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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4. 믿음이 깊은 곳에

         굴살이와 굿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들어라
        들지를 않으면
        구워서 먹을테다
       (삼국유사 '영신가'에서)

  신령한 거북이를 통하여 하늘의 신이 내리심을 맞이하는 굿노래. 그것도 김수로왕을 맞이하는 맞이굿이 아니던가. 무당이 노래나 춤을 추면서 귀신에 치성을 드리는 의식이나 연극처럼 많은 사람이 모여 함께 누리는 구경거리를 일러 '굿'이라고 한다. 대체로 무당의 굿은 기원적으로 하늘신을 섬기는 제천의식에서 비롯한다. 모시는 신의 계통은 하늘의 천신→산신→성황신이거나 천신→산신→특수인격신→시조신 혹은 천신→시조신으로 떠올려 잡기도 한다. 그러면 제천의식을 드러내는 '굿'은 근원적으로 어떠한 뜻으로 쓰였으며 이 말과 궤를  같이하는 낱말겨레로는 어떤 형태가 있는가. 쓰임에 따라서 '굿'은 '굿(궂)-굳-굴(걸)'같은 말들과 함께 사람이나 짐승이 살던 굴(穴)을 가리킨다. 자료로 보아 굿은 제천의식을 올릴 때 종교적인 공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예컨대  삼국유사 에 나오는 단군신화의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를 빌었던 곳이 바로 굿(굴)이요, 「고구려국본기」에 나오는바, 단군이 기림이란 굴에서 제사를 드렸다는 것도 그러한 보기가 된다고 볼 수 있다.  고려사 의 삼성혈 이야기도 좋은 보기가 된다. 굴에서 세신이 나와서 처음으로 사람의 누리를 개척하게 되었다는 줄거리다. 적어도 신석기 이전 사람들의 주거 형태가 굴살이 곧 혈거생활이었음을 생각하면 굿은 종교공간이면서도 생활의 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역사적 유적들이 상당 수 있다. 이 때 살던 이들은 정착된 농경살이를 하였으며 뿔과 돌로 만든 쟁기, 낫, 돌, 맷돌 등을 썼다. 집의 모양은 원추형 또는 장방형의 굴살이를 하였다는 것이다. 혹은 받침기둥이 있는 민속촌의 오막살이를 연상케 하는 반쯤이 굴로 된 굴살이를 하였는데 이는 한반도와 요동반도 남쪽에서 그 유적이 발견되었다.(우리나라의  원시 잠자리에 관한 연구, 김용남 김용간, 1975(평양)).

   삼국지 위지동이전에서는 동이들의 주거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는데, 수풀 속에서 늘 굴살이를 하였고, 지도자의 굴은 사다리 아홉 개가 들어갈 정도였다고 하니 그 깊이가 상당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물론 동이족이 바로 한민족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으나 분명 동이족 가운데 대부분이 한민족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결국 오늘날 무당의 춤과 치성, 구경거리를 가리키는 '굿'은 기원적으로 종교이자 생활공간을 가리키는 굴(穴)에서 그 뜻이 바뀌어 오늘에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종교 공간에서 행위로 바뀐 셈이 된다. 종합문화의 복합성을 바탕으로 하는 제의 문화가 갈라져 종교와 정치는 따로 그 구실을 해냈다. 하지만 제의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옛말의 쓰임은 그뜻이 달라졌을 뿐 소리는 그대로 쓰인다. 행정관청을 구위 또는 구이(구의)라고 한다(두시언해등). 이 말들이 이루어진 과정을 보면 굴을 뜻하는 '굿'에 접미사 '의(이)'가 달라 붙어 '구시'로 되었다가  시옷이 반치음으로 되어 소리가 약해져서 '구위(구의, 구이)'로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제정일치 때 임금이 곧 종교의 지도자를 겸하고 있었고 또 임금-부족장이 제사를 드리거나 행정을 보던 공간이 모두 굴 속이었다고 보면 굿이 관청이라는 등식이 이루어진다. 이는 바로 말이 문화를 드러내는  보기라 하여 망설임이 없는 바탕이 된다 하겠다.

  행정관청의 일을 맡은 벼슬 혹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구실'이라 하거니와 구실도 위에서 풀이한 구위실과 같은 말로 '굿'에 일을 더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굿이란 공간이 해내던 역할의 분화가 이루어지고 형태는 그대로 있으나 가리키는 내용이 달라진 셈이다. 지금도 여전히 무당의 춤이나 치성드리는 일 따위를 굿이라고 하니까 종교적인 역할을 드러낸다는 것은 크게 다른 풀이가 있을 수 없다.

     굿은 굴이었다.

  방언 분포로 보면 말에 따라서 '구석'을 대부분 구석이라 하지만 구숙·구속·구식·구시라 한다. 이와 함께 소나 말의 먹이를 넣어 주는 것을 소구시·말구시라 하는데 지방에 따라서는 구융· 구시·귀영·구이·구세·귀이라 이른다(한국방언연구, 김형규,1982). 이 모두가 굿에서 갈라져 나와 쓰이는 형태들이다. 어느 모퉁이의 안쪽이나 밖에 드러나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친 곳을 구석이라 하지 않는가. 바위굴이나 구석진 곳에 촛불을 밝혀놓고 치성 올리는 일을 종종 볼 수 있다. 가령 제정일치의 시기였다고 하면 그것은 분명 제의공간일 것이며 북쪽의 거룩한 굿에 불신과 물신(땅신)-배달의 겨레신을 모셔서 치성을 드렸을 것이다. 강화도 참성단을  생각해 보자. 분화구인 구덩이 안에 들어가서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방위 별신에게 제사를 모시던 곳이 아닌가. 굿이 굴이라는 중거는 이 밖에도 상당히 많다. 우리의 신체조직 가운데 밖에서 우리 몸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옮겨지는 데가  '귀'다. 귀는 우리 옛말로 올라가면 구이로 발음되며 이는 '굿'에서 비롯한다. 그러니까  귀는 굿 곧 굴모양을 하여 소리가 담기는 얼안이란 말이다. 형태로 보든 그 기능으로 보든 설득력이 있다. 최현배 선생은 입을 입굴, 목을 목굴, 코를 콧굴로 이름지어 불렀거니와 굿-굴의 모양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긴 굴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둥그런 원형을 바탕으로 한다.

 둥그런 땅덩이 위에서  지구와 함께 돌아가며 삶이란 꽃은 피어나고 진다. 그리하여 삶의 고리를 만들고 목숨의 거룩한 씨알을 지켜나가고 서로는 하나의 목숨에서 말미암았음을 일깨워 살아간다. 날씨가 나쁘거나 언짢은 일이 있는 상태나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정황을 '궂다'라 한다. 또 '굿기다'가 그러한 뜻인데 무덤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말이다. 죽은 짐승의 고기를 '궂은 고기'라 하지 않는가. 어말자음에서 굿의 시옷이 파찰음으로 바뀌면 '궂'이 된다. 풀이에 따라서 굿-굴은 삶과 죽음의 공간이며 종교와 행정의 공간이랄 수가 있다. 글머리에서 보였거니와 굿의 낱말겨레로  어말자음이 바뀐 '굳-굴'의 경우를 떠올려 보자.  중세국어 자료를  보면 구들방·굳뱀·굳이라  해서 모두가 '굴'의 뜻으로 쓰인다. 지금도  방언에 따라 구덩이·구대이·구데이·구뎅이라 하여 쓰이고 있음은 잘 알려진 일이다.  음운교체의 일종으로 시옷이 말음에서 디귿으로 드러난 셈이다.여기서 다시  디귿이 흘림소리로 바뀌어 '굴'이 되기에 이른다.

  생각해 보면 굴의 모양과 걸림이 있는 사물이나 사실은 흔히 볼 수 있다. 원한경 선생이 사랑하던 초가지붕에 목화처럼 피어 오르던 연기를 뿜는 굴뚝과 바다의 돌과 돌 사이에 사는 굴이며 벌이 꽃에서 따다 먹이로 갈무리 해둔 달콤한 꿀도 굴과 걸림이 있다. 앞의 굴은 연기가 나오는 우묵한 공간이며 뒤의 굴은 움푹하게 들어간 돌 사이에 산다고 하여 아예 그러한 조개류의 이름으로 굳어졌고, 꿀은 벌이 갈무리한 먹이를 두는 구멍인데 공간이 사물자체를 이르는 말이 된 경우다. 헤르만헷세의 시「흰구름」의 구름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굴-구르'로 이어지는바 여기에서 파생된 동사의 명사형이 다름아닌 구름인 것이다. 구름 자체도 바람에 밀려 구르는 모양이지만 한용운의「구름」에서처럼 구름은 해를 가리고 온 누리를 어둡게 만드는 굴의 효과-굴현상을 가져오게 하니까. 오늘의 누리엔 참다운 사랑과 가르침의 굿이 필요하다. 거룩한 하늘의 뜻과 이 땅 한반도가 어우를 그러한 굿이. 거기에서 겨레의 참삶이 싹터 오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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