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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4. 믿음이 깊은 곳에

 
        술과 푸닥거리

         지나 가노라니 배부른 독에
         설진 강술을 빚오라
         조롱곳 누룩이 매와 잡사오니 내 이를 어찌 하리잇고
        ('청산별곡'에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사람들의 고통과 서러운 한을 이기지 못하여 술로 달랠 수밖에 없었나 보다. 137년이란 긴 세월 동안 몽고 사람들에게 압박과 설움을 당하면서 굽실거리고 70만이 넘는 사람들은 20년 동안 붙들려 가고 그것도 모자라 일본을 칠테니 모든 군사용 먹거리며 장비를 대라는 것. 전해 오기는 고려 때 이름 높은 원감국사의 '영남민간고상24운'을 바탕으로 해서 청산별곡이 되었다고 한다. 청산별곡의 후렴구의  '얄라(yala)'는 몽고말로서 서럽다는 뜻이라고 한다. 일본의 식민통치는 아예 저리 가야만 하던 상황이라. 그래 저래 술이나 퍼 마실 밖에 다른 길이 없었단 말인가. 술이란 무엇인가. 벌써 이른 때에 신에게 드리는 이바지로 술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삼국지의 기록에서처럼 여름지이를 시작할 때와 마칠 때에 풍년과 겨레의 안녕을 비는 큰 거지에서 날마다 며칠씩 먹거리와 술을 먹고 마시면서  노래와 춤을 추었다니 그 열기 또한 대단하였던 모양. 동네마다 노래방이 있으매 노래의 열기로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피속에는 그러한  옛부터의 열기가 내림을 타고 흐르는 듯.

  하늘과 땅신에게 이바지로 술을 바쳤다는 사연이 된다. 한 마당의 굿판을 벌려 신과 인간이, 인간과 인간이 하나됨에의 체험을 함으로써 모두는 하늘의 백성이 되고 신명이 지핀 거리, 축제의 거리가 된다. 하긴 서양말로 축제-페스티발도 '신을 즐겁게 하는' 일에서 말미암는다. 해서 모두는 공동운명체라는 믿음을 굳게 하였다. 뭔가 서로의 마음에 응어리를  풀고 닦아 내는 씻김굿이며, 푸닥거리를 치렀던 것. 한 마당의 굿판을 이끌어 나아갔던 이는 누구인가.  아사달에 벌린 신의 나라-신시(神市)에서는 환웅이 비스승, 구름스승, 바람스승을  더불어 사람의 나라에 내려 왔다는 거다. 이르자면 배달겨레의 위대한 스승들이라 할 수 있다. 스승이란 말은 사이를 뜻하는 슷(間)에 접미사 '응'이 붙어 이루어진 말이다(훈몽자회 참조). 사이라면 무슨 '사이'일까. 미루어 보건대, 하늘과 땅의, 신과 인간의 사이, 사람과 사람의 사이가 아닐까 한다. 앞의 사이는 종교직능자로서 교황에 맞먹는 스승의 구실이요, 뒤의 사이는 행정의 정치지도자로서의 스승이다. 정성 어린 제사를 모시는 이바지로서의  '술-사이'는 어떤 언어적인 질서로 풀이할 수 있을까. 풀이하는 이에 따라서 다르다.  술이란 다달말의 실에서, 우갈말의 셀에서, 산스크리트말의 수라에서, 몽고말의 상랑에서 빌어 온 것으로 보기도 한다(김원표, 1947, 술의 어원에 대하여).

  거꾸로 우리말 '술'에서 다른 겨레들이 꾸어 갔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마치 서양의 실크(silk)가 우리말의 '실'에서 옮겨 간 것처럼 말이다. 슷-숫을, 같은 '사이'의 뜻을 지니는 낱말겨레로 볼 수 있다. 숫은 다시 숟-술로 이어지는 가지벋음이 있으므로 해서 술은 곧 사이란 말이 되기에 이른다. 흔히 곡물에 누룩을 넣어 빚은 것으로 막걸리·청주·맥주가 있고, 증류한 것으로 소주·고량주가 있다. 그 밖에 화학적으로 만든 합성주, 향료 약거리를  넣어 만든 발효음료를 통틀어 술이라 한다. 문제는 발효에 있다고 본다. 상한  것도 아니요, 날 것도 아닌 중간쯤 되는 게 발효가 아니던가. 바로 술이 그러하다.  계림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술을 수발(禾醱)이라고 적었다. 글자대로 풀면 곡식(禾)을 발효(醱)시킨 것으로 본 것이다. 발효라 함은 곡식에 누룩을 넣어 썩은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날 것도 아닌 뜬 상태의 곡식이다. 여기에 여러가지 향료나 약거리를  사이에 끼워 넣기도 한다. 쟁기의 보습을 끼우는 것도 술이요, 먹거리를 퍼 먹는 숟가락도,  책이나 종이 사이에 놓아 두는 게 모두 술이 아닌가. 지나치면 독이요, 적절하여 알맞으면 술이 약이다. 혼례를 갓 치른 신랑과 신부는 합환주를 나눈다. 영혼과 육신으로 보아 이제 둘 사이에 다름이 있을 수 없다. 술로서 하나됨에의 동기유발을 불러 일으키는 데 큰 구실이 있다. 진실로 화기애애한 세상살이를 위하여 갈라진 겨레의 하나됨을 위하여 흠씬 취할 술을 마련해야 되리라. 하면 우린 한 몸이 되는 게 아닐까. 술의  참뜻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꽃 이바지

         진달래 바위 가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 않으신다면
         저 꽃 꺾어 바치오리다.
        (수로부인의 '헌화가'에서)

  꽃을 보고 더럽다고 하는 이가 있을까. 봄이면 산에 들에 어우러져 피는 진달래. 어쩐지 아려오는 설레임이 있음은 나 혼자뿐이랴. 삶에 지친 겨레와 함께 해 온 탓인지. 주리다 못해 진달래라도 뜯어 먹고 두견이 우는 봄밤 이즈러진 달을 보고 서러움을 달래던 자장가 때문이었을까. 꽃을 꺾어 뿌리며 부처님의 공덕을 기리는 산화가(散花歌)의 사연이  있다. 이를 보면 신에게 사람을 바치는 이바지, 아니면 대신 소나 개같은 짐승을 바치는 이바지, 보다 한 걸음 승화시켜 꽃을 바치는 꽃 이바지, 노래와  춤을 드리는 이바지, 실로 그 내력은 가지가지. 이제 꽃노래로 '헌화가'에  대한 사연을 더듬어 보자. 신라 33대 임금인 성덕왕 시절. 순정공(純貞公)이란 이가 명주-지금의 강릉 땅에 태수의 자리로 부임하는 도중이었다. 길을 가다가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게 된다. 병풍을 치듯한 바위벼랑이 바다에 이어 있고 천길이나 되는 듯 높은 벼랑 꼭대기에 손짓인양 철쭉꽃이 곱게 피어 있었다. 순정공의 부인 수로(水路)는 꽃을 보고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곁에 있는 이들에게 저 꽃을 꺾어 나에게 줄 사람이 없겠느냐고 물었으나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극락에 필 만다라화라도 되었을까. 아님 그저 그냥 가까이 보고 싶어 그랬을까. 때에 암소를 끌고 가던 웬 늙은이가 부인의 말을 들었다. 나의 꽃 이바지를 기꺼이 받아 준다면 꽃을 갖다 주겠단다. 아니나 다를까. 벼랑 위의 꽃을 꺾어 줌은 물론이요 꽃 이바지 노래-헌화가를 지어 바쳤다고 한다. 벼랑 위에 꽃꺾이를 한 것이 우선 신기한 일인데다가 노래까지 지어 바쳤다. 부임 행차는 계속 이어 진다. 임해정(臨海亭)에서 점심을 먹는데 바다의 용이 갑자기 나타나 수로부인을 이끌고 바다로 들어  간다. 이에 놀란 순정공은 발을 구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한데 이 게 웬일인가. 난데 없는 노인이 나타나 부인을 구출하는 방법을 일러 주지 않는가. 여러 사람의 말은 쇠도 녹인다(衆口삭金)고 했으니 바다의 용이라고 해서 뭇 사람의 말을 두렵게 여기지 않겠느냐고. 백성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지팡이로 강언덕을 치면 부인을 만날 수 있을 거라 했다. 말대로 사람들을 모아 '바다의 노래'를 불렀더니 용은 부인을 데리고 나와 순정공에게  되돌렸다. 불렀던 당시의 노래는 이러하다.

  "검(거북)이여 검이여/수로를 내 놓아라 남의 부인을 빼앗은 허물이 얼마나 크냐/만일 네가 부인을 내 놓지 않으면/그물로 잡아 구워 먹으리." ('해가(海歌)'에서)

  부인은 너무도 아름다워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면 여러 차례 귀신에게 잡힌 바 되었다. 수로는 벼랑 위에 핀 철쭉꽃을 갖고 싶어 했다. 사람의 손이라곤 닿지 않는 저 높은 벼랑 위의 꽃을. 알 길 없는 한 노인의 도움으로 꽃과 노래를 얻는다. 이르자면 꽃노래라고나 할까, 꽃 이바지라고 해 둘까.

        꽃은 두드러짐이라 

  사람이 신(神)을 섬기거나 사람을 모실 때에 이바지가 따르기 마련. 때로 꽃을 신에게 바치기도 하고 양같은 짐승을 이바지로  드리기도 한다. 심한 경우 신은 마침내 인간의 몸. 그것도 처녀를 요구하기도 한다. 부처 앞에 꽃을 뿌리고 공덕을 기리기도 하는바, 이를 산화공덕(散花功德)이라고 했다. 꽃이란 무엇인가. 꽃은 생명이 깃드는 보금자리요, 풀나무의 정수리이다. 그런데 그 꽃을 꺾어 바친다는건 희생이요, 자기 부정의 다시  태어남이다. 태어나는 공간은 물이며 바다를 지키는 용과의 하나됨이 아니겠는가. 최소한의 희생으로 나머지 모두가 산다면 그건 거룩한 일임에 틀림 없다. 꽃이 피고 진 자리에 열매가 자란다. 옛 것은 가고 새 것의 움이 트듯 또 다른 목숨살이의 터밭이 꽃이다. 옛말에 꽃은 곳(월인석보), 곧(두시언해), 곶(용비어천가)이었다. 그러니까 같은 뜻을 드러내는 같은 소리의 낱말겨레들이다. 꽃은 '두드러져 솟음'이다. 장산곶 마루에서 '곶'은 바다쪽으로 툭 두드러져 나온 뭍을 이른다. 꼬챙이처럼 말이다. '곳'은 어떤가. '곶'에서 받침소리 지읒이 마찰음이 되면 '곳'이 된다. 꽃봉오리가 솟아 나오듯 뭍도 물 보다는 위로 두드러져 솟아 오른 공간일 시 분명하다. 물론 '곧'은 받침 자리에서 얻어지는 말음현상에 따라 굳어진 말로 보인다. 마침내 '곶'이 거센소리와 된소리로  되어 오늘날의 '꽃'으로 바뀌어 쓰인다. 옛부터 우리의 산과 들에는 진달래가 피고 진다. 머리의 '헌화가'에서 그 꽃은 진달래로 봄이 옳다. '짙배 바위'의 짙배는 '딜배-달배-달외-달래'의 걸림을 보이는 말이기 때문이다. 경상도 대구에는 월배(月背)라는 곳이 있다. 월배를 이두식으로 읽으면 '달배'가 되니 말이다. 이는 또 그 주위의 꽃을 가리키는 '화원(花園)-달배'와 어울려 맞음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실상 진달래는 참꽃이라고도 하며 흔히 두견새의 넋을 떠 올리고 망제(望帝)의 옛일을 함께 고리지어 많은 정서를  우리들에게 안겨  준다.

   진달래는 짜임새로 보아 '진(眞)-짙/달래'의 어우름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꽃노래로 꽃 피는 아침과 달 뜨는 저녁이라 하나 꽃은 식물의 성(性)이요, 씨알보전의 상징이다. 특유의 빛깔과 냄새로 뭇 벌과 나비를 부르고, 지나는 바람에 날려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어렵사리 진달래꽃을 마련한 수로부인은 누구일까. 순정공의 아내임은 물론이요, 한 떨기 아름다운 꽃이라 해서 무리가  될까. 수로라, 물수의 '물'을 중심으로 해서 이두식으로 읽으면 '수로-물'이 된다. 하니까 당연히 바다의 신(神) 곧 물신과 하나가 된다. 또한 용의 제물이 된다. 훈몽자회 에서 용을 '미르(辰)'라 한다. '밀-물'은 한 가지로 '물(水)'을 바탕으로 한다. '밀'은 미륵신앙으로 이어지며 용으로 상징됨은 흔히 보는 일이다(서동요 참조). 어려운 일이 있기만 하면 도와 주는 노인. 짐작하건대 그 사람은 미륵부처가 사람의 몸을 입어 나타난 것이 아닐까. '미륵'도 읽기에 따라서는 '미르-밀'로 읽혀질 가능성이 있기로서다. 틈만 나면 바다를 건너 침노하는 일본의 세력은 떨칠 수 없는 위협이며, 크낙한 과제였으니 부처의 힘을 빌어 가정을 지키고 나라를 일으키는 호국안민의 생각을, 노래는 그 바탕으로 한다고 본다. 문무대왕이 죽은 뒤 감포 앞바다 속에 능침을 만들라고 한 걸 보면 당시에 일본과의 국제관계가 얼마나 어려웠던가를 쉽게 알아 차릴 수 있다. 꽃은 겨레를 지키려는  자기암시의 꽃이며 수로는  물-바다를 잘 지키라는 바다의 안녕 질서를 비는 사다리가 아니던가.

  이바지가 없는 누리. 그건 꽃이 펴도 져도 벌나비가 없는,  만들어진 거짓의 꽃일게다. 섬김은 다스리는 슬기요 미덕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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