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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4. 믿음이 깊은 곳에

        원망(怨望)의 노래와 잣나무

        물색 좋게 잣나무는
        가을에도 그릇되이 아니 지매
        (잣나무) 너처럼 (살아) 가자고 하였는데
        우러르던 (그 때 그) 얼굴이 (지금) 가신 줄에야
        달이 비치고 잠잠한 못엣
        지나가는 물결(이) 언덕을 할퀴듯이
        (임)의 모습이야 바라 볼 수 있다 해도
        세월 (세상 인심) 인즉 마저 함부로 달아난 것이로구나

       ('삼국유사 - 원가(怨歌)'에서)

  약속은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믿음이 깨어지고 없는 곳에 사랑의 움이 돋을 리가 있을까. 거기에는 어떤 열매도 바라 볼 수도 없는 일. 그것도  임금과 신하 사이에 있었던 굳건한 약속이었기에 더 절실했는지도 모른다. 나라는 어지러워 흔들리는데 이를 아물여 가기 위하여는, 앞  일을 꾀하기 위하여는 뼈를 깎는 발돋움이 요구되었던 터.한데 신충(信忠)과  경덕 임금 사이에 있었던 약속은 사라지고 속은 상하고 해서 임금과 함께 있었던 자리의 잣나무에 원망이 담긴 글을 적어 매어 달자 나무가 말라 죽는 이상스러운 변괴가 일어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거리가 되었다. 일연(一然)이 지은 삼국유사에는 효성왕 때의 이야기로 나온다. 효성왕이 세자 시절에 신충과 함께 바둑을 두면서 한 효성왕(孝成王)의 말이 있었다.
"뒷날에 내가 만일 그대를 잊는다면 저 잣나무가 증인이 될 것이다."라고. 얼마뒤 효성은 임금의 자리에 올랐으며 공을 세운 신하들에세 상을 주었다. 하지만 신충은 벼슬이 없었다. 이에 원망을 품은 신충(信忠)은 임금을  원망하는 노래를 지어 잣나무에 붙였는데 이게 웬 일인가. 나무가 말라 버리는 괴변이 일어났다는 것. 이를 안 임금은 진상을 조사해서 다시 신충을 불러 벼슬을 주매 잣나무가 다시 살아 나게 되었으니 그 때 신충이 지은 노래가 원망의 노래 -  원가(怨歌)라는 것이다. 여기 효성임금을 경덕임금으로 본 실마리는  무엇인가. 문제의 풀이는 신충이 벼슬을 그만 둔 시기로부터 따져봐야 할  것이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충은 경덕왕 16년(757)에 김사인(金思仁) 대신에 상대등(上大等)이란 벼슬에 오른다. 경덕왕이 우리나라의  땅이름을 당나라식으로  '-주(州) 군(郡) 현(縣)'을 붙여 쓰게 하는 등 중국화 정책을 실시하였던 시기가 바로 신충과 함깨 정사를 보던 때이다. 신충은 김옹과 더불어 경덕왕 22년(763)에 벼슬 자리에서 물러 난다. 이는 같은 정당이면서도 생각을 달리한 이순(李純)의 상소사건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실인즉 경덕왕의 정치가 잘못되었음을 바로 이르는 내용이었으니, 이들 대신에 만종(萬宗)과 양상(良相)이 등용된다. 뒷날 양상은 신라 36대 임금인 혜공을 죽이고 스스로가 임금의 자리에 오른다.

  신충은 개혁정치에 앞장 서 일하다가 반대파들에게 몰려서 그만 두게 되니 임금과의 약속이 깨어졌던 터. 차려 놓은 밥상에 재 뿌리기가 된 것이다. 나름대로 얼마나 야속하고 배신감을 느꼈겠는가. 한데 일연(一然)스님은 신충, 김옹, 이순이 모두 왕의 사랑을 받은 신하로서 함께 벼슬을 그만 두고 남산에 들어갔다고 적고 있다. 까닭인즉 삼국사기의 '신충, 김옹을 면하고'의 '면(免)'을 그냥 지나쳐 버렸으니 신충이 다른 두 벗과 약속을 하고 갓을 벗어 걸고 산으로 갔다는 풀이를 하였기 때문이다(양주동, 1977, 고가연구, 참조). 다시 신충이 벼슬을 그만 두고 단속사(斷俗寺)란 절을 지은 기록만 보아도 미심쩍다. 절을 지은 해가 일연스님의 기록으로는 경덕왕 22년(763)인데 배경설화에 대한 별도 기록인 별기(別記)에서는 이순이 왕 7년(748)에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일로 보아 '원가(怨歌)'를 지은 창작 시기나  동기가  삼국유사 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저 잣나무처럼 살자더니

  세자는 바둑을 두면서 잣나무를 두고 변함없이 잘 해 보자는 약속을 한다. 너를 잊지 않겠다(不忘汝)함은 특정 개인인 신충 뿐 아니라 신충과 함께 나눈 나라 다스림과 삶의 바른 길에 대한 서로간의  믿음이었을 것이다. 이에 감복한 신충은 일어나 절을 했다는 것(興拜). 세월이 흐르고 자리가 달라지면 마음이 바뀌기 쉽다.  경덕왕도 세자 때 먹었던 마음이 바뀌고 신충과의 언약을 저버렸으니 노래를 지어 잣나무에 걸어 놓고 원망하는 노래로 부를 밖에 다른 길이 없지 않은가. 반대파의 말만 듣고 신충과 김옹을 벼슬 자리에서 쫓아낸 것이니 바로 '우러르던 (그 때 그) 얼굴이 (지금) 가신 줄이야'하고 원망을 한다. 우러르던 얼굴은 곧 경덕왕이요, 변한 것 - 가신 것은 약속이요, 서로의 믿음임에 분명하다.

  "달이 비치고 잠잠한 못에 / 지나가는 물결이 언덕을 할퀴듯이"라.

  달빛이 환하고 아주 평화로운 연못에 바람이 불고 해서 그런 평화는 깨어진다. 못에 담기는 물은 나라 다스림으로 볼 수도, 많은 나라의 백성일  수도 있다. 본디 '못'이란 '못 - ㅁ - 몰'과 같은 낱말 겨레를 이루며 작은 물체들이 모여 드는 곳을 이른다. 하늘에서 내리는 빛은 달이니, 임금이 달로서 비유된다. 잔잔한 못은 평온한 세월인바, 여기에 바람이  불어 닥친다. 큰 시련이 다가 선 것이다. 신충과 임금의 약속은 무너지고 정세는 험난해져서 세상이 살얼음판으로 바뀌게 된 걸 이른다. 할퀴면 상처가 나는 법. 심하면 목숨을 잃는다. 해서 신충 산속으로 든다. 노래의 흐름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험한 세상을 원망하고 탄식하기에  이른다.

  "임의 모습이야 바라볼 수  있다 해도 / 세월(세상  인심)인즉 마저 함부로 달아난 것이로구나."

  임금은 같은 사람인데 간신의 무리들로 하여금 세상 인심이 고약해지고  평화는 사라지고. 신충 자신의 무능력함과 아울러 임금의 믿음 없음을 한탄하고 있는 드러냄이다. 노래의 줄거리로 보아서 정과정곡의 마지막 글과 같이 임금이 마음을 돌리어 옛 약속을 지킴을 애원하는 부분이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장진호, 1989, 앞의 논문). 애 어른 할 것 없이 약속을 지킨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약속은 약속이기에 믿음을 이루어 내야 한다. 믿음은 '믿다'에서 갈라져 나온 이름씨이다. 여기 '믿'은 바탕 곧 땅을 가리킨다. 땅을 딛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가 신하이든 임금이든 마찬가지. 흙에서 모든 목숨살이가 태어나서 다시 그 흙으로 돌아감이니 가장 변함이  없는 건 흙이다. 흙은 어머니요, 삶의 뿌리이니 진실로 믿음이란 우리의 영혼이 깃드는 영역이기에 믿음을 저버리면 거기에는 깨어져 부서짐만이 있을 것이로다. 믿음이여.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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