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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4. 믿음이 깊은 곳에

        죽음의 소리 보람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 하여
        (유치환의 '바위'에서)

  죽음과 삶의 뿌리는 하나일 수 있다는 생각. 이름하여 윤회전생의 풀이다. 몸의 활동기능이 완전히 멈추는 동작과정을 '죽는다'고 한다. 더 나아가 비유적으로 쓰이면 '스스로 목숨을 끊다·(그림등에)생기가 없다·상대에 잡히다(경기에서)·불 꺼지다·맛이 가다'의 뜻으로 쓰인다. 대자연의 죽살이길을 누구라서 막을 수 있을까. 죽음처럼 절박한 한계상황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죽음에 대하여 진지한 자세로 아니 가장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종교는 없다. 죽음을 새로운 다시 삶에의 이정표로 보고 영원한 하늘나라에 가는 시점으로 본다. 가령 천국이라든가. 극락과 같은 것이 그러한 보기이다. 말은 소리상징이며 소리는 말을 쓰는 겨레들의 문화를 되비친다. 이제 죽음이란 소리상징이 어떠한 문화터전 위에서 쓰였으며 죽음에 대한 배달겨레의 깨달음은 어떠한 것일까. 돌그릇을 쓰던 신구석기 시대에 우리 한아비들은 혈거 곧 굴살이를 하였으며 나무 위에서 새의 둥우리 같은 데에서 살기도 하였다. 중국의 진서(辰書)에는 동이족들의 생활에 대하여 '여름에는 나무 위에서, 겨울에는 굴에서 살았다'고 풀이한다. 다시 <후한서(後漢書)>에서는 '흙으로 무덤과 같이 둥글게 만든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뿐이 아니다. 삼국지에서 이르기를 부족장의 경우 사다리 9개가 들어 갈 정도의 깊은 굴속에 자리잡고 살았다는 거다. 사실상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흙집 또는 공통주택들도 옛적의 굴살이의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지하철도 생각하기에 따라 부족장의 집에서 크게 다를 바가 있겠는가. 태어 나 사는  곳이 흙과 돌로, 나무로 이루어진 데라면 바로 그 자리에 돌아 가 죽음의 누리로 들어 간다. 하긴 우리들이 태어 난 어머니의 태반도 굴속이라 해서 뭐 이상 할 것이 있을까.

  움직임을 드러내는 '죽다(死)'는 말의 짜임으로 보아 어간 '죽'에 어미 '다'가 녹아 붙어 이루어진 말이다. 말의 줄기인 '죽'이 가리키는 속내는 무엇인가. 서재극(1980,중세국어 단어족 연구)에서 '죽'은 '기운이 떨어지고 앞으로 기운다'는 '숙다'의 '숙'에 그 뿌리를 둔다고 했다. 뜻이나 소리로 보아 그러할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소리의 경우 옛적에는 파찰음이 없었기 때문에 '숙→죽'의 변천과정이 풀이될 수 있다. 그럼 그 뜻은 어떠한 것인가. 또 '기운이 줄고 앞으로 기울어 지는' 게 곧 죽음인가 하는 물음이 남는다. 글쓴이는 '죽다'의 '죽'이 우리가 살다 돌아 가는 '땅'과 어떤 걸림이 있지 않을까 한다.형태로 보면'둑·디'에서 비롯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먼저 '둑'의 경우를 살펴 보자. '둑'은 흙이나 돌로 쌓아 올린 언덕을 이른다. '둑'의 원형은 흙으로 만든 무덤과 같은 집이요, 죽은 뒤에 돌아가는 공간의 모습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사투리말의 쓰임을 보아 '둑→죽'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둑→방죽(서천·함양) 뚝(많은 지역). '둑'의 모음이 바뀌어 이루어 지는 낱말겨레로는 '독(궤·항아리)덕대(시렁)'를 들 수 있다. 옛 사람들의 무덤에서  나오는 걸 보면 뼈항아리 곧 골호(骨壺)가 있는데 일종의 '독'에 해당하는 것이다. 항아리이기는  마찬가지이니까.

  '덕'의 경우만 해도 그러하다. 무더운 여름날 나무 위에 덕대를 매어 놓고 살았음은 필자도 생각이 난다. 덕대는 풍장(風葬)을 지낼 때에도 쓰인다고 한다. 조상이 돌아 가면 나무나 조금 높은 곳에 덕대를 매고 그 위에 시체를 모셔 놓아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뼈만 거두어 다시 장례를 지내는 풍습인데 진도 같은 일부 섬 지방에선 지금도 풍장이 행하여 진다고 한다. 결국 '둑-덕-독-딕'은 같은 계열의 낱말로서 같은 뜻에서 갈래져 나온 말이라 하겠다. 이 모두가 '땅'에서 비롯한다. 단적으로 공간명사 'ㄷ(다)'에서 비롯하여 발달한 형태들이다. 본디 '다'는 ㅎ종성체언으로도, ㄱ곡용어로도 쓰이다가 소리들이 윗말에 녹아 붙어 '독-둑-덕-닥-딕'으로 재구성된 말로 보인다. 이같이 땅을 드러내는 말에는 '디'가 있음을 지적해야 될 것 같다. 중세어 '디다(落)(월인석보 등)'는 '지다'로 바뀌어 쓰인다. 이른바 입천장소리되기를 따라 된 형태인 것이다. 가령 '숨지다·넘어지다·떨어지다'의 '지다'가 그러한 경우로 보면 된다. 보조용언으로 곧 의존동사로서  아주 널리 쓰이는 분포를 보인다. 땅을 뿌리로 하는 '죽다'의 '죽'은 방위로 보아 북쪽·뒤를 이른다. 막말로 해서 드러낼 때, '죽다'를 시골말로 '뒈지다'고 한다. 때로는 '뒤지다(강원등지) 디지다(경상도)'와 같이 말하기도 한다. '뒈지다'는  '두어지다'의 줄임말이다.

         삶의 뒤, 죽음의 그늘

        훈향내 높은 환상의 꿈터를 넘어서
        거룩한 해골의 무리
        말 없이 걷는
        칠흑의 하늘 주토(朱土)의 거리로 돌아가자
       (박종화의 '사의 예찬'에서)

  살아가는 동안의 시간과 공간이 삶의 앞이라면 죽음의 그늘이 드리운 가상의 시간과 공간은 뒤가 된다. 앞에서 '죽다-뒈지다(뒤지다)-디지다'를 떠올린 바 있다. 중세국어 자료를 보게 되면 '뒈지다'는 '두어지다'의 줄임말인 '두다'가 '뒷다(석보상절6.2)'로 적힌 것. 여기 '뒷'은 '뒤(ㅎ)-뒷'으로 쪼가를 수 있다. 흔히 '뒤'는 북쪽을 가리키고, 계절로는 겨울을, 짐승으로는 곰·거북이·뱀을, 소리로는 목구멍소리, 성으로는 여성을 드러내기도 한다(필자(1991) 우리말의 상상력). 특히 고조선 건국의 모티브가 된다. 단군의 어머니가 되며 우리말과 같은 계열의 만주어에서는 '조상신-영혼'의 뜻으로도 쓰인다. 곧 곰-조상신이라는 등식이 이루어 진다. 소리가  바뀌어 오늘의 '어머니'가 되었음은 '어머니와 곰신앙'부분을 보기로 한다. 땅과 걸림을 둘 때, 어머니는 곧 땅이요, 그 품에서 태어나 살다 다시 그 누리로 돌아 간다. 별상징과 뒤-곰을 더 풀이해 보자. 어느 겨레도  마찬가지이나 우리 조상들에게서 북두칠성 믿음은 아주 두드러진다. 태어남의 말미암음을 삼신(三神)이 별로 점지함으로써 비롯된다는 것. 어릴 때 궁둥이 쪽의 검푸른 반점을 삼신할머니가 빨리 나가라고 때려서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이른바 몽고반점이지. 해서인지 별신앙과 관계가 있는 땅이름이 꽤나 된다. 비로봉이 그 대표적인 보기이다. 사실 '비로봉'도 별의 사투리인 '빌(경상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 무리가 없다. '빌다'도 마찬가지이다. 별의 바탕은 무엇인가. 광명이요, 빛인 것이다. 결국 빛은 태양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특히 북두칠성과 맞걸림은 배달겨레가 바이칼호 변두리의 지역-고아시아족의 고향이 우리들의 밑곳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혼례장의 기러기, 임종직후의 복(復)이라 함은 모두가 죽은 뒤  고향의 나라에서, 다시 돌아  가 태어나기를 바라는 귀향의식의 드러냄이라는것.

  말의 형태로 보면 ㄱ-ㅎ종성체언은 서로 넘나 들어 쓰이는 일이 있다. 하면 '뒤(ㄱ)다→ㄷ다→쥑다→죽다'로 변천과정을 풀이할 수 있다. 하니까 '뒈지다-뒤지다'는 이미 과거 시제요 불타오르는 이 세상이 아니고 저승이 된다. 마침내 제 고향의 땅으로 가는바, '디다'의 '디'가 땅(다)을 드러냄은 같은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죽다'의 말뿌리를 생각해 보았다. 몇 가지 상정한 형태 가운데에서 글쓴이는 '뒤(ㄱ)다→ㄷ다→쥑다→죽다'로 봄이 옳지 않나 한다. 그것은  '둑→죽'보다는 소리의 질서가 더욱 그럴듯함이 있기 때문이다. 땅이름에서 '뒤'는 '디'로 드러나는 일이 왕왕 있다. 가령 지례(知禮)·지품(知品)의 [지-디]가 그 보기요, 경상도말로 '죽인다'를  '지긴다'로 함을 보더라도 그러하다. 경상도말에서는 '뒤'의 '뒤'가 '이'로 발음이  되기 십상이요, '뒤-쥐'는 구개음화에 따르는 바탕 풀이가 되기 때문이다. 또 '뒤(ㄱ)→둑(딕)→죽(직)'으로 풀이 못할 바도 아니다.

  낱말밭의 볼모에서라면 죽은 뒤에 영혼의 오름과 내림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배해수(1982)현대국어의 생명종식어에 대한 연구). 이 모두는 죽은 뒤의 누리와 관련하여 신앙에 터를 두고 생겨난 말들이다(천당가다-극락 가다-소천하다-등선(登仙)하다/지옥 가다-축생 되다-황천 가다 등). 분명한 것은 삶이 끝 나면 흙으로 돌아 가는 일이다. 그 건 바로 우리 삶의 뒤뜰이요, 조상이 묻힌 공간이 아닌가. 값 있는 죽음을 맞기 위한 참삶이 절실하다. 이는 바로 북두칠성의 별이 빛나는 어머니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기로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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