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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2 - 정호완
 


      4. 믿음이 깊은 곳에

       돌아 간 누이를 위한 노래, 제망매가


        죽고 사는 길이
        여기 있어 두려웠는지
        나는 가네 말도 못 하고 가버렸는가
        어느 이른 가을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가지에 나고도
        간 곳을 모르누나
        아아
        미타찰에서 만나 볼 나는
        도를 닦으며 기다리련다.

        (월명사의 '제망매가')

  태어 났으매 살아 가는 것이고 하여 다시 죽음에 이른다. 내가 있으므로 해서 다시 사라져 가는 게 스스로운 대자연의 질서요, 길인 것이다. 호머의 글에서처럼 우리는 나무의 잎새처럼 봄·여름을 살다 가을이 되면 대지의 품으로 돌아 간다. 하지만 삶과 죽음이란 언덕에 서서  만나고 헤어지는 아픔은 언제나 강물같은 서러움으로 얼룩져 영혼을 적시우고 어느 새 허허로운 벌판을 가는 나그네가 되곤 한다. 불도에 넓고 깊게 나아 간 월명(月明)스님도 그러하거늘 우리네 먹고 마시는 일에 빠진 이들이야 일러 무엇 하리오. 일찌기 저승으로 간 누이 동생을 위하여 월명 스님은 정성스레 재를 올리고 다짐 깊은 인간적 고뇌와 불제자로서의 마음을 노래로써 부처님 앞에 이바지한다. 스산하게 부는 가을 바람에 지는 잎새가 뒹구는 밤에 촛불을 밝혀 놓고 속세의 남매된 인연에 목메여 울먹이면서. 죽는 사람이 어디 작별 인사하는 것을 보았는가. 그저 살아 있는 오빠의 애끊는 마음일 뿐. 한 가지는 같은 부모요,  핏줄이다. 잎새 또한 같은 가지에서 피어 나고 짐이니 삶의 덧 없음은 물론이요, 형제간의 걸림을 드러낸 부분이다. '잎'은 입(口)에서 받침이 파열성을 더하면서 갈라진 말이다. 보통 입이라면 먹거리를 먹고 숨살이를 이어 가는 첫 관문이요, 말을 하는 언어적 존재의 표상이 되는  조직이다.중세어로는  닙(염불보권문32)인데 이는 앞을 뜻하는 '님'에서 비롯한다. 지금도 경상도 지역에서는 '이말·임'이라 하는바 중세기로 치면 모두 니말·님이 됨으로서다. 그러니까 먹거리로  보면 제일 앞에 있는 신체조직이요, 주요한 목거지가 된다. 먹는 것만큼 좋은 것은  많지 않으니까 말이다. 기원적으로 '님'은 '니' 혹은 '니마'에서  오는데 여기 '니'는 태양을 뜻하는 기초어휘에서 비롯되며 태양숭배의 제의문화 시대에는 부족의 머리가 태양신에게 제의를 올렸던 것(필자,1990, '님'의 형태와 의미).

  세월이 흐르고 삶의 모습이 달라지면 같은 말이라도  그 뜻이 달라진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해서 '니마(님)-닙-닢'으로 펴 나아갔는데 뜻이 태양에서 상당히 멀어졌다. 태양이 모든 만물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빛과 열의 샘이고 입이 먹거리를 대는, 탄소동화작용을 일으키는 부분이란 점에서는 맥을 같이 하고 있긴 하다. 입(口)으로 사람의 수를 헤아릴 적에 인구(人口)란 말을 쓴다. 입이 몇 개냐는 말이 된다. 나무의 잎도 태양의 에너지-힘을 받아 광합성을 이루는 부분이고 보니 잎이 얼마나 튼튼한가에 따라 나무나 풀의 삶이 좌우된다. 뿌리가 튼튼하면 잎이 무성하다(根固葉茂)함은 잎이 무성해야 뿌리가 튼튼하다는 말도 되므로 그러하다. 영원한 즐거움이 있는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노래 이바지를 한 월명 스님은 어떤 분인가. 사천왕사(四天王寺)에 살면서 피리를 잘 불었다. 한번은 큰 길을 지나면서 피리를 부니 달님은 스님을 위하여 그 자리에 멈추었다고 한다. 때문에 그 곳을 월명리(月明里)라고 했다는 얘기. 이로부터 법사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돌아간 누이를 위하여 법당에서 재를 올렸으니, 없는 종이돈을 마련하여 노래와 함께 이바지를 하니 갑자기  바람이 불어 종이돈은 서쪽으로 날아 가고 없어지게 됐다. 극락-미타찰로 가는 길에도 돈이 필요했음인가. 아니면 돈 따위는 필요 없어 바람에 날렸음인가.

  이 노래는 불가에서 이르는 고집멸도(苦集滅道)의 4제(四諦)를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짜임을 보인다.(이어령, 1985, 고전을 읽는 법 참조). 사제란 영원히 변함이 없는 불교의 법리 중의 하나다. 나고 죽고 병들어 늙음이 모두 괴로운 인생 길이라 이르러 고제(苦諦)요, 이들 괴로움의 뿌리가 소유라든가 애정욕과 같은 고제의 말미암음이 되나니 이가 곧 집제(集諦)이다. 한편 이러한 괴로움을 훌훌 벗어 던져 버린 상태가 멸제(滅諦)인데 해탈 또는 열반의 경지를 이른다. 나머지 도성제(道聖諦)는 무엇인가. 이는 열반에 이르는 수행과정을 뜻하는데 바르게 보고  생각하는 등의 팔정도(八正道)가 그것이다. 이렇게 되면, 석가세존이 진리를 깨친  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비구에게  풀이해 준 그 길이 도성제다. 흔히 말하는 무소유의 소유가 아닐런지. 없음과 있음이 하나 되는 논리 이전의, 소유 이전의 자연의 세계라 해서 좋을 것이다. 노래 속에는 4제를 깨우치고 힘 써 길을 닦노라면 극락에 들 날이 온다는 기다림의 미학(美學)이 배어 있다. 기다림은 아름다운  것이다. 때로는 실망스럽고 지루한 것이나 본디 기다리다는 '집으로 돌아 온다'는 뜻이다. 그 것도 영원한 우리들의 천국으로.  중세기말에서는 기다리다가 '기들오다'(두시언해 등)로서 이를 가르면 긷(家보금자리)에 오다가  덧붙어 이루어진 말로 미루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영원한 기다림. 그건 우리 모두의 안식이며 꿈이기에 소중한 것이다. 조금은 기다리면서 살 일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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