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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4. 믿음이 깊은 곳에

        먼 눈 뜨기와 천수관음(千手觀音)

        무릎 세우고 두 손 모아
        천수 관음 앞에 비옵나이다
        일천 손과 일천 눈
        하나를 내어 하나를 덜기를
        두 눈 다 없는 이 몸이오니
        하나라도 주시옵소서
        아아 나에게 주오시면
        그 자비가 얼마나 클 것입니까    
        ('도천수관음가'에서)

  눈이 먼 아이를 둔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차라리 어머니 자신의 눈이 먼 게 낫지. 신라 경덕왕 무렵, 한기리(漢岐里)에 사는 희명(希明)부인은 태어나 다섯살 된 아이가 갑자기 소경이 되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행여 어떨까 하여 아이를 안고 분황사 왼쪽 집 북쪽 벽에 그려진 천수관음 앞에 나아갔다. 끓어 오르는 답답함과 간절한 소원이 온몸을 휩싸 안는다. 아이를 시켜 자신이 지은 노래를 부르며 관음(觀音)부처님께 눈을 뜨게 해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웬일인가. 아이의 먼 눈이 갑자기 보이는 게 아닌가. 희명부인의 기도소리를 바르게 들었을까. 관음부처의 일천 손과 일천 눈이. 부인의 이름이 드러내는 듯이 상당한 암시를 준다고  하겠다. 바랄 희, 밝을 명. 그러니까 눈이 밝게 되기를 빌고 바라서 소원을 성취한다는 얘기다. 그 간절한 기도의 소리를 눈으로  보듯 알아차린 관음(觀音)부처의 신통한  병고침. 앞뒤가 서로 걸맞는 줄거리다. 지극한 정성이면 먼 눈이라도 뜰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 것이다.

  눈이 멀다의 '멀다'는 어떠한 뜻바탕을 갖는가. 눈이 좋은 사람이라도 멀리 있는 하늘이나 산 혹은 바다를 보면 그 형체가 확연하게 보이지 않을 터. 멀어서 안 보이는 보통사람이나 맹인이나 멀리 있는 물체를 보지 못하기는 한 가지다. 마침내 '멀다'는 말은 '멀리 있다' 곧 보이지 않음을 우회적으로 에둘러 이르는 그림씨이다. 거꾸로 눈이 잘 보인다는 건 보아야 할 물체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어 확실하게 드러남을 이른다. 눈이 먼 아이의 안스러운 처지를 바라다 본 관음부처의 눈과 귀가 희명부인의 간절한 소원의 모습과 목소리를 보고 들었을것인즉. 아니라면 어떻게 천수관음부처에게 올리는 노래를 마치자 먼 눈이 잘 보였단 말인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지은이에 대하여 여러 가지 주장이 있어 온 게 사실. '아이로 하여 노래를 지어 부르게 했다(令兒作歌禱之)'는  삼국유사의 글을 어떻게 풀이하는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지은이가 된다. 우선  '아이로 하여금 노래를 지어 기도하도록 했다'는 풀이와 '아이로 하여금 (희명이) 노래를 지어 그대로 빌게 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앞의 경우라면 노래를 지은이도, 빈 사람도 아이가 되지만, 뒤의 경우에는 희명부인이 노래를 짓고 아이가 그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 빌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앞에서 희명부인이 지은 노래임을  풀이하였거니와 이제 노래의 내용을 떠 올리면서 그러한 가능성을 되짚어 보기로 한다.

       노래의 속내와 어머니의 기원

  무릎을 곧추하고 두 손바닥을 모음은 관음부처를 향한 경건한 기도의 자세를 드러낸다. 아이도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 기도하는  모습을 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짐 깊은 경건한 기도의 모습은 원왕생가(願往生歌)나 청전법륜가나 청불주세가(請佛住世歌)에서도 보인다. 두 손을 모으고 비는 원왕생의 노래, 법우(法友)를 빌기 위하여 부처님에게 나아가고 더 가까이 나아가는 청전법륜(請轉法輪)의 노래며 손을 부비어 아뢰는 청불주세(請佛住世)의 노래는 모두 간절한 사람들의 소망을 비는 모습임에 틀림없다(장진호,1989,  앞 논문 참조). 대상이 누구라도 좋다. 아이의 눈만 뜨게 해 준다면 하는 어머니의 샤마니즘에 가까운 생각은 분명 보통 사람의 생각을 넘는 초능력한 파장을 일으켜 관음부처의 마음에 전함으로써 같은 기가 만나는 동기감응(同氣感應)을 불러낸 것은 아닐런지. 지성이면 감천이라 함도 이러한 동기감응의 이어짐으로 말미암는 것이라고 본다. 무릎을 꿇는다 함은 모든 걸 던져 버린 상태다. 희명부인과 아이는 부처님의 은총을 기다린 것이다. 많은 사람의 간절한  말은 쇠붙이라도 녹인다고 했는바, 여기에 희명부인 말고 다른 사람의 정성이 끼어 들어 보았자 별 볼 일이 있겠는가. 또 다섯살의 아이가 그렇게 간절한 소원을 빌 수가 있을까도 의심스럽다. 

  이러한 희명부인의 절절한 기원은 둘째 연에서도 드러난다. 천수관음의 일천손 가운데 하나를 놓아서 손 끝에 달린 눈 하나를 빼어 아이에게 달라는 기원이다. 그 손과 눈은 어리석은 뭇중생을 위한  손이며 눈이었으나 저다지도 간절하게 비는 마음을 어찌하랴. 만일 승려가 이  노래를 지었을 경우라면 눈을 빼 달라는 교리에 벗어난  애원을 하기란 어려운 일.  아이의 눈을 고치게 하기 위하여는 염치도 온갖 명예도 다 던져 버리는 어머니의 피눈물 어린 정성이 노래에 배어 있는 것이다. 꼭히 승려가 지었고  빌었다면 눈을 뺄 게 아니고 다라니 주문과 같은 '다라니경(陀羅尼經)'을 읽으면서 빌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천수관음에 비는 노래를 지은 이는 희명부인 밖의 다른 사람일 가능성은 약한 것이다. 마치 부처님의 힘으로 눈을 뜨게 되는 심청의 아비 심봉사처럼 도천수관음가에 눈을 뜬 아이도 관음신앙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할 것이다. 희명 즉 부처의 광명한 세상에 눈을 뜸과 동시에 아이도 눈을 뜬다는 겹치기 효과가 있어 영험하고 신이한 부처의 누리를 깨닫게 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 것은 아닌가 한다. 눈이 육신의 등불이라면 믿음은 영혼의 누리를 밝히는 정신의 횃불이라 할 수 있다. 종교는 시대를  따라 바뀌지만 생노병사에  시달리는 삶이란 갈대는 지나친 욕심으로 점차 눈이 멀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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