고치던 중의 일이었다. 절은 신라 성덕 임금 시절(708)에 원효 큰스님이 지었는데 본디 이름은 일월사(日月寺)이더니 뒤에 수타사(水墮寺)로 했다가 다시 취운대사가 조선왕조 고종 무렵에 목숨수자 비얄타자 수타사(壽陀寺)로 고쳐 부르게 되었으니 내력이나 빼어난 경치만큼이나 이름도 야단스럽다. 수타란 결국 부처님의 만수무강을 빈다는 뜻이렸다. 절에 보관된 '월인석보(月印釋譜)'의 한 부분을 살펴 보자.

    "팔방여래(八方如來)와 함께 내신 소리를 듣자옵고
     세상이 모두 진동하나니 다보여래와 함께 한 곳에 앉으신 상(相) 보옵고
     모든 나라가 기뻐하나니" ('월인석보' 319에서)

  남국을 그리는 공작새이듯 산이 부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듯. 홍천에는 비교적 새와 걸림을 보이는 땅이름이 상당히 있다. 학명루며 학교(鶴橋)가 그러하며 공작산과 응봉산 또한 그러하다. 어디 그뿐인가. 고개 중에는 깃우자 우령(羽嶺)도 이에 든다. 우령-깃고개에는 옛부터 내려 오는 이야기가 있으니 상당한 암시를 준다. 학이 객관 남쪽에 날아와 모여 있다가는 이 고개를 날아 구름과 함께 날아 넘는다. 그 때마다 고개에는 새깃 털이 많이 떨어졌다 하여 깃고개 우령이 되었다는 것. 다리를 다 만들었을 때 학이 날아들었다 하여 학다리. 그로 말미암은 학명루(鶴鳴褸). 학은 상서로운  새라고 하거니와 홍천은 그렇게 아름답고 길한 고장인가 보다. 한데 군을  대표하는 새가 '까치'로 되어 있다. 아마 좋은 소식을 가져다 주니까 상서로운 새로 보아서 그랬는지. 글쓰는 이의 생각이라면 역사성을 살려서 '학(鶴)'으로  하면 어떨까 한다. <훈몽자회>에 하였으되 하늘을 나르는 모든 날짐승을 '새'라고 하였다. 응봉산의 '응(鷹)' 또한 다를까. 새가 되긴 마찬가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숨어 든 잠재의식 속에는 많은 새들이 끝없이 날고  있다는 심리학의 얘기. 우리나라의 땅이름 중에는 새와  걸림을 보이는 곳이 많다. 공간으로 보면 '사이'지만 민간신앙으로 보면 우리의 영혼을 저승으로 데리고 가는 저승새의 구실을 한다는 게다. 예서  제서 피다 지는 산유화만큼이나 많은 새들이 공작산을 날아 절간의 풍경소리와 함께 노래를 부를 것이다.

       팔봉산은 본디 감물악(甘勿岳)이었으니

  땅이름 자료를 따르면 여덟 봉우리의 팔봉산(八峰山)은 본디 '감물악(甘勿岳)'이었다. 보리울 벌판을 적시우는 홍천강의 그 모습이 확실해 지기로는 팔봉천과 구만천이 만나면서부터이다. 산이 '감물악' 혹은 '감악'이라면 팔봉천 또한 감물내 혹은 감내(甘川)가 된다. 한반도에는  감(甘)-계의 냇물이나 산이름이 상당히 있다. 횡성의 감내가 그렇고 충청도 대전의 갑천, 경상도의 김천에 감내(甘川)가 그러하다. '감(갑)'은 가운데 신(神)을 이른다고 하였으니 보리울로서는 뿌리샘 중에 주요한 내가 된다는 뜻으로 풀면 어떨까 한다. 들과 물을 아끼고 간수함은 그게 우리 삶의 가능성이며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벌이나 산을 휘돌아 흐르는 곳의 땅모양이 코처럼 툭 튀어나온 모양이 꽃같다 하여 홍천을 달리 화산(花山)이라  했다. 홍천에는 새와 함께 꽃과  걸림을 보이는 땅이름이 여럿  있다. 꽃뫼(花山) 꽃마을(花洞) 꽃시내(花溪)가 그러하다. 그래서 한서 남궁억 선생의 마음 속에  나라꽃을 무궁화로 해 보겠다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일었는가. 그래서 꽃같은 나이에 농민의 목소리를 높이고 군인의 길을 지켜 나라가 어려웠을 때 꽃잎지듯 가버렸을까. 진달래를 군꽃으로 하였거니와 못다 핀 나라지킴의  넋인 양 온산에 진달래로 활활 타오르는가. 비가 내린 봄들녁에 보리울에 밭갈이틀의  소리가 요란하다. 때로 산골짝에는 봄일에 힘 겨운 소를 모는 산유화의 노래가 메아리지고.

        "산유화여 산유화여
         저 꽃 피어 농사일 시작하여
         저 꽃 지도록 필역하게
         얼럴럴 상사뒤 어여 뒤여 상사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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